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렸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뱉어낼 여유도 없이 그저 달리고 또 달렸다.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뜀박질한 순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츠무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다리를 움직였다. 발걸음을 따라 하늘에 하나둘 피어나는 불꽃이 행여 자신을 그대로 집어삼켜 버릴까 봐, 등 뒤에서 몇 번이고 제 이름을 외치는 타스쿠의 목소리가 더는 귓가에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에게 내려진 건 조금 심한 찰과상이었다. 츠무기가 홀로 병원 문을 나설 때, 팔다리에는 물론이고 얼굴까지 덕지덕지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더불어 내려진 발목 염좌라는 진단은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더뎌지는 원인 중 하나였다. 맨 상처를 보고도 그렇게 걱정하셨는데, 반깁스까지 보신다면 엄청나게 놀라시겠지…. 지난 밤 상처투성이로 귀가한 자신을 보며 곧바로 구급차를 부르려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그의 입에서는 한숨만 나왔다. 평소에도 곧잘 발을 헛디디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심하게 넘어진 건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일 것이다. 제대로 앞을 보지도 않은 채 어두운 밤길을—게다가 딱딱한 아스팔트로 포장된 내리막길이었다.—급하게 뛰어 내려온 대가는 흡사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구르기였다. 더구나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유카타는 지면으로부터 그의 약한 피부를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얇았다. 그냥 편한 차림으로 나갈걸, 축제에 갈 때마다 유카타를 챙겨 입던 행동은 이제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친 원인은 본인에게 있으면서 괜히 유카타를 탓하는 점은 그가 아직 어리다는 증거였다. 절뚝거리는 발걸음으로 겨우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츠무기는 그제야 꺼둔 핸드폰 전원을 켰다. 화면에 불이 들어오자마자 수신기록을 가득 채우는 건 모두 같은 사람의 이름이었다.


「타카토 타스쿠」


끝이 보이지 않는 이름에 츠무기는 메시지 내용을 읽지도 않고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평소 타스쿠는 연락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연락하는 걸 보면 어제의 사건이 그에게 있어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는 뜻이었다. 지난 밤 제 등 뒤로 연신 들려오던 타스쿠의 목소리가 떠올라, 츠무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타스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윽고 도착한 버스에 오르는 발걸음은 그의 마음처럼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제부터 여름방학이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방학 동안 보충 수업도 없으니 타스쿠와 직접 얼굴을 마주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떠올리고 나니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학교가 아니라면 타스쿠와 만날 계기가 없다. 서로의 나이만큼이나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갑작스레 느껴지는 거리감에 문득 허전함이 밀려왔다. 그는 주먹을 꾹 쥐었다. 지금 이 상황은 본인이 자초한 일이었다. 모든 건 자기 자신이 감내해야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꾸 눈앞이 흐려지는 이유는 왜일까.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츠무기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츠무기의 예상과는 다르게 타스쿠는 그 날 이후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사실 집 앞까지 타스쿠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객관적으로 봤을 때 다쳤다는 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말이다.—그와 마주하길 거부했다. 하지만 타스쿠의 반응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츠무기가 아플 때 방 안까지 꾸역꾸역 병문안을 오는 타스쿠였지만, 일부러 자신을 피한다는 낌새를 그도 느꼈는지 단 한 번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 사실에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츠무기의 안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일부러 자신 쪽에서 타스쿠를 내친 주제에 또 혼자 침울해지고 만다. 더는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보던 츠무기는 곧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니까 더욱 부정적인 생각만 드는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깁스를 해 불편한 발을 이끌고 겨우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타스쿠, 제대로 숙제는 하고 있으려나? 매 방학마다 자신이 해놓은 숙제를 열심히 베끼던 타스쿠의 모습이 떠올라, 츠무기는 손 안의 펜을 꾹 쥐었다. 습관적으로 그려지는 타스쿠의 얼굴에 그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는 왜 그런 말을 해버린 걸까?’


애를 써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에 츠무기는 그대로 책상 위에 얼굴을 묻었다. 타스쿠도 지금 나만큼이나 고민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런 우스운 고백 같은 건 진작 잊어버리고 이제 신경도 안 쓰고 있으려나. 어느 쪽도 있을 법한 이야기여서 괴로웠다.


