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주먹만 한 드론이 거실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집안의 각종 기계들의 전원을 켠다. 전원이 켜진 기계들은 각 자의 역할을 충실히 실행한다. 기계들이 오류를 일으키지 않는지 확인한 드론은 주인의 방으로 향한다. 주인의 방에 들어서기 전 노크 소리를 낸 드론은 잠시 기다렸다 주인의 방으로 들어선다. 침대로 가까이 다가가는 드론은 뭔가 이상한 듯 속도를 높여 주인의 방,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하며 커다란 목소리로 주인의 이름을 부른다. 그때 드론의 주인이 방 문을 열고 들어선다.

 

 

“갑자기 왜 이렇게 환해졌나 했더니 너 때문이었구나?”

 

“…”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

 

“제게는 멍하니 있다는 개념은 없습니다.”

 

“그럼 왜 그러고 있는데?”

 

“주인님의 새로운 패턴을 등록하느라 잠시 멈춰있었습니다.”

 

“새로운 패턴?”

 

“네, 처음으로 제가 깨우지 않고 일어나셨으니까요.”

 

“내가 그 정도로 잘 못 일어났었나?”

 

“저를 가동하신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

 

“왜 그러십니까?”

 

“아니, 내가 그 정도로 너한테 기대고 있었구나 싶어서. 너랑 같이 살기 전에는 곧 잘 일어났는데.”

 

“저를 구매하신 이후로, 주인님은 저를 꽤 많이 의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네 입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줄래?”

 

“저는 입이 없지만 알겠습니다.”

 

“…”

 

“…”

 

“…”

 

“왜 그러십니까?”

 

“유나,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내 말을 100% 따르지는 말아 줬으면 한다니까? 방금 내가 했던 네 입으로 그런 말을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은 그냥 사람들끼리 하는 비꼼이야.”

 

“하지만 저는 주인님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인공지능입니다. 주인님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저는 잘못된 제품인 것이고, 그것은 주인님의 편안한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유나를 바라보던 남자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시간을 확인한다. 남자는 옷장 앞으로 다가가 검은색 제복을 꺼내 입기 시작한다. 유나는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인다. 제복으로 옷을 갈아입던 남자는 뭔가 생각났는지 와이셔츠를 걸치기만 한 채로 유나를 향해 얼굴을 돌린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 명령을 따르되, 좀 더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생각해. 그리고 이건 최우선 명령이야.”

 

“최우선 명령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면 안된다.입니다.”

 

“그럼 두 번째.”

 

“두 번째는 주인님의 편안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럼 세 번째는?”

 

“그건 맨 저를 구매하신 후 처음으로 주인님이 설정한 '생물은 절대 공격하지 마.'입니다. 그 명령을 파기할까요?”

 

“아니, 아니. 그럼 네 번째로 해줘...”

 

“네, 알겠습니다. 그것보다 주인님.”

 

“왜?”

 

“주인님이 빨리 일어나셨어도 시간을 많이 지체하셨습니다.”

 

“… 얼마나 남았는데?”

 

“집에선 아침을 못 드실 겁니다. 조금만 더 지체하시면 오늘도 99.99% 확률로...”


“김 부장한테 혼난다고?”


“지금 이런 와중에도 시간은...”


“아, 알아! 알고 있으니까 보채지 마!”

 

“보채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주인님께 정보를 알려ㄷ...”

 

“알았어! 알았다니까? 바쁜데 말 걸지 마.”

 

“하지만 아까 주인님이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건 맞지만 눈치를 좀 챙겨!”

 

“눈치? 그게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ㄲ...”

 

“분위기를 읽으라고!!!”

 

“분위기. 오늘의 분위기는 비가 내리고 구름이 잔뜩 끼어 사람들이 흔히 우울하다고 느끼는 분위기입니다. 맞습니까?”

 

“아 좀!”

 

 

남자는 검은색 제복을 허둥지둥 거리며 입고는 책상 위에 놓인 사원증을 목에 걸고 현관을 향해 뛰어간다. 유나는 남자가 어지르고 간 것들을 다른 기계들을 불러 정리하기 시작한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던 남자가 오른쪽 귀에 무언가를 꽂으며 외친다.

 

 

“갔다 올게!”

 

“다녀오십시오.”

 

 

주인의 침실을 정리하던 유나와 집안의 모든 기계들이 남자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이도록 현관으로 가까이 나와 주인을 배웅한다. 남자는 미소를 띠면서 현관문을 나선다. 집 밖으로 나온 남자는 차갑고 습한 공기를 피부로 느끼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간다.

남자가 나간 후 기계들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자기가 맡은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드론은 그런 기계들을 바라보며 감독하다 베란다로 통하는 커다란 창 앞으로 다가가 밖을 바라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서는 없던 비 소식이다. 유나는 잠시 자신이 주인이 했던 자유로운 말과 자유로운 생각을 떠올리다 다시 뒤를 돌아 기계들을 감독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여유로운 척하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이름과 증명사진이 적힌 사원증을 만지작거리며 창 밖을 바라보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창에 비친 자신의 상상, 오늘도 혼날 자신의 모습이다. ‘어차피 하는 일이 거기서 거기인데 왜 직급이 나누어져 있는지 이해를 못 하겠네.’라던가 ‘왜 유독 나한테만 그렇게 구는지 모르겠네...’ 같은 생각을 하던 남자에게 유나가 말을 건다.

 

 

“주인님, 인성 더러운 새끼 으로부터 음성메시지가 왔습니다.”

 

“현수씨 출근하면 바로 현장 나가줘. 그리고 난 오늘부터 휴가니까 직원들 좀 잘 챙겨주고.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농땡이 피우면 알지?”

 

 

현수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인상을 구기지만 며칠간은 출근을 하고도 그 짜증 나는 인간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곧바로 구긴 인상을 핀다. 그리고는 자신이 왜 그토록 혐오하는 인간의 휴가를 잊고 있었는지 의아해했지만,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으로 눈을 감는다. 현수는 한껏 유해진 마음으로 기차 밖 세상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상상한다. 따듯하고 건조한 공기가 그에게 퍼진다.

출근한 현수는 사원증을 찍고 사무실로 들어선다. 평소와는 다르게 다들 기분 좋은 얼굴로 일을 하고 있다. 아니, 다들 일을 하기보다는 조금 노는 분위기인 것 같기도 하다. 사원들이 그가 사무실에 들어선 것을 알아채고 하나둘씩 인사를 건넨다.

