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반씩 날씨가 갈렸다. 절반은 이렇게 맑았고, 절반은 비가 오거나 흐렸다. 사실 난 흐린 날도 무척 좋아하는데 왜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지금 그런 생각이 드네. 선명하기보다, 흐릿한 느낌이 더욱 나를 사로잡을 때가 많은데.








6월 10일, 새 친구가 집에 놀러온다고 해서 시내로 나갔다. 깡촌에 살면 시내로 가는 여정마저도 모험이나 여행처럼 담대하고 즐겁게 느껴진다. 특히나 날씨가 좋은 날에는 더더욱. 요즘 꽂혀있는 봉사자들의 Summer를 들으며 지름길로 걸어가고, 정류장에서 아직 습하지 않은 여름의 공기와 적당히 선선한 바람을 느끼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날 우리는 바베큐 파티를 벌이고 2차로 즉석 노래방 파티를 벌였다. 이날 술맛이 정말 최고였다.
















그 다음날은 용무가 있어서 혼자 다른 시내로 향했다. 전날과 같은 길을 걷는데, 혼자 걷는 기분은 자못 색달랐다. 요즘 들어 혼자인 시간이 부족해서, 나는 잠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여실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 6월 11일, 그 날의 단 몇 시간의 외출은 나에게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사실 지금 사는 시골 동네는 내가 어릴 적 자랐던 곳의 근방이다. 그런데 그날 가는 곳은 근방에서 그나마 가장 번화한 시내지만, 번화가라고 부르기엔 부족하고 여러 복잡한 냄새들이 그득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걸으면서 돌아본 시내는 깜짝 놀랄 정도로 너무나 발전하고 바뀌어있었다. 세상에나.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아니.. 십 년이 넘었으니까, 강산이 변할 만 했나.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사라진 옛 풍경이나 그 시절의 냄새가 그립기도 했다.









12일에는 왔던 친구가 가고, 다른 친구 두 명이 왔다. 그날도 우린 바베큐와 노래방 파티를.. 지치고 피곤할 정도로 떠들고 놀다가 2시 넘어서 잠들었다.















그리고 지난 12일과 13일, 주말은...... 여기에 차마 쓸 수 없을 정도로 내게 너무 힘들었다. 몰아닥친 일들과 나의 작고 안일한 실수로 벌어진 예기치 못한 일 때문에 심적으로 너무나 괴로웠다. 갑자기 사람을 대하는 게, 전화를 받는 게, 죽기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무서웠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속상했다. 펑펑 울었다. 감정을 추스르기가 너무 힘들고 벅차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하소연을 일기장에 했다. 속에 쌓이고 쌓인 것들을 토해내듯이, 쏟아내듯이, 여섯 페이지가 넘게 내리 써내려갔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이 뒤엉켜서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옥상에서 혼자 멍때리고 하늘을 보고 눈을 붙이면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잘되질 않았다. 요 며칠 술을 좀 마신다고 약을 안 먹었더니 이렇게 감정 조절이 힘든 건가 싶었다.

울다 지쳐 잠들었다가 깨어서는, 내게 아무련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다 제쳐두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에만 휩싸여있었다. 아무것도 안중에 없었다. 내겐 다정과 배려와 친절을 베풀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만은... 그래서 대충 씻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서 스탠드 불빛만 밝혀두고 침대에 누운 채 유투브 영상들만 봤다. 목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피곤해 죽겠는데 밖에선 친구들 떠드는 소리가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친구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그들이 어서 떠나주길 바랐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도 이기적인지. 그런 생각에, 부정적인 기운에 압사당한 듯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오늘 6월 14일 정신과를 방문해 약 처방을 받았다. 깐깐한 남의사가 어찌나 사람 말을 안 들어주는지 내가 몇 번이고 3주 치를 달라고 요구해서야 겨우, 성가시단 얼굴로 알겠다고 했다. 참 나. 약만 받으려고 오는 거지 상담은 기대도 안 하고 오는데. 올 때마다 저 남의사를 대하기만 하면 짜증스럽다. 상냥한 남의사가 있는 날에 왔어야 했는데 최대한 빨리 약 받으러 와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떼잉 쯧.

기분을 좀 달래려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허니브레드를 먹으면서 책을 읽었다. 김은주 作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앙리 피에르 로셰 作 <두 영국 여인과 대륙>. <걸어다니는 어원사전>은 집중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울 때 간간이 읽고 있다.

오늘은 혼자만의 하루를 보내고 싶다. 기력 없는 나를 일으키고 충전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회피하는 동안 더 일을 떠맡는 사람에게 정말 정말 미안하다. 나도 그동안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애썼는데, 정말로 노력했는데, 또 이렇게 감정적으로 무너지니까 다시 일어나는 게 힘겹다... 그동안 회복 탄력성을 많이 키웠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감이 부쩍 생겼었는데. 또 이렇게 돼버릴 때면 나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엄청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책을 한다.

그래도 다시 이겨내야지... 다시는 옛날처럼 완전히 무너질 수는 없다. 나는 나를 보듬고 더욱 사랑하고, 좌절해있을 때면 일으켜줘야만 한다. 다른 누구도 내게 위안과 힘을 줄 수 없다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게 말이 쉽지, 생각은 쉽지, 바로 실천하는 건 정말 어렵다.

아, 모르겠다. 오늘은 아무것도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무거운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다. 오늘은 종일 걷고, 상상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오랜만에 성곽 둘레를 걸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후덥지근한 것만 빼고 다 좋았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빛의 조각과 나른한 공기, 송골송골 맺힌 땀, 한층 다가온 여름을 알려주는 그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초행길, 혹은 익숙한 동네라도 가보지 않은 길로 가보면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내 직감대로, 마음 가는 대로 거닐면서 조금 돌아가는 것도 좋아한다. 언제나 지름길로 갈 필요는 없으니까.








갬성 있어 보이는 척 ㅋ 오짐










나혜석의 초상이 그려진 길모퉁이를 지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릿하다. 하지만 곳곳에 나혜석의 이름과 뜻이 기려져 있는 것,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나혜석의 이름과 꿈을 알아가고 있는 것이 기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국가 차원이나 시 차원에서 나혜석을 좀 더 조명하고 기리고 추앙해주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가 듣지 못한 수많은, 잊혀버린 여성 운동가들도.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찾아나서고 배우고 기억하고 기려야하겠지.









아, 혼자 조용히 있으니까 참 좋다...

좋다. 오늘은 이제부터 맘대로 놀아야지!!!!!!!!! (급마무리)

잠잠할 날 없는 在들에 평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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