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사정





"아빠, 뭐라구요?"
"엄마랑 일본 가."
"싫어요. 제가 왜 일본을 가요? 엄마."
"아빠 말 들어."
"싫어."
"너 그 자식 만나는거 모를 줄알아?"
"여보."
"내가 너 남자새끼나 만나는거 보려고 그 비싼돈 들이면서 피아노 가르킨줄 알아? 당장 가."
"싫어. 나 선배 좋아한단 말이야. 안갈래!!"
"이 녀석이!"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처음이었다. 아버지에게 맞은 것이, 어떻게 선배와 나의 관계를 알았을까? 이렇게 불같이 화낼 줄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떠나라니 그건 다신 선배를 보지말라는 소리와 같았다. 화가 나는데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만난 선배인데 이렇게 떠날 수는 없었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다.

"선배 졸업할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있을게요."
"뭐?"
"선배 졸업 곧 해요. 그땐 하라는대로 할게요."

정적이 흘렀다. 긴 침묵에 결국 울음이 터져나왔다. 심장이 아려왔다. 이대로 굴복해버리면 그를 다신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그가 졸업할때까지만 버티고 싶었다. 그가 약속한 바다를 함께하고 싶었다.

"졸업까지만이야. 그 이후엔 엄마하고 일본에 가서 다른 학교다녀."
"네."

터진 울음때문에 간신히 대답했다.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아직 어렸고 부모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다.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들인데 나의 사랑에 실망하는 두분의 모습에 허탈감을 느꼈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걸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성별이 중요한 걸까?
누가 속 시원하게 얘기해줬으면 했다. 그날의 나는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울다가 잠이 들었다.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 선배의 얼굴을 보며 차마 나는 말할 수 없었다.
당신이 졸업하면 난 떠나야 한다고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그때의 기억에 눈물이 흘렀다. 그는 항상 나를 불안해한다. 알고 있다. 내 사랑을 의심하는 것처럼 느껴져 불안해보이는 눈동자를 볼때마다 몇번이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손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냈다. 그에게 내색한 적 없다. 그날 나를 받아줬던 밤, 다짐했다. 내 감정을 모두 드러내지 않기로 모든걸 쏟아내버리면 그는 견디지 못할게 분명했다. 나는 그만큼 잔인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가 떠날까봐 잠조차 편하게 자지 못한다. 이미 새벽이 저문 아침인데 그는 내 목소리에 겨우 잠이 들었다. 고른 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에 나는 다시한번 가슴이 아팠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아프다는 생각밖에,

그를 두고 연주회를 다니는 건 늘 가시밭길이었다. 몇달, 혹은 1년이 걸리는 일정마다 그는 내가 곁에 없음에 힘들어했다. 나때문에,

  내가 움직이려 하자 그가 뒤척인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잠든 그를 깨울 순 없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그가 소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단지 그에게 어떻게 그 마음을 모두 전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를 슬프거나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


"너 요리도 해?"
"배웠지. 일본갔었을 때."
"그 때 넌 2년동안 돌아오지 않았어."
"일부러 그런거 아니였잖아. 얼른 먹어."

안다. 그 2년동안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하지만 그는 내가 보낸 그 2년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친구도 그도 없는 그 곳에서 나는 철저히 외톨이였다. 어디에도 내가 마음을 줄 곳이 없었다. 그가 미치도록 보고싶었고 다 내려놓고 싶었다. 부모님께 다정한 말 한마디 들을 수 없었다.

혼자 목놓아 울지도 못해 이불속에 숨어 울곤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나 없이 혼자 힘들어할 그 때문에 버텨냈다. 어른이 되면 꼭 찾아가겠다고 혼자 다짐하며 그렇게 눈물을 숨겨냈다. 그리고 견뎌냈다. 그리고 그를 찾아냈다.

그날 밤, 그는 알아차렸다.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두번째 이별을 했었다. 모든게 나 때문이었으니 그가 하는 말들을 감내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그에게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다.

"밥 안 먹고 그렇게 나만 쳐다보고 있을거야?"
"언제 가?"
"가버렸으면 좋겠어?"
"그런 뜻 아니잖아."
"모르겠어. 아니면 영영 안갈 수도 있고. 안가고 네 옆에 붙어있을까?"
"그럴 수는 있는거고?"
"아마도?"

