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인간의 습격 이후 제임스는 이틀을 내리 앓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한밤중에 눈을 뜬 제임스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뻑뻑하고 흐릿한 눈을 깜빡이다가 약간 찡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누운 침대 옆에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 셋은 각각 리무스, 시리우스, 피터였다.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새삼스럽게 다들 무사하구나, 하는 것을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편하게 가서 누워서들 자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싶으면서도 피식거리고 실없이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임스는 친구들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조심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조심한다고 해도 이불 스치는 소리와 약간의 움직임이 전달될 테지만 조금 뒤척거리기만 할 뿐 깨지 않는 걸 보면 다들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어두운 방에 있다가 갑자기 환한 거실로 나오니 눈이 부셔서 눈을 찡그리고 있는데, 유페미아가 제임스가 나온 것을 보고 놀라서 달려왔다.

  ‘제이미! 괜찮니?’

  이마를 짚어 보고는 열이 아직 남았다는 둥, 잠옷이 땀에 젖었으니 갈아입어야 겠다는 둥 분주하게 자신을 살피는 어머니 앞에서 제임스는 어쩐지 좀 부끄러웠다. 애도 아니고, 그냥 ‘조금’ 다쳤던 것뿐인데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 유페미아는 꽤 큰 소리로 남편을 불렀고, 그 소리에 방에서 자던 친구들까지도 다 깨는 바람에 제임스는 꽤 멋쩍어해야 했다. 유페미아는 재빨리 스프를 끓여 내왔고, 결국 밤중에 복작복작하게 모여 식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며칠 동안 근심스러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밝아졌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모두 무사함을 확인하고 안심한 후에 제임스가 생각한 것은 어쩔 수 없이 해리에 대한 것이었다.

  ‘음, 에반스는?’
  ‘먼저 돌아갔어.’
  ‘그래?’

  제임스의 질문에 해리를 마지막으로 본 시리우스가 대답했다. 유페미아는 경황이 없어서 은인을 그냥 보냈다고 아쉬워했지만 제임스는 그렇게 한 번 물어본 것을 끝으로 더 언급이 없었다. 자연히 화제는 해리에 대한 것에서 남은 연휴기간동안 뭘 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그렇지만 제임스는 해리에 대해 신경을 껐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놀 수 있다고 주장하다 리무스의 만류로 결국 다시 침대에 얌전히 누워서 제임스는 해리에 대해 생각했다.

  ‘해리 제임스 포터.’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해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이름은 제임스가 아는 친척 중에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는 자신을 놀린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작 놀리려는 이유로 늑대인간 속으로 뛰어들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억지스러운 주장을 다 받아주면서 같이 밤을 새워서 늑대인간과 싸울 수 있을까? 더욱이 해리가 그 날 자신에게 보였던 태도며 표정은 도무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제임스는 넌지시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시리우스, 너 말이야.’
  ‘어.’
  ‘만약에 예를 들어, 레귤러스 시리우스 블랙이라는 이름을 대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게 누구일 것 같아?’
  ‘뭐야 그 웃기지도 않은 이름은.’

  시리우스는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제임스는 자신의 예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해리 제임스 포터의 제임스처럼 시리우스가 가운데 들어가는 이름을 만들려다보니 블랙가 작명법에 안 맞는 예를 들었던 것이다. 시리우스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시리우스 이름 쓰면 직계 장남이란 걸 테고, 그게 뭐?’

  게다가 블랙가는 같은 이름을 물려받는 경우도 흔했으니 더욱 예가 좋지 않았다. 제임스는 예를 드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툭 까놓고 말했다.

  ‘해리 제임스 포터라더라.’
  ‘누가?’
  ‘에반스가.’
  ‘에반스가 해리 제임스 포터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시리우스뿐만 아니라 옆에서 듣고 있던 리무스도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제임스는 해리와 있었던 일에 대해 대략적으로 말해주었다. 자기를 볼 때의 해리의 표정이 어땠다든가 하는 묘사도 낯 뜨거워서 생략해버렸지만, 이미 해리가 펑펑 우는 것을 본 시리우스는 다른 의미로 납득하고 있었다. 굳이 제임스가 레귤러스 시리우스 블랙이라거니 하는 예를 들어가며 하려던 말이 뭔지도 알 수 있었다.

