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X백현




上. 공존할 수 없는 사람들


W. 으뉴
















한xx병원이고..하.. 뺑소니래. 마음 준비 하고 와. 가망이..없대. 아, 그리고... 찬열...이한테도.. 니가 잘 말해줘. 걔 아직 모를거야.








“찬열아…….”

-…오랜만이네.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찬열아… 우리 어떡해…….”

-무슨 일인데.


“아…지현이가…….”

-...어. 왜.

“사고…났대. 지금 수술실인데… 가망이 없다고…….”

-...

“빨리 와달라고 했어……. 한xx병원이래. 우리 빨리 가야 될 것 같아…….”





꿈인 건가 싶어 책상에 머리를 박아보기도 하고 찬물로 세수하기를 몇 분이었다. 꿈이든 진짜든 일단 병원에 빨리 도착해야할 급한 상황인 것을 간신히 인지하자마자 눈가가 축축해졌다. 택시를 타고, 온 몸이 후들거린 채로 빨리 가달라는 내 말에 기사 아저씨는 빨리 갈테니 일단 진정하라고 말했다. 정신을 부여잡자마자 그의 연인이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이고 풀릴 뻔한 다리를 겨우 움직여 도착한 수술실 앞은 겨우 참고 있었던 눈물을 터뜨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통곡을 하며 실신할 듯이 우는 사람, 무릎 꿇고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는 사람,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문을 바라보는 사람, 모두가 숨죽여 단 하나만을 빌었다. 제발 수술이 잘 되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찬열이 얼굴을 굳힌 채로 들어섰다. 이 와중에도 오랫동안 못봤던 찬열의 얼굴 하나로 눈물이 멎었다. 백현이 고개를 움직여 찬열과 눈을 마주치려 애썼다. 겨우 마주친 찬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곤 찬열이 입을 움직였다. 백현이 느리게 움직이던 그 입모양을 읽었다. 왜 웃고있어?

백현이 얼굴을 빠르게 굳혔다. 물론 지금 웃는 내가 비정상인걸 알지만 너는 오랜만에 본 내 얼굴이 반갑지도 않은 듯 했다. 나는 지금 울다 웃어서 상태가 말이 아닌데 네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내가 정말 미친 것 같잖아.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오지 못할거라면 다른 사람도 안 된다. 네가 죽어버리면 찬열이 예전처럼 날 좀 봐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찬열이를 먼저 좋아한 사람은 나인데 왜 너가 그 애의 옆자리를 꿰어찼어. 덕분에 나는 찬열에게 내 마음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내가 너보다 먼저 내 마음을 열어줬으면 지금 너와 나의 자리가 바뀌었을까 늘 생각했다. 

 

백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지금 수술실 안에 있는 사람 때문인지, 찬열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우수수 쏟아졌다.

난 미쳤어.


내가 미쳤으니 내가 너의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러면 찬열이 나를 조금 더 걱정해주지 않았을까. 나는 찬열의 조그마한 관심도 이렇게나 좋은데 너는 매일 받고 있으니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는 걸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학창시절 하루종일 붙어다닌 단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지막으로 본 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우린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다. 만나지 못했다라는 게 더 맞다.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피한 탓도 있겠지만 우선 우리는 예전의 사이같지 않았기에 졸업을 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존재를 기억 속에서 잊었다. 이렇게 만나게 될 걸 알았다면 용기내서 먼저 연락해볼 걸. 



아직 사과할 일이 많았다. 철 없던 그때의 나는 나를 자책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너에게 그렇게 모질게 대했다. 갑작스럽게 단짝이었던 친구를 잃게 됐던 너의 심정은 어땠었을까. 잘못 된 것이 있다면 내 해바라기같은 짝사랑이었는데 왜 네가 잘못한 것 마냥 수술실에 있는건지 모르겠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정말 미안하다.




[운명하셨습니다.]






찬열이 울었다.
수술실 안에 있는 사람은.

백현과 찬열의 친구이자

찬열의 연인이었다.







***




한참 전에 끊겨버린 통화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백현이 폰을 뒤집어놓곤 한숨을 쉬었다. 불안한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잘근잘근 손톱을 깨물며 백현은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이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말이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백현은 찬열의 옛 연인을 떠올렸다. 그 때 이후로 누구와도 사랑이란 감정으로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으니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






찬열과 백현은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도 같이 다녔다. 처음부터 친했던 것은 아니었다. 친구가 없어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백현에게 먼저 다가와준 사람이 찬열이었다.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서 가끔씩만 먹던 점심을 매일 먹게 해준 사람이 찬열이었다. 반에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백현을 유일하게 신경써주는 사람이 찬열이었다. 백현이 남몰래 찬열을 마음에 품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때였나. 기억이 나지 않는 언젠가 우리는 말을 트고, 영화를 보고, 같이 놀러다니고, 서로의 집이 자신의 집인 것 마냥 들락거리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늘 붙어다니는 단짝이 되었다.


