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타이 & 넥타이  10









이상한 조합의 두 남자가 영화관 안으로 들어섰다. 위아래 올 블랙으로 무장한 잘생긴 남자와 모자를 푹 눌러써서 수염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가 나란히 서서 뭔가 가까이하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평일 밤 10시를 넘긴 극장 안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일부러 한적한 동네를 찾아온 거긴 하지만, 너무 사람이 없다 보니 오히려 더 눈에 띄는 역효과가 나고 있었다.


“뭔가, 우리가 계산을 잘못한 것 같아요.”


백현이 경수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지금 이런 행동이 더 수상해 보인다고요. 떨어져 있어요, 좀.”


경수가 제 옆에 찰싹 붙어있는 백현의 몸을 팔꿈치로 슬쩍 밀어냈다. 그냥 사이좋은 형 동생으로 봐주면 좋으련만. 경수는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쭈뼛쭈뼛 무인 매표기 앞에 섰다. 경수가 좋아하는 스시집에서 밥을 먹은 뒤, 이젠 뭘 할까- 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데 경수가 대뜸 백현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나름 연인이 되고 나서 정식적으로 하는 첫 데이트다 보니, 경수는 본인이 평소 못해본 것을 해보고 싶었다. 매달 십여 편의 영화를 보는 백현에게 영화 감상은 매일 밥을 먹는 것과 같이 늘상 하는 일이었지만, 눈을 빛내며 영화관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경수가 너무 귀여워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백현은 모든 선택권을 경수에게 넘겨 주었다. 난 뭐든 다 좋으니까 경수씨가 골라 봐요. 경수는 화면에 띄어진 리스트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영화를 본 지 너무 오래되어, 본인이 어떤 장르를 좋아했는지도 까먹어버린 경수는 뭘 봐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음…. 한참을 포스터와 타이틀만 들여다보던 경수는 우선 줄거리를 보고 흥미가 가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맨 위에서부터 포스터 사진을 차례로 눌러 들어가 정독할 기세로 줄거리를 읽던 경수는 순간 눈에 들어온 변백현이란 글자에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포스터가 인물사진이 아니라 몰랐는데 주연 이름 맨 앞에 적혀있는 건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도 변백현이 맞았다. 어? 백현씨 영화네요? 하면서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읽어보려 하는데, 갑자기 백현이 옆에서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놀란 경수가 왜 그래요? 하며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띄운 채 다시 포스터를 터치하자 백현이 재빨리 다시 뒤로 가기 버튼을 터치했다.


“이거 재미없어요. 딴 거 봐요.”

“왜요? 나 백현씨 나온 작품 한번 보고 싶은데.”

“이거 망한 영화에요. 봐봤자 돈만 아까워.”


개봉 2주 만에 천만을 돌파한 자신의 영화를 망한 영화라고까지 칭하며 백현이 다급하게 다른 화면으로 넘겼다. 


“쓰읍-... 수상해.”

“뭐… 뭐가요?”

“왜요. 베드 신이라도 찍었어요?”

“베, 베드 신은 무슨? 아우- 내 얼굴을 봐요. 딱 봐도 베드씬이랑 안 어울리게 생겼잖아. ”


경수가 의심쩍은 눈으로 정곡을 찌르자 백현이 완전 티 나게 당황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좋아요. 이거 내가 나중에 혼자 와서 볼 건데, 만약 베드 신이 나온다? 그럼 우리 앞으로 한 달간 섹스금지.”

“미쳤어요?!”


백현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뻥 뚫린 공간에 백현의 목소리가 쩌렁 울려 퍼지자 당황한 경수가 백현의 팔을 찰싹하고 때렸다.


“조용히 해요…! 아니, 왜? 베드 신 없다면서? 근데 왜 소리를 지르지?”

“아…아니이…. 하아…. 진짜, 베드 신까진 아니구… 그런 느낌만 나게, 교묘하게 각도 잘 틀어서 찍은 건데….”

