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만큼이나 야속한 게 없다. 따사로운 볕이 들어 점심을 먹고 나면 춘곤증에 시달려야했던 순간들은 어디로 가버리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매미가 울어 재끼는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옷차림이 얇아질뿐더러 밤이 늦을수록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여름, 김여주는 여름을 싫어했다. 한결 같지가 않은 변덕스러운 날씨 탓이었다. 여름이면 오는 장마든지, 똑 같은 여름이라 해도 대낮의 온도와 밤 사이 일교차가 그 이유였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하는지,


“노민혁 여자친구 생겼대.”

“엥? 그럼 김여주는?”


정말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까. 사귄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만 제 이름이 타인의 입방아에 올라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삼총사와 점심을 먹은 이후부터 눈에 띄게 김여주에게 말을 거는 횟수나 장난을 치는 빈도가 줄어들더니만 이제는 아예 쌩을 까버리셨다. 같은 반인게 최악이었다. 노민혁이 갑자기 이러는 이유도, 당사자 앞에서 무어라 수군거리는 행동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자는 더더욱 그랬다.


“너네 걔한테 무슨 말 했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삼총사를 추긍 할 수밖에 없었다. 삼총사가 노민혁에게 무슨 말이라도 한게 분명했다. 아니면 이 모든 상황이 말이 되지 않으니까. 햇볕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는 오후 4시 하굣길. 아무 말없이 길을 걷던 김여주가 걸음을 멈추고 삼총사에게 물었다. 걔가 누군데? 하복을 펄럭이며 아이스크림을 먹던 이동혁이 되물었다. 걔, 노민혁. 옆에 있던 이제노가 대신 답했다. 그제서야 아. 짧은 간투사를 내뱉었다.


“무슨 말 했는데.”

“걔가 그래? 우리가 뭐라고 했다고.”


굳은 표정의 김여주가 다시 되묻자 이번엔 나재민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지금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김여주는 알고싶었고, 알아만 했다. 무슨 말 했냐니까. 말 못하는거 보니까 내 욕이라도 했어? 이상하게 자꾸만 말이 삐긋거렸다. 제 욕이라도 했냐는 김여주 말에 표정 관리가 안됐다. 셋 중 가장 일그린 표정의 이동혁이 입에 있던 아이스크림 막대를 뺐다.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

“그럼 말해. 무슨 말 했냐니까?”

“그게 중요해?”

“내가 그때 말했잖아. 밥 따로 먹자고. 왜 굳이 껴서는….”


그 작은 중얼거림이 불러온 파장은 김여주도, 삼총사도 예상치 못했다. 마지막 중얼거림에 이동혁의 입 밖으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인데 자꾸만 뾰족한 말이 나갔다. 뾰족한 말로 기분을 상하게 하고,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근데 그거 알아? 걔 따로 썸 타는 애 있었어.”

“………누가 뭐래? 그냥 나는 너네가 걔한테,”

“그렇게 걔가 신경 쓰이면 걔랑 다니던가.”


눈치 없이 껴서 미안했다. 이동혁은 날카로운 말을 뱉고는 나무 막대를 옆 쓰레기통에 던지고는 한쪽 가방에 걸린 가방 끈을 고쳐 멨다. 먼저 가버린 이동혁을 따라 나재민도 한숨을 쉬고 따랐다. 남은 이제노는 멀어져가는 이동혁과 나재민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내일 보자, 여주야. 그리고는 이제노 또한 김여주에게서 등을 보였고 홀로 덩그러니 남아서는 애꿎은 교복 치마 자락만 구겼다. 이러려던게 아니었는데, 그저 무슨 말을 했는지만 왜 자신이 자꾸만 사람들 도마에 올라야 하는지 그 정황이 알고 싶었을 뿐이다. 왜 자꾸만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지, 하지도 않은 말을, 있지도 않은 상황을 어째서 받아들여야하는지. 이제와 보면 노민혁은 친구로 느껴져서 함께 붙어다녔던걸 지도 몰랐다. 삼총사와 비슷한 노민혁이라서, 다른 반이 되어 떨어져버린 삼총사 대신해 자신과 함께 있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서….


