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정보: @Dr_HyeriaNoir



저택 뒤 작은 숲속에 피어있던 피안화를 아시는지요. 침대에 힘없이 누운 여인의 손목처럼 가느다란 줄기. 그 속에는 못다 이룬 사랑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겠죠. 그런 애달픈 마음이 뜨겁게 붉은 꽃을 피운 거겠죠. 톡하고 건드리면 곪아버린 사랑의 염증을 줄줄 흘리며 꺾일 듯한 꽃이었어요.

그 곁을 지날 때면 꽃과 공명하듯 가슴이 미어터지는 고통과 함께 그리운 사람의 모습이 돌연 밀려왔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가만히 바라보자 새빨갛게 물든 꽃이 속삭이기 시작했지요. 하루 내내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점차 녹아내려 수줍게 따스한 빛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매일매일 피안화를 살피러 숲에 들어간 지 몇 달이 지났을까요. 한창 저만의 노을빛을 퍼뜨리던 꽃은 차츰 빛을 잃어갔습니다. 해질녘 하늘이 멀리서 밤하늘을 몰고 올 무렵처럼요. 평생의 소원을 이루지도 못한 채 나날이 죽음의 그림자에 먹혀가는 꽃을 보기가 힘겨웠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말로와 다를 바 없이 느껴져 도저히 고개 돌려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주하기도 녹록지 않아 아예 없애자는 마음으로, 줄기를 꺾어 수렁에서 꽃을 구하려 했으나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마음이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외부의 개입으로 접을 수도 없고 접어서도 아니 될 것이지요. 오로지 본인만이 그 마음에, 기나긴 추억의 서사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테니까요. 그렇게 피안화의 마지막 단념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마침내 꽃은 눈감았습니다.


언젠가 꽃은 지고 맙니다. 허나 꽃이 품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 자리에서 아이가 보낸 모든 시간은 제 마음에 살아 숨쉴 겁니다. 나의 사랑과 함께 영원토록. 

-2018.7.7.

어둠을 헤매는 자에게 글로써 작은 빛줄기라도 비추어 그들이 새로운 길을 찾도록 돕고 싶다. 세간의 병든 운석이 나를 상처 입히려 해도 나만은 이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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