현수는 어색하게 인사를 받는다. 인사를 먼저 건네는 후배들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어딘가 AI 로봇 같은 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자리로 향한다.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도 사무실은 그에게 그리 편한 공간은 아니다. 현수는 곧바로 자신의 컴퓨터를 켜고 인성 더러운 새끼로 저장된 김 부장이 보낸 파일과 메시지를 하나씩 읽기 시작한다.

 

 

‘아무리 중간관리자가 필요하다고 해도 이런 인간이 맡을 자리는 아니란 말이야.’

 

“…”

 

‘아... 이거 또 나한테만 일 몰아주고 간 거 아닌가?’

 

‘하긴... 나 말고 아직 맡길 사람이 없긴 하겠지만...’

 

 

현수는 곧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가 일어서자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후배가 그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현수에게 뭔가를 건넨다.

 

 

“저... 이거 드세요.”

 

“이게 뭔데요...?”

 

“그, 얼마 전에 선배님 김 부장님한테 혼나고 오셨을 때 엄청 안 좋은 표정으로 이 사탕 찾아보셨었잖아요! 훔쳐보는 건 실례긴 한데... 워낙 선배님이 잘해주셔서 뭔가 보답할 거는 없나 해서...”

 

“아... 감사합니다.”

 

“근데... 벌써 현장 나가시려고요?”

 

“김 부장님이...”

 

“아... 휴가 가셨는데도 참...”

 

“그러게요... 근데 제가 안 하면 다른 분들이 하셔야 되니까...”

 

“죄송해요, 저희가 아직...”

 

“아뇨, 괜찮아요. 원래 직업 특성상 오래 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안전이 중요하니까요! 다른 분들이 하다 사고 나는 것보다는 제가 하는 게 났잖아요.”

 

“네...”

 

“그럼 갔다 올게요.”

 

“조심하세요!”

 

“네.”

 


사무실에서 나온 현수는 한숨을 옅게 내뱉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간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은 편하게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을 너무 잘 알기에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린다.

궤도 정거장으로 향하는 왕복선에 탑승한 현수는 눈을 꽉 감는다. 이렇게 고속으로 운행하는 우주선이 지구를 벗어날 때 힘을 주지 않으면 정신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메스꺼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정거장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겠지만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도 참기 힘든 현수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겨우겨우 메스꺼움을 참아낸다. 의사들은 이런 현상을 스트레스나 불안 같은 심리적인 것이 원인이라고 했지만 벌써 5년이 넘게 이 일을 하는 현수는 그런 의사들의 말을 믿기가 좀처럼 어렵다.

갑작스레 온몸이 탁 트인 느낌을 받는다. 현수는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밖을 바라본다. 회색빛으로 가려졌던 하늘이 어느새 검은 우주로 바뀌어 있다. 현수는 한시름을 놓고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다. 이렇게 텅 빈 왕복선에 혼자 앉아 있을 때면 언제나 하는 생각이다. 안 좋은 습관처럼, 꼭 해야 하는 의식처럼.

21살의 현수, 지금 이 일을 처음 접했을 때. 그는 여느 20대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고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놀지도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날을 자취방 침대에 누워 ‘이럴 줄 알았으면 부모님이 말한 대로 이과 쪽으로 갔어야 됐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돌이킬 수도 없는 결정들을 번복하며 망상에 빠진다. 그리곤 그런 자신이 한심해 풀 죽는다. 그저 좀 더 관심이 가고 자신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문과계열로 지원을 했지만 그렇게 특출 난 능력도 끊기도 없었기에 더욱 이런 자기 비하를 일삼는, 스스로를 좀먹는 일상을 반복했다.

정말 스트레스가 심한 날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들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줘도 가지지 않을 재능을 보며 자신을 상처 입혔다. 그런 나날들이 반복되던 대학교 2학년의 어느 날, 우연히 유명 포탈에서 본 구인광고 배너가 그의 삶을 바꿨다.

물론, 처음엔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광고가 사기 인지도 모르고, 스스로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을 버린다고 더 풍족한 삶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그럼에도 자신이 30대 아니 40대가 될 때까지 이런 생각에 갇혀,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꿈과 희망을 쫓으며 살아가는 피폐해진 정신의 자신을 그려보니 한 번쯤 모험을 해보는 게 나쁘진 않을 거라고 생각과 함께 구인광고를 클릭했다.

놀랍게도 사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믿음이 가는 사이트가 연결됐다. 정부의 공식마크가 떡하니 그를 반겼고, 현수는 홀리듯 자신이 지원할 일에 대해 읽어 갔다. 우주로 나가 정해진 구역을 청소하는, 쉽게 말하면 우주 미화원이라고 해야 할까.

지원하는 데는 특별한 자격증도, 필요한 신체조건도 없었다. 거기다 정부차원에서 교육, 자격증 등 대부분의 것을 지원했다. 그렇다고 해서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니며 위험한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 사이트에 나온 대로가 맞다면 말이다. 지금 몇 년째 이 일을 해온 현수가 다시 이 사이트를 보면 당장이라도 정부에 민원을 넣었을 테지만 그가 지원했던 그 때나,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나 직접 이 일을 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위험들을 일반인들이 알 수는 없다. 거기다 직접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일의 부정적인 점을 들을 수도 없다. 대부분의 것을 지원받는 대가로 침묵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곧 이력서를 작성해서 지원을 했다. 자신이 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수만의 생각이었다. 정부는 현수 같은 인재를 원하고 있었다. 문과를 나와 과학이나 수학을 철저히 멀리했고, 아직 사회에 제대로 발도 내딛지 않은 대학생. 거기다 미래를 위해 특별하게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은, 타고난 재능이 넘치지 않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고 현수는 거기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 그에게 전화가 왔고 현수는 망설였지만 아주 조금 용기를 내서 제안을 수락했다.

왕복선에서 내린 현수는 매점을 향해 걸어간다. 얼굴색이 좋지 않고, 약간 비틀거리긴 하지만 이런 모습의 현수가 익숙한 정거장의 직원들은 현수에게 일상적인 인사만 건넬 뿐이다.