“……………….”


어느새 사라져버린 삼총사 뒤로 김여주는 마지막 이제노의 말을 상기했다. 내일 보면 사과하자. 반에서 자신에 대해서 이상한 말이 도는 것 같아서 그냥 불안해서 그랬다고. 말이 엇나갔다고 내가 경솔했다고. 겨우 달라붙었던 컨버스 바닥을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그 내일은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오지 않았다.




오빠동생들




여름 방학이라 함은 보통 무더위와 함께 보낸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며 옷이 저절로 살갗에 달라붙어 하루종일 불쾌감을 조성하는 열대야. 근 한달여간 삼총사와 연락을 하지도, 만나 이야기를 하지도 않은 김여주는 제법 무료한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다. 보통이라면 삼총사와 만나 함께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본다던가 잉여로운 생활을 즐겼는데 김여주네 집에는 게임도, 만화책도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에어컨이 있으니까….


-“어 여주야. 에어컨 수리가 좀 걸린다네. 애들이랑 놀고 저녁쯤에 들어와.”


에어컨이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잘만 작동되던 에어컨이 별안간 말을 안듣더니 이내 지 멋대로 파업을 선언했다. 등 뒤로 흐르는 땀과 달라붙는 옷에 진절머리가 난 김여주가 버벅거리는 에어컨을 한번 세게 쾅 친게 문제였을까, 그 이후로 전원조차 켜지지 않아 엄마한테 SOS 전화를 거니 저번주부터 그랬다면서 오늘 수리 기사가 온단다. 제품이 내는 신호가 심상치 않아 내부 부품을 아예 갈아끼워야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수리 기간이 제법 길댔다. 만화책도 없어, 게임기도 없어, 에어컨도 고장 나. 삼총사랑도 싸워. 고작 선풍기 하나로 현재 닥친 이 열대야에 맞설 리 만무한 김여주가 카페라도 가야겠다 싶어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섰다.


“아니 왜 죄다 카페로….”


빌어먹게도 이 열대야를 피하기 위해 카페는 전부 만석이었고, 김여주 한명을 받을 자리조차 없었다. 뭐 이런 개 같은. 카페로 피신하려던건 다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이곳 저곳 만석인 카페를 보던 김여주가 정확히 네번째 카페를 소득 없이 나와서야 스멀 스멀 밀려오는 짜증과 불쾌지수에 이를 꽉 깨물었다. 정말 삼총사한테 전화하는 수밖에 없나 싶었다. 그 날 이후 빌어먹을 자존심도 한 몫 했지만 삼총사는 일부러 김여주와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행동했다. 급식을 늦게 먹는다거나, 교실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던가. 가령 하굣길 마저도 김여주와 매일 같이 가던 길을 돌아간다던가. 그걸 느끼고 나니 김여주도 삼총사가 괘씸해 부러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누구 하나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려고 안달이다. 물론 이제노나 나재민은 이정도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을 지도. 그때 가장 화를 크게 낸 것도 이동혁이었고, 아마도 이동혁의 심기가 나아지지 않으니 걔들도 동참한 것일 거다. 아무리 그래도, 지들은 셋이고 난 하나인데. 주소록의 삼총사 연락처 옆 발신 버튼을 누르려던 김여주가 도로 휴대폰을 닫았다. 아무래도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카페를 찾는 하이에나가 되는게 낫겠다며 휴대폰을 다시 바지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혹시 여주니?”


그러다가 딸랑 하고 옆에 카페 문에서 누군가 나오더니 김여주 이름을 조심스럽게 부르며 신원을 확인했다. 카페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일그러졌던 미간이 잠시 풀어지고 갑작스레 불린 제 이름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와 외모. 제 주변에 이렇게 예쁜 사람은….


“……언니?”