그는 미간을 구기는 습관이 있다. 맑고 깊은 눈동자는 수심에 잠긴다.
나는 아픈말을 해버린다. 그가 웃었으면 좋겠다.

"그 표정 짜증나. 그냥 웃으면 안돼?"
"미안해."

그렇게 대화가 단절된다. 그런 뜻이 아닌데 그에게 상처주고싶지 않은데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다.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 그에게 미안해졌다. 한숨이 나온다. 그를 책망하는 한숨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한숨이었다. 왜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해서 그를 상처준걸까?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걸어가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의 살내음에 목에 얼굴을 뭍고 그가 내게서 가장 듣고싶어하는 말을 한다.

"린즈홍, 사랑해."

그의 안도하는 숨소리와 함께 그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그에게 내 마음이 전해질까?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싫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참아내려 해보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가 내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몸쪽으로 향하게 했다. 동시에 그의 무릎 위로 나를 앉게했다.

"왜 울어?"
"안울어."
"울잖아."
"아니야."
"우리 이제  그만하자."
"무슨소리야?"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그는 말과 달리 내 허리를 꽉 끌어당겨 안았다. 내 품에 닿은 그의 모든 것이 따뜻했다.

"힘든 감정싸움 그만하자. 내가 느끼는 이 불안 네가 멈춰줄 수 있잖아."

나는 그의 말에 만족시킬 수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대답하지 못했다.

"양위텅."

밀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꽉 끌어안고는 놔주지 않았다.

"이거 놔."
"미안해. 안그럴게."
"왜 항상 미안하다고 해."
"그냥 미안하니까."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할까?"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미소짓는다.
마음이 놓인다.

"몇번이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

그가 나를 다시 안았다. 다 포기하고 그의 옆에만 있고 싶다. 그가 느끼는 불안을 잠재워주고 마음껏 사랑하면서 그의 품에 안겨 매일 아침을 맞이하고 그가 출근할때 잘다녀오라고 인사해주고 싶다. 내 꿈을 내려놓고 싶을만큼 나는 그가 좋다.

그가 이런 내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내 사랑이 변하지 않았음을 혼자 힘들어하지 않아도됨을...



사랑해
내가 믿을 운명은 이거 하나야
내가 널 사랑해야만 한다는 운명

-백가희 당신이 빛이라면-





  #첫사랑



오전 연습 전, 시간이 좀 남는 것 같아 운동장 한 켠에 앉아있었다. 나무 그늘이 적당해 더위를 피하기에 꽤나 적합한 자리였다. 만족감에 기지개를 켜곤 운동장에 있는 학생들을 구경했다. 더운데도 다들 농구며 축구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운동엔 재능도 소질도 없었고 하고싶은 생각도 없었다. 무엇보다 손을 다치면 안된다는 부모님의 엄포에 공은 한번도 잡아본적 없었다. 다른 이들이 하는 것만 구경할 수 있었다. 어차피 관심없었던 차라 아쉽다는 생각은 한 적 없었다. 그냥 이렇게 한켠에 앉아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때 농구공 하나가 내쪽으로 날아와 발끝에 닿았다. 그냥 쳐다만 보는데 누군가 뛰어왔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공이 굴러오면 던져줘야지."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짙은 쌍거풀에 땀 범벅이 된 얼굴, 무심하게 공을 들고 가버렸다. 황당했다. 어차피 주우러 왔으면서 왜 나한테 그런식으로 말하는 건지, 그때부터 그가 농구를 하는걸 쳐다봤다.

나보다 선배인가? 제법 실력이 좋았다. 얼결에 나도모르는 사이 무릎에 팔꿈치를 짚고 턱을 괴곤 그가 농구하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그가 움직일때마다 얼굴에 땀이 흩어져 떨어지는 게 보였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아니 여자도 아니고 남잔데 거기다가 말투도 맘에 안드는 사람이었는데 머리를 흔들고는 나는 그대로 운동장을 떠나버렸다. 그의 얼굴을 계속 보고있다가는 엉뚱한 생각을 할 것만 같았다.

그게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리고 태양이 미친듯이 내리쬐던 어느날, 시원한 물 한병을 사들고 교실로 향하던 나는 그와 다시한번 마주쳤다.
수돗가에서 땀에 젖은 얼굴을 씻고 있던 그, 누군지 모르는 무심한 사람, 후- 길게 숨을 내쉰 후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물병을 건넸다.