반에서 몇 명씩은 사귀는 친구들이 있던 그 때의 백현은 한번도 여자를 좋아해본 적도, 사귀어 본 적도 없었다. 따지고보면 다 찬열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신도 모를 언젠가부터 찬열을 신경쓰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다. 찬열에게 신경쓰기도 바쁜 백현은 자신을 돌볼 여유도 없었다. 찬열을 짝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퍼졌던 아픔이 이렇게 커질 줄은 백현도 몰랐다.




찬열은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백현과 찬열이 같은 반이 되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우리 학년엔 유난히 찬열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백현은 찬열과 친하다는 이유 하나로 생뚱 모르던 친구들에게 찬열과 이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다. 바보같이 착했던 그 날의 백현은 그 부탁을 거절하지도 못했다. 교실의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찬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혼자서 괜히 입을 뻥긋거렸다.



찬열아. 혹시 소개 받아볼래? 나랑 친구인 앤데.. 너를 좋아한대. 전화번호 줄 테니까 생각해볼래?



소개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심장이 왜 이렇게 아릿한 건지 백현은 몰랐다. 그저 한참을 우물쭈물대다 곁에 다가와 무슨 일 있냐고 물어오는 찬열에게 속에 담고 있던 말을 어정쩡하게 전해줄 뿐이었다.


이걸 주고 찬열이가 그 애에게 관심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러다가 그 애랑 잘 되면 어떡하지? 잘 되면 찬열이랑 못 만날려나..



결국 백현이 찬열에게 전해준 아이들 중 찬열과 연락을 하는 친구가 생겼다. 찬열이가 정말 마음이 생겨버린 건 아닌지 백현은 늘 불안해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찬열에게 장난스레 물었었다. 그 친구랑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연락을 하고 있는지, 너랑 잘 맞는지. 그 때마다 찬열은 얼굴을 붉히며 뭘 그런 걸 묻고 그러냐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백현은 그것을 눈치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찬열이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지 뭐.




***



며칠 후 백현은 그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너 덕분에 찬열이랑 잘 될 것 같다고, 고마워서 밥 한 번 산다는 연락에 백현은 뭐 그런 걸 가지고 밥을 사냐며 거절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부탁 한 번 거절하지도 못한 사람도 이어준 사람도 나였는데 찬열이 혼자이기를 빌었다. 내가 여자였더라면 고백 한 번 쯤 제대로 해봤을텐데. 내가 찬열과 친해지지만 않았어도... 나는 지금의 우리 사이를 지키기 바빠서 찬열에게 고백해볼 생각도 못했다.

백현은 옆에서 상해버린 마음을 애써 감추며 잘 지내는 척 했다. 백현은 찬열의 여자친구와도 친해졌다. 찬열과 사귀는 사람이 맞는지 처음 만난 백현과도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며 금새 친해졌다. 찬열과 여자친구의 기념일이 되면 가장 먼저 선물을 건네주고, 둘이 놀러갈 때면 찬열의 부모님께 자신과 찬열이 좀 멀리 놀러와 늦게 들어갈 것 같다고 전화도 해보고, 둘의 커플사진을 찍어주기도 했고, 데이트 장소를 추천해주기도 했고, 둘이 싸우는 날이면 내가 가운데에서 화해시켜 주기도 했다.

차라리 찬열의 연인과 친구가 되지 않았더라면 미워할 수도 있었을텐데. 차라리 그 친구가 나쁘고 못됐더라면 내가 마음 편히 질투했을텐데. 찬열의 여자친구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현장 학습 때, 유일하게 친했던 둘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혼자 발걸음을 떼려던 나를 붙잡고 같이 놀자고 했던 사람도,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내 앞에 식탁을 내려놓고 웃던 사람도, 내 즐겁지 않았던 학창시절에 이렇게나마 좋은 기억을 몇 개 심어준 사람도 찬열의 여자친구였기에. 내가 감히 그 둘을 떼어낼 수도 없었다.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그리고 그의 연인을 좋아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백현아. 나 있지……. 찬열이랑 헤어졌다?”