타스쿠를 좋아한다. 깨닫고 보니 이미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본인에게 전할 생각은 평생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그의 곁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분위기에 이끌려 어물쩍 건넨 말은 아마 타스쿠가 지금까지 들은 것 중 가장, 앞으로도 들을 일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고백일 게 분명했다. 떠오르는 기억에 츠무기는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새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거즈에 스며들어 덜 아문 상처를 적셨다. 어느 쪽도 자신의 실수로 생긴 상처다. 찰과상만큼이나 욱신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빨갛게 벗겨진 상처 위로 단단히 딱지가 내려앉고, 이윽고 딱지가 떨어지면 그 위로 새 살이 돋아난다. 어쩌면 흉터가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긋하게 그를 괴롭히던 통증은 사라질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마음에 생긴 상처도, 언젠가 깨끗하게 아무는 날이 찾아올까? 생각해봐도 정답대신 떠오르는 건 타스쿠의 얼굴뿐이었다. 이렇게까지 괴로워할 거면 왜 그랬던 걸까. 쉴 새 없이 밀려오는 후회는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말 싫다.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 나갈 때마다 헐렁한 유카타는 츠무기의 다리를 감쌌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짐과 동시에,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그는 얼른 손을 붕붕 흔들며 외쳤다.


“타스쿠!”


제 이름이 들리자 멍하니 서있던 타스쿠는 츠무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눈이 마주치자 그는 꽤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쯧, 하고 작게 혀를 찼다.


“늦어, 츠무기.”

“하하- 미안. 그치만 유카타 찾는 게 제법 오래 걸려서…. 많이 기다렸어?”

“별로. 그냥 아무 옷이나 입고 오면 되잖아.”

“에이, 모처럼 축제인걸?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타스쿠도 작년 여름까지는 유카타 입고 왔으면서.”


그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 투덜거리자 타스쿠는 맞받아칠 말이 없는지 그대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무심한 그의 뒤통수를 보며 츠무기는 장난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배고프다, 얼른 가자.”


몇 걸음 앞으로 쭉 이어진 축제 거리를 가리키며 츠무기는 타스쿠보다 먼저 앞장 서기 시작했다. 그가 하나 둘 발을 뻗을 때마다 또각거리는 게다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기분 좋은 소리에 츠무기 역시 신나는 얼굴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이, 그러다가 넘어진다.”

“괜찮아, 괜찮아~”


평소 덜렁거리는 면모가 있는 츠무기 탓에 타스쿠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츠무기는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한껏 들뜬 모습으로 제 손바닥에 펼쳐진 동전을 세고 있었다.


“모처럼 온 축제니깐 잔뜩 먹을 거야!”

“매년 오는 축제인데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그치만 올해는 학생으로서 맞는 마지막 여름 축제잖아? 대학생 되면 아무래도 바빠질 것 같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하는 타스쿠를 향해 츠무기는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 올해 여름 축제가 어쩌면 타스쿠와 마지막으로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될 지도 모른다. 서로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는 해도, 아직 지망하는 학교라든지 앞으로의 정확한 목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늘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벌써 3학년의 반절이 지나갔는데, 떠올려보면 수험생치고는 조금 방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찌어찌 성적이 좋은 편에 속하는 츠무기였기 때문에 대학 준비에 대해서 큰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타스쿠와 함께 할 수 있는지였다. 매년 꾸준히 여름 축제를 함께 보내온 두 사람이었지만, 솔직히 어른이 된 이후에도 타스쿠와 같이 이 거리를 걸을 수 있을지 지금의 츠무기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 때도 같이 와주면 되잖아.”

“응?”


갑작스럽게 던져진 타스쿠의 말에 츠무기는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반문에 타스쿠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츠무기와 똑바로 눈을 마주했다.


“고등학교 졸업해도 츠무랑 같이 있을 거니까.”

“타-쨩…….”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분명 타스쿠는 깊은 뜻 없이 친한 친구로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친하게 지낼 거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뜻이라는 걸 알면서도 츠무기는 울렁거리는 제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소란스럽게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꾹 짓누르고는, 지나치게 기쁜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입을 묵묵히 다문다. 그럼에도 겉으로 새어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었다. 눈에 띄게 씰룩거리는 제 입꼬리를 발견했는지, 타스쿠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무슨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그, 그야 타-쨩이…!”


기쁜 소리를 하니까…. 그 짧은 반론을, 츠무기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삼켜냈다. 우물쭈물하며 그를 바라보다 입꼬리를 당겨 웃는 타스쿠와 눈이 마주치자 츠무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거리를 따라 쭉 이어진 등불 탓인지 타스쿠의 얼굴이 평소보다 몇 배는 반짝거리게 보였다. 단순히 츠무기 자신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됐든 지금 그는 타스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몇 년을 같이 지냈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에, 츠무기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 한 마디라도 꺼낸다면, 아마 지금 이렇게 타스쿠의 옆에 설 수 없겠지.


