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타인에 대한 상해,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및 살인,학대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 있습니다. 관련한 트리거가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을 때,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어, 멀리 있는 사람에게 칼을 날리는 것, 죽일 수 없는 상대를 죽이는 것 등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인간들은 나를 신으로 불렀다.

 

***

 

 사람들은 자신의 원수를 죽여달라, 자신을 배신한 남편을 죽여달라며 나를 찾아왔다. 나를 찾아온 이들이 말한 대로 사람을 죽이면 다른 사람을 죽여달라고 다시 나를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내게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은 숨쉬기와 같았다. 어떤 날은 사람들을 많이 죽여 내 전신에 피가 안 묻은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내가 죽인 사람들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끝까지 자신만 살려고 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내가 휘두르는 칼 한 번이면 이 세상과 작별을 하는데 내게 목숨을 구걸하다가 끝내 세상과 작별을 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내가 할 일은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 날은 새벽에 한 사람을 죽이고 온 날이었다.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휴식은 필요했다. 죽인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이 없었지만 사람을 죽인 후에는 아무래도 쉬고 싶었다. 사람을 죽이기 전까지는 신경 쓸 것이 많아 피로했다. 그래서 휴식을 취하기 내가 머무르는 곳으로 갔다. 내가 머무르는 곳은 신이 산다고 한다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간신히 집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이었다. 짚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집은 외형으로 보기에도 이곳에 사람이 겨우 살겠구나 싶은 정도였고 그 안에는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용품만이 갖춰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는 장소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사는 곳 앞에 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 소년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흠칫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소년과 눈을 마주쳤을 때 나는 왜 그 소년이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장소에 있음에도 이 곳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와 같은 흑발을 가지고 회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울고 있는 아이와 이야기 했던 적이 없어서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머무르고 있을 때 그 소년이 먼저 내게 말했다.

 

  “혹시 지옥에서 저를 데리러 온 악마예요?”

 

 소년의 물음을 듣고 나는 소년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으나 티는 내지 않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부모를 찾고 싶다면 찾아줄 수 있어.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지낼 수 없어.”

 

 내 말을 듣고 소년은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내게 말했다.

 

  “부모님은...... 없어요. 마을에서는 제가 저주받은 아이라서 마을에서 살 수 없대요. 그렇지만 이 집도 주인이 있다면 제가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가는 수밖에 없죠.”

 

 부모님이 없다는 말에 소년의 말에 망설임이 있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척 했다. 이 소년은 부모에게 쫓겨나듯 버림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소년이 버림받고 마을에서도 살 수 없는 이유는 나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소년의 연령은 9세~10세 즈음이나 되었을까? 며칠 동안 이곳을 헤매고 다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은 때가 타서 원래의 색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소년혼자 살 수 있을 만큼 이곳은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이 숲은 마계와 이어져있어 마계에서 나온 오거나 트롤과 만날 가능성도 있었다. 평소였다면 그냥 그 소년이 살 만한 장소에 옮겨 줬겠지만 그날은 달랐다. 이 세계에서는 나와 같은 머리색을 가진 사람과 만날 확률이 낮았기 때문에 호기심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말을 한 후 내 삶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다. 네가 살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곳에 있는 게 더 낫겠지. 들어와라.”

 

 그 말을 듣자 소년은 내게 다시 되물었다.

 

  “정말 제가 여기 있어도 되나요?”

 

 소년의 말을 듣고 나는 귀찮은 듯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말한 후 나는 피를 씻기 위해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강으로 갔다.

 

***

 

 그 날 만난 소년은 그 이후로 나와 같이 살게 되었다. 소년은 내가 누군지도 어떤 일을 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소년에게 물었다.

 

  “너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소년은 청소를 하다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 얼굴을 쳐다보는 소년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살이 더 올랐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이라고 해도 인간이 많은 마을의 번화가에 가서 옷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인간을 죽인 후, 그 사람이 살던 곳에서 소년이 입을 만한 옷을 하나씩 가져온 탓에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은 몸에 맞지 않아 몇 번이나 접혀 있었다.

 

  “요한님은 그 날 이후로 굶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신 분이잖아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에 대해 제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저에게 손을 내밀어주셨으니까 올바른 일을 하고 계시겠지요.”

 

 그렇게 말한 후 소년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소년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고맙다.”

 

*

 

 소년이 나와 함께 살게 된 지 몇 년이 흘렀는지 몰랐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소년은 내 허리까지 와서 소년과 이야기하려면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키가 많이 커서 나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목소리도 굵어져서 가끔은 내가 기억하는 목소리와 달라 놀랄 때도 있었다. 달라진 소년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나와 같이 살지 않아도 소년 스스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들어 소년에게 말했다.

 

  “너는 이제 자유다.”

 

 내 말을 들은 소년은 나에게 다가와 안겼다.

 

  “그러지 마세요. 저는 이제 요한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요.”


 여느 때처럼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소년에게 말했다.

 

  “너와 나는 살아가는 시간이 다르다. 너는 언젠가 죽게 될 거고 나는 네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겠지. 네가 원한다면 계속 여기에 살아도 좋지만 그렇게 된다면 너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한 후 소년을 떼어놓으려고 할 때 소년은 자신의 입술과 내 입술을 맞췄다. 부끄러운 듯 조심스럽게 입을 맞춘 소년은 내게 말했다.

 

  “좋아해요. 무슨 말을 하시더라도 저는 요한님 곁에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과 살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저 제 옆에는 요한님만 있으면 되니까요.”

 

 소년의 말이 끝나자 나는 이때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어떤 감정이 나를 감쌌다. 그대로 소년을 안고 침대로 향했다.

 

 

***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은 채 흘러갔다. 소년은 청년으로, 그리고 노인이 되었다. 노인이 된 소년은 죽음을 가까이 다가오자 내게 말했다.

 

  “만약 제게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찾아올게요. 그때는 꼭 요한을 먼저 찾아낼게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줘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으며 노인이 된 소년에게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 만약 다음이 있다면 너는 나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네 행복을 찾아서 가라.”

 

 그것이 노인이 된 소년과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 대화를 한 다음 날, 대륙에는 혼돈이 찾아왔고 혼돈이 찾아오자 인간들은 나를 찾았다. 그 혼돈이 정리될 즈음에 내가 살던 곳에 가니 노인이 된 소년이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노인이 된 소년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 채 나는 소년을 묻었다.

 

*

 

 소년에게 나를 찾지 말라고 말했지만 나는 소년을 보낸 후 인간이 사는 세계로 나와 언젠가 소년과 만날 날을 기다리며 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소년의 죽음 이후에 계속 멈춰있을 거 같았던 세계는 빠르게 변해갔다. 인간은 모두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하자 인간계에 살던 신들은 원래 살던 곳인 천계로 돌아갔다. 마계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존재로 바뀌었다. 마법으로 이뤄졌던 일은 모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간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왕, 귀족, 평민은 사라지고 겉으로 보기에 인간들은 모두 평등해졌다.

 

*

 

 그렇지만 세계 한 쪽에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었고 나는 그런 곳에서 일을 하다가 사는 곳을 옮기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를 걷던 나에게 누군가가 내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요.”

 

 내 옷자락을 잡은 소년의 얼굴을 보고 나는 거리에서 주저앉았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도 하지 못하고 매일 눈에 그리던 그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정말 다시 만났군.”

 

 내 말을 듣고 소년은 웃음을 지었다. 나도 어색하지만 그 소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연성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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