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성채 해도 안 드는 곳에 사는 찬백은 그 안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자라. 

미혼모이자 접대로 돈을 버는 찬열의 엄마와, 아내가 죽고 혼자 이발소 겸 미용실을 운영하는 백현의 아빠. 찬열의 엄마는 영업을 위해 매일 저녁 5시쯤 머리를 하러 백현의 아빠 가게에 가. 또래의 아이인 백현에게 나도 너만 한 아들이 있단다. 하니까 눈을 반짝거리면서 친구 하고 싶다고 하는 어린 백현. 


태어날 때 약하게 태어나서 체구가 또래보다 조금 작았던 백현은 어째 친구 사귀기 어려웠거든. 백현이네 아빠도 찬열이네 엄마한테 밤에 애 수면제 먹여서 재워놓지 말고 여기 올때 애들 같이 놀게 데리고 오라고 해. 맡아준다고.


찬열이네 엄마는 좋지. 밤을 무서워하는 찬열이 혼자 있는 내내 울까봐 늘 저녁 밥에 잘게 부순 수면제를 섞어서 먹이고 나왔거든. 그래서 다음 날부터 미용실에 찬열이 데리고 오게 돼. 백현이보다 두살 어린 찬열이는 쭈뼛거렸고, 백현이는 친구가 생긴다는 사실에 웃으며 찬을 맞이하지. 작은 손을 내밀면서 인사해.

안녕, 나는 백현이야. 우리 친구하자. 


이게 여덟살 찬열과 열살 백현의 첫 만남. 그 후로 둘은 형제 이상으로 의지하며 지내. 마냥 어렸을 때 그러니까 찬열이가 12살쯤 되었을 때 원래는 찬열네 엄마가 자는 일층 침대에서 백현이가 그래. 


너희 엄마랑 우리 아빠 결혼하면 좋겠어. 둘이 좋아하는 거 같아.


그럼 2층 침대에서 책읽던 찬열이 고개 쓱 내밀면서 왜? 이러니까 백현이 신난 목소리로 말해. 그럼 너도 내 동생이 되는 거잖아! 찬열은 이내 침대 내려와서 백현이 옆에 누워. 왠지 뚱한 표정이야. 화장실 부엌 작은 텔레비전 그리고 2층 침대 좁게 들어찬 3평짜리 집인데 왜 굳이 여기 눕는지 백현은 몰라.


난 싫어. 난 형 필요 없어. 


찬열의 말에 백현은 눈 똥그랗게 뜨고 물어봐. 


왜? 너는 나 싫어? 


그럼 어린 찬열이 고개 저어. 


아니 좋지.

근데 왜? 너도 내가 형이면 좋잖아. 아빠도 생기고 가족도 생기고.

몰라 아저씨도 좋고 뱩현, 너도 좋은데 가족이긴 싫어. 


백현이 친구하자고 손을 건넨 그 날 이후로 둘은 친구로 지내와서 찬은 늘 반말 해왔거든. 백현은 찬열이 이제와서 자기한테 형이라고 하는 게 싫어서 그러는 가보다하고 간지럼태우면서 쪼잔하다고 놀리고 끝나. 


그러다가 찬열이가 중학생쯤 됐을때(구룡성채 내에도 자체적으로 학교가 있었다구 함.) 찬열이 이상하게 백현을 자꾸 피해. 이제 자기는 다 커서 밤에 혼자 있을 수 있다고, 엄마 출근하고도 안올거라 했대.

이 말도 직접 들은게 아니라 찬열이네 엄마가 전해줬어. 


어쩌지 뱩현아, 찬열이가 오고 싶지 않대. 


백현은 괜찮다고 했지만 아빠가 이발소 정리하는 동안 이불 뒤집어쓰고 울었어. 세상에 유일한 친구잖아 찬열이. 세상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거 같아서 울었어. 16살인데 창피하게 엉엉.


2주간 서로 안 마주치다가 백현이 결국 찬열이네로 찾아가. 유리로 된 얇은 문을 막 두드려. 찬열은 이층 침대에서 작은 텔레비전 보다가 인상쓰면서 내려가. 


누구세요. 


대답이 없어. 구룡성채 안이 워낙 흉흉해서 문 열지말까 고민하다가 딸깍 여니까 씩씩거리는 백현이 서있어. 얼굴은 새빨갛고 호흡은 거칠어.