사랑. 마냥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직접 입에 담기에 아직은 낯 간지러운 단어였다. 그렇지만 츠무기가 타스쿠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정이라는 단어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우정, 소꿉친구, 동성, 사랑. 어떻게 짝을 지어보아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단어들뿐이었다.


“츠무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츠무기를 향해, 타스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타스쿠는 상냥하니까 평소와 다른 낌새가 보이면 금방 알아차리곤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언제까지고 그 상냥함에 기대어 타스쿠에게 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다. 사실은 철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치만, 이렇게라도…. 꾹 쥔 츠무기의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라도 그의 옆에서 ‘소꿉친구’의 특권을 누리고 싶었다. 타스쿠에게 있어서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한 존재라는 걸 느끼고 싶었다. 물론 타스쿠에게도 언젠가 ‘애인’이라는, 감히 ‘소꿉친구’ 따위에 견줄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생기겠지. 아니, 생각해보면 ‘언젠가’라는 말도 이상하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그의 옆을 차지했던 여자 친구가 분명히 있었다. 이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였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츠무기는 지금 이 자리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타스쿠의 옆에서 더는 멀어지지 않게, 그렇다고 이 이상 거리가 좁혀지지도 않도록. 가장 안정적인 거리에서 타스쿠를 지켜보고 싶었다.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진다. 매 여름마다 당연한 것이었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진작 해가 저물고 어두컴컴한 시간이었겠지만, 초여름에 들어선 지금 본격적으로 불꽃을 쏘아 올리기엔 아직 밝은 편이었다. 축제 거리를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지만, 여름축제의 볼거리라 하면 역시 불꽃놀이가 가장 컸다.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거의 모든 가게를 들렸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양 손 가득 먹을거리를 들고는 눈에 띄게 즐거워 보이는 츠무기의 모습에 타스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어린애도 아니고, 축제 하나에 그렇게까지 들뜰 필요가 있냐.”

“불꽃놀이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에게 즐거운 행사인걸. 타스쿠는 즐겁지 않아?”


타스쿠의 질문에 츠무기는 제 입안의 타코야끼를 제대로 삼키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열심히 우물거리더니 곧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가슴 부근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리기도 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타스쿠의 입에서는 또 한 번 옅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재미없다곤 말 안 했어.”

“하하, 그치?”

“입이나 제대로 닦고 말해. 여기 소스 묻었다.”


츠무기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타스쿠는 제 손을 들어 그의 입가를 스윽 문질렀다. 자연스럽게 몸에 밴 듯한 그 행동에 츠무기는 잠시 멍하니 타스쿠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너무 맛있어서 묻은 줄도 몰랐나봐. 타스쿠도 먹을래?”

“사양하지.”

“에이, 모처럼인데.”

“타코야끼는 평소에도 먹을 수 있잖아.”

“축제 때 먹는 거랑 평소 먹는 거랑은 맛이 다르다고? 음, 내 느낌상으론 그래.”

“그것보다 슬슬 자리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제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어느새 땅거미 진 거리를 바라보며 타스쿠가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점점 사람들이 한 쪽으로 모여드는 게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넘쳐나는 인파와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렸을 적부터 살아온 동네답게 매년 빠지지 않고 놀러 온 축제는 이미 둘에게 있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행사였다. 직접 불꽃을 쏘아 올리는 행사장 보다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한 눈에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명당은, 츠무기와 타스쿠가 어린 시절 발견한 곳이었다.


축제 거리와 멀어질수록 두 사람을 에워싼 어둠은 점점 더 짙어졌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바닥 때문에 언덕을 오르는 츠무기의 발걸음도 더뎌졌다. 점점 멀어지는 게다 소리에 자신보다 몇 발자국 뒤쳐진 그를 눈치 챘는지, 타스쿠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곤 츠무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뻗을 때마다 불편하게 제 다리를 감싸는 유카타 천과, 간만에 신은 탓에 영 익숙하지 않은 게다는 타스쿠의 눈에도 불편해보였다.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츠무기는 제 뒷목을 매만지며 멋쩍게 웃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금 불편하네….”