이제노 누나뿐이었다.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한 번에 들이마신 김여주가 살겠다는 듯 몸을 늘어뜨렸다. 그 앞의 이제노 누나, 이연주는 많이 더웠겠다며 괜스레 에어컨 온도를 더욱 낮췄다. 아 언니 덕분에 살았어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 김여주가 인사를 전하자 이제노 누나는 제 동생과 똑 같은 개죽이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만나, 여주 너무 오랜만이다. 우연도 이런 신기한 우연이 없지. 그 카페에 이제노 누나가 있을 건 뭐고, 그 시간에 김여주가 그 카페에 갔을 건 또 뭐람. 그러게요. 김여주 또한 신기하다는 듯 다 먹은 컵 안 얼음 하나를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노랑도 잘 지내?”

“…그럼요.”


까먹고 있었다. 이제노네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이 남매는 갈라져야만 했다는 것을. 아마도 이 집은 이제노의 엄마와 누나 둘이 사는 집이겠거니. 이제노 홀로 사는 집 못지 않게 집이 좋았다. 제노랑도 잘 지내냐는 물음에 어색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어금니로 얼음을 부쉈다. 잘 지냈었다는게 맞았다. 지금은… 잘 못지내는데. 괜히 삼총사와 자신이 싸웠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얼음을 씹어 먹으면서 의문점이 생겼다. 이제노는, 제 누나랑은 사이가 좋은 걸까 하는.


“제노가 어떻게 지내는지,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엄마가 너무 걱정 중이시거든.”

“……아.”

“근데 제노가 도통 말을 안해.”


사이가 좋진 않은 걸까. 도통 말을 하지 않은 이제노 덕에 엄마의 걱정이 늘어간다는 말을 듣고 있자니 저번에 이제노 집을 방문했던 후기를 알려야하나 싶다가도 괜히 입방정을 떠는게 아닐까 해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제노 누나는 여간 걱정 되는게 아닌가 본지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제 앞의 컵을 만지작 거렸다.


“그냥 매일 아빠랑 같이 밥 먹고 잔다고는 하는데…”

“…………….”


거짓말. 이제노는 제 아빠랑 밥을 먹은 적이 손에 꼽았다. 매일 혼자 밥을 먹으면서, 매일 혼자 자고, 매일 그 집에 덩그러니 혼자 지내면서, 그게 어떻게 잘 지내는거지. 김여주는 겨울, 사람의 온기 없던 이제노 집을 떠올렸다. 이제노 누나는 자신이 괜한 말을 했다며 잊어버리라 손을 저었고 김여주는 어색하니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노가 말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굳이 자신이 나서서 이제노가 말하지 않는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 수박 먹을래?”


여름에 수박은 국룰. 이제노 누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수박 반통을 꺼냈다. 괜찮다며 사양하려 했지만 김여주는 지금 수박이 제법 땡겼기 때문에 아 굳이 안그러셔도… 어물쩍 대며 말리진 않았다. 이제노 누나는 가녀린 팔로 수박을 잘도 잘랐고 접시에 담아 김여주에게 가져왔다.


“여주야 이따가 갈때 제노한테 수박 좀 가져다줄 수 있어?”


직사각형으로 잘린 수박에 포크를 꽂을 때였다. 이제노 집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에 잠시 멈칫 하기도 잠시, 아 넹 그럴게요. 라며 이제노 누나가 준 호의에 보답했다. 고마워. 어어, 편히 먹어. 이제노 누나는 웃으며 다시 주방으로 갔고 고당도 수박을 베어물며 근심했다. 그나마 이제노라 다행인가, 이제노 집에 이동혁과 나재민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제노 누나와는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누나가 가져온 앨범을 보며 이제노의 갓난 아기때부터 자신과 더불어 이동혁, 나재민과 함께 찍힌 사진. 혹은 우유를 좋아했던 어린 이제노가 윗입술과 아랫입술에 우유를 잔뜩 묻히고는 헤벌레 웃고 있는 사진이라던가. 그대로 컸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해가 스멀 스멀 자취를 감추려 할때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났고, 어쩌다 보니 양손에 수박과 이제노가 좋아하는 각종 반찬을 배달하게 됐다. 이게 아닌데. 미안하다면서 자신들이 집으로 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던 이제노 누나의 말과 얻어먹은 수박과 주스 때문에 거절할 수 가 없었다.