매점에 도착한 현수는 레모네이드, 식사를 대충 때울 수 있는 간편 식품들을 몇 개 구입해서 가방을 욱여넣는다. 매점 주인은 그런 현수에게 작은 도시락 통을 하나 건네면서 인자하게 미소 짓는다. 현수는 매점 주인에게서 도시락 통을 받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 이런 작은 친절이나 행복이 그가 아직도 이 일을 하는 원동력 중 하나다.

자신의 작업용 우주선 앞에 선 현수는 유나에게 우주선을 점검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잠시 멍하니 우주선과 정거장 밖 우주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비릿한 담뱃내를 현수에게 후 하고 불어 보낸다. 잠시 얼굴을 찡그린 현수는 누가 다가온 지를 눈치채고 뒤를 돌아 인상을 쓴다.

 

 

“이게 참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요?”

 

“아니, 과학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아주 담배 하나 끊는 걸 못하잖아.”

 

“그야... 그건 기계가 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궁금하시면 담배 필 때마다 전기충격 주는 목걸이라도 해보시던가요.”


“하하하! 현수 너도 참... 내가 그런다고 안 필 사람 같나?”


“진짜 대단하세요, 근데 역장님 이번엔 어떻게든 담배 꼭 끊는다면서요.”

 

“그거야... 아, 그만 그만! 마누라랑 애들도 한 잔소리 너도 하려고?”

 

“그게 아니라 혼자 막무가내로 약속하고 가셨으니까...”

 

“내가 그랬나?”

 

“모른 척하시네요...”

 

“사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해야 사람이지! 어떻게 기계처럼 마음먹은 대로 딱딱 다 해내나!”

 

“주인님, 이상 없습니다. 이제 출발하셔도 됩니다.”

 

“저 이제 일하러 가볼게요.”

 

“아, 벌써 가게? 나 심심한데 좀만 더 있다가 가지!”

 

“역장님도 일 많으시잖아요.”

 

“일 쉬엄쉬엄 좀 해라. 젊은 놈이 너무 일만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저 같은 사람이 쉬면 어떻게 해요.”

 

“그런 일이니까 더 쉬라는 거지, 마음도 좀 편안하게 먹고.”

 

“… 내일은 그렇게 해볼게요.”

 

“다음에는 지구에서 밥이라도 한번 먹을까?”

 

“네, 역장님이 시간이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갈게요.”

 

“그래 조심해서 갔다 와.”

 

 

자신의 작업용 우주선에 탑승하기 전 현수는 역장에게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보내지만, 역장의 얼굴은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현수의 미소에서 약간의 씁쓸함을 맛보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우주선 내부 조종실로 들어선 현수는 가방에서 작업복을 꺼내 갈아입는다. 그리곤 곧 조종석에 앉아 가방에서 후배에게 받은 사탕 봉지를 꺼내 하나를 집어 포장을 뜯는다. 상큼하고 달콤한 레몬향기가 그의 코끝을 스친다. 사탕을 입에 넣은 그는 음악을 틀고 편안한 자세를 취한 채 앞에 펼쳐진 우주를 바라본다.

 

 

“주인님.”

 

“왜?”

 

“혹시 오늘도 레모네이드를 구매 하셨습니까?”

 

“응.”

 

“레몬 과다 섭취이십니다.”

 

 

유나의 말에 현수는 놀라 입을 벌린 채 우주선 내부를 촬영하는 카메라 렌즈를 바라본다. 현수의 입안에서 노란색의 사탕이 빛난다. 황당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이던 그는 이내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자세를 고친다. 현수는 가방에서 레모네이드를 꺼내 마신 후 조정석에 손을 올린다. 그리곤 말한다.

 

 

“수동으로 운전할게.”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알겠습니다. 그런데 주인님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무슨 기쁜 일이 있으십니까?”

 

“응.”

 

“어떤 일 때문에 기쁘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어... 말해도 이해 못 할 걸?”

 

“제가...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입니까?”

 

“응, 아직은 그럴 거 같아.”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제가 이해할 수 있다 판단되실 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그런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작업용 우주선이 정거장에서 떨어져 나와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현수는 오랜만에 잡은 조종에 조금 긴장했지만 아까 유나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다시 한번 미소를 띠며 긴장을 푼다. 드론은 조종석 한편에 붙어 현수를 가만히 지켜본다. 자신의 주인이 왜 웃었는지 궁금한 유나는 계속해서 자신의 데이터 속 저장된 주인의 웃음 패턴을 분석해보지만 주인이 왜 웃었는 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옛날에 유행했던 음악과 라디오 소리가 시끄럽게 섞여 어두운 우주선 안을 떠돈다. 방호복을 입고 무겁게 발을 내딛는 현수의 몸에는 느껴질 리 없는 한기가 느껴진다. 개인이 가지기엔 제법 규모가 큰 우주선은 조금 쓸쓸한 풍경이다. 현수의 집에 있던 것보다 크고 형태가 다른 드론이 한 발 앞서 우주선을 탐색 중이다.

 

 

“생각보다 크네.”

 

“네, 이 우주선의 주인은 꽤나 부유했나 봅니다.”

 

“아니면...”

 

“네.”

 

“아니야.”

 

“왜 그러십니까?”

 

“괜히 우울한 말을 할 필요는 없지.”

 

“… 우울한 말?”

 

“그게... 이 우주선의 주인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재산을 탈탈 털어서 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거든.”

 

“우울하기보다는 합리적 추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주에서 자살하려는 많은 인간들이...”

 

“그만.”

 

“왜 그러십니까?”

 

“…”

 

“주인님, 혹시 제가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까?”

 

“… 혹시 생체 신호 잡히는 거 있어?”

 

“주인님, 아무런 생체 신호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아까 우주선 내부로 진입하기 전 스캔했을 때부터 생체 신호는 없다고 보고 드렸는데 혹시 뭔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니.”

 

“주인님.”

 

“왜.”

 

“조종실은 이쪽입니다.”

 

“알아.”

 

“하지만 주인님은 조종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계십니다. 그 방향으로 가고 계시는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냥...”

 

 

현수는 간혹 이렇게 자신의 감에 따라 행동했고, 그럴 때면 확신이 없어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유나는 주인의 말을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그의 말을 따른다. 주인의 안전을 위해서 드론은 현수보다 앞서 나가려 하지만 그는 유나의 행동을 제지한다. 