“자.”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제 앞에 불쑥 내밀어진 손바닥에 츠무기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타스쿠는 이 손을 잡으라고 내밀어준 거겠지? 츠무기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선의만으로 단단히 뭉쳐진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타스쿠는 상냥하다. 걷는 게 느리다거나 그럴 거면 불편한 옷을 입고 오지 말던가, 자신에 대한 불평 하나 내뱉지 않고 다만 제 앞으로 손을 내밀어 보인다.


떠올려 보면, 항상 곤란한 상황에 처한 자신에게 먼저 도움의 손을 뻗어준 건 타스쿠였다.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음에도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기본적으로 툴툴거리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상냥한 게 타스쿠의 본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츠무기는 그런 타스쿠가 좋으면서도 싫었다. 정확하게는, 그의 상냥함을 핑계로 점점 제 안에서 막무가내로 커져가는 자신의 감정이 싫었다. 한계점이 어딘지 모르는 상태로 부풀어 오르는 애정은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두려운 존재였다.


“얼른 안 가면 불꽃놀이 놓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내 멍하니 서있는 츠무기를 향해, 타스쿠는 재촉했다.


“……어? 으응, 고마워. 타-쨩.”


문득 정신이 들고 나서야 츠무기는 그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혹여 소란스러운 제 심장 소리가 타스쿠에게도 전해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맞잡은 손은 언제까지고 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따뜻했다. 초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선선한 밤공기 덕분에 그 온기는 더욱 선명하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어렸을 적에는 매일 같이 맞잡던 손이었는데, 어느새 자신보다 훨씬 크고 단단해진 타스쿠의 손은 변함없이 자신을 이끌어주고 있었다. 소란스럽던 거리와는 다르게 단 둘이 오르는 언덕길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서, 츠무기의 게다 소리만이 또각또각 그 언저리에 울려 퍼졌다.


타스쿠의 도움을 받아 겨우 오른 언덕은 작년 여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경사 덕분에 굳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등불로 밝혀진 축제 거리가 길게 이어지는 게 보였다.


“역시 올해도 예쁜 거리네.”

“뭐, 작년이랑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지만.”

“하하, 타스쿠다운 감상이네.”


곧 시작하겠다. 츠무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하얀 빛줄기 하나가 머리 위로 쏘아 올려졌다. 폭죽 꼬리는 어두컴컴한 하늘을 반듯이 가르고는 곧 펑 소리를 내며 붉은 빛의 꽃을 터뜨렸다. 선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 뒤를 이어 여러 개의 빛줄기가 차례차례 하늘로 치솟았다.


“예쁘다.”


타스쿠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는 평소 그의 말투와는 조금 위화감이 느껴져서, 마냥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츠무기의 입에선 작은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말한 거겠지. 그의 눈동자에 선명히 꽃을 피우는 불꽃은 타스쿠가 말했던 것처럼 예쁘다는 표현이 잘 어울렸다. 타스쿠의 얼굴에 머물렀던 눈동자를 혹여 그에게 들킬까봐, 츠무기는 금세 하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년에도 같이 보러 오자, 츠무.”

“……응.”


옆에서 들려오는 덤덤한 목소리에 츠무기는 여전히 밤하늘을 응시하며 조용히 대답했다. 내년에도 같이. 응,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 때도 변함없이 타스쿠의 옆에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생각은 언제나 같은 마음이었다. 타스쿠도 나랑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친구라는 관계라도.


문득 선선한 밤바람이 츠무기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볼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을 한 쪽 귀 뒤로 넘기곤 손을 내리자 의도치 않게 타스쿠의 손끝에 부딪치고 말았다. 아, 미안해. 고개를 돌리자 순간 시야에 들어온 풍경에, 생각했던 사과의 말은 츠무기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부딪친 걸 눈치 채지 못했는지, 무언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타스쿠의 옆모습은 평소보다 훨씬 눈부셨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앞 다투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은 그대로 그의 피부에 반사되어 타스쿠를 더욱 반짝이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 홀려 츠무기는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문득 떠올렸다. 역시 타스쿠를 좋아해, 라고. 그저 흘러가는 말이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입 밖으로 내보고 싶었다. 타스쿠를 떠올릴 때마다, 그의 옆에 나란히 설 때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한 마디를.


“좋아해.”


좋아해, 타스쿠. 누구보다 더.


“……츠무기, 지금 뭐라고?”


