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그녀를 품에 안고 고민하던 리프탄은 그녀가 동물을 좋아하던 것을 떠올리고는 그녀의 말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맥시밀리언을 안고 방으로 돌아온 그는 재단사 부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신나서 만들어놓은 드레스들을 모두 꺼내 그녀 앞 침대위에 펼쳐놨다. 





"원하는 옷으로 입어. 춥지만 않게"





그의 목소리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부드럽고 다정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화려한 드레스와 리프탄을 번갈아봤다. 


그는 말 그대로 어마무시한 양의 드레스 더미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기어린 표정에도 맥시는 선뜻 드레스를 고르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로제탈의 모습이 스쳐갔다. 이 옷들은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다. 괜히 동생의 옷을 입었다가 아버지에게 걸려 혼쭐이 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9살 소녀의 눈에 공주 드레스는 너무나 큰 유혹이었다. 그가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모두 네꺼야. 이 옷들을 모두 입으려면 하루에 세 번씩 갈아입어도 부족하겠어"





그의 입가에 저절로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실제로 그는 평소 그녀가 입었던 옷과는 달리 여기저기 레이스가 달려있는 파스텔 톤의 드레스들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말은 그녀에게 고르라고 했지만, 이미 그는 모든 드레스를 눈으로 훑으며 그녀의 몸에 대입을 마치고 저릿한 심장을 추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이..이거.."






맥시가 파스텔톤 드레스 사이에서 그녀의 머리카락과 비슷한 붉은색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강렬한 색깔과 대비되게 흔한 레이스 장식조차 없는 단촐한 디자인이었다. 그는 말없이 드레스를 집어 그녀의 머리 위로 씌웠다. 마치 머리카락이 온 몸을 감싼 듯 흰 얼굴과 어우러지는 그녀의 모습에 그의 입꼬리가 다시 유려하게 올라갔다.



대체, 뭘 입어야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는거지? 그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쑥스러운듯 자신의 드레스 자락을 만지던 맥시밀리언이 힐끗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에 리프탄은 힘 조절이 안 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숨을 고르다가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머리, ... 땋아줄까?"





리프탄의 목소리에 맥시의 표정이 단박에 밝아졌다. 총총 거리며 전신거울 앞에 풀썩 주저앉은 그녀는 엉켜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울상을 지었다. 그가 화장대 위에 있던 빗을 들고 그녀의 뒤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향유를 묻힌 빗으로 엉킨 머리카락을 천천히 풀어냈다.





"오,..와아..."





잠시후 양 옆 머리를 가늘게 땋아 모은 뒤 반묶음으로 늘어뜨려 핀으로 장식한 자신의 머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맥시는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거울에 달라붙었다. 리프탄은 자신의 심장에 너무 잦은 무리가 오고 있음을 느끼고는 서둘러 그녀의 어깨에 두툼한 흰색 털망토를 둘러주었다. 문득 그의 시선이 보석함에 멈췄다. 




보석함에는 어른이었던 맥시밀리언이 과하다며 손사레를 치고 한 번도 착용하지 않았던 장신구들이 주인을 잃고 쌓여있었다. 그는 촘촘한 루비로 장식된 크리스탈 왕관을 꺼내들었다. 맥시의 커다란 눈이 더욱 커졌다.




그는 다시한번 무릎을 꿇으며 맥시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웠다. 어른 맥시밀리언과 꼬마 맥시의 웃음이 그의 시선에 동시에 오버랩됐다. 






"예쁘다 내 공주야"







리프탄은 맥시의 이마에 입술을 누르며, 다시 한번 망토를 꼼꼼히 여며주고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녀는 익숙한 듯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충족감에 그는 달리듯 방을 빠져나와 마굿간으로 향했다.



렘은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듯 푸르릉 거리며 맥시에게 코를 들이밀었다.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동물을 처음 본 듯한 그녀는 잠시 얼어붙은 듯 하다가 이내 작은 손바닥을 펼쳐 렘의 콧등을 쓰다듬었다.





"네가 주인이야. 한번 타볼래?"





상기 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맥시의 허리를 잡고 렘의 안장 위에 올려놓은 리프탄은 혹시라도 떨어질까 싶어 그녀의 허리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맥시는 그의 손을 꽤 단호하게 걷어내고는 렘의 목덜미에 몸을 숙여 기대고는 갈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음에 들어? 이름은 렘이야. 네가 지어줬어”




“레,렘...”