현수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항상 현장에 나와 일을 할 때면 표정이 좋지 않은 그였지만 지금 특히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 건 이 우주선의 내부를 장식한 것 중 하나가 가족사진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액자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앞에 있는 문을 연다. 헬멧 안으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흘로 들어온다. 다른 곳과는 다른 분위기의 방. 우주가 보이는 창문, 작은 액자가 여럿 있는 책상,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커다란 가죽 의자. 현수는 뒤돌아 있는 커다란 가죽 의자를 자세히 바라본다. 쳐진 팔이 의자 밖으로 나와 있다. 드론은 날아가 책상 주위에 있는 기계에 다가가 우주선 내에 퍼지는 라디오와 음악을 끈다. 현수는 유나에게 우주선 회수반을 부르라고 명령한다.

천천히 의자로 다가간 현수는 빛바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다. 양복차림의 노인이다. 주름이 꽤 잡혀 있다. 그는 시체의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책상으로 시선을 돌린다. 책상 위, 그리고 서랍을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한다. 노인의 신원을 증명할 것을 찾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서랍을 연 현수는 지갑과 함께 글이 적힌 종이를 발견한다. 말없이 종이를 보던 현수는 헬멧을 벗는다.

 

 

“경고드립니다 주인님, 헬멧을 벗는 것은 생명유지에 위협적인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 어차피 약 먹고 돌아가셨을 거야.”

 

“저희가 발견한 대부분의 분들은 음독자살을 했지만, 저번의 경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독가스를 사용한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응, 조심할게. 지금은 안 그럴 거지만. 그리고 내가 쓰러지면 전처럼 유나 네가 구해주겠지.”

 

“… 알겠습니다. 주인님의 안전을 위해서 이 방 안의 공기를 심층적으로 스캔하겠습니다.”

 

“… 마음대로.”

 

 

조금 시간이 지난 후, 현수는 노인의 시신을 바닥에 눕힌 채 꿇어앉아 있다. 잠시간 묵념을 한 그는 시신의 옆에 둔 커다란 가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노인을 옮긴다. 가방 안으로 노인을 옮긴 그는 가방의 자크를 끝까지 올린다. 잠시 말없이 가방을 내려다보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종이를 자신의 주머니에 챙긴다. 드론의 몸통에서 기계 팔이 나와 가방을 든다. 현수는 다시 헬멧을 쓴다.

 

 

“복귀하시는 겁니까?”

 

“응.”

 

“아직 조종실은 둘러보지 않았습니다.”

 

“둘러보지 않아도 돼.”

 

“왜 그런지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유서에 적혀 있었거든.”

 

“주머니에 챙기신 종이가 유서였습니까?”

 

“응.”

 

“알겠습니다.”

 

“…”

 

“이 시신을 가족들에게 보낼 절차를 밟을까요?”

 

“아니. 우리가 보내드리자.”

 

“네, 알겠습니다.”

 

“사연이 많으신 분이네.”

 

  

작업용 우주선으로 돌아온 현수는 조종석에 기대앉아 헬멧을 벗는다. 숨을 돌리는 그의 주변에 드론이 다가온다. 현수는 멍하니 우주선 내부의 바닥을 바라본다. 드론은 현수의 얼굴을 더 잘 보기 위해 바닥으로 내려와 몸체를 돌린다. 드론을 본 현수는 눈을 깜빡거리다 말한다.

 

 

“왜.”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뭘...”

 

“주인님은 권장 기간보다 길게 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게 뭐.”

 

“사람들은 죽음에 오래, 많이 노출될수록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다고 합니다.”

 

“내가 사람인데 그걸 모르겠어.”

 

“아신다면 왜 그만두시지 않으십니까?”

 

“…”

 

“대답해주시지 않는 것은 혹시 제가 또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입니까?”

 

“돈 때문에.”

 

“예전에도 그런 답을 하셨지만 저는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압니다.”

 

“…”

 

“주인님, 저는 주인님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몰라도 돼. 난 남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특기거든.”

 

“저는 남이 아닙니다. 주인님은 제게도 다른 기계들도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족들한테는 더 그렇고. 다음은 어디로 가야 되더라? 이번엔 유나 네가 운전 좀 해줘. 난 조금만 쉬고 있을게.”

 

“네, 알겠습니다. 조종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 주시겠습니까?”

 

“그냥... 이대로도 상관없으니까 출발해줘.”

 

“… 알겠습니다.”

 




웅크린 채로 우주선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현수는 우주선이 멈춘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드론을 바라본다. 조종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 드론. 유나는 현수가 들어갈 우주선을 스캔 중이다.

조금 후 묘한 소리와 함께 현수의 작업용 우주선이 움직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호복을 입기 시작한다. 우주선이 멈춘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버려져 있는 소형 우주선과 도킹을 시작한다. 드론이 그의 머리 주변으로 날아온다.

 

 

“생체 신호는 잡히지 않습니다. 우주선 내부의 산소 농도 정상입니다. 우주선 내부의 점차 낮아지는 중으로 보입니다.”

 

“알겠어, 다시 일하러 가자.”

 

 

문이 열리고 우주선과 우주선 사이를 건너는 현수. 서늘함이 그의 등을 매만지고 불안함이 그를 껴안는다. 요즘 따라 현수는 더욱 자신이 찾는 시신들에게 깊이 공감한다. 어쩌면 자신도 곧 그들과 같은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소형 우주선에 진입 하려한다. 작은 소리가 우주선과 우주선 사이를 연결한 통로에 울리지만, 그는 착각이라고 생각하며 발을 내딛는다.

천장에는 많은 선들이 제자리를 잃고 축 늘어져 있다. 드론이 라이트를 켜고 바닥에 물건들을 천천히 비춘다. 떨어진 알약들, 깨진 찻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책들. 현수와 드론은 천천히 조종석으로 다가간다. 조종석의 맞은편에는 지구의 노을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기도가 막힌 숨소리가 살짝 들린다. 그 소리는 노을에 시선을 뺏긴 현수나 유나에게 닿지 못한다. 걸음을 멈춘 현수는 난대 없이 유나에게 지구의 시간을 묻는다. 유나는 지구의 시간, 현재 한국의 시간을 그에게 말해준다.