“키스했어요, 안 했어요.”

“….했어요…”


그새 풀이 죽은 듯 눈꼬리가 축 내려간 백현의 얼굴을 경수가 빤히 쳐다봤다. 참나… 수염은 그렇게 붙여놓고 귀여운 표정 하면 뭐 어쩌겠다는 건데. 경수가 살벌한 표정으로 스윽 흘겨보다 이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귀여워서 봐준다, 진짜.


“뭐. 난 쿨한 남자니까 사실 베드 신이 나와도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백현씨는 본인 영화 봐봤자 재미 하나도 없을 테니 우리 딴 거 봐요.”

“진짜요? 그…그렇네에! 내가 찍은 거 내가 봐서 뭘 해. 그쵸?”


위기에서 벗어난 백현은 평소라면 어떻게 자기 애인이 다른 사람과 찍은 베드 신을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냐며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지금 저가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빨리 이 상황을 넘겨야했다. 순식간에 얼굴에 화색을 띠며 사실 자기가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다며, 이게 그렇게 재밌다고 소문났다면서 재빠르게 다른 영화를 터치해 예매를 진행시켰다. 


흐음…. 베드 신을 찍었단 말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전혀 쿨하지 못한 경수가 신나서 결제를 하는 백현의 뒤통수를 몰래 째려보았다. 





백현은 콜라, 경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각자 손에 들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광고를 시작한 어두컴컴한 내부가 익숙지 않아 멈칫하는 경수를 백현이 손을 잡아 이끌었다. 발밑 조심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움직이는 백현의 발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통로쪽 좌석 밑에 적힌 번호를 한 번쯤 확인할 법도 한데 전혀 보지도 않고 쭉쭉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아니,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야? 아까 자리 선택할 때 경수는 갑자기 호텔에서 온 업무 관련 메시지에 답을 하느라 백현이 어딜 선택했는지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서 경수는 좀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백현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맨 꼭대기 자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백현이 발을 멈추었고, 곧바로 왼쪽 가장 사이드 자리로 경수를 밀어 넣었다. 


“무…뭐에요? 빈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왜 굳이 여기를... 이러면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본다니까…!”

“아니, 뭐-.. 남자 둘이 구석 자리에 앉을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어차피 사람도 없고, 아무도 우리 신경 안 쓸 거에요.”

“…나 구석에 가둬 넣고 뭐 하려고?”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실실대는 백현을 경수가 또다시 의심쩍은 눈으로 째려보았다.


“뭐…뭘 하긴? 아무것도 안 할 건데?”


말까지 더듬으며 눈을 똥그랗게 뜨는 백현은 누가 봐도 무슨 짓을 할 것처럼 보였다. 진짜 저렇게 표정관리 하나 못하는데 무슨 연예인이고 무슨 천만 배우라고. 경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체념한 듯 자리에 앉았다. 





영화가 중반부에 돌입하자 처음엔 코믹하고 가볍게 흘러가던 분위기가 급변했다. 끈적한 배경음악에 두 남녀가 침대 위에서 급하게 얽혀들었다. 남의 눈이 어떻고 운운할 땐 언제고, 가운데 팔걸이를 올려 버젓이 백현의 어깨에 기대어 영화를 보고 있던 경수의 몸이 순간 경직됐다가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크흠-. 애도 아니고, 이런 야한 장면 하나 나왔다고 동요할 뻔한 자신이 우스웠다. 경수는 괜히 여유로운 척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쭉 빨아들이는데, 부시럭 부시럭- 옆에서 굉장히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경수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며 제 쪽으로 괜히 몸을 더 붙여오는 백현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있었네, 여기 한 명. 스물아홉 살짜리 애. 경수가 저를 째려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경수의 어깨 위로 팔을 둘러 거의 안다시피 하고 있던 백현이 슬쩍 경수의 말랑한 팔뚝 안쪽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변백현….”


