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숨만 쉬어도 어색하거든요


형호는 어둠 속에 갇혀있었다. 마치 예전에 동굴 속에 죽어가던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은 불쾌한 느낌.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형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자신을 만지는 감각이 불쾌한 느낌을 달아나게 했다. 그리고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빛이 들어왔다. 형호는 그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형호야, 침대에서 자.”

“형님? 이제 괜찮아요?”


두훈은 침대 옆 의자에서 악몽을 꾸고 있던 형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호는 깨어난 두훈의 몸 상태를 살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약초를 달인 차와 여러 꽃들을 내왔다. 두훈은 아침이슬을 머금은 모란을 먹고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몸은 괜찮아요?”

“응, 덕분에. 고마워.”

“그놈은 저랑 우림이가 없앴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우림이도 고생했네.”

“… 잠깐, 우림이 정체를 알아요?”

“응, 늑대 인간이잖아.”

“아니, 어떻게 알아요?”

“우림이 딱 봐도 그렇게 생겼잖아. 고기 좋아하고, 보름달 뜨면 만날 사라지고….”

“전혀 몰랐는데요. 그 녀석 빵 냄새만 나서 전혀 몰랐다고요.”

“우림이가 늑대 인간치고 빵을 좋아하긴 하지…. 난 알고도 친해진 줄 알았는데.”

“이제 그 녀석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요.”

“왜? 그냥 우림이인걸.”


두훈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두훈의 말처럼 우림이가 늑대인간이라 해서 우림이가 변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을 괜찮게 생각할지는 미지수였다. 일단 오늘 우림이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았다. 형호는 두훈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가게로 내려갔다. 가게 앞에는 우림이가 왔다 갔다 하면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어, 우림아.”

“앗, 형 안녕하세요….”

“그, 들어와서 커피 한 잔 할래?”

“네, 네네….”


우림은 테이블에 앉아 안절부절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형호는 평소와는 다르게 부산스러운 우림이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드러운 커피 향이 가게를 휘감았다. 형호는 본인 속 마음처럼 새카만 커피를 들고 의자에 앉았다. 우림은 커피를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도르륵 굴리며 할 말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잘못을 저지르고 시무룩해진 대형견 같아 형호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하아, 우림아.”

“엇, 네, 형. 말씀하세요.”

“그, 난 말이야 어제도 말했듯이….”


형호가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그때, 가게의 종이 격렬하게 울리며 문이 열렸다. 어제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하고 끌려간 민규가 당찬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우림의 얼굴은 더 사색이 되었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고우림.”

“으악….”

“자, 그래서 어제 무슨 일이었는지 설명해.”

“…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잘! 설명해봐!”

“어제 네가 말한 싸이코가 두훈 형님을 덮쳤고 나랑 우림이가 그걸 막았어.”

“그럼 경찰을 불렀어야죠! 당장 부르자. 그 새끼 놓쳤어요?”

“죽었어.”

“뭐?”

“그 싸이코 우리가 죽였다. 그래서 이제 없어.”

“세상에…. 살인이라니…. 형호 형이랑 고우림, 네가….”

“형호 형, 설명이 좀 생략됐는데요….”

“그래서 경찰도 못 부르고….”


민규는 사색이 된 채 본인만에 세상에 빠져버렸다. 형호는 개운하다는 듯 커피를 마셨고, 우림은 형호의 얼렁뚱땅 설명을 어떻게 더 자세히 설명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민규는 왔다 갔다 하면서 고민하다 큰 마음을 먹고 입을 뗐다.


“시체는 잘 처리했어요?”

“처리야 잘 됐지.”

“아, 아니 민규 형. 그게….”

“그럼 입 다물자. 우림아 목격자는 없는 거지?”

“없긴 없는데….”

“됐어. 나만 입 다물면 되는 거네. 난 형이랑 우림이 편이야. 이 비밀, 무덤까지 가져갈게요.”

“아 그게 아닌데….”


비장한 표정의 민규를 보며 형호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뉘 집 동생인지 머리가 잘 굴러갔다. 우림은 민규의 깊은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골치 아팠다. 세상에서 가장 큰 결심을 했다는 듯 비장한 민규에게 뱀파이어니 늑대인간이니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것이었다. 차라리 힘들게 설명할 바엔 지금이 나은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민규 와있었네.”

“두훈이 형! 몸은 괜찮아요?”

“응. 많이 좋아졌어. 우림이랑 형호는 말 잘 끝났어?”

“아 맞네.”

“앗, 아직….”

“형들. 급한 거 아니면 나 잠깐 고우림 좀 데려갈게요. 어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입을 맞춰야겠어요.”

“어…? 그, 그래.”

“잘 가~”


우림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울상을 지으며 질질 끌려나갔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듯 정신이 없었다. 앞으로 우림이랑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는 형호를 뒤로 한 채, 두훈은 기지개를 켜고 꽃들을 정리했다. 다시 가게를 열 시간이었다.


*


형호는 5일 동안 우림을 보지 못했다. 정확히는 우림이 형호를 피하는 게 맞았다. 브레이크 타임에도 항상 오던 ‘Forest’에 우림은 나타나지 않았다. 민규네 가게를 지나가다 유리창으로 보면, 계산을 하다가도 형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급히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평소였다면 스쳐가는 인연 하나를 잃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만, 이상하게 우림이와 민규만큼은 계속해서 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이대로는 영영 오해도 풀지 못할 것 같아 형호는 사냥하는 흑표범 마냥 기회를 노렸다.


“으아…. 힘들다.”

“뭐가 그렇게 힘든데.”

“형호 형 피하는 게…. 으악! 형호 형!”

“그래서 날 왜 자꾸 피하는데? 우리 이야기 좀 하자.”


형호는 가게 골목에서 조용히 피해 있는 우림이를 납치해 가게 테이블에 앉혔다. 취조실에 끌려온 피의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손톱을 틱틱 뜯으며 눈을 도르륵 굴릴 뿐이었다. 형호는 팔을 꼬고 다리를 떨며 우림이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숨만 쉬어도 어색한 공기가 가게를 감쌌다.


“저…. 형호 형.”

“그래.”

“그, 형은 저 안 혐오스러우세요?”

“너는 내가 혐오스럽나?”

“아뇨! 전혀요! 전 형이 너무 좋아요.”

“근데 왜 나를 피해.”

“… 형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서요. 전 형이 너무 좋은데, 형이 저한테 싫다 말하면 너무 상처 받을 것 같아서…. 그래서 피했어요.”

“난 저번에도 말했듯이 늑대인간에 대한 편견 없어. 내가 뱀파이어 무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너와 연을 끊을 생각도 없어. 나도 네가 좋거든.”

“혀엉….”

“그러니까 너 혼자 어림짐작해서 날 피하지 말란 말이야. 이 미련 곰탱이야.”

“전 늑대인데요.”

“뭐? 하, 말이라도 못하면.”


둘은 마주 보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숨만 쉬어도 어색했던 공기가 사라지고 다시 행복하고 훈훈한 기운만이 가득했다. 가게 뒷편에서 몰래 훔쳐보던 두훈은 둘의 화해에 기분이 좋아졌다. 덕분에 어떤 손님이 맡기고 간 꽃다발은 평소보다 더 화려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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