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밤에 달은 어찌 그렇게나 환한지, 까만 밤까지 환하게 비춰 어두워보이지가 않았다. 늦은 시간에 마트를 다녀오던 창민의 눈에도 조명처럼 환하고 크게 비추는 달이 매우 커 보였다. 무슨 달이 저렇게나 큰가 싶어서 손목에 비닐봉지 달랑거리며 폰을 꺼내들었다. 보름달 검색, 슈퍼문 검색. 아무것도 뜨는 게 없는 걸 이상하게 보다가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기분 탓인가 싶어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창민은 여태까지 그렇게 큰 달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동네에서 가장 크다는 건물을 잡아먹을 듯이 큰 달. 신기하면서도 드는 경외감에 한참을 바라보다 집에 들어갔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 작은 마을이 시끄러웠다. 창민은 잠옷에 겉옷 하나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어떤 놈이 이랬어?!”


  마을에서 가장 큰 논농사를 짓는 강씨가 화가 나서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끼어든 창민이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벌렸다. 언덕 아래의 김씨의 파란 논에는 정교하고도 규칙적인 동그란 원형 수십 개가 기묘한 모양새로 나타나있었다. 어제 저녁만 해도 분명 멀쩡했다며 최씨가 옆에서 수근거렸다. 창민은 어안이 벙벙하여 논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밀었다기에는 엄청나게 큰 기괴한 모양새에 시간도 모자랐을 것이며 이정도로 깔끔하게 그리듯이 밀었다면 기계로 밀었을 것인데 제일 가까운 창민의 집에서는 간밤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뭔가 언제 한번 미스터리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비슷한 것을 본 것 같아 창민이 가만히 있자 김씨가 창민을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마침 멀리서 경찰차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밤에 작가양반이 우리 마트에서 술 사갔어! 마을에는 작가양반밖에 안 나왔어!”

   “정말이요? 심작가?”

   “제가 술을 사러 밤에 나간 건 맞는데, 강씨 아저씨네 논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어요.”

   “그걸 누가 믿어요? 논에서 3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심작가네 집이 있잖아요!”


  순식간에 범인으로 몰린 창민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반박하려하는데 경찰이 다가왔다.


   “다들 흥분하지 마시고 일단 자세한 경위는 서에 가서 말씀하시죠.”

   “무슨 소리세요? 제가 이런 게 아니라니까요?!”

   “경찰서에 가서 씨씨티비든 뭐든 돌려보면 될 것 아니요?! 가쇼 경찰양반!!!”

  

  아니, 나 아니라니까요! 억울해하는 창민을 경찰이 다독여서 일단 김씨와 창민 둘을 경찰서로 데려갔다. 세상에 내가 경찰서까지 오다니. 살면서 단 한 번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온 창민이 어이가 없어서 경찰서에 앉아 있다가 생각을 바꿔먹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음 글에 경찰서가 나올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같이 왔던 경찰이 노트북을 들고 왔다. 근처 가로등에 달려있던 방범용 CCTV라며 재생한 영상에는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창민이 정확히 잡혔다. 한 화면에 김씨네 논까지 잡히는 것에 김씨가 흥분하여 손가락질을 해댔다. 이것 봐! 검은 후드 쓰고! 흥분한 김씨를 의경이 진정하시라며 다독였고 창민은 어차피 찔릴 것도 없어서 영상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던 창민이 폰을 꺼내서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하늘을 쳐다본다. 한참을 쳐다보는 영상 속 창민을 다들 숨죽여보는데 그 때, 화면이 지지직거리다가 뚝 끊겼다. 김씨의 흥분이 폭발했다.


   “심작가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파렴치 해?! 그게 어떤 농사인지 알면서!!!”

   “아니... 아저씨. 진짜 제가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이거 영상 왜 갑자기 끊겼어요? 저 이 뒤에 분명히 집에 갔어요! 다른 씨씨티비 없어요?!”

   “이게 심창민씨 집과 가장 가까운 마지막 씨씨티비여서 가져왔습니다. 영상이 끊기는 게 저희도 의심스러워서요.”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심작가 진짜! 사람은 믿는 게 아니라더니!”


  흥분한 김씨를 일단 진정시킨다며 의경이 데리고 나가자 창민이 경찰에게 말했다.


   “경찰관님. 저 진짜 안했습니다. 너~~~무 억울해요! 진짜 제가 논을 쳐다보길 했으면 그래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걸 인정이라도 하겠는데요. 저 진짜 그날 논 쳐다도 안보고 집으로 갔거든요!”

   “네, 네.”

   “그리고 그 논을 보세요! 그게 한사람이 밤새 할 수 있는 수준입니까?!”

   “음...”


  아무 말 없이 영상을 돌려보는 경찰을 본 창민이 억울해서 경찰의 가슴팍의 명찰을 한번 보고 바짝 다가왔다.