성인이 된 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가던 2월. 술 사줄테니 나오라는 찬열의 여자친구의 연락에 급히 찾아온 이 곳. 그 애는 뭐가 그렇게 심란한 지 말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술잔만 기울였다. 술을 잘 하지 못하는 백현이 술잔에 몇 모금 대고는 안주만 뒤적이고 있을 때, 대뜸 들은 말에 백현이 순간 숨을 참았다. 볼도 발그레하고 눈도 풀린 게 술에 취해 헛소리 하는 줄 알고 넘기려 했던 백현이 또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마터면 입꼬리를 올려 웃을 뻔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진짜..


“진짜야아……. 한 달 전엔 거의 맨날 싸웠어. 너랑 있을 때 티 안내려고 내가 얼마나… 휴. 싸우는 것도 너무 질려서 헤어졌어. 벌써 일주일 됐네.”

“…….”

“……그냥. 찬열이랑 나랑은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더라. 그러면서 서로 오해도 생기고, 서로 못 믿고. 자기 애인을 못 믿는 사이가 말이 되냐?”



찬열과 그의 여자친구가 싸울 때마다 그 둘의 다리가 되어줬던 때를 회상했다. 찬열이 어느 때보다 상기된 얼굴로 제게 찾아왔을 때. 백현아. 그.. 부탁이 있는데..



“…….”

“며칠, 아니 며칠도 아니다. 나 엄청 오래 고민했어. 내가 컨디션 때문에 홧김에 이러는 건 아닌가 생각도 해보고, 여태 그러고도 잘 사귀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잘 넘어가볼까…….” 


“…….”

“매번 이렇게 서로 이해하려고도 안하고, 어정쩡하게 풀고 그러다가는 나중엔 정말 그동안의 정으로 만나지 않을까?”



그니까, 둘이 듣는 수업도 비슷하니까 혹시 연락하고 다니는 사람은 있는지, 오늘 뭐할건지 같은 것들? 좀 물어봐주라.  응? 어.. 요즘 계속 바쁘다고 못 만났거든. 일주일에 한 번 만나나?



“…….”

“그렇게 생각하니까 답이 나오더라. 이제 그만 만나야 될 것 같다고. 많은 사람들을 더 만나보고, 서로에게 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옆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그럼 우리 셋은 어떻게 되는 걸까. 예전처럼 지내는 건 불가능하겠지? 찬열이 옆에서 내가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찬열이가 나랑 있는 걸 좋아할까? 나랑 있으면 힘들지 않을까? 나도 찬열의 연인이었던 사람의 친구였으니.

올라갔던 입꼬리가 내려간다.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고 좋아한 내가 멍청했다. 머리가 어지럽다. 이야기를들으며 이상하게 묘한 감정을 추스리려고 한 잔, 두 잔 마신 것이 화근이었는지 몸이 달아올랐다. 백현의 눈이 느리게 깜박였다.  




“알고 있는 줄 알았어. 찬열이가 아직 얘기 안했나보네.”

“……어. 몰랐어.” 

“하긴. 우리 학교 다닐 때였으면 니가 눈치채고도 남았겠다. 솔직히 우리 이렇게 오래 사귄 것도 너 덕분이었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요새 찬열이가 힘도 없고 웃을 때도 억지로 웃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봐온 둘이 헤어진다는 일은 내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말 못할 사정이 있나보다 했었다. 그렇게 우린 다시 둘이 되었고, 예전의 사이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때처럼 좋지 못했다. 찬열의 성격상 1~2주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거란그 생각이 무색하게도 정말 많이 좋아했었는지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찬열은 툭하면 멍을 때리고, 지인들이 부르는 술자리에도 나오지 않았으며 늘 우울해했다.


그 옆에서 나는 무얼 했었나. 찬열이 다른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은 나에겐 너무나도 생소해서 찬열을 어떻게 위로해주어야 할지도 몰랐다. 아프고 힘들어하는건 늘 나였어서 너와 너의 연인이 나처럼 아프고 힘들어할 일이 생길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찬열을 오랫동안 좋아해와서 찬열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찬열의 연인이 바꾸고 가버린 찬열의 새로운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둘이 헤어지기 전 우리 셋은 참 많이 놀러다녔다. 셋이서 놀러갈 때 그래도 여자친구라고 늘 백현 먼저 챙겨주던 찬열이 옆에서 여자친구를 챙겨주며 작게 투닥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백현은 혼자 머쓱하게 웃으며 계산했다. 팝콘 달콤한 맛에 콜라는 라지로 세 개 주세요. 



어떡하죠.. 지금 세 자리 연석이 아예 없고, 커플석은 있어요. 어떡하실래요?



