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딴 걸로 전화하지 마라."


사진봤어? 보름달이야. 너무 예쁘지. 듣는 척도 안 하고 말을 이어가는 게 딱 봐도 술이 좀 됐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들떠서 조잘거리는 음성을 가만 듣다가 확인한 시간에 한숨이 샌다. 


"니 지금 몇신지 아냐." 

-"2시 39분." 

"그래. 누가 예의없게 이 시간에 전화하나 했다." 

-"그러면서 꼬박꼬박 받잖아."

"갑자기 중요한 일이면 어떡해. 그래서 받았는데 쓰잘때기 없는 얘기를 하네. "   


쓰잘때기 없다니. 투덜거리더니 길이 환해서 가로등 고친 줄 알았다고, 이렇게 달이 환하고 예쁜데 어떻게 전화를 안 하겠냐며 호들갑을 떤다. 김민주가 집으로 가는 길 골목은 고장 난 가로등 한 개가 7년째 그대로다. 민원도 안넣는지 그거 하나 안 고쳐서 유난히 어둡다. 조유리가 통학 시간을 핑계로 따로 자취방을 구하기 전까지 늘 그 골목을 함께 걸었다. 


-"같이 보면 좋을 텐데. 아~나도 조유리랑 같이 자취하고 싶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치, 좋으면서."


아웅다웅하면서도 인연은 질겨서 사이 좋게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했다. 처음 자취한다는 조유리 말을 듣자마자 당연히 같이 사는 줄 알았던 김민주는 꼭 한번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조유리 말에 엄청 서운해했다. 그래 봐야 이런 저런 이유로 반동거 상태가 될 때가 많았지만, 당시엔 생각보다 심하게 삐쳐서 달래주느라 한동안 진땀을 뺐다. 그 후로 잊을만 하면 아쉬운 티를 낸다. 사람 심란하게.


"자는 사람 깨워서 하기엔 너무 양심없는 말인데."

-"자고 있었어? 너가 너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받길래 안자는줄 알았어."

"남친한테나 전화하지."


낮에 데이트한다던 말이 생각나 괜히 객기를 부려본다. 정말로 그러면 상처받을 거면서. 


-"또 섭섭하게 말한다. 그리고 나 이제 남친 없는데?"

"뭐야 또 헤어졌어? 이번엔 얼마나 가나 했더니." 

-"그냥~전에 만난 애보단 피지컬은 좋았는데 술을 너무 좋아하더라."


이어지는 전남친 품평에 가슴이 따끔거린다. 김민주의 연애 이야기는 익숙해지질 않는다. 헤어졌다고 제게 기회가 오는 건 아니니까. 어차피 금방 새로운 사람이 생기겠지. 김민주는 생긴 거랑 다르게 성격은 말랑한데 생긴 것처럼 남자가 많다. 고등학교 때도 소위 썸남 정도는 늘 있었다. 그럴만한 성격에 그럴만한 얼굴이긴 하지. 그래도 정식으로 남자친구라고 부를만한 교제는 없었는데, 새터 마지막 날 새벽에 안보이더니 다음날 대절버스 옆자리에서 바짝 붙어 속삭였다. 

나 남친 생겼어.

숙취에 구토를 참고 있던 조유리는 그 말을 듣고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조용한 버스 안에서 누가 들을까 봐 당장 설명하라고 눈을 부릅 떴다. 하룻밤 사이에 남친이 생겼다고? 갑자기? 여기서요? 김민주는 눈알을 굴리며 의사 표시하는 조유리를 보고 슬쩍 웃고 핸드폰을 두드렸다. 눈치껏 카톡을 확인하니 잘생긴 학생회 선배가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한걸 받아줬단다.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 그럼 헤어지지 뭐. 그날 조유리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침에 먹은 해장라면을 다 게워냈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돼서 진짜 헤어졌다. 이유는 기억도 안 난다. 그 후로도 김민주는 남자를 너무 쉽게 만나고 헤어진다. 그게 영 탐탁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하루 더 김민주를 포기하는 수 밖에.


-"그래서 다음 주 미팅 갈까 하는데, 너도 갈래?"


늦은 새벽,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오늘도 마음이 계속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고장 난 가로등이 방치된 햇수만큼이나 김민주를 짝사랑한 이유로.  