넘쳐흐르는 감정은 결국 해방구를 찾아 막을 새도 없이 억지로 터져 나왔다. 툭 뱉어낸 자신의 진심에 타스쿠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츠무기의 고백을 들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동요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츠무기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좋아해, 타스쿠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말로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게 지금이든, 앞으로든. 가장 친한 친구로서 타스쿠의 옆에 있기 위해선 언제까지고 비밀스럽게 감춰야 할 감정이었다. 자신이 그를 향해 품고 있는 감정을 타스쿠 본인이 알게 된다면 분명 어긋날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츠무기는 지금까지 있는 힘껏 숨죽여왔다. 하지만 그게 한 순간에 끝나버렸다.


‘좋아해.’


별 볼일 없는 고백이었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정도로.


정신이 든 순간 마주친 타스쿠의 눈동자는 자신만큼이나 선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 그가 다시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을 여는 게 츠무기의 시야에 들어왔다.


안 돼.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대로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그렇게 츠무기는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윙윙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에어컨 바람을 쐬려면 거실까지 나가야 했지만 혼자 있고 싶었다.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햇빛은 지금이 한여름이라는 사실을 굳이 그 열기로 알려주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소란스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는 머릿속 생각을 어지럽히는데 한몫했다.


타스쿠를 피한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애초에 핸드폰을 잘 사용하지 않았던 츠무기였기 때문에 그 날 이후로는 항상 전원을 꺼둔 상태였다. 게다가 이곳저곳 입은 상처와 다리의 깁스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아물 만큼 아물어 팔을 제외한 곳은 거즈를 제거했지만 여전히 발의 깁스는 풀지 못했다. 그렇기에 행동반경이 심각하게 줄어든 그였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밖을 나돌아 다니는 성격도 아니고 방학이라 밖에 나갈 이유도 없었다. 덕분에 산더미 같던 방학 숙제는 전부 끝내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타스쿠와도 끝나버렸고…. 츠무기의 입안을 맴돌던 이름은 2주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만나지 못하는 지금, 전보다 더 타스쿠에 대한 생각이 강해진 느낌도 들었다. 그도 그럴 듯이 벌써 그의 얼굴을 못 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타스쿠와 처음 알게 된 이후로 지금이 최장기간 동안 떨어져 있는 셈이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타스쿠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곁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타스쿠와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전부 자신이 일으킨 일이었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오랜 친구의 고백을 들은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낼지 츠무기는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다. 타스쿠와 마주하고 ‘사실 거짓말이야.’ 하고 한 마디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또 가슴 속에서 무언가 무겁게 짓눌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타스쿠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거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 날 말한 건 진심이야. 그치만 잊어줘.’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타스쿠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럴 듯한 말을 생각해내도 그를 마주할 수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선 연락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에 츠무기는 곧장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동안 방치해둔 탓에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찾는 물건이 보이지 않자 답답함은 점점 커졌고 더위 때문에 사고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 꼭 연락을 해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야. 한참 방을 뒤지던 그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핸드폰 찾는 걸 그만뒀다. 대신 간단히 나갈 채비를 한 츠무기는 망설이지 않고 집 밖으로 나섰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피부에 확 와 닿는 감각은 결코 좋지만은 않았다. 오랜 시간 실내에서만 틀어박혀있던 탓에 직접적으로 내리쬐는 햇빛은 꽤나 괴로웠다.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한 쪽 발목을 감싸고 있는 반깁스는 그의 움직임을 더 굼뜨게 만들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츠무기는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아마 지금 돌아간다면 더 이상 타스쿠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스팔트 위로 아른거리는 아지랑이을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한 발 두 발 열심히 앞으로 뻗었지만 좀처럼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타스쿠네 집이 이렇게까지 멀었나? 그런 생각도 잠시 익숙한 지붕이 그의 시선 끝에 걸렸다.


츠무기가 초인종을 누르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내 대문 앞에서 기웃거렸지만 창문을 통해서는 타스쿠가 집에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조금 더 고민하던 그는 결국 초인종 위로 손을 가져갔다. 짧은 시간동안 벨이 울리고 그 뒤에 달칵- 하고 인터폰과 연결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은 지금까지 자신이 찾던 사람이었다. 바로 타스쿠가 받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츠무기는 곧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타, 타스쿠….”


철컥. 대답 대신 돌아온 건 잠금이 풀리는 소리였다. 곧 문이 열리고 그 뒤로 덤덤한 얼굴의 타스쿠가 보였다. 순간 츠무기의 다친 팔 다리를 보고는 그의 눈썹이 찡그러졌지만, 금세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현관 앞에 서있는 츠무기의 행동에 타스쿠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들어올 거야?”

“으응, 들어가야지.”


