이사를 마치고 영일이를 데리러 갔다. 퇴근 후에 조금 더 일찍 데리러 갈 수 있었는데 방의 바닥 몰딩이 아직 엉망인 점이 신경 쓰여서 퇴근길에 몰딩 재료를 샀다. 두 시간 동안 바닥 몰딩을 새로 했다. 나도 내가 바닥 몰딩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입양을 결정하고 이사를 준비하면서 임시 보호자 님이 영일이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알려주셨는데, 영일이는 그 사이에 설사가 완전히 잡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굉장한 똥 사진을 한 장 보내주셨는데, 고양이 똥을 한 번도 자세히 본적 없는 내가 보아도 아주 좋은 결과물이었다. 허피스는 아직 완전히 잡히지 않아서 에어컨을 틀면 여전히 재채기를 하지만 처음과 비교하면 아주 좋아졌다고 했다. 자세히 들으면 가끔 골골거리는 것과 다른 소리를 내는데 호흡기가 완전히 좋아지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았다. 영일이의 호흡기가 잘 먹고 잘 자라면서 자연히 좋아질지, 영구 장애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가능하면 방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몇 주 전 친구 집에서 영일이가 종종 바닥을 핥는 것을 봤기 때문에…

몰딩을 끝내고 방 정리가 마무리 되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룸메이트가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나와 룸메이트, 그리고 리코 셋이서 영일이를 데리러 갔다. 리코는 친구인 사람이를 만날 생각에 엄청 들떠 있었고, 나와 룸메이트는 과연 영일이와 리코가 서로에게 잘 적응할 것인지 걱정했다. 임시 보호자 님의 집에 도착하자 사람이가 우리가 올라오는 발소리를 듣고 왈왈 짖기 시작했다. 사람이가 짖는 소리에 리코는 더욱 헉헉거렸고 문이 열리자마자 두 절친 강아지는 거실에서 미친 듯이 놀기 시작했다. 나는 큰 강아지 둘이 전력으로 노는 모습을 처음 봐서 살짝 무서웠는데 영일이는 그냥 식탁 밑에서 둘이 노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리코를 조금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1개월이 조금 넘은 영일이는 처음 봤을 때보다 1.5배 정도 커져 있었다. 그래도 아직 고양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크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호기심이 많고 겁이 없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살이 오른 것 같기도 했다. 리코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와 노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영일이를 보지 못했고, 영일이만 리코를 봤다. 그러는 동안 임시 보호자 님과 영일이와 리코 합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 자란 고양이는 보통 강아지를 싫어하기 때문에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고서는 합사가 어렵다고 들었다. 하지만 영일이는 아직 어리고, 사람이라는 강아지와 아주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리코와도 잘 지낼 가능성이 있었다. 임시 보호자 님은 영일이가 다른 고양이와 만났을 때 영일이는 곧장 털을 세웠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영일이는 고양이와 지낸 시간보다 강아지와 지낸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러니 낯선 고양이에게 털을 세우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영일이는 식탁 밑에서 리코와 사람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구석에서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리코가 영일이를 발견했다. 리코는 사람이와 놀 때보다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다. 영일이를 엄청 좋아하는 눈치였다. 같이 놀고 싶은데 노는 방법은 모르겠고, 아무튼 같이 놀고 싶은 소리를 엄청 냈다. 룸메이트는 강아지들이 뭔가 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같이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 닭 소리나 피리 소리를 낸다고 말해줬다.

영일이는 낯선 리코의 반복적인 접근에 결국 털을 세우고 꼬리를 펑! 터뜨렸다. 등도 엄청나게 말아 세우고 몸집을 키웠다. 그래봤자 작아도 너무 작았지만 아무튼 영일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계였다. 리코는 최근 강아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 영일이에게 거절을 당하자 바로 영일이와 거리를 두고 방을 한 바퀴 크게 돌았다. 그리고 다시 영일이에게 갔다. 이걸 대충 열 번은 반복한 것 같다. 리코... 리코… 리코…! 의젓한 두 살 강아지!

나는 리코가 의젓하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영일이를 걱정했다. 어쨌든 나는 영일이의 보호자니까. 영일이는 아직 근육이 다 발달하지 않은 아기 고양이지만, 리코는 올해 두 살로 성견이었다. 리코가 영일이와 강아지의 방식대로 논다면 영일이가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리코의 흥분도는 계속해서 올라갔고 나와 룸메이트, 그리고 임시 보호자 님은 합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룸메이트는 영일이를 향해서 미친 듯이 달려들 자세를 취하는 리코의 목줄을 두 손을 겨우 붙들고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내린 합사 방식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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