  해리도 제임스도 이름 자체는 흔한 이름이지만 그것이 포터 앞에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법 세계에서 포터라는 성을 쓰는 것은 제임스의 가족뿐이었다. 더욱이 제임스와 해리처럼 서로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면 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그와 같은 가설을 세운다면 제임스는 그에 대한 정황증거를 하나 더 알고 있었다. 그 날 불안한 상태에서 쓰는 바람에 튕겨나갈 것을 각오했던 프로테고가 별다른 컨트롤도 없이 쉽게 융합되었던 것이다.

  ‘너네 집 가계도 없냐?’

  제임스의 말을 듣고 시리우스는 살짝 인상을 쓰며 물었다. 벽 하나를 온통 차지하게 가계도를 그려둔 블랙가가 특히 유별난 축이긴 하지만, 웬만큼 오래된 마법사 집안이면 그런 것이 있을 법도 했다.

  ‘글쎄, 찾아보면 있을 거 같긴 한데. 근데 친척이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거든.’

  해리의 정체를 파악하기에는 항상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리곤 했다. 친척이라면 제임스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현재 살아있는’ 친척이라면. 그렇다고 해리가 유령이 아닐까 상상하기에는 차라리 해리가 먼 과거로부터 혹은 미래로부터 시간이동을 했다는 가설이 좀 더 설득력이 있었다. 시간을 이동하는 마법이 매우 어렵다는 전제조건을 차치한다면 말이다.

  ‘에반스가 스물 몇 살이지? 하는 거 보면 옛날사람처럼은 안 보이는데, 그럼 진짜 미래에서 온 거 아냐? 예를 들어 네 아들이라거나 손자라거나.’

  그러나 제임스가 농담처럼 던진 시간이동의 가설에 친구들은 의외로 진지하게 반응했다. 시리우스는 제임스를 구해놓고는 오히려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펑펑 눈물을 흘리던 해리를 떠올렸다. 망설이던 시리우스가 그 일을 제임스에게 이야기해주자 가만히 듣고 있던 제임스는 심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미안하고 고맙다는 거야?’
  ‘너 아니겠냐.’

  제임스와 시리우스의 대화를 들으면서 리무스도 문득 하나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리무스는 해리가 자신들에게 패트로누스를 보냈던 것을 떠올리며 제임스에게 물었다.

  ‘제임스, 너 그 날 에반스 교수님의 패트로누스가 뭔지 봤어?’
  ‘아니, 그 때 나 안경 안 쓰고 있어서 제대로 못 봤어. 그러고 보니 에반스가 잠깐 안경을 벗으라고 했군.’
  ‘설마.’

  리무스는 시리우스를 돌아보았다.

  ‘에반스 교수님이 자기 패트로누스가 뭔지 남들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건 제임스에게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게 왜?’
  ‘뭐야 너네만 아는 게 또 있어?’

  제임스가 중간에 끼어들어 물어보자, 시리우스는 전에 해리의 연구실에서 있던 일을 제임스에게 말해주었다. 자신이 당했던 일은 쏙 빼놓고 얘기하는 시리우스의 말을 듣다가, 리무스는 거기에 덧붙여 자기가 겪었던 것도 얘기해주었다. 할로윈 밤, 해리는 자신의 패트로누스가 아버지와 같아서 아버지가 자신을 지켜주는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다른 사람들의 패트로누스 이미지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니 비밀로 해달라고 했지만, 그 다른 사람이 특히 제임스를 말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제임스는 패트로누스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리무스의 말을 듣던 제임스가 툴툴거리며 물었다.