뛰어왔나봐. 백현은 그 짧은 사이에 훌쩍커버린 찬열을 보고 조금 놀라서 뒷걸음질쳤다가 혹시나 문 닫아버릴까봐 얼른 찬열을 밀고 집안으로 들어가. 작은 티비는 여전히 시끄러워. 


뭐야

뭐야가 전부야? 어떻게 그래? 너 나 왜 피해 다녀?

안...그랬어.

겁쟁이 새끼.

뭐?

맞잖아 겁나서 이러는거. 우리 아빠가 너희 엄마한테 반지 준 거 보고 그러는 거잖아. 그렇게까지 가족 생기는 게 겁나? 


백현의 말대로 근 10년을 봐온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이 생긴 모양이었어. 그 사실을 알고 백현은 기뻤어. 식구가 생기고 무엇보다 찬열과 함께 살수 있으니까. 근데 그 후로 찬열이 자길 피한거였거든.

어린 나이에 했던 얘기가 진짜였나봐. 가족이 생기는 게 아직도 싫고 겁나나봐. 백현은 답답해. 같이 살면 더 좋을텐데 찬열이 왜 이러나 싶어. 왜 자기한테 화난 사람처럼 피해다니는지도 모르겠어. 찬은 대충 잘라도 잘생긴 머리를 헤집어. 


아저씨때문에 그런거 아니야.

그럼 왜 그러는데?

몰라서 묻냐. 너 때문이잖아. 


백현은 좀 울컥해. 


그렇게 나랑 형제가 되기 싫어?

응. 나는 싫어. 


말을 마친 찬열이 성큼 다가와. 가까이 서니까 더 높아진 눈높이에 백현의 고개가 더 뒤로 젖혀져.  분해서 말도 못하는 백현의 양 볼에 찬열의 두 손이 올라와. 백현은 갑작스런 행동에 눈만 동그랗게 떠. 티비는 아직도 떠들지.


나는 싫어, 너랑 형제 하는 거.


다시 한 번 다짐하듯 내뱉은 찬열이 엄지손가락만 움직여서 백현의 볼을 문질러. 말갛고 부드러운 뺨. 그리고 얇고 팽팽한 입술. 입술을 보던 찬열이 백현과 눈을 마주쳐.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지.


왜냐하면 나는 너를 좋아하거든. 



찬열은 허리를 살짝 숙여 그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대.백현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찬열의 허리춤을 쥐면서 눈을 꽉감아. 찬열은 잘 깨지는 유리라도 만지는 듯 조심스레 백현의 얼굴을 쥐고 계속 입을 맞춰. 훌쩍 커버린 손 안에 바들바들 떠는 작은 얼굴이 눈을 감고 간신히 입맞춤에 응해. 살짝 얼굴을 뗀 찬열과 백현은 다시 눈을 맞춰.


그리고 다시. 찬열은 제 아랫입술로 백현의 입술 새를 파고 들어. 티비에서나 보던 거라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래도 멈추고 싶지 않아. 겹겹이 맞물린 입술이 어설프게 서로를 찾아. 늘 백현에게서 시선을 못떼던 이유.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는데 자신이 화가 나던 이유는 다. 다 자신이 백현을 좋아해서였어.


백현은 모르겠어. 귓가에는 시끄러운 뉴스가 웅웅거리는데 그것보다 제 얼굴에 쏟아지는 찬열의 뜨거운 숨과 두 입술이 내는 질척거리는 소리에만 신경이 쏠려. 백현은 손바닥에 난 땀을 숨기려 찬열의 허리춤을 더 세게 쥐어. 찬열은 아예 백현의 턱을 들어올리고 입술 틈을 벌린채 다시 맞대. 물컹한 혀가 밀려들어오고 백현의 고개는 더 뒤로 젖혀져. 


어설프고 미숙한 두 사람의 첫키스 이후로 찬열은 더이상 백현을 피하지 않아. 제 마음을 전했잖아. 백현 역시 찬열에게 더이상 형제가 되자 하지 않아. 나도 찬열이를 좋아하는 걸까. 그냥 유별난 우정인걸까. 아직 아리송하지만 찬열의 소중한 마음을 알게되었으니까 상처주고 싶진않아.


