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 랜서 x 센티넬 아처

*비 오는 날 울적한 감성으로 고요한 집안에서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타려다가 실수로 같은 색깔의 코코아 믹스를 쏟아 버린 느낌.

*감금, 방치, 노골적인 묘사에 주의해주세요.

*미완입니다. 도입부에서 끊겼습니다.



*

희미하게 들리는 빗소리. 우수수 창틀에 맞아 흩어지는 소리가 알람이 되어 아처를 깨웠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습습함보다 찬 기운이 그의 몸을 훑었다. 아. 갈라진 목소리로 신음을 흘린다.

자기 전에 덮은 이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처는 맨몸으로 침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를 깨운 찬 기운은 밤새 그를 지배해 의식을 차렸어도 잠에 취한 것처럼 몽롱함을 제공한다. 흐릿한 기운 속에 귓가에 찰박거리는 빗소리가 들려온다. 아처는 몸에 담겼으나, 남지 않은 들뜬 열기를 찾고자 양팔을 껴안아 웅크렸다.

“일어났어?”

침대에서 오 보 떨어진 자리,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굳은 것처럼 움직이는 몸을 들어 문가 앞에 남자를 바라본다. 푸른 머리카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다른 곳은 허술해도 머리카락 하나만은 단정하게 묶는 남자였다. 오늘도 역시,

랜, 서. 입을 열어 뻐끔댄다.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뜨겁게 부어오른 목이 소리의 방출을 막아선다.

아처를 랜서는 멀뚱히 바라만 본다. 예전이었다면, 곧바로 아처에게 달려와 온갖 호들갑을 떨었을 터였다. 남을 돕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은 전혀 챙기지 않는 아처였기에 그의 몸살은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어도 잦았고, 지독했다. 그런 아처의 병간호를 해주는 건 언제나 건강이 가장 큰 장점이 랜서였고. 예전이었다면, 아처는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버려져 있는 게 아닌 겹겹이 쌓인 이불 속에 파묻혀 있어야 한다.

……예전이었다면.

그러나 아처는 이불은커녕 속옷 하나 입지 못한 채로 깨어났다. 침대 근처 창문은 조금이나마 열려 있었고, 바깥에서는 때늦은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방안은 난방이 돌아가지 않는지 차기만 하다. 옅은 숨소리에 하얀 입김이 섞여 나왔다.

어째서? 아처의 눈길에 의문이 담긴다. 랜서는 남자의 의문을 담담히 받아들며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 앞에 선다. 그러게나 말이다. 왜 나는 널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독한 짓을 해놨더군. 아처, 아무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해도 날 버리면 안 됐었지.”

무슨 소리냐,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한 마디에 아처는 랜서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는 정당한 이유로 화를 내고 있었다. 세계의 평화니, 랜서의 안전이니, 어처구니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며 도망쳐 버린 남자를 제 영역 안에 들이려 한다. 그 방법이 썩 좋지는 않다만, 어쨌든 랜서는 아처를 추위에 방치해서 애인을 구하려고 한다.

아처는 눈을 감았다. 방출되지 못하는 열기가 눈물이 되어 흘렀다. 랜서는 그의 볼을 시린 손으로 쓸었다. 여전히 아처의 눈물은 뜨거웠다. 아주 오랫동안 차갑게 식힌 보람도 없이 그를 좀먹는 능력은 아직 팔팔하다고 신호를 보낸다. 랜서는 눈물을 훔치던 손을 그대로 벌려 양볼을 강하게 잡았다. 아처의 몸은 불덩이에 달궈진 구리처럼 뜨거웠다.

“왜 네 능력은 없어지질 않는 걸까.”

“그걸, 알면…. 내가, 너를 떠날 일도 없었을 거다. 망할 개.”

“네 놈은 물에 빠져도 입만은 멀쩡히 동동 뜰 거다. 빌어먹을.”

“칭, 쿨럭! 찬으로 큭… 듣지….”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조롱의 말을 끝맺은 아처에게 랜서는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아처는 난데없는 접촉을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입을 벌렸다. 거칠게 입술의 표피를 이빨로 뜯으며 입속에 넣어 혀와 같이 휘젓는다. 순식간에 입술 표면이 뜯긴 충격으로 아처의 입술은 붉은 피와 체액으로 물들었다. 반질거리는 붉은색의 색채가 무색의 아처를 채우는 감각이다. 랜서는 아처의 지금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번뜩 뜨고 키스를 했다.