/




첫만남은 유치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엎어져 5분 거리 이웃사촌인 둘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서로를 인식했다. 사슴반 간판 김민주와 그냥 사슴반 조유리는 소꿉놀이 메이트였다. 주로 김민주는 부잣집 딸래미 혹은 공주님을 맡았고 조유리는 걔가 키우는 강아지였다. 조유리가 하는 대사라곤 멍멍 왕왕 낑낑 정도여서 다른 것 좀 해보겠다고 하다못해 쫄병이라도 좋으니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반기를 든 적도 있다. 그럴 때면 김민주는 팔짱을 끼고 단호하게, 


안 돼. 넌 멍멍이야. 사람 아냐.


라고 말하는 딕션이 일곱살의 그것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한따까리 하던 김민주의 얼굴은 손쉽게 위압감을 조성했다. 어쩔 수 없이 조유리는 눈을 내리깔고 손! 하면 손주고, 빵! 하면 배를 까뒤집어 복종의 의사 표현을 했다. 

그런 두사람의 최초의 투샷은 조유리의 어린 시절 앨범 한쪽을 차지한 생일파티 기념사진이다. 사진 속 조유리의 볼은 한쪽은 김민주 손에, 다른 한쪽은 김민주 입술에 꽉 눌려 불어터진 만두처럼 눈이 감긴 채 입술이 붕어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조유리 생일이라고 특별히 엄마에게 졸라 뿌까머리를 한 김민주가 하나둘 셋-과 동시에 조유리 얼굴을 잡고 냅다 갈긴 입술도장의 결과물이었다. 한순간에 순정을 빼앗긴 채 눈만 꿈뻑이던 조유리는 깔깔거리며 폭소하는 어른들 틈에서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와앙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이후 조유리는 김민주만 보면 도망가기 바빴고 그럴 때마다 김민주는 점점 울상이 되었다. 그때쯤 운동선수 딸래미를 욕심내던 조유리네 아빠때문에 바로 옆에 살면서도 초등학교만 따로 갔다. 무색하게도 조유리가 문과인간으로 자란건 나중 얘기고, 둘의 작은 앙금을 풀 기회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저학년 때까진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뻘쭘하게 지나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쌩까게 되었다.

조유리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가던 김민주를 다시 인식한 건 중학교 입학식에서였다. 우리 학교에 엄청 예쁜 애가 입학한대의 걔가 김민주였고,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 걔 아는데 하고 아는척할 깜냥도 아니었고, 중학교 내내 같은 반이 된 적도 없었다. 이대로 접점이 소멸하는가 싶었던 둘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드디어 같은 반이 되었다. 유치원 때의 후환을 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조유리는 그날의 치욕을 잊지 않으려고 문신을 새겨넣고 매일 밤 예리한 칼날을 갈진 않았고, 새카맣게 잊어서 그냥 어 나 쟤 아는데. 이 정도로 감상을 마쳤다. 그리고 붕 뜬 공기와 어수선한 분위기의 새 학기 첫날, 옆통수를 찌르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린 조유리는 교실 한켠에 앉아 힐끔거리는 김민주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당황한 김민주는 안절부절못하다가 쭈뼛이 한손을 들고 세상 어색하게 웃으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안녕. 조유리는 등짝을 후려맞으면서도 잊을만하면 그때의 김민주를 리얼하게 재연하곤 한다. 

10년 만에 인사를 튼 김민주는 바르게 자랐다의 표본이었다. 훌륭하게 사회화가 완료된 김민주는 모난 구석 없이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친구들도 많았고, 조금 불량해도 설득력 있는 외모로 지각 한번 안 하는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예쁜데 성격 좋고 공부까지 잘해. 근데 이제 완벽한 피지컬을 곁들인. 그야말로 엄친딸. 그런 김민주는 운동화를 구겨 신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급해도 뒤축을 바르게 펴 신고, 애초에 그럴 일을 만들지 않았다. 조유리는 그런 김민주가 저를 좋아하는 게 의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유리는 김민주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번호를 교환하고, 암묵적 등하교 메이트가 되고, 사실은 중학교 때부터 유리 너한테 아는 척하고 싶었다고 속에 있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을 무렵. 조유리는 둘의 관계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조유리만 보면 볼을 꼬집어 흔들고, 깍지끼면서 엄지로 손등 살살 쓸고, 팔뚝 말랑하다고 주물럭거리고, 아무튼 들러붙어서 치대고 그런 건 김민주 외 다수에게 으레 당하던 일이니까 그렇다 치자. 진짜 다른 건 이런 거였다. 서스럼없이 대하는 것 같다가도 걷다가 손이 스치면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 지폐 들고 고기만두를 기다리는 김민주 어깨에 턱을 걸치면 뻣뻣하게 굳어가던 등허리. 어리숙했던 조유리조차 어렴풋이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성적긴장감 섹슈얼텐션 그런 거. 그래서 자꾸 김민주를 의식했다.