이제노 집 앞으로 도착했음에도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그저 멍하니 집을 바라봤다. 없겠지. 없어야하는데. 그냥 이제노한테 언니가 전해달라고 했다며 수박과 반찬을 전해주고 나오면 되는데 어쩐지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이 시간과 이 날씨. 전에는 삼총사가 자주 모이는 장소가 나재민 집이었다. 이제노 집은 잘 가지 않았었는데 그 날 이후라면 이동혁과 나재민이 없으리란 보장도 없다. 이제노 집이 제일 넓고 이제노 아빠도 잘 들어오지 않으니 유독 더웠던 오늘 이곳에 진을 치고 있을 지도 몰랐다. 안되는데.

띵동.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입술이 매말라갔다. 제발, 이제노만 나와라.


“감사합,……….”

“……………….”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건 다 개뻥이다. 문을 열고 나온건 이제노도, 나재민도 아닌 이동혁이었고, 그 날 이후 제대로 마주한 얼굴에 저절로 몸의 근육들이 경직 되었다. 뭘 감사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던 것도 잠시.


“피자 배달이요~!”


군침 도는 냄새를 풍기며 피자 두 판을 든 배달원이 다가왔다. 상황파악은 제법 빨리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얘네는 이제노 집에서 피자를 시켰고 김여주가 누른 초인종을 배달원이 누른 줄 알고 감사합니다 하며 음식을 받으려 했는데 이제 있는건 김여주…. 그리고 그 뒤로 바로 피자가 왔고.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에 배달원이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피자를 가지러 갔으면서 오지 않은 이동혁에 거실에서 게임을 하던 이제노와 나재민이 현관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뭐하냐면서 책망을 하려다가도 김여주를 보고 얼음.


“…피자는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눈치 빠른 배달원은 지체되는 시간이 아까워 피자 두판을 김여주 옆에 두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가지 말아주세요. 그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도, 뭔가 행동하지도 않으니 숨막히는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피자 냄새만 폴폴 풍겨서는 김여주가 피자 두판 옆으로 가져온 반찬과 수박을 내려놓았다.


“…나도 여기 두고 갈게.”


그냥 도망가는게 상책이다. 반찬과 수박이 들어 있는 락앤락 통을 두고는 재빨리 등을 돌려 슬리퍼를 한발자국 앞으로 갔을 때였다.


“야.”


다소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동혁이라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았다. 이동혁 목소리는 원채 잊을래야, 헷갈릴래야 헷갈릴 수가 없으니까. 몸을 반 만 틀어 답했다. 왜.


“할 말없어?”

“…그러는 너는.”

“난 있어.”

“…뭔데.”

“너 진짜 노민혁 좋아해?”


뭐만 하면 좋아하냬. 개소리도 그런 개소리가 없었다. 그저 편해서 같이 다닌 것뿐인데 남들은 이게 썸이고 김여주가 노민혁을 좋아했는데 노민혁이 김여주를 찬 거랜다. 드문 드문 들었던 애들의 입에 오르던 내용은 이러했다.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차였다. 기분이 더러워도 그렇게 더러울 수 없었다. 이동혁 마저도 그리 생각한다니 갑자기 머릿속에서 방학 전까지 계속해서 떠들던 소문이 생각났다.


“네가 봐도 그래?”

“뭘.”

“내가 걔 좋아하는 거 같냐고.”

“어 좀.”


망설임 없이 이동혁도 김여주가 노민혁을 좋아하는 것 같이 보인단다. 답답해서 말이 잘 안나왔다. 원래 좋아하는 거라면 막 신경 쓰이고 가슴 설레고 그런거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자신은 나재민이나 이제노를 좋아하겠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노민혁은 그저 삼총사의 대체품이었다. 삼총사와 비슷한 아이니까 좀 더 쉽게 마음을 연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썸이라고, 좋아하는 거라고 색안경을 썼다. 어쩌면 자신은 다른 이성 친구는 사귈 수 없는 게 아닐까. 아님 제 인생에서 친구라고는 이 셋 밖에 없는 게 아닐까 김여주는 생각했다.


