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서는 별 다른 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맛이었다. 기분 나쁘게도.

"맛이 좋아 브렉. 고맙군."

브렉은 부드럽게 웃었다.

"아, 브렉. 전해 들었겠지만 이동 중에 어떤 마찰이 있었어. 선물을 잃었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오, 이런. 브렉 리우드는 누구보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물론 그랬겠지. 방문에 신경 쓰지 못해 내가 미안하네."

자라드의 눈썹이 미미하게 올라갔다. 그는 빈 와인잔을 응시하며 조금 웃어주었다. 말없이 샐러드를 씹던 자라드는 자연스레 물었다.

"혹시 내게 줄 선물이 있나?"

브렉은 토마토를 우물거리며 답했다.

"파티일에 맞추어 준비하려했는데 엇갈렸군. 그대가 돌아가면 내 헤이론으로 직접 보내주겠네."

"하하하-"

자라드는 소매안쪽으로 숨겼던 칼날이 제 손목을 마구 긁어대는걸 느꼈다.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드는걸 보니 꽤 날카로운 나이프다. 리우드는 날을 예리하게도 갈아놓았다.

"돌아갈 수는 있을는지."

브렉은 듣지 못한 척 닭고기를 잘라내었다.

사각

사각

사각

"아, 브렉."

사각

사각

사각

"아직도 동물을 기르나?"

사각.

운동하던 나이프가 매끄럽게 원을 그리며 접시를 긁었다. 고기에서 핏물이 과하게 흘러내린 탓에 기분 나쁜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무슨 동물 말이지?"

브렉은 물었다. 자라드는 웃어댔다.

"왜, 그 있잖나. 자네가 아끼는."

"아,"

브렉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자네가 키우지 말라던 그것들?"

삽시간에 방 안의 공기가 굳었다. 둘은 눈을 마주쳤다. 브렉의 눈이 기름칠 된 광기로 번뜩이던 딱 그 순간이었다.

쾅!

리우드는 상을 엎었다. 수많은 야채와 고기, 식기가 쏟아져 내렸으며, 자라드는 뜨거운 스튜로 몸을 적셔야 했다. 

"이게 무슨짓이지."

자라드의 무릎에서 피가 비어져 나왔다. 바닥에 널린 깨진 조각들이 그의 무릎을 베어버린 모양이었다. 접시마저 충성하게 할 광기라. 그는 잠시 비틀거렸다. 이 장소에 들어설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긴장을 놓지 않았던 그였다. 자라드 트위츠는 나이프를 꺼내 쥐었다. 그리고 그 끝으로 바로 앞의 리우드를 겨누었다. 샹들리에가 나이프를 빛냈다.

"진정하게 자라드."

브렉은 완벽한 뱀의 모습이었다.

"나에게 겨눌 필요 없어."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조명이 모두 꺼졌다. 암흑이었다. 자라드는 자연스레 어린날의 벽장을 떠올렸다. 그가 한걸음 물러났다. 나이프가 조금씩 떨렸다.

"난 항상 네 마지막이 궁금했어."

크르르-

짐승의 소리가 울렸다. 방향을 예측할 수 없었다. 아직 눈은 어둠에 익숙해 지지 않았다. 자라드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빌어먹을 놈."

"하하하, 너에게 난 항상 빌어먹을 놈이었지!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게 자라드."

곧 굶은 짐승들이 일제히 자라드에게 달려들었다. 어둠속에서.

-

폴 아이작은 굉장히 바쁜 상태였다. 그는 서류 수십장을 검토하고 여덟장이 넘는 종이에 사인을 휘갈겼으며 틈틈이 남색머리의 여자를 상상했다. 그는 그녀가 보고 싶었다.

"이런,"

넥타이가 잉크로 엉망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일했다니! 폴은 그것을 거칠게 풀어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잘려있는 넥타이를 하나 꺼냈다. 그 여자. 그 여자가 잘라버린 넥타이를 꺼냈다.

'다음 번에는 네 목을 베겠다.'

"하하하하하!"

그녀가 보고 싶었다. 자신을 내려다 보던 그 눈빛이 그리웠다. 폴은 눈을 감고 잘린 넥타이에 코를 묻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눈을 감아야 아른거려서 그냥 계속 감고 있었다. 아, 단도. 단도 연습.

폴은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챙겨입었다. 서류들은 대충 한 곳에 밀어두었다. 

"숙제해야지."

그는 신나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설 [죽은 장작에게]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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