아직은 후덥덥한 여름의 끝자락. 냉방병이라도 걸렸는지 일주일 전부터 으슬으슬 하던 상태로 친구들과 물놀이를 갔다 온 조유리는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다. 그 때문에 개학을 앞두고 계획했던 제주도 가족 여행은 조유리만 못 가게 되었다. 


- "뭐해?" 

"잤어..."

- "어디 아파?"


케빈처럼 빈 집에 혼자 남아 앓고 있던 그날 오후, 김민주의 안부 전화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더니 30분 뒤 나오란다. 약속한 시각에 나가도 없길래 전화했더니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그냥 김민주네 집 방향으로 슬금슬금 걸었다. 낡은 시멘트벽을 타고 공명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손에 커다란 보온병을 들고 뛰어오는 김민주가 보인다. 


"미안, 늦었지. 이거 야채죽." 


처음 만들어본 거라 어떨지 모르겠다는 김민주가 그날따라 낯설었다. 다정한 건 알고 있었는데, 다른 애들한테도 이렇게까지 해주나. 몽롱한 약 기운에 취해 숨을 고르는 김민주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많이 아픈가 보네. 눈썹을 늘어뜨리고 이마를 짚어오는 따뜻한 손길. 느리게 박동하던 심장이 달음질친다. 정말 김민주는 지나치게 다정해서,


"니 진짜 예쁘다." 


뱉어진 말은 불가항력이었다. 김민주의 머리 위로 얼마 전부터 깜박이던 가로등이 수명을 다해가는 듯 느리게 점멸했다. 


"어...갑자기?"


눈 앞의 얼굴을 간헐적으로 물들이는 주홍색 불빛 아래, 벙쪄있다가 씩 웃는 얼굴에 새겨진 인디언 보조개. 이마에 옅게 맺힌 땀방울.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리고 복숭아뼈 아래 구겨신은 운동화. 하나씩 꿈꾸듯이 눈에 담다 보면, 마침내 가로등은 생을 다하고 열일곱의 첫사랑이 꽃잎처럼 피어났다.

그리고 바로 졌다. 파스스. 우왕좌왕 뛰는 심장과 별개로 머리는 비교적 침착했던 유리는 남들과 다른 제 성 지향성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필연적으로 인터넷 서치에 의존하며 알아갔는데, 대부분 양성애자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어느 익명의 말 같은 것을 레즈 커뮤니티에서 보면서 희망을 키웠다. 근데 그런 말은 다 거짓말이다. 이 세상은 이성애로 세워져 이성애로 돌아가고 이성애로 끝난다. 

김민주같은 애가 레즈이면서 저를 좋아할 확률?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고 심지어 장르는 판타지여야 한다.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 사진을 보여줄 때, 어깨가 넓은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을 때, 서른 전에 결혼하고 아이는 둘 낳고 싶다고 할때. 그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대와 희망이 와장창 깨졌다. 축제때 기타치며 노래 부르고 내려온 조유리에게 홀딱 반한 표정으로 나 결혼할 때 축가는 꼭 네가 불러달라는 명언을 남기고 옆학교 남자애랑 총총 사라졌을 땐 진짜 C...발... 

김민주와 조유리 사이에 있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는 제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든 게 김민주를 좋아해서 만들어낸 제 착각임을 무자비하게 알아가야 했다. 

원치 않아도 체념하는 법을 익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김민주를 포기했다. 

고되고 기나긴 짝사랑의 시작이었다. 




/




"그래서 너 누구 좋아하는데." 


괜히 김민주 꼬드김에 넘어가 교양 하나 더 들었다가 남들보다 일주일 늦게 종강했다. 다른 애들이 종강파티할 때 못푼 회포를 늦게나마 풀자고 부른줄 알았다. 여름 계절학기 시작하기 전에 본가에 들르려는걸 왜 이렇게 붙잡나 싶더니 속내가 따로 있었군.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당연하지! 어떻게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해줄 수가 있어? 내가 지수한테 너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듣고 얼마나 민망했는지 알아? 천하의 김민주도 모르는 조유리 짝남이 누구냐는데 내가 진짜.."