슬쩍 옆을 보니 나한테 미안해서 말을 못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커플이 커플석 앉아야지 나는 그냥 혼자 앉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되냐며 되묻는 둘에게 서운함이 밀려왔지만 나는 커플 사이에 껴서 영화보면 내가 너무 서러워서 그런거니 정말 괜찮다고 말했다. 찬열과 여자친구는 미안해서 어떡하냐며 우리 셋이서 먹기로 했던 팝콘을 나에게 줘버렸다. 

그 때 진짜 배 터지는 줄 알았다. 그냥 버리면 될 것을 무슨 오기가 생긴 건지 영화도 제대로 보지 않고 먹었다.본래 밥을 많이 먹지 않는 편인데 혼자서 팝콘 한 통에 콜라 라지까지 속에 부어댔으니 영화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었다. 찍혀있는 부재중 전화에 통화를 걸으며 나오니 저 멀리서 둘이 또 투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저 옆자리에 있는 사람이 나였는데..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서 연결된 통화에 나 혼자 가겠다고 말하곤 주변 거리를 걸었다.


날이 추웠고, 백현은 가디건 한 장만 걸쳤다. 왜이렇게 춥게 입고 왔냐며 화를 내던 찬열이 오늘은 제가 무엇을입고 왔는지도 몰랐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주머니에서 구깃구깃한 마스크를 꺼냈다. 쓰고 있던 안경에 김이 뿌옇게 찼다. 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뿌옇게 김이 나버린 안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빨개진 코 끝을 매만지며 다시 걸었다. 곧 툭 떨어진 눈물에 결국 그 날 길거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냥 추운데 안경에 김까지 뿌옇게 새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울었던 거라고, 백현은 생각했다.







울어도 내가 울었지 찬열의 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찬열과 단 둘이 만났던 날에 찬열은 울었다. 그 앞에서 나는 돌처럼 굳어 바보같이 찬열의 말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찬열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고, 그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이유도 모른 채로 나도 같이 아파 울었다. 내가 찬열의 말을 제대로 귀에 담지 못하는 동안 찬열은 옛 연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나보다. 나도 오랫동안 못보고, 몰랐던 것들을 들쑤시고 간 찬열의 연인이 그에게 얼만큼 커다란 존재일까. 내가 찬열을 좋아하는 것처럼 찬열도 그의 연인을 나만큼 헌신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걸까.


백현의 꿈 속에서만 나오던 둘의 헤어지는 모습이 막상 닥쳐오니 백현은 후회했다. 역시 너네 둘은 같이 있어야 되는구나. 찬열과 그의 연인 사이 내가 끼어들 곳은 없었다. 친구와 연인 사이는 너무 달랐다. 찬열에게도 나는 그저 옆에 있는 친한 친구일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하게 저렸다.









***






달빛조차 내리지 않은 찬바람이 부는 새벽, 명복을 기리던 사람들도 떠나간 연인의 사진 앞에서 찬열은 내 손을 잡고 끝없이 울었다. 맞잡은 손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이 꽉 힘줘 잡은 채로. 찬열은 한 맺힌 사람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백현아……. 우리 진짜 어떡해……. 우리 지현이…….”


찬열이 악을 쓰며 울었다. 그동안 안에 묵혀온 슬픔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울음을.



울다 지쳐 내 손을 잡고 기댄 찬열의 등을 쓸어줬었다. 

이제 나는 더 버틸 힘이 없어서 너 몰래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우리의 끝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찬열아. 너… 내가 너 좋아하는거 알고 있었지?”


흠칫, 작게 떨리는 몸을 애써 모르는 척 하며 말했었다.


“왜… 알면서 모르는 척 했어. 사랑도 친구도 지키고 싶은거였어? 차라리 아예 나한테 못을 박지 그랬어. 나 좋아하지 말라고… 우린 친구밖에 될 수 없다고…….”





-
그 애랑… 안 사귈 순 없지?
-




“나도 이제 지쳤어. 우리 셋은 그냥 기억으로 남기자. 우리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예전의 사람으로 두자.우리 둘은 같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이렇게 말해버린 이상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예전처럼지낼 순… 없을거야. 다 잊고… 그렇게 살자. 우리 여기서 헤어지고나면… 언젠가 크게 성공해서 뉴스에서나 보자. 알았지."




대답이 없는 널 핑계로 삼아 독한 말을 했었다. 내가 이 말을 꺼내기까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너도 알아주길.