경수가 백현이 무언갈 할 것만 같은 불안함에 짐짓 목소리를 낮춰 경고 하듯 백현의 이름을 작게 불렀다. 상영관 내에는 백현과 경수 외에 4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네다섯 열 정도 앞쪽에 나란히 앉은 둘은 딱 봐도 커플 같았고, 나머지 둘은 각각 자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백현과 경수가 앉은 자리에서 많이 멀지 않았다. 큼큼- 백현은 괜히 작게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고 3분 정도 지났을까-. 화면의 남녀가 태초의 모습이 되어 격한 키스를 나누기 시작하자, 이번엔 슬쩍 고개를 내리더니 어깨에 기댄 경수의 볼에 입술을 갖다 댔다. 까슬함과 촉촉한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자 경수는 눈동자만 움직여 백현을 올려다보았다.  


"흐즈므르....."

"뽀뽀 한 번만 해주면 얌전히 있을게."


어느새 짙어진 눈으로 경수의 귀에 속삭여오는 백현의 목소리에 경수는 잠시 고민했다. 안 해주면 안 해줬다고 그걸 빌미로 더 엉겨 붙을 테고, 해주면 해줬다고 또 흥분해서 날뛸 것 같은데... 어떡하지-. 그러는 사이, 백현은 열심히 굴러다니는 경수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히 다 보여 귀여웠다. 뭐 저도 배우로서 관람 예절은 지켜야 한다는 주의지만, 경수가 이렇게 대놓고 귀여운데 내가 어떻게 참아. 안 그래?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백현은 경수의 팔에 닿아있던 손을 들어 경수의 턱을 살며시 붙잡았다. 그리고 위로 살짝 들어 올리자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크고 동그란 눈동자가 저와 시선을 맞춰왔다. 그리고 1초, 2초, 3초… 서서히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그 반짝임이 사라져갔다. 백현은 완연히 감긴 긴 속눈썹이 자리한 눈꺼풀 위로 입 도장을 한번 찍고는 곧바로 경수의 도톰한 입술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물었다.


-춥...츄웁...


어쩔수 없는 젖은 마찰음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충분히 묻힐 수 있을 정도였다. 안심한 백현의 손이 경수의 허리를 감싸고 경수의 팔이 백현의 목을 둘러왔다. 두 사람의 입술은 조금의 빈틈도 없이 잔뜩 짓눌러져 꺾는 고개를 따라 이리저리 부벼졌다. 꽤 길어지는 정사 장면에 뒤쪽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샌가 질척이는 혀가 셀 수 없을 정도로 서로의 입안을 오가고, 백현의 손이 자연스레 경수의 옷 안을 파고들었다. 으응….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소리가 목 안에서 울렸다. 맨 허리를 몇 번 쓰다듬다가 갈비뼈를 지나 앞으로 옮겨오기 시작하자 경수가 그 손을 탁, 하고 잡았다. 


“하아….하아…….”


츕- 소리를 내며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두 입술이 아쉬운 듯 떨어지고, 둘은 코끝이 마주 닿은 채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그 순간 타이밍 좋게 바로 장면이 바뀌었고, 끈적했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다시 밝은 무드로 전환되었다. 경수가 눈동자만 움직여 앞자리를 살피곤 작게 속삭였다.


“뽀뽀 한 번만 이라면서요.”

“인간적으로 어떻게 뽀뽀 한 번으로 끝내요. 상대가 도경순데.”

“참나….”


경수가 헛웃음을 터트리자 경수의 달콤한 숨이 백현의 입가에 퍼지고, 닿은 코끝이 반동으로 인해 살짝 부벼졌다.


“경수씨는 변백현이랑 뽀뽀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어요?”


응? 변백현인데? 그게 가능해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얄밉게 고개를 양옆으로 갸웃거리며 코를 더 부벼오는 백현을 경수가 잠시 흘겨보았다. 그리곤 갑자기 한 손을 들어 백현의 목덜미를 탁, 하고 붙잡더니 앞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조용히 하고 입이나 벌려요.”