그리고 종종 골목의 깊은 곳이나 찬열의 좁은 집에서 둘은 입술을 맞대고 혀와 호흡을 나눠. 조금씩 깊어지는 입맞춤과 티셔츠 아래로 파고드는 손. 맨살 위를 더듬거리며 서로를 끌어안는 손길을 느끼는 시간을 길게 보내곤 해. 혈기왕성한 십대들은 아래를 식히기 위해 창문을 열고 담배를 태우곤 해.


구룡성채, 그곳에선 어린 나이부터 술이나 담배를 하는게 흔한 일이니까. 아편이나 약만 하지않으면 착한 아이 소리를 들어. 불안정한 두 사람은 낮이건 밤이건 캄캄한 창밖을 내다보면서 앞으로의 일을 얘기하곤 해. 


넌 뭐하고 살거야?

나? 아빠한테 미용기술 배울까 하고 있어. 너는?

나는 여길 나갈거야.

나간다고? 나가서 무슨 재주로 먹고 살아?

모르겠어. 그치만 되는대로 일해서 돈 걱정없이 살고 싶어. 이렇게 좁은 집 말고, 넓다란 집에서 너랑 엄마랑 살고싶어.

우리 아빠도 껴주라.

싫어.

형제하자고는 안했잖아! 치사해!

선심썼다. 그럼 아저씨도. 



이런 얘기하면서 키득거리곤 했지.




구룡성채를 나가겠다는 찬열의 말은 곧 이뤄져. 찬열의 친부가 찾아왔거든. 찬열의 친부는 동네 어울리지 않는 좋은 세단을 타고 구룡성채를 찾아왔어. 차가 더이상 들어올 수 없는 곳이 되어서야 그가 탄 자동차가 멈췄어. 그리고 성채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친히 발걸음을 옮겼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의 사방을 막고 선 수행원만 봐도 범상치 않은 사람이란걸 알겠어. 


그리고 성채에서 가장 어두운 곳. 한 줌의 햇빛도 들지 않는 찬열의 집 앞에서 멈춰. 찬열의 엄마는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찬열의 앞을 가로막아. 찬열은 가슴이 쿵쾅거리지만 엄마를 제 뒤에 숨겨. 이제 저보다 많이 작은 엄마니까 자신이 지켜야겠다고 느꼈거든.


들어오란 말도 안했는데 얇디 얇은 문이 열리고 찬열은 저와 많이 닮은 남자와 마주해. 그는 기쁜 얼굴이야. 알고보니 찬열의 엄마는 찬열을 임신하고 구룡성채에 들어온 사람이었어. 그 전까지 마카오에서 지내던 이였지. 우연히 만난 조직의 보스와 여러차레 몸을 섞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생긴 아이가 찬열이었어.

그리고 본처와 숱한 후처들이 찬열을 임신한 엄마를 찾아 없애려했고 그 감시를 피해 깊게 깊게 숨은 곳이 바로 여기였던거야. 본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상대 조직과 거래하다 죽었대. 얼마 전, 찬열과 백현이 처음 키스하던 그 날. 웅얼거리던 뉴스의 내용은 그 내용이었어. 그 뉴스느 둘의 이별을 암시하던 거였나봐.

그 때부터 새로운 후계자가 필요했던 찬열의 아비는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찬열의 어미를 찾기 시작했대. 혹시 찬열에게 해가 될까 전전긍긍해하며 도망친 노력이 가상해서 모른척, 그렇지만 감시하며 지내왔는데 그 아들도 많이 컸다는 얘기도 들었어. 큰 아들이 죽고 본처에 얽힌 세력도 마땅하 이유로 쫓아냈으니 이제 데리고와도 되겠다 싶었어. 그래서 찾아왔더니 손에 수상한 반지가 있어. 그리고 겁에 질린 표정. 그 앞을 가로 막은 저와 닮은 아이.



오랜만이야.

용케 찾아오셨네요. 숨고,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홍콩에 있으면서 어찌 숨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지켜보셨군요.

그래.

왜 오셨어요.

가자, 다시 너의 삶으로. 



찬열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알 수없는 대화에 인상을 찌푸려. 저가 봐도 남자와 자신이 너무 닮았어. 그럼 아비라는 건데 대체 왜 나는 여기서 살고 있으며 저자는 왜 엄마를 겁에 질리게 하는 건지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가지 않아요. 