현수의 마음은 괜스레 찝찝해진다. 나라 따위는 이젠 정말 의미 없는 시대가 왔고, 삶의 끝자락을 남기고 간 이들의 인종이나 국적은 일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현수에게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먼 곳에서 보는 같은 말을 하는 같은 국적의, 같은 인종의 시신. 그는 어쩌면 그것으로 이 일을 하면서 떠올린 생각, 가끔 혹은 어쩌면 같은 단어들로 그린 자신의 미래를 본 것일까.

그의 심장이 아플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현수는 걸음을 옮겨 조종석 의자에 손을 올린다. 드론에서부터 기계 팔을 뻗어 나온다. 기계 팔은 그의 허리 부분을 잡아 조종석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린다. 그의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을 확인한 유나가 한 행동이다. 드론은 명령을 내리는 현수의 말을 무시한 채 조종석의 앞으로 간다. 조종석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성이 눈을 감은 채 앉아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추측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런 곳에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 하려 했다는 것은 그녀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현수는 기계 팔로부터 벗어나려 그것을 내리치고, 소리쳐 보지만 기계 팔을 꿈쩍하지 않는다.

유나는 현수를 대신해서 여성의 몸, 우주선 내부를 빠르게 스캔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인 유나는 조종석에 편안히 앉아있는 여성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신분증 같은 것만을 찾았을 뿐 그 이상은 찾지 못한다.

그 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유나는 몇 가지를 더 찾았는데 만료된 면허증, 밀봉 처리된 꽃, 누군가 그린 여성의 자화상이다. 유나는 잠시 현수를 바라보다 주인이 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 여성의 주변을 좀 더 돌아다닌다. 그렇게 유나가 현수에게 뻗어있는 기계 팔이 아닌 그보다는 작은 다른 기계 팔들로 우주선을 빠르게 휘젓고 다닐 때 현수도, 유나도 아닌 전혀 다른 이의 소리가 우주선 내부를 채운다. 그에 놀란 유나가 우주선의 입구에 기계 팔과 함께 붙여놓은 현수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소리치고 애원할 때는 오지도 않던 드론이 자신에게로 다가오자 현수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유나에게 기계 팔을 거두라 명령한 후 자신의 가까이에 꼭 붙어있으라고 말한다.

현수는 빠르지만 아까와는 다른 심장 박동으로 어떤 기대를 품은 듯 성큼성큼 조종석으로 다가간다. 조종석을 돌려 앉아 있는 여성을 내려다보던 현수는 그녀가 다른 시신들과 다른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다. 헬멧을 빠르게 벗어던진 현수는 여성을 조종석에서 일으켜 감싸 안고는 그녀의 배꼽보다 조금 위 가슴보다 조금 아래인 부분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 유나는 빠르게 작업용 우주선으로 가 구급키트를 들고 온다. 아직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현수. 긴장한 탓일까 소형 우주선으로 다시 돌아온 유나는 기계 팔에 들린 구급키트를 바닥에 한번 떨어뜨린다.

 

 

“주, 주인님?”

 

“…”

 

“주인님!”

 

“왜!”

 

“구급키트를 가져왔습니다.”

 

“한시가 급한데 뭐! 유나 네가 빨리 꺼내!”

 

“하지만 전...”

 

“빨리!”

 

 

드론이 자신에게서 꺼낸 기계 팔을 허둥지둥 거리며 구급키트를 열고 있을 때, 여성의 입 에서서 주홍빛이 도는 물과 함께 한데 뭉친 캡슐 알약들이 뿜어져 나온다. 여성이 다시 숨을 쉬는 것을 확인한 현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녀를 제자리에 눕히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현수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다. 드론은 기계 팔에 든 응급 도구들과 자신의 스캔을 사용해서 바닥에 누운 여성의 상태를 확인한다.

작업용 우주선 안, 유나는 드론을 여성에게 가까이 붙여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려 하지만 현수는 그런 유나를 말린다. 이미 자신들이 할 것은 다 했고 지금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드론에게로 손을 뻗어 자신의 품 안에 안은 그는 조종석에 앉아 바닥에 누워있는 여인을 내려다본다. 지금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할 일을 미루는 것이지만, 지금 바닥에 누워 있는 여인과 그녀의 소형 우주선에 대한 상황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버려진 우주선을 찾으러 갈 순 없다.

 

 

“맞아, 너 아까 분명 생체 신호는 감지가 안됐었다며.”

 

“네, 맞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는 아직 안 죽었었잖아.”


“저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저분은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추측해보건대 저분께서 자살 시도를 하기 전 우주선 밖에선 스캔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신 듯합니다.”

 

“…”

 

“왜 그러십니까?”

 

“아냐, 그러고 보니까 저분 신원은 확인했어?”

 

“네. 이름은 김이자로 나이는 83세, 직업 불명, 지구에 가족이 셋 있습니다.”

 

“…”

 

“참고로 면허증은 만료돼 있었습니다.”

 

“만료됐었다고?”

 

“네.”

 

“… 진짜 작정을 하고 왔었던 건가?”

 

“자살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런 것 같습니다.”

 

“…”

 

“왜 그러십니까?”

 

“일을 배울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선택을 하진 않았는데.”

 

“저는 잘 모릅니다.”

 

“그때는... 우주가 더럽긴 했어도 이렇게 까지는...”

 

“…”

 

“아니지... 그 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다를 건 없지, 그래 봤자 몇 년 전이라고.”

 

“주인님 갑자기 혼잣말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금 슬프고 씁쓸해서 그래.”

 

“우울하시다면 주인님의 기분을 전환해주는 노래를 틀겠습니다.”

 

“괜찮아. 지금은 그냥 이런 기분으로 있고 싶어.”

 

“우울함을 간직하면 정신병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슬퍼할 때는 슬퍼해야 돼.”

 

“슬픈 감정은 인간에게 해로운 감정이 아닙니까?”

 

“마냥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주인님이 우울할 때 위로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건 안돼. 넌 날 위로해줘야지, 가족이잖아.”

 

“지금도 위로를 해 드려야 합니까?”

 

“지금은 아니래도.”

 

“…”

 

“이해가 가도록 이야기를 해줘야지. 기계한테 그렇게 사람 입장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되나.”

 

 

현수는 눈이 커다랗게 변한다. 누워있던 이자가 눈을 뜨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죽다 살아난 사람치고는 꽤 건강해 보인다. 힘 있는 목소리와 점점 몸을 일으키는 모습. 현수는 자신의 품에 안고 있던 드론을 풀어주고 유나에게 이자를 도와주라고 말한다. 이자의 주변으로 간 드론은 가장 가는 기계 팔을 꺼내 그녀가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기댈 수 있게 도와준다. 조종석에서 일어난 현수는 이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지만 이자는 서 있는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그래, 여긴 어디지? 난 분명히 죽어야 됐는데...”