머뭇거리던 츠무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타스쿠는 거실 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안내라기보다는 가볍게 눈짓 한 번 한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그가 자신을 내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츠무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방학인 타스쿠를 제외하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실에서 숙제라도 하고 있었는지 테이블 위에 어지럽혀진 노트들이 꽤나 산만해보였다.


“다리는 왜 그래.”

“응?”

“깁스.”


쇼파에 앉자마자 타스쿠는 고갯짓으로 츠무기의 다리를 가리켰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날 타스쿠랑 헤어진 다음에 다쳐서 타스쿠는 모르겠구나….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츠무기는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굴렀어.”

“넌 곧잘 넘어지니깐 조심해라.”

“아하하…….”

“여긴 왜 왔어. 평생 안 볼 줄 알았는데.”


가벼운 걱정 뒤로 갑작스럽게 정곡을 찌르고 들어오는 타스쿠의 말에 츠무기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러게. 나도 앞으로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와버렸네. 그렇게 말한다면 타스쿠는 어이없다며 웃어주려나. 츠무기는 밀려오는 씁쓸함에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전해야만 한다. 자신의 후회를. 츠무기는 침을 꾹 삼켰다.


“돌아가고 싶어.”

“……무슨 의미지.”

“그 날 내가 한 말은 잊어줘.”


타스쿠는 아무 말도 없이 츠무기를 바라보았다. 곧 그의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츠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무덤덤한 목소리와 대조되게 타스쿠의 얼굴은 꽤나 비장해보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기에 저렇게까지 심각한 얼굴을 하는 걸까. 츠무기로서는 지금 타스쿠가 자신에게 뭐라고 할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기야, 지금 그가 절교선언을 한다고 해도 이해갈 상황이었다. 갑자기 고백하고 혼자 도망친 다음에는 전부 잊어달라는 부탁이라니. 이보다 더 어이없는 상황이 있을까 싶었다. 한 번 꼬리를 물고 늘어진 부정적인 생각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츠무기는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어떤 말이라도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도 좋아해, 츠무.”


뭐라고? 츠무기는 혹시 환청이 아닐까 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타스쿠가 뭐라고 말 한 거지? 멍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바라봐도 타스쿠는 무던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 날 고백을 없던 일로 하지도 않을 거야.”

“……타스쿠?

“그러니까 더 이상 피하지마. 제발.”


타스쿠의 눈동자가 약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런 그의 눈과 시선이 교차되자 츠무기는 가슴 한편이 욱신거렸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타스쿠가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강단 있는 목소리의 뒤에 움츠리고 있는 그의 감정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확신이 들었다. 사실은 타스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뒤늦게 알아차린 감정에 츠무기의 어깨가 약하게 떨렸다. 타스쿠도 나를 좋아한다. 그렇게 말해줬다. 깨닫고 보니 요 근래의 필사적인 도망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나는 뭐 때문에 고민을 해 온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날 제대로 타스쿠와 눈을 마주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분명 지금보다 훨씬 나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자신만큼이나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했을 타스쿠의 모습을 떠올리니 어쩐지 눈앞이 흐려졌다. 저도 모르게 맺힌 눈물은 속절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등을 들어 눈물을 훔쳐보아도 멈출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울고 싶지 않다. 흐려진 시야 때문에 타스쿠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츠무기는 들뜬 숨을 내뱉었다.


눈물의 정착지는 그 날 밤 닿았던 타스쿠의 손끝이었다. 조심스럽게 츠무기의 눈물을 닦아낸 타스쿠는 가볍게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왜 울어.”

“……미안.”

“미안하면 약속해. 그 날 제대로 못 본 불꽃놀이는 내년에 같이 보기로.”

“…응.”


머리가 헝클어진 채 훌쩍이는 츠무기의 모습에 타스쿠의 입가에도 옅은 웃음기가 서렸다.


“그 전에 하나 더.”

“뭔데?”

“……방학숙제 좀 도와줘.”

“……왠지 그 쪽이 더 진심인 것 같은데.”


푸핫,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터져 나온 웃음은 거실 안을 가득 채웠다. 하여튼 타스쿠 결국 숙제 제대로 안 할 거라고 확신했다니까? 장난스레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려도 타스쿠는 아랑곳 하지 않고 츠무기 앞으로 제 노트를 밀어낼 뿐이었다. 아마 타스쿠의 방학 숙제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무더운 여름은 아직 계속 될 것만 같았다.



2018년 7월 에이쓰리

주제 「여름」


amu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