그가 의아하다는 듯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물병을 받아들었다. 별거 없었다.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라는거 그런건 책이나 영화에서 떠들기 좋은 소리였다. 시간따위 필요없었다. 이유도 없이 그냥 그렇게 나는 그가 좋아졌다. 왜였을까? 아직도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




선배와의 약속시간 때문일까?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참동안 풀리지 않는 손가락과 맞지 않는 음과 싸우다가 결국 포기했다. 하루정도 건너뛰고 쉬어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가방을 챙기고 일어나는데 창밖으로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기다린 걸까?

그땐 몰랐다. 두시간 가까이 선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물함에 있던 수건을 챙겨들고 학교건물을 나섰다. 선배는 그 사이 전력질주를 마치고 멈춰선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더울텐데 왜 운동장을 뛴걸까?
 
"이거받아요."

수건을 건네자 그가  받아들고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갑자기 왜 뛴거에요?"
"심장이 고장났는지 확인하고싶어서."
"그래서 고장났어요?"
"그런거 같아."
"고장났다구요?"

선배의 말이 이해되질 않았다. 왜 심장이 고장났을까?
말도 안되는 소리인데 아마도 나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을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상황이 벌어지면 그랬으니까,

"응, 너 때문에."

순간, 선배의 대답에 내 심장도 고장나버린 것 같았다. 그 어떤 피아노선율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때문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시작은 나였지만 선배는 나보다 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벅차올랐다.

손을 내밀었다. 선배가 내 손을 잡아주기를 기대하며 역시나 선배는 멋있게 웃으며 내손을 잡았다. 그리고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선배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을 맞잡고 걷는 거리에는 선배와 나, 단 둘 밖에 없는 것만 같았다. 선배의 옆모습을 보는게 너무 좋았다. 걸으면서도 옆모습만 봤더니 나도 모르게 휘청했다.

의지하느라  손에 힘을 주자 선배가 내 허리를 받쳐 넘어지지 않게 해주었다. 선배의 걱정 어린 눈과 마주쳤다. 주변이 어두워졌다. 처음엔 눈이 멀었다 의심했다. 하지만 바로 코앞의 선배의 얼굴을 보자 그런게 아님을 알았다. 나한테는 선배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각해보이는 선배의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선배가 귀여워서요."
"내가? 어딜봐서?"
"그런게 있어요."
"아니 내가 왜 귀여운데?"

궁금해 하는 선배를 뒤로 두고 앞으로 걸으면서 나는 선배 몰래 웃었다. 망고가 잔뜩 올라간 듯한 빙수를 눈앞에 두고도 선배는 궁금한지 내 눈치를 보며 빙수를 먹었다. 최대한 모른척 하며 나도 먹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대답해주지 않으면 빙수를 더이상 먹지 못할 듯 했다.

"왜 자꾸 힐끔힐끔봐요?"
"내가 왜 귀여운데?"
"몰라요."
"에? 것도몰라?"
"알아야되나?"
"이유가 있을거 아냐."
"그런거 없는데."
"양위텅."
"왜요? 린즈홍."
"귀엽다고 하지말고 잘생기고 멋있다고 해줘. 그럼 이름부른거 봐줄게."
"음... 고민 좀 해볼게요."

나의 말에 빙수를 퍼먹는 선배의 모습이 또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선배는 내가 이제까지 봤던 사람 중에 가장 멋졌고 토라진 모습이 귀여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선배를 좋아하는 만큼 선배도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선배와 내 관계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빙수를 다 먹고난 후 우리는 다시 손을 맞잡고 거리를 걸었다.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해 어디를 가는 것보다 그냥 이렇게 길을 걷는게 좋았다.

17살의 여름, 언제나 뜨거웠지만 유독 뜨거웠던 그 여름날, 나는 린즈홍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가장 좋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었고 피아노를 치는 내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이보다 순수했고 나만 바라봐주었고 내가 하는 말이면 뭐든지 동의해주는 착한 사람이었다.

평생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나 선배 한번만 보고싶어."
"미쳤어? 아빠 아시면 어쩌려구."
"나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제발... 시키는대로 다했잖아."
"유야 그냥 잊고 살면안돼?"
"죽어버릴거야..."