“그럼 너네가 더 자주와.”

“…어딜.”

“우리 반으로 와서 내가 걔 안 좋아하는거 증명 좀 해달라고.”


그리고 너네 없으니까 심심해.

사실 그렇대도 상관없었다.




오빠동생들




벚꽃이 만개하는 3월은 새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과도 같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덩그러니 놓인 열 일곱은 다소 낯설기도, 무섭기도 했다. 중학교 3년을 무사히 졸업하고 난 뒤 맞이한 새로운 3월에도 어김없이, 여전히.


“김여주!!”


변치 않을 것 같던 관계는 급변하기 시작하고, 소용 돌이 치며, 이내 다시금 잠잠해질 터였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피자를 시키고 각자 핸드폰을 하거나, 게임을 하던 도중이었다. 별안간 만화책을 보던 이동혁이 만화책을 신경질스럽게 접었다. 그리고는 짙은 한숨을 내뱉더니만 팔로 제 눈을 가렸다. 누가봐도 나 고민있어요, 심각해요 티를 내는 둥에 게임을 하던 이제노와 나재민이 고개를 돌렸다. 왜.


“김여주.”


별거 아닌 이름 석 자에 게임에 하도 집중되어 초점 없던 눈이 생기를 되찾았다. 김여주가 왜. 멈추기 버튼을 누른 이제노와 그와 동시에 쓴 헤드폰을 벗고 이유를 묻는 나재민이었다.


“진짜 그 새끼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미친 소리 하지 마.”

“왜 화를 내 나한테.”

“니가 이상한 개소리 하니까 그렇지.”


듣기만 해도 신경이 곤두서는 말이었다. 진짜 노민혁을 좋아하는게 아닐까 하는 이동혁의 말에 나재민이반사적으로 답했다. 김여주가, 노민혁을 좋아한다. 사실 노민혁을 처음 만났을 때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전과 같이 김여주에게 다가오는 별 다를거 없는 XY염색체 중 하나 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 근데 김여주랑 썸 타고 있는거 아냐?”

“아 걔? 뭐 걔랑도 타는거지~”


볼일을 보고 손을 씻던 도중, 화장실에서 들은 그 말로 인해 와장창, 경계심은 더욱 커져갔다. 썸을 타는 것도 개빡치는데 여기 저기 다리를 걸치고 있을 줄은. 얼굴 반반하고 공부 잘하면 뭐해, 성격은 꾸며낸 성격이고 진짜가 더러운데. 그 말을 나재민이나 이제노에게 전하니 급격히 표정이 굳어졌던게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노민혁이 김여주를 좋아하게 되는 것보다 김여주가 노민혁을 좋아하게 되기라도 하는게 더 짜증나고 불안했다. 하나뿐인 친구가 이상한 놈한테 잡혔다는 것에 화가 나기 보다는 그냥 김여주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게, 그게 내가 아니라는게, 낯설고 열받았던 걸지도.


“김여주 우리랑 쌩 까는거 아니겠지…?”

“그럴 지도 모르지.”

“아 넌 무슨 말을…퉤퉤퉤 해.”

“그러니까 왜 그렇게 화내서는.”


쌩까는게 아니냐며 시무룩해하던 이동혁 다음으로 이제노가 넌지시 말했다. 그럴지도. 그 말에 누워 있던 이동혁이 벌떡 일어나며 무슨 말을 그리 하냐, 불안해했다. 헤드폰을 굴려대던 나재민 또한 이동혁을 책망했고, 이동혁은 어이없다는 듯 허, 참! 다시 냅다 소파에 드러누웠다.


“우린 김여주 앞에서 다 똑같아.”


그래 다 똑같아.


“그리고… 너네 없으니까 심심해.”


그 한 마디에 풀리는 거 보면, 걔한테 질 수 밖에 없는 것도 다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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