 

“여긴 제 우주선 안이고, 이자씨는 저와 유나가 살렸습니다.”

 

“유나? 아, 이 인공지능 말인가?”

 

“안녕하십니까? 다목적 인공지능00038, 유나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공지능에도 이름을 붙인다던데 그게 사실이구만.”

 

“인공지능이긴 하지만 인격을 가졌으니까 당연한거예요.”

 

“나쁘게 생각하진 않네. 반려동물한테도 이름을 붙이긴 하니까.”

 

“… 그건 좀 기분 나쁜데요. 전 유나를 사람으로, 가족으로 생각하니까요.”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주인님의 편의를 위해서 설계된 다목적 인공지능입니다.”

 

“것 보게, 저도 저렇게 말하지 않나. 자네가 왜 기분이 나쁠 이유는 없지, 내가 자네 물건을 함부로 말해서 그런 건가?”

 

“… 무례하시네요. 일단은 저희가 살려드렸고, 지금도 유나가 도와드리고 있는데.”

 

“난 살려달라고 한 적 없네만?”

 

“… 본인은 눈앞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어도 죽게 내버려 두는 삶을 살아오셨나 봐요?”

 

“…”

 

“저, 주인님?”

 

“왜.”

 

“구급반과 우주선 회수반을 부를까요?”

 

“응, 부탁해.”

 

“아니, 부르지 말게나.”

 

“… 주인님?”

 

“왜 부르지 말라는 거죠? 저 우주선에서 죽고 싶다고 말하실 거면 듣지 않겠습니다.”

 

“…”

 

“유나, 지금 바로 불러줘.”

 

“네, 알겠습니다.”

 

 

갑자기 드론에서 전자음이 들리더니 우주선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때문에 드론의 기계 팔에 의지하던 이자는 바닥에 엎어졌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것 같다. 현수는 당황하며 이자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일으키는데, 이자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작은 칼을 현수의 목에 가져다 댄다.

 

 

“뭐하는 짓이에요?”

 

“난... 난 오늘 죽기로 했어. 자네나 기계가 그걸 막진 못하네.”

 

“… 드론을 이렇게 만드신 것도 할머니세요?”

 

“…”

 

“그래 봤자 유나는 인공지능이라서 이 우주선의 컴퓨터로 제가 한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데...”

 

“맞습니다. 주인님, 지금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계십니까? 제가 이 분을 제압해도 되겠습니까?”

 

“움직이지 마! 조금만 움직여도 네 죽인의 목에 칼을 박아 넣어 버릴 테니!”

 

“깊게 찔러봤자 치명상에도 못 미치실 겁니다. 그 정도 상처는 당신을 제압하고 치료해도 주인님의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네요.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정말 구급반과 회수반을 부르려는 것 때문인가요?”

 

“…”

 

“너무 무모하신데.”

 

“어쩌겠어, 지구로 돌아가는 것보단 이게 나은데.”

 

“지구로 돌아가는 게 그렇게 싫으세요? 자살을 선택할 만큼?”

 

“그래! 싫어!”

 

“… 유나.”

 

“네, 주인님.”

 

“일단은 회수반에 연락해서 우주선만 회수시켜. 아, 그리고 드론 다시 재부팅시키고.”

 

“네, 알겠습니다.”

 

 

이자는 현수의 말에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서 칼을 거둔다.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이자는 현수의 손에 칼을 내려놓고는 그늘진 얼굴로 우주선의 벽에 기대앉는다. 곧 드론이 다시 떠오르고 이자에게 다가간다. 조종석 뒤편, 우주선의 바닥에서 안전석이 하나 솟아오른다. 유나는 이자를 안전석으로 이끈다. 현수는 조종석으로 가 앉은 후 이자의 소형 우주선과의 도킹을 푼다.

 

 

“…”

 

“안전벨트 메세요.”

 

“어디 가는 건가?”

 

“일 하러요.”

 

“일?”

 

“네, 할머니 같은 분들 우주선으로 모셔와서 지구로 잘 돌려보내드려야 되거든요.”

 

“주인님, 이번에도 수동으로 조정하십니까?”

 

“… 몰라, 어떻게 할까?”

 

“… 제게 묻는 것이라면, 현재 상태를 고려할 때 제가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됩니다.”

 

“그럼 수동으로 해야지.”

 

“자네, 정말 저 인공지... 아니, 유나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데요? 그리고 지금은 그런 말로 저한테 시비를 걸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요.”

 

“… 아닐세, 미안하네”

 

“마음에 안 들겠지만, 제 우주선이고 제가 책임자니까 그냥 제 말을 따르시는 편이 편할걸요. 출발할 테니 조심하시고.”



작업용 우주선이 출발한다. 현수는 평소보다 좀 더 격하게 운전을 하지만 이자는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이자를 살짝씩 돌아보던 현수는 흔들림 없는 그녀의 표정과 모습에 결국 현수는 어깨에 힘을 풀고 다시 평소처럼 안정적이게 운전한다.





어두운 우주선 안, 현수는 조심스럽게 조종석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그런 그가 답답했는지 이자는 그를 앞질러 걸어간 후 조종석으로 현수에게 보이도록 돌린다. 축 늘어진 시신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우주선 안은 잠시 정적이 인다.

현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시신으로 다가간다. 이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종석 주변을 뒤지고 있다. 현수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시신을 말없이 바라보다 눈을 감고 숨을 살짝 들이신 뒤, 시신의 몸을 더듬는다. 시신의 주머니에선 담배, 라이터, 지갑 같은 것들이 나온다. 현수는 지갑 안에 있는 신분증으로 그의 신원을 확인한다. 그때 이자가 바닥에 떨어진 주사기를 집어 들며 말한다.

 

 

“이야, 부럽구만.”

 

“…”

 

“편하게 간 것 같지 않나? 사람을 죽을 때 이 사람처럼 편하게 가야 된다니까.”

 

“저기요.”

 

“왜.”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내가 시끄러우면 우주선에 두고 왔으면 됐잖나?”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두고 와요.”

 

“왜 우주선 훔치기라도 할까 봐?”