아픈말을 해버렸다. 항상 내 편인 분인데 나는 선배때문에 그런 사람에게 아픈말을 했다. 그정도로 나는 절박했다. 2년이었다. 아무말하지 않고 떠나버린게, 이제 어른이 됐는데 나는 아직도 선배에게 가지 못했다. 핸드폰 마저 뺏겨 연락도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미친 듯 피아노에만 열중했다.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아 숨을 죽였다. 나는 이토록 괴로운데 왜 알아주지 않는건지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선배는 대학에 갔을 거고 나를 찾았을텐데 나는 다 알면서 선배 곁으로 가지 못했다.

어디까지 참아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등 뒤에서  우는 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안다. 자식으로써 부모에게 죽어버리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불효라는 걸 알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다.

참으려 애를 썼지만 눈물이 흘렀다. 고장난 심장은 멈춰버릴 것처럼 아팠다.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제발 살아나라고 선배를 볼때까지만 버텨내라고 스스로에게 살아내라고 그렇게 아프도록 가슴을 내리쳤다. 곧 울음을 토해냈다.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침 전에 와야대. 아빠 오시기 전에..."
"고마워 엄마."


  
길로 뛰쳐나와 보이는 택시 아무거나 잡아탔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간신히 얻어낸 핸드폰으로 기억하고 있던 선배의 번호를 눌렀다. 몇번이나 잘못눌러 전화가 안됐지만 결국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선배. 선배 지금 어디야?"
"너 맞아?"
"지금 어디냐구. 빨리말해."

목소리만 들어도 울 것만 같았다. 아니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선배가 불러주는 주소를 택시기사에게 알려주고 흐르고 있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초조함에 나도모르게 핸드폰을 꽉 쥐었다.

도착한 골목 어귀에 내려 나는 전력질주를 했다. 뛰는걸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선배를 곧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잠시 뒤, 가로등 불빛 아래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달라진 모습을 화인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대로 뛰어 그의 품에 안겼다.

"선배, 너무 보고싶었어."

숨이 차올랐다. 그리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이 품이,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린즈홍,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보고싶었고 안고 싶었던 사람, 그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그가 울고 있었다. 나 때문에 내가 뭐라고,

보고싶었던 그의 얼굴을 보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그가 나를 보며 웃었다. 내 뺨을 감싼 그의 손길이 좋아 눈을 감았다. 현실이었다. 그가 내 앞에서 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그가 알아주었으면 했다. 나는 이제 그와 비슷한 키가 되었고 어른이 되었다. 그는 나보다 더 성숙해보였고 고통스러워보였다.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작은 원룸 안, 그가 나를 침대에 앉히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손등에 입을 맞춰주었다.  나를 올려다 보는 눈빛에 그리움이 가득했다.

"어디갔었던거야? 난 네가 날.."
"버린줄 알았다고 말하려는거지? 미안해. 말도 없이 사라져서."
"괜찮아. 이렇게 왔잖아."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그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선배 나 숨막혀."
"싫어. 안 놓을거야."
"그럼 조금만 살짝 안아."

그와 마주보고 침대에 누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선배는 그대로네."
"넌 더 예뻐졌어."
"그게 뭐야? 더 잘생겨졌지."

우린 웃었다.
그리웠던 그의 얼굴을 만지고 싶었다. 이마를 만지고 잘생긴 코를 만지곤 살이 빠진 듯한 그의 뺨을 만졌다. 언제 다시볼지 모르는 그의 얼굴을 하나하나 곱씹고 기억하고 싶었다. 슬퍼졌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다시 그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다시 가야하는거지?"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손이 갈곳을 잃었다. 그러자 그가 내 손을 잡고 자신의 품에 안아주었다.

"도대체..."
"미안해."
"겨우 널 만났는데."
"미안해. 아프게 해서."
"다시 돌아올거야?"
"그러길 바래?"
"제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모든 걸 포기하고 그의 곁으로 다시 올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있을까?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나를 가슴아프게 했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입술을 찾아든 건 나였다. 너무 보고싶었는데 울기만 하다가 그를 놓고 싶지 않았다. 그의 입술은 슬펐고 내 마음은 갈갈이 찢겼다. 사랑하는 그를 아프게 해야한다는 사실은 나를 죽이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느껴진다. 나를 어루만지는 손이 부드러웠다. 이제 우린 그 시절, 바닷가에서 서로를 갈망하던 10대가 아니었다. 미친듯 서로의 옷을 벗겼던 그 때의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폭발시키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가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내 옷을 벗겨내는 손길은 조심스러웠지만 내 입술을 찾아드는 그의 입술은 조심스럽지 않았다. 꿈결 같은 그와의 밤, 나를 다시는 놓치기 싫다는 듯 그는 집요하게 내 입안을 헤집어놨다. 벗어날 생각조차 없는데 그는 마치 내가 당장이라도 도망가버릴 듯이 나를 탐해갔다.