경수의 입술이 백현의 윗입술을 강하게 물었다.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예상 체크인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그룹이 로비 안을 가득 점령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도떼기시장과 다름없었다. 경수는 프런트 데스크 한가운데서 담당과 한창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매니저님 어떻게 해주시면 안 돼요?”

“보내주신 수배서와 다르지 않습니까. 저도 해드리고 싶지만, 오늘은 디럭스는 풀북이라 뺄 수 있는 방이 없습니다.”

“하아… 그러니까, 지금 바로 나올 수 있는 건 이그젝티브 밖에 안 남았다는 얘기죠?”

“그렇습니다.”

“금액 차이는 둘째치고, 이 그룹 특성상 한 방만 좋은 걸 내주면 백프로 난리 날텐데….. 난감하네요.”

 

담당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무리 룸 플랜을 들쑤셔봐도 디럭스는 단 한방도 뺄 수가 없었다. 경수는 잠시 생각을 하다, 카드키 작업에 여념이 없는 수진을 불렀다.


“수진씨. 오늘부터 내일까지 디럭스 체크인 예정인 룸 슬립 좀 가져다줄 수 있어요?”

“네. 잠시만요.”


수진이 바로 뒤에 있는 문을 통해 백오피스로 들어갔고, 경수는 디럭실 객실만 선택해 띄어 놓은 룸 플랜 창을 유심히 살폈다. 잠시 후, 수진이 가지고 온 파일을 데스크 아래의 바에 펼치곤, 두 개 정도 봐둔 대표자명을 찾아내 슬립 뒤에 끼어 있는 수배서를 빼내 들었다. 그리곤 곧바로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S호텔의 매니저를 맡고 있는 도경수입니다. 이진영 과장님 되시죠?”


경수는 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내일 체크인하는 룸의 대표자명을 말하며 확인을 요청했고, 상대방이 파일을 찾아 열 때까지 수화기를 든 채 기다렸다. 


“네. 네, 맞아요. 혹시 이 분 프리미어 룸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드려도 괜찮을까요? 저희가 지금 디럭스 하나를 급하게 빼야 해서요. 네. 네… 괜찮으시겠어요? 손님께 확인 안 하셔도 되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확정 바우처 메일로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경수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다시 들어선 또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고하십니다. 여기 프런트인데요. H412 룸 클린 상태 확인할 수 있을까요? 네.”


경수는 앞에서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는 담당을 한번 쳐다보곤 하우스 키퍼의 답을 기다렸다.


“네. 확인 감사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어떻게 됐냐며 몸을 데스크에 바짝 붙이는 담당에게 경수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결됐습니다. 웰컴 바스켓은 제가 지금 F&B 쪽에 추가로 요청할 거고, 세팅하는데 20분 정도 소요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네!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아닙니다. 키 봉투들은 거의 다 만들어가니 앉아서 기다리시면 잠시 뒤에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담당은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몇 번이고 인사 하곤, 손님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후우…. 아침부터 진이 다 빠진 것 같은 경수는 다시 수화기를 들어 F&B로 전화를 걸었다.





크고 작은 폭풍들이 무사히 지나가고 어느덧 오후 4시가 되었다. 백오피스에 앉아 한창 오전에 못한 문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번호였다. 경수는 받지 말까 하다가 잠시 뇌리에 스치는 한 사람이 있어 한숨을 내쉬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네. 도경수입니다.”

-….형. 나야.”


경수는 예상한 목소리에 잠시 입술을 감쳐물곤, 말해. 라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네 지엠한테 얘기 들었어. 그에 대한 답은 형 직접 만나서 얘기해주겠다고 했으니까, 이따 잠깐 봐.