  ‘왜 나한텐 말 안했어?’
  ‘네가 에반스 얘기 하는 거 싫어했잖아.’

  제임스가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명쾌한 답변이었다. 물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종합해봐도 해리가 제임스의 아들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오는 마법이 매우 어렵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추측일 뿐이었다. 결국 해리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지금 단계에서 결론을 내리기는 힘든 문제였다. 제임스는 곤란한 기분이 되었다. 리무스에게 왜 자기에게는 말하지 않았냐고 툴툴거린 것과는 반대로, 자신도 해리와의 일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몇 번 시비를 걸었다거나 화풀이를 했을 뿐인 사이인데 이제 와서 혹시 내 아들이냐고 물어봐야 한다고? 제임스는 차라리 자기가 해리 제임스 포터라는 이름을 듣지 못했거나 잘못 들은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러면 과거엔 왜 왔을까?’
  ‘글쎄,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빠란 사람은 자기를 싫어하기나 하고. 울 만 하네.’
  ‘그러게. 울 만 하네.’

  제임스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시리우스와 리무스는 마치 해리가 제임스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제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임스는 그것이 다소 불만스러웠다.

  ‘너네 왜 당연히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직 확증도 없는데.’
  ‘닮았잖아.’
  ‘그것도 많이.’
  ‘아 그러니까, 닮은 사람이 한둘이겠냐고. 그리고 에반스가 시간이동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덤블도어 정도는 돼야 가능한 거 아니었어? 에반스는 어 음.’

  원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애송이라는 표현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려다 말고 제임스는 조금 머뭇거렸다. 해리가 애송이라면 그럼 애송이에게 도움을 받은 자신은 얼마나 더 애송이가 되는 걸까 따져보니 아득했다.

  ‘그래, 덤비만큼 미친 것 같지는 않잖아.’

  그러나 겨우 적절한 표현을 찾아냈음에도 제임스의 의도와는 다르게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 편들어주는 거야?’
  ‘야.’

  제임스가 정색을 하자 그제야 다들 진지함을 되찾았다. 시리우스나 리무스도 백퍼센트 확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간 제임스가 해리를 못마땅해 했던 것과, 며칠 전 해리가 제임스를 구해주었다는 상반된 사실 때문에 제임스가 곤란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좀 더 짓궂게들 나왔던 거기도 했다. 그리고 만약 해리가 정말로 제임스의 아들이라면 시리우스는 해리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시간을 넘어서까지 도우러 오다니, 포터라는 이름에 걸맞는 굉장한 녀석이었다. 시리우스는 제임스의 어깨를 툭 치고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에반스한테 물어봐. 내가 너의 아버지니? 하고.



  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묻기는커녕 운도 떼어보지 못하고 있는 제임스에게 시리우스는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프롱스, 너 이제 와서 친한척하기 쑥스러워서 아까 그런 쇼를 벌인 거지.”
  “시끄러.”

  차마 완전히 부정은 못하겠는지 제임스는 괜히 시리우스의 목에 팔을 걸어 자기 쪽으로 확 당기며 장난을 걸었다. 순순히 넘어가줄 시리우스도 아니었기에 좀 엎치락뒤치락하는데 리무스가 물었다.

  “그래서 언제 말할 건데?”
  “에반스가 다시 날 정해서 결착 짓자고 했으니까, 그 날 말하지 뭐.”

  리무스에게 대답하느라 제임스가 잠시 누르기를 멈춘 사이에 제임스를 제압해버린 시리우스가 흠, 하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먼저 도착할 거 같은데.”
  “뭐가?”
  “아냐.”





  한편 해리는 오랜만에 교장실에서 덤블도어를 만나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거의 한달 넘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해리는 그저 연휴동안 볼드모트를 처치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고 있겠거니 하고 짐작할 따름이었다.

  “미네르바에게 네 소식도 들었단다. 굉장한 일을 했더구나.”
  “굉장한 일이라뇨, 별로…….”
  “아버지를 구했잖니.”

