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타다닥- 앞에서 연신 울리는 키보드 소리에 오이카와는 슬슬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거기엔 정수리 바로 위에서 쏘아지는 에어컨 바람도 한몫했다. 아직 5월인데 도대체 왜 이 카페는 벌써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는 것인가, 더위 보다는 추위를 잘 타는 오이카와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손님이라곤 제일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들 뿐이었는데 냉방비가 아깝지도 않은 것인지 쉴 새 없이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는 카페 주인의 마음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머리 아픈 것은 바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이와이즈미였다. 그 동안 서로의 학교생활이 바빠─전공이 달라 서로 겹치는 강의가 하나도 없었던 점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이와이즈미 쪽에서 약속을 전부 거절했다─제대로 얼굴 마주할 시간이 없었지만 오늘은 간만에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이다. 이와쨩으로부터 데이트 요청? 기쁜 마음에 한껏 멋을 내고 나왔건만 이와이즈미는 만나자마자 카페로 직행하더니 지금 이 상황이었다. 분명 카운터에서 주문을 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과 놀기 위해 불러낸 줄 알았건만…….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들더니 그 이후로는 계속 리포트 작성에 몰두하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에 당혹스럽기만 했다. 혹시나 싶어 언제까지 제출하는 것인지 물어보니 그에게서 나온 대답은 오이카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일주일. 아직 과제 제출일 까지 일주일이나 남은 시점에서 벌써부터 리포트를 쓰고 있는 이와이즈미를 보자니 오이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댓 발 내밀어 지는 것이었다.


“이와쨩, 내 말 좀 들어 봐. 과제는 스릴감이 있어야 더 좋은 퀄리티가 나온 다구? 그렇게 긴장감 없이 여유를 즐기며 쓰면 하나도 재미가 없어요!”

“과제에 스릴감이나 찾고, 변태냐?”


하지만 진심으로 질색하는 그의 표정에 오이카와는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혼자 과제만 하려는 거면 도대체 자신은 왜 불러낸 것인가. 자신에게 시선 하나 안 주고 노트북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속상했다.


“나는 이와쨩이 먼저 불러준 게 너무 기뻐서 밤에 잠도 설치고 설레서 약속 장소에도 일찍 나왔는데……. 이와쨩은 나보다 과제가 더 중요한 거지?”


괜히 앞에 놓인 쇼트케이크를 포크로 쿡쿡 찌르며 투덜거리고 있자니 자신이 유치하게 느껴지는 오이카와였지만 서운한 건 서운한 것이었다. 그런 자신의 칭얼거림이 익숙한 것인지 눈썹 하나 미동도 안 하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그대로 포크를 입에 물고는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하여간 날이 갈수록 사랑이 식는 것 같다고 이와쨩! 물론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말이야! 닿지 않을 말들을 속으로만 연신 외치고 있자니 기운이 빠지는 오이카와였다.


어렸을 적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쭉 같이 지내온 두 사람이었지만 둘의 성격은 정 반대라고 할 정도로 달랐다. 남들이 보면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알 것 같았다. 또래끼리 서로 집이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오이카와의 고집에 바보 같다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같이 어울려 주는 이와이즈미의 행동은 그들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이유 중 하나였다. 좋아하는 배구를 할 때나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이와이즈미였기에 오이카와는 그를 좋아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오이카와가 일방적으로 그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와이즈미가 적당히 오이카와를 받아주었기 때문에 그도 계속 매달리는 것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상냥하고 의리 있는 사람이었다. 입으로는 쓴 소리를 내뱉지만 속으로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생각하여 하는 말들이 태반이었다. 그렇기에 오이카와는 언제까지나 그에게 어리광을 부리게 되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이와이즈미를 올려다보았다. 공부를 할 때나 무언가 집중해서 볼 때 안경을 쓰는 건 이와이즈미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시력이 나쁜 편도 아니면서 고입 때부터 시작해서  항상 안경을 챙겨 쓰는 그의 모습은, 볼 때마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겨 오이카와는 개인적으로 싫어했다. 자신이 그렇게 안 어울린다, 쓰지 마라 노래를 불러도 꿋꿋하게 안경을 고집하는 이와이즈미가 이해가 안 갔다. 촌스러운 검정색 뿔테 안경은 이와이즈미 하지메의 인생에서 영원히 삭제되어야 해! 언젠가 그렇게 말했더니 자신의 등짝을 세게 후려치던 그의 강 스파이크는 지금도 떠올리면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아팠다. ‘안경으로 이미지 변신!’ 같은 설정이라도 밀고 있는 건가? 그렇지만 안경 쓰고 있으면 제대로 이와쨩 눈을 마주볼 수 없어서 역시 싫단 말이야!


그렇게 영양가 없는 생각을 되풀이 하고 있을 무렵 문득 터져 나오는 기침에 오이카와는 입을 틀어막았다. 엣취……!! 아무래도 연신 에어컨 바람을 쐬다 보니 그와 함께 체온도 내려가는 것 같았다. 기침한 순간 온 몸에 돋는 소름에 오이카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와쨩 나 추워~”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울상을 지은 채 자신을 향해 손을 쭉 뻗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이와이즈미가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집중적으로 바람을 맞아서인지 갈색의 머리카락이 평소와는 다르게 살짝 눌려있는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정수리를 헤집었다. 어라. 갑자기 머리 위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슬쩍 고개를 들던 오이카와는 이윽고 마주친 이와이즈미의 시선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무덤덤한 표정으로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을 헝클리던 이와이즈미 역시 순간 마주한 그의 얼굴에 작게 흠칫하며 손을 거두려했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보다 오이카와가 더 빨랐다. 그대로 이와이즈미의 손목을 잡아챈 오이카와는 다시 자신의 머리 위로 그의 손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기분이 좋은 듯 방긋 웃어보였다.


“이와쨩 손 따뜻해서 기분 좋아.”

“네 손은 차가워.”

“흐응 그거야 오이카와 씨의 마음은 따뜻하니까.”

“언제적 농담 따먹기냐.”


자신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지 않는 오이카와 덕분에 지금의 상황이 꽤 민망한지 이와이즈미는 살짝 붉어진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괜스레 웃음이 새어나왔다. 뭘 그렇게 실실 거리냐, 실없는 녀석. 시선을 피한 채 투덜거리던 이와이즈미는 다른 한 손으로 노트북을 끄고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안경집에 접어 넣었다. 그 모습에 오이카와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리포트는 괜찮아? 해맑은 얼굴로 묻는 오이카와의 시선에 이와이즈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오늘 목적은 너였으니까 이건 나중에 해도 상관없겠지.”

“……엑, 뭐라고? 한 번만 더 말해 줘. 이와쨩!”

“시끄러워.”


어느새 테이블에서 일어난 오이카와는 얼굴이 빨개진 채 이와이즈미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그러니까 지금 이와쨩한테 제일 중요한 건 이 오이카와 씨라는 말이지! 그치?!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가방을 챙긴 이와이즈미가 도로 자리에 앉는 시늉을 하자 오이카와가 재빨리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안 돼! 오늘은 나도 이와쨩이 목적이야! 이와쨩이 제일 중요해! 아니, 항상 중요하지만 말이야!”


남 듣기 부끄러운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오이카와의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그가 민망한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이지, 이 녀석은 남사스럽기 그지없다. 가린 손 사이로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이와이즈미의 모습을, 오이카와는 보지 못했다.



2015년 7월 하이큐

지인분 오이이와 개인지 축전으로 드린 글


amu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