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맥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한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학교를 가다가, 수퍼를 가다가, 심장이 부르를 떨리는게 짧으면 5초 길면 1분 대개는 30초내외 이어졌다. 엄마한테 가끔 그런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일년에 한두번 정기검진으로 다니는 병원에가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하기전 14살의 설이 되었다. TV에서 틀어줬는지, 아니면 비디오를 빌려왔던건지 정확한 경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사촌언니 집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끌려간뒤, 아들에게 이 모든게 게임이라 속이며 자신의 목숨을 결국 잃으면서까지 아들을 살린 한 유대인의 영화로 호평과 많은 상을 받았다.

 어른들은 집에 안계셨고, 나는 언니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 언니네 강아지 미미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또 익숙한 심장의 떨림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1분이 넘어도 10분이 넘어도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언니가 물을 떠다 주었다. 물컵을 잡는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사촌언니도 나도 뭔가 잘못되었다는걸 알았지만 언니는 나와 3살 차이였다.  그때는 우리 가족 누구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생은 아름다워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떨리는 가슴과 손발을 잊기 위해 영화를 아주 열심히 봤다. 마지막에 아들이 구출되는 장면까지 다 봤다. 마침내 엄마가 도착했고 컵도 제대로 못드는 나를 보면서 그제서야 상황이 심각한걸 알고는 차에 태워 바로 응급실로 갔다. 구급차가 아니라 우리차였는지 언니네 차였는지 여하튼 자동차를 타고갔다. 엄마가 불량식품을 먹었냐는 추궁을 했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심박동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이고 모니터를 확인하니, 맥박은 180을 넘고 있었다. 응급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선천적 심장병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어린이 병원에 다니며 어린이 병원 전용 응급실을 이용한다. 그래서 응급실에 갈때마다 나는 늘 최우선순위가 된다. 어린이 응급실을 찾는 어린이들은 사실 나만큼 큰 일인 경우가 드물다. 

 보통 150 이상의 빈맥이 1시간정도 이어지면 기절하기 마련인데, 나는 특이하게도 지금까지 한번도 기절을 한 적이없다. 이유를 최근에도 주치의에게 물어봤지만 그냥 내 심장의 특성이라고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부정맥을 온전히 다 느낀다. 그것때문에 겪은 여러가지 일들은 나중에 적기로 한다.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차라리 기절을 바랄만큼. 

정확히는 기억안나지만 아마 약물로 진정시도를 한뒤, 소용이 없자(이 방법은 딱 한번 먹힌적이 있고 모두 실패했다. 나는 이 약물을 정말로 싫어한다. 맥을 순간적으로 강하게 진정시켜 심장이 멎는 그 느낌이 정말 너무너무 싫다) 결국 진정제를 넣어 나를 재운뒤, 전기충격기로(드라마 등에 보면 생으로 하곤 하는데 그건 드라마와 영화에서 환자들은 모두 기절해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정신이 있다면  당연히 재우고 실시해야한다) 내 심장을 지져 다시 원래 맥으로 되돌렸다. 그때는 어린이 응급실에 커튼이 없었다. 내 가슴은 모두(의사, 간호사, 다른 보호자들) 에게 보여졌고, 사춘기가 시작되던 나는 맥이 빠르게 뛰어서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손발이 덜덜 떨리는 것보다 그게 더 싫었다. 하지만 모두들 14살된 어린이의 감정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일련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는 누워있던 병상에서 깨어나서 엄마를 찾았다. 언마는 응급실밖 공중전화에서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엄마 얼굴이 너무 울어서 퉁퉁붓고 빨갰다. 말하는 순간도 울면서 계속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나는 조용히 엄마 옆으로 갔다. 엄마는 서있어도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어머니 밈이 이제 약 먹어야 한데요. 이게 결국 이렇게 되는 병이래요. 아니요 그건 상관없데요. 네. 매일 먹어야 한데요. 평생이요. 어떻게요 어머니 우리 밈이..."

4살 첫 수술후 1년만에 단약한뒤 일년에 한두번 병원에 체크하러 가는것 외에는 다른또래 못지않게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말씀도 잘 듣고 자라서, 엄마의 기적이고 자랑이던 내가 엄마의 가장 큰 슬픔이자 한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엄마에게도 잊히지 않고 나에게도 잊히지 않는 내 첫번째 부정맥 발작일. 그리고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보던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를 아주 잘 기억한다. 그걸 기점으로 내 인생도 다른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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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여자. 선천성 심장장애인으로의 삶을 기록합니다. 트위터: @kim_mem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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