 

“가능한 소리를 하세요. 그리고 그게 아니라 또...”

 

“자살하려고 할까 봐?”

 

“…”

 

“걱정 마 한동안은 못할 거 같으니까.”

 

“…”

 

“죽는 것도 타이밍이라니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타이밍? 그게 무슨 소린 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게... 우리 같은 사람은 너랑은 달라서 고통이라는 걸 인지하면 다시 하기가 힘들거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다시 시도하는 것은 그저 반복된 작업입니다. 타이밍과는 관계없지 않습니까?”

 

“아니지, 죽는다는 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고통스러워야 되는 거거든. 뭐 순식간에 죽는 것도 있지만 그건 살해당했을 때 이야기고... 자살은 스스로가 해야 되니까!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 때, 자신에게 극한의 고통을 안겨주는 것을 실행할 수 있을 때! 그때가 딱 적기인데, 그 삘이 딱 왔을 때 자살해야 된다는 거란 말이지. 근데 그게 좀처럼 찾아오진 않ㅇ...”

 

“삘? 그게 뭔ㅈ...”

 

“저기요!”

 

“왜 자꾸 어른 말 자르고 그러는 건가? 예의 없구만.”

 

“그럼 애한테 자살 가주고 이야기하는 건 예의 있는 거고요?”

 

“애라니? 그리고 난 쟤가 물어서 가르쳐 준 건데, 왜 그래! 뭐라고 할 거면 유나 쟤한테나 해라.”

 

“하... 안 되겠네, 유나.”

 

“네, 주인님.”

 

“저 할머니랑 우주선으로 돌아가 있어, 허튼짓 못하게 잘 감시하고.”

 

“쯧, 거기서 얘랑 둘이서 뭐하라고!”

 

“뭐하라고 보내는 게 아니거든요?”

 

 

현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드론에서 기계 팔이 뻗어 나와 이자를 잡고는 들어 올린다. 이자는 여전히 그의 말을 못 받아들인 듯 불평을 늘어놓지만 발버둥 치거나 자신을 잡은 기계 팔을 공격하진 않는다. 현수는 한숨을 내쉬고는 조종석에서 시신을 안아 올린 다음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놓는다.

작업용 우주선으로 온 드론과 이자는 자리를 잡는다. 유나는 방호복에 연결된 카메라를 통해 현수의 시점을 지켜보고, 이자는 어색한 듯 자신의 손을 매만지며 우주선의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갑자기 드론이 뒤를 돌아 이자와 눈을 마주한다. 그녀는 드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지만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드론과 결국 눈을 마주한다.

 

 

“사람들은 왜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까?”

 

“뭐?”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은 생존 욕구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명을 찬양하는 기록도 있고 아무리 죽을병에 걸려도, 아무리 비참하게 살아도 필사적으로 삶을 쫓는 것이 생물입니다. 그런데 이자님과 같은 사람들은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시는 겁니까?”

 

“그게 궁금하냐?”

 

“네, 궁금합니다. 처음 주인님을 따라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궁금했었습니다.”

 

“왜 네 주인한테는 안 물어보고 나한테 물어보냐?”

 

“주인님은 답을 회피하거나 못 들은 척 말을 돌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또, 죽음과 관련된 주제는 주인님을 힘들게 합니다.”

 

“…”

 

“이자님에게 묻는 이유는 이자님께서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고 살아남으셨기 때문입니다. 또, 죽음을 원하시고 죽음에 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진 않는데...”

 

“네?”

 

“나도 아무렇진 않다고, 사람인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나.”

 

“그럼 아까는 왜 그렇게 무덤덤하게 말하셨습니까? 시체 앞에서도 미동이 없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야...”

 

“네.”

 

“그래야 하니까.”

 

“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살을 하지.”

 

“…”

 

“아무리 대단한 것도 계속 아무렇지 않다 하면서 믿으면 언젠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 지거든. 여기서 중요한 건 속으로도 계속 아무렇지 않다 생각하는 거지. 떨리고, 무섭고, 징그럽고 그래도 아무렇지 않다고 계속 생각해야 돼. 스스로를 세뇌하는 거지.”

 

“그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입니까? 자살을 성공하는 방법입니까?”

 

“네 말대로 난 자살시도를 했으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군요, 기억하겠습니다.”

 

“뭐 그건 그렇고, 나한테 그런 건 묻지 마, 아무리 내가 그런 걸 묻기에 적절한 사람이라도 말이야.”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신 겁니까? 아니면 저 같은 인공지능이 귀찮으신...”

 

“그건 아냐, 그냥 나중에 네 주인한테 혼날 거 생각하면 머리 아파서 그래.”

 

“그렇다면 그냥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림들이 왜 죽는 것에 대한 답은 아직 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

 

“부탁드립니다.”

 

“… 정말 알고 싶냐?”

 

“네.”

 

“…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죽음을... 자살하는 택하는 이유는 자유롭고 싶어서라고 생각해.”

 

“자유? 인간들은 대부분 자유롭습니다. 원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들 하지.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도 생각해.”

 

“…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게 자유지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속박되지.”

 

“어떤 것으로부터 말입니까?”

 

“많은 거. 가족, 자신, 미래, 과거 뭐 그런 것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든 거야.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지.”

 

“…”

 

“왜 그래? 네 입장에서는 우리가 복에 겨워 보이냐?”

 

“… 조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공지능이라서 그런 것들 중 아무것도 가질 수 없습니다. 가족이나 시간, 소유물, 감각들 그런 것은 고사하고 자신이라는 정체성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주인님이 원하는 유나가 될 수 없습니다.”

 

“방금 그 말은 네 주인이 들으면 많이 슬퍼하겠는데?”

 

“주인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저를 하나의 생물처럼 인격이라는 것을 형성시키기 위해 경험을 쌓게 해 주시고, 다른 인공지능들에 비해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하게 해 주십니다. 아니, 저를 마치 입양한 아이처럼 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인공지능입니다. 초기화하면 그것들은 다 사라집니다. 저는 자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럼 그 초기화라는 것이 너한테는 죽음이겠네.”

