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 물고기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들어도 너인 줄 알겠더라.

어딜 봐서요?

넌 조용히 걸어오다가 마지막에 탁탁 두 번 발소리 내잖아.

언니는 그걸 다 관찰했던 거예요?

관찰이 아니라…. 당연히 알지, 당연히.

오빠, 내가 정말 아끼는 동생이야. 여름이 진짜 웃겨. 아, 이 새끼 진짜 또라이네. 여름아, 널 봐서 너무 좋다. 여름아, 나 정말 기분 좋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있어서 너무 좋아. 요즘 많이 바쁘지? 아니, 네가 어른스러워서 그래. 멋있어. 사람들이 너한테 기대를 많이 하게 되잖아. 알지? 네가 어른스러워서….

꿈을 꿨다. 지영이 이제 남자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도화와 나는 좀 얼빠진 표정을 하고 “남자는 이제 만나지 않겠다고? 그럼 여자를 만나게?”라고 물었다. 지영이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도화는 “뭐어어어엇? 그게 무슨 소리야?!!”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조용히 지영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다. 지영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친 채 지영과 키스하는 상상을 했다. 지금이라면 지영의 입술을 덮쳐도 될 거 같았다. 꿈에서 깨어난 몇 시간 동안은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지영의 곁에 있는 아주 오래된 남자를 알고 있다. 지영과 그 남자는 결혼을 한다고 했다. 내가 가게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지영 언니는 이제 일 곧 그만둔대. 00이랑 결혼할 거라서.” 그렇구나, 결혼하는구나. 언니가 그만두면 아쉽겠네…. 잠에서 깬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계속 누워있는 상태로 지영의 결혼 이야기를 다시 곱씹었다. 그렇구나, 결혼하지. 다 꿈이었구나. 꿈이 아닌 것 중에 남아있는 진실은 지영이 이제 일을 그만뒀다는 것과 지영이 곧 결혼한다는 것뿐이었다. 두 진실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과 사랑 따위를 느끼고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


2021년, 해바라기(룸싸롱)에서 지영을 처음 만났다. 해바라기는 10년 넘은 오래된 업소였고 지영은 그곳에서 6년 넘게 일했다. 나는 카운터에서 사장과 대충 면접인지 뭔지도 모르는 걸 봤다. 내가 받을 돈이 얼마인지와 가게 수위를 알려주고 바로 나를 대기실에 넣고 일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대기실에는 3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밝은 갈색 머리를 하고 투피스를 입은 지영, 소파에서 자고있는 유나, 거울을 들고 화장하고 있는 긴 생머리 양주가 있었다. 나는 뚝딱거리며 홀복을 갈아입고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오로지 액정 속 화면만 들여다봤다. 너무 어색해서 차라리 손님이 빨리 와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지영이 나에게 말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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