혀와 혀가 엉켜 들어 서로의 체액을 삼킨다. 거칠게 입천장을 훑고 숨이 벅차 떨어지려고 하면 곧바로 입술을 물며 진입한다. 랜서의 키스는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격했다. 무엇을 찾는지, 어째서 그것이 아처의 입속에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는지 그는 끈질기게 혀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매번 개라고 했더니 진짜 개의 혀를 이식한 것처럼 혀가 길게 입안을 침입했다. 혀끝이 아처의 목젖을 건든 순간 아처는 급하게 랜서의 어깨에 손을 올려 힘을 줘 밀어냈다. 너무 깊다. 들어오면 안 된다. 혀가 목 너머로 들어와 기도에 닿았다.

“무, 댜체… 서, 욱….”

랜서의 혀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끝없이 들어오는 물컹한 살덩이의 두께가 입안을 채워 아처가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생리적인 아픔에 동공이 수축하고, 눈가에는 다시 눈물이 고인다.

아처는 전혀 밀리지 않는 팔뚝을 잡아 손톱을 세우나, 짙은 물밑의 셔츠에 걸려 힘없이 미끄러진다. 아래로 떨어지는 그의 손을 어깨 위로 넘기고, 랜서는 점점 몸이 뒤로 넘어가는 아처 위에 올라탄다. 급속히 목 안쪽으로 넘어갔던 것과 달리 랜서는 목구멍에서 아주 천천히 혀를 빼냈다. 끝이 갈라진 혀가 목젖을 건드리자 아처는 민감한 부위를 만져진 것처럼 몸을 떤다.

“아처, 다시 몸이 뜨거워졌네?”

“망할 개자식이! ……그 혀.”

“뭐긴 뭐야. 너랑 같은 짓을 한 거지.”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너도!”

기나긴 혀를 집어넣지 않고 늘어뜨린 랜서의 멱살을 잡아채려 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추위에 몸을 떨며,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던 남자였다. 아처의 몸은 작은 불씨가 나타나려다가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대신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듯 뜨거운 열기가 땀을 수증기로 날려버린다.

불과 열 자체인 자연계열 센티넬의 몸에서 수증기가 나타나는 증상은, 그의 몸이 정상으로 회복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난히 자가 회복 능력이 떨어지는 아처는 랜서의 도움을 받아 겨우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킬 힘을 회복했다. 수증기는 끊임없이 몸의 냉기를 말리며, 아처에게 익숙한 온기를 되찾아줄 것이다.

그렇지만 아처는 이런 방법이 그와 랜서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센티넬에게서 센티넬의 능력 공유는 가이드가 주는 특수한 안정 효과인 가이딩과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가이딩은 이를테면, 운명적인 만남 같은 거다. 완벽히 파장이 맞는 가이드를 만난 센티넬은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건 불변의 법칙이었다. 가이드를 만나 가이딩을 받은 센티넬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심장이 수시로, 아프게 뛰는 대신, 누구보다 행복해진다. 더욱 강해지며, 언제나 최고의 컨디션으로 고정된다.

가이드의 힘으로 이루어진 안정은 일정 불변하지만, 센티넬끼리의 안정은 다르다. 이론적으로 고통 전이나 치유 공유 능력을 갖춘 센티넬은 폭주하거나 쇠약해진 센티넬을 안정시킬 수 있다. 과정은 가이딩과 동일하다. 파장이 맞는 대상과의 긴밀한 접촉. 그러나 이 방법은 양측 센티넬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자칫 능력 폭주를 촉진하거나 생명의 위험이 될 정도로 위험하다. 센티넬끼리는 파장이 절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랜서와 아처는 살아남았다. 그들은 같을 계열의 능력을 갖춘 센티넬도 아니었다. 수인계와 자연계 능력은 하늘과 땅 이상의 파장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같은 팀에 넣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있었다. 그런 랜서의 가이딩은 성공적이었다. 아처는 안정되었고, 랜서는 가이딩 실패의 반동으로 죽지 않았다.


