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해준이 가장 처음 한 생각은, 예약한 객실의 침대가 이렇게 넓었나 하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과 함께 몸을 일으키자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타들어 가는 갈증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과음했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키며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러고 보니 언제 호텔로 돌아온 거지? 그보다 방 구조가 미묘하게 다른 것 같은데.

어제 꿈결에 은영이 나왔던 것이 기억났다. 터무니없는 무의식에 해준이 피식 웃었다.

어린 아이처럼 우는 은영이라니. 20대 초반에야 몇 번 본 그 모습들이 내심 그리웠던 것일까. 지금의 그는 제법 아픈 말도 할 줄 알 정도로 커버렸는데.

아니, 사실 커진 것은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은영을 좋아하기 전에는, 그가 어떤 말을 하든 타격받지 않았으니까. 그때가 왠지 까마득한 전생의 기억과도 같아 해준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지금이 몇 시지?

무심코 발걸음을 옮기며, 중문을 나서던 해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문? 중문이 있단 소리는 어느 모로 봐도 스위트룸 같은데. 내가 예약한 게 스위트 룸이던가?

그러던 도중, 뭔가를 발견해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거실의 커다란 소파에 누군가 길게 누워 있었다. 문제는 그 얼굴이 발리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인간이라는데 있었다. 깊게 잠들었는지 은영에게서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해준은 제 눈을 거칠게 비볐다.

아니, 그러면 그게. 꿈이 아니었다고?

바로 그저께까지만 하더라도 클럽에서 놀던 놈이, 어떻게 발리에 있단 말인가.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 자신이 찾아갔을 때의 옷차림 그대로인 것을 본 해준은 심란해졌다.

그럼 해변에서 잠든 자신을 데리고 여기까지 옮겨다 놓은 것도 놈인가? 어떻게 알고 쫓아왔을까. 왜 왔을까.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것처럼 말하더니.

단서를 잡기 위해 해준은 드문드문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불공평해.’

억울했나? 옷도 갈아입을 새 없이 쫓아 와 따져댈 만큼.

한결 수척해진 얼굴 가운데 눈 밑의 그늘이 안쓰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다보던 해준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점심 약속이 잡혀있었다. 은영의 존재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아무런 대비도 없이 맞닥트리기에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해장부터 하고 생각해보자며 해준은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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