그녀가 갸웃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리프탄의 망토에 새겨진 렘드라곤 문양을 가리켰다. 누가 말해줬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망토를 벗어 그녀에게 둘러줬다. 그녀가 망토 끝에 새겨진 렘드라곤 문양을 한참 어루만졌다. 






“바람이 차가워졌어 맥시. 내일 낮에 다시 나오자. 내일은 네가 가고 싶은 곳에 데려가줄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싸늘해진 바람에 코끝이 빨갛게 변했다. 리프탄은 자신의 망토에 꽁꽁 싸맨 맥시를 품에 안아들고 렘의 고삐를 끌었다. 컹컹! 맥시가 리프탄의 품에 기대있던 머리를 번쩍 치켜들며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사냥개 한 마리가 리프탄의 바짓단을 잡고 늘어졌다. 






“카,카,카일!”








그녀가 개에게 닿기 위해 몸을 갑작스레 앞으로 숙였다. 리프탄은 품에서 그녀가 떨어질새라 빠르게 몸을 낮춰 사냥개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녀가 손을 뻗자 사냥개는 반갑게 그녀의 얼굴을 핥으며 얼굴을 부볐다. 리프탄은 어릴 적 맥시밀리언이 성에서 끌어안고 있던 사냥개가 떠올라 조심스레 그녀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말코! 이리와!”







수습기사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사냥개의 이름을 부르며 헐레벌떡 뛰어오다가 리프탄의 얼굴을 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칼립스경! 잠시 훈련을 시키려고 하던 중에 갑자기 뛰어가버려서 그만..”







리프탄이 손을 올려 그의 말을 막았다. 그의 눈에는 사냥개를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맥시의 표정만이 가득 들어왔다. 








“네가 키우는 건가”



“아, 예. 아직 어리지만 멧돼지를 쫓거나 고블린을 잡을때 꽤 쓸만한 녀석입니다. 이 녀석 부모도 아주 훌륭한 수색견이고요.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게 탈이지만요”








그가 뿌듯한 표정으로 맥시와 말코로 불리우는 사냥개를 내려다봤다.







“맥시, 원한다면 방에 데리고 가도 돼”







리프탄의 목소리에 맥시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사냥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아니..아니예요”






그는 예전에도 그녀가 같은 질문에 거절을 했던 것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원하면 얼마든지..”



“카,카,카일은...주,주,죽었어요.. 저,저를..지,지,지키려다...가...”







그녀의 눈동자에 또 다시 슬픔이 어렸다. 그는 아주 잠깐 그녀가 자신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쓸떼없는 생각을 지워버리고 그녀의 눈물 맺힌 눈가를 닦아냈다. 너는 어쩌면 눈물로 만들어진게 아닐까. 그래서 언제든 터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운게 아닐까. 그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맥시. 원하는게 있으면, 뭐든 말해도 돼. 그 녀석과 비슷한 개로 구해올 수도 있어”





리프탄의 조급한 말투에 맥시는 개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봤다.






“카,카일은...하,한마리 뿌,뿐이예요. 지,지금은...고양..이들도...이,있고...”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단호함이 내비쳤다. 리프탄은 한숨을 내쉬며 말코의 쉼없이 흔들리는 꼬리를 툭 건드렸다.






“저,정말 괘,괘,괜찮아요. 가,가끔... 저,저를..여기로...데,데려와 주시..신..다면..여,여기서..”








그녀가 리프탄의 눈빛을 읽은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왜 그런 표정을 짓는거야. 그는 그녀의 앳된 얼굴에서마저 눈치 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초조하게 입술을 깨무는 맥시를 내려다보던 그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으며 그녀의 작은 머리위에 커다란 손을 올렸다. 흔들리는 그녀의 눈이 고요한 그의 눈과 마주쳤다.





“너는 이제 겨우 9살이야. 9살짜리 꼬마는 갖고 싶은건 뭐든 가질 수 있어. 나는 니가 원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구해다 줄 거야. 약속할게”






그의 차분한 음성에 맥시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멈췄다. 그녀가 머리 위의 왕관을 만지작 거리며 사뭇 진지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와,왕자님...처럼...요?”









리프탄의 입매가 씁쓸하게 올라갔다. 







“그래. 왕자님처럼”






리프탄의 말이 끝나는 찰나의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언뜻 안개가 어렸다가 걷혔다. 리프탄과 맥시밀리언의 머릿속에 각자가 상상하는 공주님과 왕자님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그 옆에 서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였다.



* 본 연성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배경 및 소재의 저작권은 '상수리나무아래' 김수지 작가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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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아래_연성을 쓰고 있습니다. 죽기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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