아처는 도통, 이 상황과 랜서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불가능했다. 아처는 정부의 첫 번째 인공 센티넬이자, 국가에서 가장 강한 능력자였다. 그는 센티넬이 된 후로 한 번도 가이딩에 성공한 적이 없다. 학회는 한 번도 가이딩에 성공하지 못한 센티넬, 아처의 첫 가이딩은 가이드와 센티넬 모두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은 초래할 거라고 단언했다. 그들은 확정되지 않는 사실은 입에 담지 않는다. 학회, 아라야가 결정한 사항은 마치 가이드와 센티넬의 관계처럼 절대적이었다.


그런 아라야의 결정이 틀렸다고? 웃기지 마라. 인정할 수 없다. 아처는 자신이 미쳤거나, 랜서가 곧 죽을 거라고 단정했다. 그의 앞에서 랜서는, 그들이 열정적으로 비아냥거리던 과거와 달리 입을 다물었다. 가라앉은 눈으로 고개를 저으며, 다정하게 아처의 진리를 부정했다. 아라야는 틀렸다.

“아처, 그들이 언제나 올바르지 않아. 너도 알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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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처는 정부에서도 고위급으로 지정한 센티넬이었고, 랜서는 가이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처가 연구소에서 데리고 도망친 같은 센티넬 후보였지.

랜서는 센티넬이 아니었다. 중요했다. 아처는 그를 내려다보는 남자를 면밀히 관찰했다. 인외의 혀는 집어넣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눈은 그대로 드러냈다. 평범한 인간은 가지지 못할 짐승의 동공, 억지로 표피조직을 드러내 핏덩이를 보이는 눈이었다. 그런 눈은 오직 수인계열 능력을 발현한 센티넬만이 가지는 특징이었다.

“…결국, 그들을 다시 찾은 건가.”

아처가 마지막으로 본 랜서는 오랜 실험으로 쇠약해졌지만, 누구보다 센티넬과 그들을 만들어내는 연구소를 증오하는 남자였다. 죽어도 센티넬이 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장담했었다.

“널 찾아서 내 옆에 붙잡아놓기 위한 선택이었어."

오래 전, 아처도 아직 평범한 인간이었을 먼 옛날. 반인륜적인 실험이 난무하던 연구소에서 랜서와 아처는 센티넬 적성만으로 투탑을 달리던 우수한 실험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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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남자를 밀어내지도 못해 옷자락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 아처였다. 그는 방금 전까지와 달리 제 몸이 생생하다는 걸 알아챈다. 아처는 제가 받은 실험의 결과로 제 몸이 얼마나 추위에 연약해졌는지 알고 있었다. 방금 전처럼 오래 방치되는 상태라면 보통의 체온으로 회복하기까지 꼬박 열흘이 걸린다. 그런데 방금 랜서의 키스로 몸이 보통을 넘어 최상의 상태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아처가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랜서는 방금까지 떳떳한 반항 하나 하지도 못했으면서, 이번에는 화를 내려다가 순진하게 눈만 꿈벅이는 아처의 팔목을 잡아 침대에 다시 눕힌다. 이번에는 그도 함께. 넓고 하얀 시트 위에 푸른 머리카락이 펼쳐진다.

여전히 아름다운 머리카락이다. 연인의 것 중 가장 탐나면서 그리웠던, 아처는 푸른 머리카락을 홀린 것처럼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랜서는 잔뜩 풀어져서 뜨끈뜨끈한 아처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한 거냐, 랜서.”

“딱히. 아처, 널 만나려면 이 수밖에 없더라. 내 모습에서 못생긴 부분이 생긴 건 아쉽긴 하지. 그래도 널 다시 만났잖아.”

“…납치, 감금에 나 같은 화염 계열 능력자가 죽을 수도 있는 환경에 방치하면서까지 만나서 좋았나.”

아처는 지금 질문을 하는 게 아니었다. 떨쳐내고 버리고 속여서, 결국 자신을 원망하게 만들었는데도, 다시 제게 돌아온 남자를 탓했다. 아처가 어떤 마음으로 랜서를 버렸는데. 그가 랜서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느긋하게 쓰고 싶은 걸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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