사랑을 하면 뱉어내고 싶은 법이다. 깊숙이 내재된 본능을 조유리는 오래도 억눌러왔다. 질투하지 않으려 애쓰고, 욕심내지 않으려 견디고. 이제는 이게 다 습관이고 버릇인가 싶었다. 흔해빠진 짝사랑이 힘에 부쳤다. 그래서 털어놨다. 사실은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이 있다고. 얼마 전 아이돌 준비하는 남자 후배와 시시덕거리는 김민주의 모습에 침울해져 별로 안 친한 친구에게 몇 마디 한 게 천릿길을 갔다. 김민주랑은 일면식도 없는 스터디 친구여서 방심했다. 


"알빠쓰레빠"


우리가 몇 년 친구인데 그걸 숨기냐고, 다른 사람한텐 안그러면서 나한테만 왜 그렇게 비밀이 많냐고,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서운하네 마네... 아까부터 몇시간째 듣고 있으니 짜증 나기도 하고 누구때매 마음고생 한 지도 모르면서 저러니까 갈증이 났다. 그래서 한잔 두잔 들이킨 술이 표면장력까지 차오른 유리의 짝사랑을 흘러넘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와, 조유리 말하는 거봐. 너 진짜 너무한다. 그동안 소개팅 다 거절하더니. 그거 때문이었어?"


그래 그거 다 너 때문이었다고 하면 김민주는 뭐라고 할까. 이대로 고백하면 평생 김민주 안 보고 살 자신은 있을까. 그렇다고 이 마음을 삼켜버리면 진짜 식장에서 축가나 불러주려고? 질러버리고 1년만 어떻게든 버티면 김민주를 벗어날 수 있다. 휴학을 하든 도피 유학을 가든. 김민주가 졸업할 때까지만 버티면. 근데 나는 왜 잘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걸까. 바쁘게 돌아가는 수천번의 시나리오에 해피엔딩이 없다. 거절당하고 무시당하고 최악의 경우 혐오당하는 엔딩뿐이다. 별 생기다 만것들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공개 고백하고 잘만 다니던데 나는... 

때 7년 동안 저울질하던 갈등의 균형이 한순간 기울었고, 동시에 가슴 속에서 화르르 무언가 타버렸다. 


"누구냐니까?"


결국 채근하는 김민주 목소리에 입으로 향하던 강냉이 하나를 궤도를 바꿔 김민주 얼굴에 냅다 집어던졌다. 


"너요 너! 김민주 너 좋아한다. 됐냐?" 

"어??"


모든게 다 버겁고 서글퍼져 친구고 뭐고 다 놔버리고 싶었다. 

 

"김민주 너 좋아한다고."

"......"

......

.....

...


후회는 빨랐다. 내려앉는 끔찍한 정적때문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뉴럴라이저, 오블리비아테, 소행성 충돌 아무튼 지금 이 순간을 깨끗하게 삭제해버릴 수 있는 모든 단어를 떠올렸다. 땅으로 푹 꺼져버리고 싶다. 취기에 달아오른 얼굴에서 김이 날 지경이다. 이거 이불킥 몇년치지. 과부하 걸린 뇌가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그걸 믿냐."


여전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민주가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쳐다본다. 그게 얄미워서 강냉이를 또 집어던졌다. 아, 아 쫌, 아씨 하지 마. 그만 던져라. 그 말에 유리는 마지막으로 강냉이 한움큼을 냅다 집어던지고 술집을 나갔다. 야 어디 가는데! 유리의 뒤통수 너머로 급하게 짐을 챙기고 계산하는 소리가 들려도 멈추지 않았다.


"조유리!"


아슬아슬하게 쫓아오는 구두 소리가 불안해 속도를 늦췄다. 


"너 나 놀리는 거지. 귀찮게 굴어서 그래?"


바로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도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혹시 진심이야?"


끝내 김민주가 조유리의 팔꿈치를 쥐고 돌려 세운다. 


"진심이냐고." 


마주 본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왜 이렇게 집요하게 확인하려 드는 걸까.  


"......"


거기서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했는데.


"거짓말이지?"


그때 아무렇지 않게 넘겼어야 했는데.


"...어."


억지로 올린 입가는 한쪽만 올라가고 파르르 떨리는 눈가는 제어가 안된다. 


"......"


존나 망했다.


"......"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과 어그러진 공기를 너도 나도 여실히 느끼고 있다.


"...먼저 간다."


침묵하는김민주 얼굴을 제대로 쳐다도 못보고 급하게 등을 돌렸다. 

아, 계절학기 철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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넹? 연재물 안쓴다면서 왜 연재하냐고용? 몰라요.....ㅠ님율님 못잃어..

https://asked.kr/crying00

안구건조증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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