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는 밤 늦게 편도행 기차표를 끊었다. 존은 가벼운 가방 하나를 걸친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제이드는 여기저기 서성거리느라 바빴으며 로즈는 자뭇 비장한 표정으로 티켓 개수를 확인했다. 로즈는 티켓 네 장을 본인이 가지고 있겠다고 말했다. 너희가 가지고 있으면 잃어버릴 것 같다는 이유였다. 데이브는 로즈의 결정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고, 존과 제이드도 군말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바다에 가게 된 이유는 순전히 데이브가 '바다에 가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평소처럼 대화창을 켜놓은 채 실없는 소리나 늘어놓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화상 카메라와 마이크를 같이 켜고 있었단 점이었다. 모두 얼굴을 비춘 채였다. 데이브만 빼면. 데이브는 카메라 각도를 비스듬하게 올려 본인의 머리카락만 보이게끔 카메라 위치를 조정한 상태였다. 얼굴 좀 보여봐 데이브. 존이 툭 던지듯 말하자 데이브는 채팅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내 멋진 선글라스가 부숴져서 지금은 안 돼. 선글라스가 없는 스트라이더를 상상해 본 적 있어? 그건 마치 무지개를 건너는 유니콘 같은 거야. 존재할 수 없다는 거지.]

 그러자 제이드가 말했다. '그런데 데이브 왜 말을 안해?' 

데이브의 채팅창은 한참동안 잠잠했다. '너 무슨 일 있어?' 로즈가 물어보자 데이브는 아주 빠른 속도로 '아무일도 없어' 라고 답장을 보낸 뒤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데이브가 말없이 있는 동안 로즈는 존에게 개인 메세지를 보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로즈의 직감은 잘 맞았고, 존은 그런 로즈의 감을 존중했다. 존은 로즈에게 답장을 보냈다. '내 생각도 그래. 데이브한테 따로 연락해볼게' 

존은 데이브에게 '개인적으로' 화상 채팅을 걸었다. 조금 긴 대기음이 지나가고 데이브가 카메라에 모습을 비췄다. 데이브는 여전히 천장과 머리 정수리만 보이게 카메라 각도를 조절한 채였다. 존이 '뭐 해?' 하고 묻자 데이브는 채팅으로 [아무것도 안 해] 라고 답장했다. '얼굴 좀 보여줘 친구' 존이 장난스레 말하자 데이브는 카메라 각도를 아주 살짝 조정했다. 데이브의 방 안은 어두웠고 모니터 불빛이 희미하게 하얀 얼굴을 비추었다. 데이브는 그가 아끼는 선글라스를 벗은 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쪽 눈 아래가 파랗게 멍 든 채로. 존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채고 입을 떼려고 하자 데이브가 먼저 마이크를 켜고 한마디 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난 괜찮아.' 존은 즉시 로즈에게 채팅을 보냈다. '로즈. 데이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 데이브는 등 뒤에 있는 문을 힐끗 바라보고, 다시 모니터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존은 마이크 너머로 간간히 들리는 쿵쿵 소리, 무언가 부수는 소리에 다시금 데이브의 안색을 살폈다. 데이브는 조금 희미하게 웃다가 몸을 움츠리더니 오른손을 들어 입주변을 매만졌다. 존은 데이브의 손목에 시퍼런 손자국이 있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로즈를 찾았다. '로즈. 데이브가 이상해.' 데이브는 존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정말 괜찮아. 난 그냥... 바다에 가보고 싶어졌어.' 라고 말했다. 데이브는 그렇게 말하고선 '이만 가봐야겠다. 형이 부르거든.' 이라고 답장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채팅창을 띄워둔 채 등 뒤에 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고함소리가 열악한 마이크를 뚫고 흘러들어왔다. 제이드와 존은 방문을 박차고 보호자를 찾으러 나갔고, 로즈는 침착하게 밖으로 나간 뒤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존의 아버지는 아들이 횡설수설하는 내용을 천천히, 그러나 유심히 듣고서는 '다시 돌아가보렴. 평소처럼 대화 하면서 친구를 살펴봐주거라.' 라고 말했다. 그 뒤 존은 아버지가 경찰에 전화하는 모습을 보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땐 로즈와 제이드에게 각각 메세지를 하나씩 받았다. 제이드는 할아버지를 통해 데이브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말을, 로즈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심각한 일이 될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채였다. 존은 데이브에게 끝없이 말을 걸었다. 

[데이브] 

[데이브?] 

[너 거기 있어?]

[데이브 스트라이더?] 


나흘 뒤, 데이브가 나이키 가방을 비스듬하게 맨 채 존의 집 앞에 도착했다. 데이브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존의 아버지에게 형식적인 감사 표현을 하며 에그버트 가로 들어왔다. 존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알기에 아직 이르다'는 이유로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네 친구가 여름 방학 내내 우리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할 거란다' 며 안절부절하는 아들을 상냥하게 달래주었다. 그는 데이브에게도 친절한 편이여서 데이브가 머물 수 있는 방을 안내해준 뒤 아이들끼리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존은 데이브가 매우 마르고 여위었음을, 그리고 선글라스 안으로 얼핏 멍자국 남은 얼굴이 보였음을 눈치챘다. 데이브는 입을 꾹 다문채 천장과 침대를 바라보고선 침대 위에 털썩 드러누웠다. 존은 데이브 옆에 걸터 앉아 침묵했다. 긴 침묵을 먼저 깬 건 데이브였다. 

"로즈네 엄마랑 로즈도 여기 올거래. 제이드랑 제이드 할아버지도. 알고 있었어?"

데이브의 시선은 여전히 천장을 향해 있었다. 존은 데이브 옆에 나란히 누우며 말했다. 

"몰랐어."

"그래."

그렇구나. 데이브는 작게 중얼거리며 두 손을 깍지낀 채 배 위에 올렸다. 한참동안이나 조용히 누워있던 두 소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존은 조금 고민하다가 데이브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일 있었어?"

데이브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일도 없었어. 그냥 너네랑 놀려고 여기 온거야. 여름방학이잖아."

데이브의 말대로 여름방학이었다. 정확히는 '곧' 여름방학이었다. 존은 앞으로 나흘 정도 더 학교에 가야했다. 데이브 역시 비슷할 터였다. 데이브는 '차를 너무 오래 타서 피곤하다'고 말했고 존은 좀 쉬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존은 곧장 자기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이미 로즈와 제이드로부터 연락이 와 있었다. 둘 다 존의 집으로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로즈가 보낸 메세지는 좀 더 길고 상세했다. 

[엄마랑 지금 너희 집으로 가고 있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일이 있었던 것 같아. 엄마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말을 안 해주려고 하셔. 다만 데이브를 우리 집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고만 하셨어. 혼란스럽네. 가서 다시 이야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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