내가 널 왜 만나? 만날 이유 없다고, 계약을 하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고 당장이라도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경수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쨌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담판을 짓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피곤하게 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경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어번 두드리곤 입을 열었다.


“그래. 퇴근하고 만나. 나갈 때 연락할게. 끊는다.”


경수는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겠다. 당장 담배라도 피지 않으면 지금 이 심란한 마음을 잠재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백현은 경수에게서 온 톡을 보곤 혼자 히죽 웃었다. 방금 일 끝나서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갈 거라는 경수의 메시지에 백현은 자신은 다시 촬영 들어간다는 답을 보내곤 핸드폰을 재킷에 넣어두었다. 백현은 운전석 창 쪽에 팔을 기대 턱을 괸 채로 밖을 주시했다. 예상보다 일찍 끝난 촬영에 백현은 경수를 놀래 주려고 몰래 호텔 앞으로 찾아왔다. 조수석엔 형준을 시켜 산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자가 놓여있었다. 오전에 많이 바빴는지 피곤해 죽을 것 같다고, 빨리 퇴근하고 싶다고 답지 않게 우는 소리를 내던 경수가 귀엽고 안쓰러워, 오늘도 수고했다고 꼭 안아주고 싶었다. 백현은, 단 걸 즐겨 먹지는 않지만, 가끔 스트레스 쌓일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던 경수의 말을 기억해냈다. 아몬드 봉봉. 참 이름도 경수다운 걸 먹는다며 백현은 그것조차 귀여워 죽겠다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형준은 지랄을 한다며 혀를 찼지만, 백현은 전혀 개의치 않고 형준에게서 케이크과 신용카드를 뺏어 들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익숙한 차림의 경수가 뒷문을 통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백현은 경수가 집으로 가는 방향인 자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올 것을 예상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크락션을 울리려고 했다. 그런데 경수는 그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핸드폰을 꺼내 들어 무언갈 확인하듯 화면을 한번 쳐다보곤 백현의 차가 있는 방향과 반대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지? 백현은 기대있던 몸을 일으켜 핸들 쪽으로 바짝 붙이곤 경수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열 걸음도 채 걷지 않은 경수는 정장을 차려입은 어떤 남자 앞에 멈춰섰고, 몇 마디 나누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 남자의 팔을 손으로 밀치며 옆에 서 있던 차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후.… 그런 경수를 보며 한숨을 한번 내뱉은 남자는 보닛을 돌아 운전석에 올라탔고,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백현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시동을 걸며 핸드폰을 꺼내 경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연결음만 계속 들릴 뿐 경수는 받지 않았다. 비교적 한산한 도로에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백현은 금세 경수가 탄 차의 바로 뒤까지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한 손은 핸들에, 한 손은 핸드폰을 쥔 백현이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통화 버튼을 누르려 하는데 화면에 톡 알림창이 떴다.


-갑자기 연장근무를 하게 돼서 지금 전화 못 받아요. 이따가 퇴근하고 연락할게요.


빨간 신호가 걸렸다. 백현은 차를 멈추곤 그 톡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백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게 식으며 딱딱하게 굳어졌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이 부르르 떨려왔고, 백현은 이내 조수석으로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아이스크림 상자 위로 요란한 소릴 내며 부딪힌 핸드폰은 그대로 시트 위에 떨어졌다. 그 순간 신호가 다시 파란 불로 바뀌었고, 백현은 앞차를 당장이라도 깨부술 듯이 노려 보며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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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염백(...ㅎ)을 쓰고 나서,,, 수염 있는 백혀니두 멋있을 거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었는데(근데 레알 진심임ㅇㅇ), 트친분이 '당연하죠'라면서 보내주신 변첸 사진 때문에 무릎 꿇고 오열했습니다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백현 이즈 뭔들 아니겠습니까??? 예????? (누가 뭐래도 난 진심이다....)

그리고 전 지금, 다른 의미로 울고 싶습니다... 흐으으윽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합니다 여러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gongs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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