찬열의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어.

벌써 16년째 널 풀어줬잖아. 돌아갈때가 되었어. 내가 보지 않은 동안 널 해칠 이는 이제 없어. 내가 다 죽여서 내쫓았거든.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이발소 남자는 죽어. 



이미 찬열의 아빠는 다 알고 있으니까 먼저 말을 꺼내. 찬열의 엄마는 입을 틀어막아. 


안돼, 그는 안돼요.

너희만 나와 함께 돌아간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아.


그렇게 찬열과 엄마는 인사도 못하고 마계촌을 뜨게 돼. 이발소 일을 도와주고 여느때처럼 놀러온 백현은 텅 비어버린 3평짜리 찬열의 집 앞에서 멍하게 서있다가 돌아와. 백현은 돌아온 이발소에서 울고 있는 제 아비와 마주해. 동네 사람에게 얘기를 들었대. 그제야 백현은 찬열도 아줌마도 더이상 이곳이 없단걸 알게 돼.


그렇게 십 년이 지나고 백현은 아버지와 여전히 구룡성채에서 이발소를 하며 지내. 매일 찬열이 보고싶어 울었어. 자신이 느끼는 알 수 없는 배신감이 실은 연정에서 온 거라는 걸 알고 더욱 하염없이 울었는데 이제는 그만큼 울지는 않아. 그래도 가끔 꿈에 나오면 먹먹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지.



바깥은 별세상이래! 하고 눈을 반짝이던 찬열이 너무 그리운 날이면 그때 같이 담배 태우던 장소에서 혼자 가서 담배를 하고 돌아오곤 해. 십년 간 서서히 깨달은 거야. 찬열이 그랬듯 자신이 찬열에게 가진 감정이 형제애가 아니었단걸 백현도 이제는 알아. 백현의 아빠는 거의 죽은 사람 같아.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아. 그냥 일을 잔뜩하고 술을 잔뜩 마시고 자는 삶을 반복해. 그러다 어느날 저녁을 먹는데 뉴스에서 떠들어. 삼합회 보스가 죽었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요트 위에서 파티를 하던 중 헬기에서 떨어진 폭탄으로 인해 죽었대. 그 여인 역시 죽었다며 뉴스가 띄운 사진은 찬열의 엄마였어. 밥숟가락을 떨어트린 백현의 아빠는 십년 간 그날 이후로 처음 소리내며 울어. 


미안하오, 미안하오. 


이 말만 반복하며. 자신의 곁에 온 여인들은 어찌 이리 행복해 본 적도 없냐며 자신이 문제라고 엉엉 울지. 백현도 아빠를 추스르며 함께 안고 울어. 



그리고 그날 밤. 백현은 잠결에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어. 아빠의 슬리퍼가 이발소 안을 걷는 소리에 화장실 가나보다 하고 백현은 다시 잠들어. 이발소를 열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아빠는 보이지 않아. 그리고 헐레벌떡 뛰어온 앞집 정육점 아저씨가 전한 건 아빠의 부고였어. 구룡성채의 가장 깊은 곳. 찬열과 찬열의 엄마가 살던 그곳에서. 자신이 평생 쥐고 살았던 이발가위로 아빠는 그리움과 못다한 애정을못 이겨 백현을 떠나고 말아. 



이후 백현은 달라져. 찬열이 자신의 모든것을 앗아간것 같아. 자신의 행복도, 아빠도, 그리고 사랑하는  찬열 본인도. 백현은 모든 걸 잃은 기분이야. 이제 찬열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와 배신감이야.


언젠가 마주치면 죽일거야. 죽여버릴거야. 이런 맘으로 살던 어느날. 십 년전과 비슷한 그림이 펼쳐져. 구룡성채와 어울리지 않는 고급 세단.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이들과 그 가운데 서있는 보스.  그 날, 백현은 이발소 마감을 하고 있었어. 분명 폐점(閉店) 사인을 걸었는데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려.


영업 끝났어요~

...오랜만이야.



익숙한 목소리에 바닥을 쓸던 백현은 고개를 들어. 아아- 그리우면서도 죽이고 싶은 목소리. 백현은 손을 떨다가 빗자루를 떨어트려. 그렇게 둘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돼. 10년이 지난 지금, 처음 인사를 나눈 그 곳에서.




찬백아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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