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일이 죽었다. 길동은 그 사실을 내내 잊고 지냈는데 가끔씩은 누군가 일부러 그 사실을 펼쳐놓은 것처럼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었다. 차의 시동을 걸다가, 카라멜 상자가 비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다가,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걷다가 문득 ‘아, 그래, 강성일이 죽었지’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뭐라고. 20년간 존재조차 잊고 살던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게 뭐라고. 죽은 사람이야 많지. 명월리 여관주인도 죽었고, 카센터 주인도 죽었고 김병덕도 죽었고 우리 엄마도 죽었어. 길동은 카라멜을 싸고 있던 얇은 종이를 만지작거리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소름끼치는 괴물 새끼 하나 죽어주니 속 편하고 얼마나 좋은가. 길동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렇게 마무리를 했다.

광은회는 빛 아래에 끌려나와 대중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나머지 부분은 허겁지겁 사라져버렸다. 무엇을 원하든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야. 아직 누구도 홍길동을 찾아오지 않았기에 길동은 아직도 각성제를 버리지 못했다. 황회장의 잔소리가 얼마나 이어지든지 길동은 하품하듯이 약을 삼켰고 붉은 눈으로 밤새 차를 달려 광은회의 잔재들을 찾아다녔다. 응, 넌 아니네. 시시한 악인들의 핏물 사이에서 길동이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넌 아냐. 너도 아니고. 황회장은 기가 질렸다. 홍소장 대체 누굴 찾아다니는 거야. 너 목숨이 9개는 돼? 홍길동은 겁이 없다. 그걸 그녀도 안다. 그래도 너무 하다. 광은회가 벌인 일이라는 말만 들리면 말릴 틈도 없이 나타나 현장을 뒤집어 놓는 길동은 모자의 리본을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잠을 찾아다니지.

서울의 네온사인들, 안개가 심한 가운데 지옥처럼 번진 노란색과 보라색 간판들을 보면서 길동은 뒷길로 접어들었다. 방금 활빈당이 덮친 곳은 작은 인쇄소였다. 잉크보다 총기가 더 많은 곳에서 입을 여느니 혀를 물어 자른 남자는 피를 질질 흘리며 웃었다. 그렇지만 너도 아니야. 그 어깨를 발로 밀어 넘기며 길동은 어쩐지 시무룩한 기분이 들었다. 카라멜이 떨어져서 그럴 지도 몰라. 약의 부작용일지도 모르지. 어둠 속의 안광을 남긴 채 길동은 서울의 밤거리로 흘러 들어왔던 것이다.

그늘진 길을 걸어가며 길동은 또 다시 생각했다. 강성일이 죽었다. 강성일은 죽었다. 그리고. 그런데.

“날 찾아다닌다며.”

뒤에서 걸어오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 결코 의심한 적이 없는 광신도의 구두소리.

“보고싶어?”

길동은 그늘 안에 멈춰서있었다. 뒤에서 다가오는 목소리는 10걸음 안팎이었다. 내가 옛날에 그랬지, 널 찾아보려고 했어. 잘 안됐지만. 하지만 네가 날 찾아왔잖아, 길동아. 5걸음. 비로소 우리가 완벽해졌다는 걸 느껴. 네가 내게 돌아오려고 온힘으로 노력한 게 느껴지거든. 나는 널 잘 알아. 3걸음.

“너도 날 사랑하고 있으니까.”

길동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아무도 없다.

“결국은 우리가 함께할 것이라는 걸, 너도 알고 있었지?”

길동은 다시 앞을 본다. 그곳엔 아무도 없다.

“다시 혼자가 되는 게 싫잖아, 길동아.”

아냐. 길동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차가운 손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절대 풀 수 없을 것처럼 강인한 손이. 그러나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 꺼져. 길동이 숨처럼 토해내는 말에 누군가 웃었다.

“길동아.”

니가 날 놔주질 않잖아. 도시의 안개가 가물가물 피어오르고 건물 사이의 그림자가 길동의 얼굴로 드리워지는데,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멀리 그림자 속에 길동의 얼굴이 비친다. 네모난 안경알에 길동의 눈이 덫처럼 맺혀있다. 그러나 눈을 깜빡이는 순간 모든 것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오로지 홍길동이라는 이름의 길 잃은 남자만이 그림자를 밟고 섰을 뿐이다.

~ 하는 걔 /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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