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윤대협은 경계지역에 자주 갔다. 그리고 갈 때마다 검은 고양이와 마주쳤다. 늑대가 갯과라는 건 윤대협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고양이처럼 생겼잖아?


그를 구성하는 사고의 흐름이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라이칸이 늑대의 후예든 뭐든, 검은 아기 고양이는 누가 봐도 고양이였으니까. 익숙한 것에게는 은근하게 담담함을 내보이는 것도, 그러나 새로운 것에는 날카로운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도.


그리고 경계심을 이겨버리는 호기심까지.


몇 번이고 마주치고 나서야 윤대협은 깨달아버렸다. 저 아기 고양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렇게 자주 마주치도록 대화 한 번 한 적 없었지만, 아기 고양이는 분명 제게 호기심과 호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저토록 선명한 호기심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납치해가고 싶었지만, 저 아기 고양이가 라이칸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지 확실하게 알게 되기 전까진 조심하는 게 좋을 터였다.


처음 발견했던 날도, 그 이후로도 종종 괴롭히는 무리가 있는 걸 보면 엄청 중요한 자리에 있는 녀석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마음은 떠들어댔지만, 이성은 항상 ‘사실 확인’이 중요하다고 외쳐대고 있었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존재가 바로 윤대협이었다.


한량처럼 권력과는 아무런 연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놓고 사실은 그 누구보다 권력에 가깝고, 그 누구보다 권력자에 어울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그때 현실부정을 하던 한때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백년이고 천년이고 피 한 방울 안마시고도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종류의 뒤통수는 제가 쳐야 재미있지, 남이 저에게 치면 재미없기 마련이다. 그러니 철저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비가 내렸다. 평소의 윤대협이라면 밖으로 나간다는 선택지는 떠올리지도 않을 정도로 죽죽 쏟아지는 빗방울이 큰 유리창을 사정없이 때렸다. 이런 날은 우산 같은 인간의 창조물로는 빗방울을 다 막을 수 없어서, 자유롭게 다니려면 결국은 이능을 써야했다. 그리고 윤대협은 이능을 사용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딱히 명확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랬다.

그래서 그는 그답지 않게 고민해야 했다.


이능을 써서라도 경계지역으로 산책을 갈 것이냐, 비를 핑계로 나가지 않을 것이냐.


꼭 산책을 갈 필요는 없었다. 직접적으로 그 고양이를 만나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마음은 술렁였다. 오랜 세월을 살며 이런 기분이 드는 일은 아주 드물었고, 윤대협은 그런 감정의 불안을 그냥 흘려보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





윤대협이 경계지역에 도착했을 때 검은 아기 고양이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피 냄새에 이끌려갔던 곳. 그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작디작은… 검은 늑대.


늘 마음속으로 검은 아기 고양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인간의 모습이 아닌 건 처음 봤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작은 검은 늑대의 모습에 윤대협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동안 이 아기 고양이를 괴롭히던 놈들은… 그러면 이렇게 작은 개체를 괴롭히며 즐거워했던 것인가? 그들이 100%의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너무나 큰 힘을 가지고 태어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너보다 작고 약한 것들을 지켜주라는 말을 듣고 자란 윤대협의 입장에선 눈이 뒤집어질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호감과 호의가 있다면 당연히 그 상대에게 꿀을 바른 것처럼 잘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좋아해서 괴롭힌다는 말을 윤대협은 이해할 수 없었다.


빗방울을 온전히 막아내던 이능의 범위를 아기 고양이에게까지 확대한 후, 윤대협은 천천히, 그리고 아주 가까이 아기 고양이에게 다가섰다. 검은 아기 고양이는 무척 지친 듯 몸을 떨지도 않고 아주 가느다란 숨만 겨우 이어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누가 나타났다는 것도 눈치재지 못한 것 같았다.


“고양아,”

“…….”

“형아랑 갈래?”

“…….”

“내가 잘 해줄게.”

“…….”


아기 고양이는 답이 없었다. 숨을 이어나가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아기 고양이의 귀에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닿았을지 윤대협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자신은 이 고양이를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진짜 고양이가 아니라 새끼 라이칸이기 때문에 뱀파이어와 라이칸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


어쩌라고.


윤대협은 이런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하는 뱀파이어는 아니었다. 생각이 들었으면 실행에 옮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살아도 되는 존재였으니까.


“고양아, 싫다고 안 했으니까 동의한 걸로 알게?”


그래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윤대협은 아기 고양이에게 통보했다.

네가 거부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동의한 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뱀파이어의 지역으로 가자.


그곳에서 형아가 예뻐해 줄게.





*





윤대협은, 차기 뱀파이어 왕이긴 하였으나 라이칸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었다. 즉, 검은 라이칸에 대한 것은 결국 총괄 집사인 안영수가 모두 해결해야 했다는 뜻이다.


차기 왕이 갑자기 비에 젖은 새끼 라이칸을 데리고 왔는데 숨이 간당간당하다?


제 3차 언더월드 대전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안영수는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안영수는 처음에 윤대협이 미쳐서 라이칸을 공격한 걸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그럴 성정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순간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로 최근 뱀파이어와 라이칸의 평화협정이라는 건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내가? 쟤를?”

“……죄송합니다.”

“알면 잘하자.”


언뜻 보면 윤대협은 굉장히 느긋하고 나긋해 보이지만, 호전적인 성향도 강했다. 그럴 드러낼 일이 드물 뿐. 눈이 돌아버린 윤대협이 다른 뱀파이어를 어떻게 찢어발겨 죽여 버렸는지 두 눈으로 생생하게 봐야했던 안영수 입장에선 사실 타당한 추측이기도 했다.


그래서 윤대협이 직접 다친 새끼 라이칸을 치료해주고 살려내라고 했을 때, 안영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상명하복이 몸에 배어 있어 되묻는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지만 솔직하게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게 과연 전쟁으로 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얼핏 봐선 절대 뱀파이어 때문에 생긴 상처는 아니다. 그렇지만 증거 같은 거야 조작하면 되는 일. 그렇다면 아예 철저하게 이 새끼 라이칸이 라이칸임을 숨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형이 되어야하고, 인간형이 되려면 기운을 차려야 하고…….


결국 안영수는 반쯤 울면서 지하 서고로 들어가 라이칸에 대한 파트를 속독으로 읽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안영수의 눈물 나는 노력이 없었더라면, 서태웅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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