   “정윤호 경위님?”

   “네?”

   “저 진짜 범인 아니에요. 한번만 믿어주세요. 분명 다른 곳에 블랙박스라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차량을 근처에 대놓으셨습니까? 블랙박스도 설치하셨고요? 근처에 집이 심창민씨 자택뿐이고, 저희 순경이 조사했는데 차량도 없었다더라고요.”

  

  하필 또 동생이 차를 빌려서 서울을 가버리는 바람에 할 말이 없어서 창민이 입을 꾹 다물자 정윤호 경위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네?”

   “저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증거들이 심창민씨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용의자로 지목됐지만요.”


  울컥 눈물이 날 뻔한 창민에 윤호가 웃으며 다독여줬다. 일단 댁으로 돌아가십시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창민은 터덜터덜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허망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빌어먹을 강씨네 논이 보이기 시작했다. 입에서 욕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그 거대하고 기괴한 원형을 보는데 옆에서 구경하던 중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말했다.


   “이거 그거라니까? 미스터리 써클!!!”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맞아. 이거 저기 사는 글작가 있잖아. 그 아저씨가 했대. 경찰이 잡아갔다는데?”

   “얘들아. 나 아니거든?”


  발끈해 끼어드는 창민의 말에 깜짝 놀란 중학생들이 후다닥 도망갔다. 한숨을 푹 내쉬고 집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켰다. 중학생들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검색포털에 입력했다. ‘미스터리 써클’. 


   “똑같네.”


  외계인, UFO착륙 흔적설, 회오리바람설, 정전기설, 지자기설, 중력설, 조류설, 인간조작설, 플라즈마 보텍스설 등등. 전부 가설이라는 걸 보고는 원형들이 즐비한 사진들을 보다가 노트북을 덮었다. 없던 환공포증까지 생길 기세였다. 범인 아닌데 물어내라하면 어쩌지. 강씨네 논이 엄청 커서 몇 천은 넘게 달라고 할텐데. 천정을 보고 의자를 빙글빙글 돌던 창민이 눈을 감았다.


   '어디 가면 안돼. 내 손 잡아줘야 해.'

   '갑자기 우리가 못 만나면 어떡해?'

   '내가 못 알아보면 어떡해?'


 헉, 무슨 꿈이 이래?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밤이었다. 조용한 집 안에 불을 켜려던 창민이 무슨 생각인지 창가로 갔다. 어제와 같은 엄청나게 큰 달. 노트북을 열어서 달의 크기를 검색을 해봐도 저건 이상했다. 이 시골에 산지 5년째인데 한 번도 본적 없는 크기였다. 어쩌면. 창민은 낮에 검색한 외계인, UFO 착륙 그런게 생각나서 창가를 바라보는데 누군가 논 근처에 서 홀로 서 있는 게 보였다. 저 놈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나갔다. 헐레 벌떡 뛰어간 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홀로 서 있는 사람은 경찰복을 입은 정윤호 경위였다.


   “아, 창민씨. 안녕하십니까.”

   “여기서 뭐하세요?”

   “이 시간대에 씨씨티비가 끊겨서 말입니다. 이상한 것이 없나 해서 확인 차 나왔습니다.”


  새벽 1시에? 미심쩍었지만 경찰 하는 일이 다 그렇게 힘들겠거니 싶어서 끄덕이자 윤호가 말했다.


   “오늘 달이 참 예쁩니다.”

   “너무 크지 않아요? 무서운데...”

   

  윤호는 싱긋 웃으며 논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중학생들이 경찰서에 왔습니다. 창민이 윤호를 바라보자 윤호의 얼굴은 달빛이 녹아내려 환하고 반짝거렸다. 


   “미스터리 써클이라고 하더라고요.”

   

  기어코 경찰서까지 갔구나. 창민이 끄덕이며 대답하지 않자 윤호가 창민을 바라봤다.


   “미스터리 써클이 뭔지 아십니까?”

   “저도 오늘 낮에 듣고 대충 검색은 해봤어요.”

   “뭐라고 생각하세요?”

   “가설 중에 하나... 믿는 사람 마음이긴 한데. 이건 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윤호가 작게 웃으며 쓰고 있던 경찰 모자를 벗었다. 말간 얼굴이 순박하게 웃었다. 피곤한데 들어가서 주무세요. 윤호의 말에 창민이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찰차가 없었다.


   “걸어오셨어요?”

   “네. 생각 정리도 할 겸 걸어왔습니다.”

   “경찰서까지 거리도 제법 먼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더라고요.”

  

  조용한 마을에 논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 맴돌았다. 분위기에 홀린 것 마냥 창민과 윤호는 한참 조용히 서로를 바라봤다. 먼저 입을 뗀 건 창민이었다.


   “안 불편하시면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가세요.”