묵혀왔던 말을 꺼냈는데도 후련하기보다 답답했다. 말을 하면서 목이 메일 뻔한 걸 몇 번이고 참았는지 모른다.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많이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눈가가 따가웠다. 찬열은. 또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감았던 눈을 떠 등졌던 찬열에게로 몸을 트니 찬열의 등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큰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로 들리지 않는 울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밤은 내게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찬열이 내 앞에서 이렇게 운 적이 있었나.

너도 너무 아팠던 나를 이제야 이해 해주는거니. 우리의 관계는 너무도 비정상이어서 우리가 잘될 것이라고는 기대도 안했다. 그냥 네 옆에 있는 나를 가끔이라도 봐줬으면 했다. 나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요즘 좋아하는 게임은 뭔지, 아침잠이 많은 나를 전화로 깨우며 아침 꼭 먹고 오는 말들. 나는 다정했던 너가 하루도 빠짐없이 해주던 것들이 그리웠는데.


사실 나도, 나도 그렇게 울고싶었어. 너의 손을 잡아준 그 날 밤에 맞닿은 손 사이로 나도 너처럼 울고 싶었어. 너무나도 잔인한 우리 사이가, 널 사랑하는 나를 모르는 척 하는 찬열이 너무 아파서.


나는 뭘 했더라. 그때 난 우는 널 차마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찬열을 사랑하지만 찬열을 위해 내 사랑을 포기하기로 했다. 찬열이 지쳐 잠든 사이 미처 못 다한 말을 그의 연인에게 전해주고 떠날 것이다. 작별인사는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 못 보겠지만 작별인사를 하면 정말 우리 사이가 끝났다는 것을 실감하고야 말 것 같아서. 정말 이제는 너를 못 본다는 것을 처절히 느끼고야 말 것 같아서. 우리의 마지막 대화는 인사도 없이 끝나기를 바랐다. 백현이 찬열의 앞머리를 넘겨 반듯한 이마에 입술을 내리곤 일어섰다.




떠나간 친구의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사진 속의 너는 환하게 웃는다. 찬열이 저렇게 웃는 얼굴에 반한 건가. 이제야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이렇게 슬픈 와중에도 너의 미소를 보곤 웃음이 나왔다. 우리 이제 정말 마지막이니까... 울면서 헤어지진 말자.

우리가 같이 지내는 동안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진 몰라도 나는 너를 좋아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연인이니까. 내가 데이트 장소로 추천해준 곳도 다 찬열이랑 내가 놀러갔던 곳들이다. 그렇게라도 찬열이 나와의 기억을 회상하고 기억해주었으면 했다. 찬열은 나와 왔었던 기억을 생각하기보다 너를 더 챙기기 바빴기에 괜시리 씁쓸해져 너에게 더 모질게 대했다. 너는 아프지 않으니까 못된 나를 좀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여태까진 찬열을 보며 울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온전히 찬열의 연인 때문이다. 이제야 실감했다. 내 친구가 죽었구나. 이젠 못 보는 구나. 그렇게 질투났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한 사람이지만 그 전에 나의 친구였던 사람. 미처 다 피지 못한 꽃을 남기고 죽어버린 나의 친구.

 



너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이 가득찬 그 곳을 등지고 우리는 살기 위해 서로를 기억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너의 죽음 탓이 아니다. 너의 죽음이 아니었어도 나는 찬열과의 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 켠에 찬열이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지만 찬열은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이게 정답이다. 우리는 친구 사이 연인도 될 수 없어서 나는 찬열이 그렇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찬열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뭐.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은 그저 너가 찬열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지만 않았으면 한다. 나는 찬열이 너를 잊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 예전처럼 돌아오길 바라기 때문에 찬열을 너무 오래 붙잡지 않았으면 한다. 





찬열 없이 내가 제대로 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아마도 살 것이다. 찬열을 등진 지금도 모든 것을 찬열과 연관짓고 있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매일 울던 내가 약해빠졌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찬열과 그의 연인 옆에서도 꿋꿋하게 버텼던 사람이다. 찬열이란 이름을 내려놓고 늘 챙김받던 내가 이제는 다른 사람을 챙겨주고, 찬열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싶다. 우리 셋이 친했었던 시간에 많은 일이 있었고 결국 우리는 허무하게 헤어지게 되었지만 난 우리가 친구가 된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백현이 끝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변함없이 올곧은 두 눈도

우리 약속한 겨울바다도

못 잊게 행복했던 어린 날의 우리도

모두 다.





-


망작냄새....... 우연히 마침표라는 곡을 듣고 쓰게 되었지만 그 느낌을 못살려버린 허허

두 편으로 나누었는데 망작 2편이 될 것 같은 늒힘

찬백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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