떠나기 싫다. 그의 곁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그를 혼자 내버려뒀던 것일까?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사이 그와 나는 온전히 나신이 된 채 서로를 붙들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은 내 몸 곳곳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물결이 일렁이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의 손길에 온몸이 뜨거워졌다.

간신히 놓아준 입술 사이로 탄식이 새어나왔다. 긴 숨을 몰아 쉰 그가 내 이마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다시 입술을 찾아들었다. 치열을 천천히 스치는 그의 혀가 자극적이었다. 내 혀를 자극하는 그의 혀가 미치도록 섹시했다. 내 목구멍을 타고 느껴지는 그의 숨결은 숨이 막힐 듯 했다. 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그가 하고 싶어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산산히 흩어져버릴 것만 같은 고통도 있었지만 감내했다. 그가 하는 행동이라면 뭐든지 받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등 뒤로 들리는 그의 신음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내 어깨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이 강렬했다. 등 뒤로 전해지는 그의 심장소리가 내 가슴을 치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때마다 온 몸이 뜨거워졌다. 강렬한 움직임 뒤에 그가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우리는 그렇게 침대에 누운 채 잠시 눈을 감았다.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어두운 밤하늘이 서서히 변하는 것을 보자 슬퍼졌다.
난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지없이 눈물이 흘렀다.
눈치도 없다. 그가 내 눈물을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고른 숨을 내 쉬는 그가 잠이 든 듯 했다. 억지로 흐르는 눈물을 삼켜냈다.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못하도록 최고가 되어 다시 그를 찾겠노라 다짐했다. 나는 아직 미약하다. 그를 쟁취할 힘이 부족했다. 부모라는 큰 산을 넘을 자신이 아직은 내게 없었다. 그 산을 너기 위해서는 내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몸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눈을 뜨고 있었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나를 아프게 했다.

  "린즈홍, 사랑해."

그 밤, 무수히 사랑한다 속삭였지만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나를 보던 그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다시 그에게 돌아가기 위해,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하겠다는 그 눈동자와 함께 말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를 위해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것이고 그 후엔 그를 쟁취할 것이다. 그 과정이 그와 나를 괴롭게 하겠지만 그날 밤, 나를 보던 그 얼굴에서 믿음을 얻었다. 그는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사랑해




"기억나?"
"응."
"내가 널 사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넌 내가 밉지도 않아?"
"이렇게 내 옆에 있는데 왜 미워해야돼?"

그가 내 어깨를 당겨 자신의 품에 안기게 했다.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는 온마음을 다해 표현했다. 그 날 바다는 차가웠지만 오늘 이 바다는 너무 맑아 눈이 부셨다.

"다신 떠나지 않을거야."
"내가 못 가게 막을거야."
"진짜?"
"못할거 같아?"
"아니."

손을 잡고 그와 자갈이 깔린 해안을 걸었다. 햇살은 따사로웠고 바다는 깨끗했다. 이따금 발밑으로 다가오는 파도가 예뻤다. 그와 함께 거니는 이 바다는 마치 꿈 속 같았다.

내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그는 묻지 않았다. 스스로 불안에 떨었으면서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2년 후 찾아갔을 때에도 7년 후 울며 매달렸을 때도 그는 결국 나를 받아주었다.

이젠 마음껏 사랑하고 싶다.
평생을 그의 곁에서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 그가 편안하게 잠든 얼굴을 밤새도록 바라보고 내가 피아노를 칠 때 잘 모르면서 들어주는 그를 보고 싶다. 그렇게 함께 하면서 같이 나이가 들어가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나가 별이 될 때까지 함께 하고 싶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사람
  그를 위해서라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

둘이 맨날맨날 행복했으면....





샘유포타쟁이 그러나 BL작가가 되고싶은 평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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