  제 정신이 아니구나. 창민은 속으로 되뇌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숨 막히는 어색함에 천장만 바라보는데 손님이랍시고 반강제로 침대에 눕게 된 윤호의 힘 빠진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창민씨는 정말 상냥합니다.”

   “네?”

   “처음 보는 저를 이렇게 집에 데려와주셨잖아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창민이 입을 다물고 있자 바스락거리는 이불소리가 들리고 윤호가 돌아누워 창민을 내려다보았다. 창민은 시선이 느껴졌지만 꿋꿋이 천장을 바라봤다.


   “창민씨는 글을 쓰는 작가입니까?”

   “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집안에 작가느낌이 많이 납니다.”

   “아...”


  경찰은 경찰이구나, 창민이 끄덕이며 주변을 돌아보다가 윤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달빛 덕에 반짝이는 눈이 깨끗하고 예뻤다. 보고있으니 왜인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


   “상냥하시고 차분하시고...”

   “...”

   “사랑스러운 분이세요.”


  윤호의 말에 창민이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까지 덮었다. 그냥 좀 주무세요. 창민의 말에 윤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히 주무세요. 창민이 대답하지 않고 얼굴의 열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한참이 지나 슬쩍 잠이 들락말락할 때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보고 싶었어요.




  모처럼 늦잠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오후 1시가 됐으니 출근하고도 남았을 시간이 멋쩍은 창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는데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초인종을 눌러대면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문을 열었더니.


   “심작가!!! 뭐한거야? 도대체?!”

   “네? 저 지금 일어났어요... 아무것도 안했어요... 또 뭐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빨리 나와봐!”


  창민을 잡아끄는 손에 슬리퍼만 질질 끌며 따라가자 학교도 안간 어제 그 중학생들이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진짜 외계인이라니까! 미스터리 써클 맞잖아! 사람들이 창민을 보며 길을 비켰다. 강씨네 논을 내려다보았다.


   “도대체...”


  써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옆에서 강씨가 자신이 귀신이 들린 게 틀림없다며 바닥을 쳐댔다.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써클에 논을 하염없이 바라보자 강씨의 부인이 다가왔다.


   “심작가님.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경찰서에는 저희가 말할게요.”

   “네?”

   “일단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사과하는 강씨 부인에 창민이 엉겁결에 자신도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파란하늘 밑으로 푸른 논이 눈부시게 흔들렸다. 그걸 보던 창민이 문득 돌아보았다. 마침 도착한 경찰차에서 의경과 순경이 내렸다. 그쪽으로 뛰어간 창민이 어제 본 의경을 잡아챘다. 


   “정윤호 경위는 왜 안 왔어요?”

   “네?”

   “정윤호 경위가 이 사건 담당인데 왜 안 왔어요!”


  상기된 창민의 얼굴을 보던 당황한 의경의 뒤로 순경이 말했다.


   “저희 관할에는 정윤호라는 분이 안계십니다.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닙니까?”

   “어제 저랑 의경분이랑 아저씨랑 다 같이 씨씨티비 봤는데요!”

   “무슨 소리세요. 저랑 의경친구랑 이장님, 심창민씨 넷이서 봤지 않습니까?”


  얼이 빠진 창민을 뒤로 마찬가지로 얼이 빠진 강씨가 순경을 잡았다. 어제 당신이 아니라! 얼굴을 찌푸린 순경을 보던 이장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 보니 그 경위 마을 살면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이었어...”


  기절한 강씨와 그걸 보던 창민은 멍하니 논을 돌아보았다. 푸르기만 했다. 




  글이라도 남길까 했지만 포기했다. 멍하니 있다가 집으로 돌아온 동생과 함께 밥을 먹고 씻고 누웠다. 꿈이었나? 현실이었나? 헷갈렸는데 창민의 이불에는 낯선 냄새가 묻어있었다. 풀냄새 같은 싱그러운 냄새. 억지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는 새벽 1시였다. 꿈에는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창민은 나의 짝이니까.’

   ‘잃어버려도 반드시 내가 찾아낼 거야.’

   ‘널 닮은 크고 예쁜 달을 띄우면 초록색으로 가득한 곳에서 만나. 널 데리러 갈게.’


  환하게 웃던 얼굴, 정윤호. 창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뛰어가다 슬리퍼 한 짝이 벗겨지는 지도 몰랐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윤호는 서 있었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팔을 벌렸다. 창민은 그대로 뛰어가 윤호를 껴안았다. 


   “만나러 와줬구나.”

   “정윤호.”

   “창민아, 널 데리러 왔어.”


  창민을 떼어낸 윤호가 창민의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세상을 몇 번 돌아서

  다시 이 곳에

  너를 만나 모든 게

  자릴 찾아

  어두운 밤을 지날 때

  또 혼자라고 느낄 때

  눈을 감아봐

  난 너의 빛이 돼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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