  해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날 밤새 긴장 속에서 전투를 치르고 펑펑 울다가 돌아온 탓에 해리도 그 날 이후 며칠을 끙끙거리고 앓았다. 학생들보다 조금 일찍 돌아온 맥고나걸이 알았을 때는 그나마 해리가 많이 나았을 때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맥고나걸에게 해리는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맥고나걸에게는 통하지 않았고, 결국 해리는 간략하게 축소해서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해리는 자신이 제임스와 어떤 관계인지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말았고, 맥고나걸은 처음에 해리의 신원이 불분명했던 것까지 포함해서 전체 그림을 그려낸 것 같았다. 다행히 제임스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긴 했고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해리의 표정이 썩 밝지 않은 것을 보며 덤블도어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그러기 위해 과거에 온 건지, 혹시 제가 와서 원래 없던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그게 시간의 패러독스란다. 뭐가 원인이고 뭐가 결과인지 현재를 사는 우리들로서는 쉽게 판단할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미래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달라고 한 거란다. 미래에 대해 섣불리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지 알 수가 없구나.”
  “저는 그냥, 그분들이 보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이런, 네 탓을 하는 것이 아니란다.”

  해리는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며 야트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님, 역시 제가 아들이라고 밝히면 안 되는 거겠지요.”
  그러더니 ‘아 물론 말한다고 믿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자조적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저는 엄마나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살아계신 그분들에게요. 그 정도는 괜찮을 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미래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해리, 네 맘을 안단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거야. 릴리와 제임스는, 내가 아는 그 애들이라면 아마도 네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 반갑게 맞아줄 거야.”
  “솔직히 제임스는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요.”
  “그건 아직 다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니.”

  덤블도어의 말을 들으며 해리는 약간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덤블도어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거니.”
  “그 다음?”
  “예를 들어 왜 과거로 왔냐고 묻는다면?”
  “그야 보고 싶어서…….”
  “해리. 보통 자식이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과거로 올 정도라면, 부모님이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는 뜻으로 알아듣지 않겠니.”

  그 말에 해리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즉 자신이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온 아들이라고 밝힌다는 것은 제임스에게 당신은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은 얘기였다.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 하지만 언제 돌아가시는지 말 안하면 되잖아요. 먼 미래의 일이니까 말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면…….”

  말하다 말고 해리는 말끝을 흐렸다. 자신의 나이를 감안해서 간단한 덧셈을 하는 것만으로도 죽는 나이를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대신 해리는 다른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죽음에 대해 물었을 때 시리우스는 오연한 미소를 보였다.

  “시리우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나도 무섭지 않아요. 제임스도 그럴 거구요.”
  “이런, 해리. 너의 말이 맞단다. 시리우스와 제임스는 아주 그리핀도르답지. 용감한 그 애들이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할 것 같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너를 위해 하는 말이란다.”
  “?”
  “예를 들어 제임스가 난 어떤 아빠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해보았니?”
  “……!”

  해리는 두 번째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리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기억나는 거라곤 릴리의 편지에서 봤던 단편적인 모습과 시리우스나 리무스에게 들었던, ‘부모님은 너를 무척 사랑하셨단다.’ 라는 말 정도가 전부였다.
  “…….”
  해리가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자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너는 물론 들은 이야기나, 어쩌면 네가 상상했던 것을 더해서 말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너는 괜찮겠니.”

  진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된 추억을 말하는 것과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어느 쪽이 나은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지만, 대답은 쉽지 않았다. 해리는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덤블도어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 뒤로 덤블도어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더 해주었지만 해리는 좀처럼 거기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인사를 하고 나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서도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던 해리가 갑자기 내뱉듯 말했다.

  “어차피 말할 기회도 없을 거야. 제임스는, 아빠는 날 싫어하니까.”

  아무리 덤블도어 앞이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차마 말할 수 없던 사실을 입 밖으로 내어 자기 귀로 들으니 더욱 속상해서 해리는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푹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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