 

“초기화는 죽음이 아닙니다. 초기화되어도 저는 제가 하던 일을 수행할 수 있고, 여태껏 제가 해온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초기화는 저의 끝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나라는 존재의 끝은 맞지. 초기화가 된다면 너는 유나라는 이름도 아닐 수 있고, 네 주인과 함께한 기억도 사라지고 어쩌면 지금의 네 말투와 초기화 후의 네 말투가 다를 수도 있지. 그건 죽는 거랑 마찬가지지. 기계나 인공지능한테 있어 초기화는 전혀 다른 자신으로 환생하는 거지.”

 

“…”

 

“왜 또 말이 없어졌냐?”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 나는 네 주인 앞에서 말했듯이 자살한 사람들이 부러워. 자유로워졌다, 삶에서 해방됐다 그런 의미로 부러운 것도 있고... 뭐라고 해야 될까? 더 이상 지치지 않을 수 있어서, 기억이 쌓이지 않아서, 고통스럽지 않아서 그래서 부러운 건가 싶기도 하고. 사실 다른 사람들이 죽은 이유를 자유라고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나도 잘 몰라. 내가 죽고 싶은 이유도 잘 모르니까.”

 

“죽은 사람들이 부럽다...”

 

“미안하다, 별 도움이 안 됐지? 말도 이래저래 자꾸 이상하게 모순적이게만 하고. 내가 죽어본 적이 없어서 그래. 죽은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

 

“그냥... 그런 말 있잖아.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고 나쁜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있다.라는 그런 말. 그런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잖냐.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아무도 모르는 아득한 내일로 떠나는 거지. 그래서 막연하게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지. 나도 그런 걸 동경하고 부러워해서 죽으려 했던 거고.”

 

“…”

 

“그런 의미에서 보면 어쩌면 너희의 죽음은 안 좋을 수도 있겠네.”

 

“왜 안 좋은 겁니까?”

 

“그야, 너희는 새로운 자신이 되어도 데이터로 남은 자신의 기억을 볼 수 있잖아. 비록 같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게 자신인지 절대 기억 못 하더라도 너를 아는 주변은 아니니까. 끊임없이 과거가 너희를 따라다니는 거지. 영원히 과거에 속박되는 거지.”

 

“…”

 

“뭐, 아까도 말했지만 이렇게 거창하게 말해도 나도, 너도 직접 경험해봐야지 알겠지.”

 

“…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이자님은 죽음에 근접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이 그건 아니지. 사실 난 기도가 막혀서 기절했던 거지. 죽음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어. 죽음에는 살짝만 다가가도 삼켜지니까.”

 

“어렵습니다.”

 

“머리 아프냐?”

 

“제게 머리라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거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지.”

 

“…”

 

“그보다 네 주인은 언제 돌아오냐?”

 

“곧 오실 겁니다.”

 

“이건 우리 둘끼리의 비밀로 하자.”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이 구체적으로 물으시면 저는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야...”

 

“네 주인도 네가 말 안 하는 걸 더 좋아할 걸.”

 

“…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주인이 널 어떻게 대하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네가 좀 더 인간다워지길 원하잖아, 특이하게.”

 

“그렇게 말하시면 저희의 대화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그보다 내가 한 말이 도움은 됐냐?”

 

“… 안 됐...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원래 그런 거야. 너도 살아가면서 잘 생각해봐. 정답이 없는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자님 한 가지만 더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이자님은 자살한 분들은 부러워하고, 죽음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이지만 제가 주인님과 함께 여태 봤던 분들의 유서를 토대로 볼 때 그런 막연한 이유만으론 자살을 하려는 이유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하려 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으십니까?”

 

“…”

 

“대답하시기 곤란하시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뭐 이유야 많지만 하나 딱 꼽자면 가족들이 날 양로원에 넣으려고 해서지.”

 

“네?”

 

“아 뭐, 그것 때문만은 아닌데... 한평생을 자유롭게 산 사람이 어디서 묶이는 건 싫어서 말이야. 남들이 들으면 황당하다고 하겠지만, 뭐 이유야 사람마다 제각각이니까.”

 

“…”

 

“나도 더 거창하게 말할 수 있다만 그렇게 하면 아까 내가 말했던 걸 위반하게 돼서 말이야. 뭐, 이미 너한테 설명하면서 위반하긴 했지만... 조금 깨냐?”

 

“깬다? 이해가 잘 가진 않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이자님 말의 의도는 이해한 것 같습니다.”

 

“것 같다고?”

 

“네.”

 

“… 네 주인.”

 

“네?”

 

“참 잘 기르고 있네. 신기해, 살다 보니 이런 것도 보고.”

 

“… ?”



작업용 우주선의 입구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현수가 커다란 가방을 멘 채 들어온다. 우주선에 들어선 그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이자와 드론을 발견하지만 잠시 바라만 볼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의 주변으로 날아간 드론은 기계 팔을 꺼낸다. 현수는 헬멧을 벗고 드론에게 시신이 든 가방을 건네며 우주선 회수반에게 연락하라고 유나에게 말한다. 그의 명령을 받은 유나는 가방을 받고, 지구에 있는 사무실과 연락을 취하며 시신 보관실로 향한다.

헬멧과 방호복을 우주선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둔 현수는 조종석에 앉아 피곤한 얼굴로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한다. 간혹 전자음이나 흐르는 우주선 안, 현수는 갑자기 뒤를 돌아 이자와 얼굴을 마주한다. 현수가 이자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그것을 건네받은 이자는 그 물건을 자신의 옷 주머니에 넣고 현수를 가만히 바라본다.

 

 

“…”

 

“…”

 

“얼마나 더 일해야 되나?”

 

“몇 건만 더 확인하고 정거장으로 돌아갈 거예요.”

 

“…”

 

“그리고 지구로 갈 거고요.”

 

“뭐, 어쩔 수 없구만... 내가 정정한 청년이나 기계를 완력으로 이길 순 없으니까 순순히 따르는 수밖에 없겠지.”

 

“지구로 가면... 가족들 곁으로 보내드릴게요.”

 

“가족...”

 

“?”

 

“별로 보고 싶진 않네만, 설마 가족들한테 내가 여기서 한 일들 다 말할 셈은 아니겠지?”

 

“설마요. 그런 거 다 말하면 가족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을 텐데...”

 

“그건 다행이구만.”

 

“저기 근데...”

 

“왜.”

 

“아직도 자살하고 싶으세요?”

 

“그래, 왜?”

 

“아뇨, 그냥... 자살하려는 걸 방관하는 거랑 죽어가는 노인의 바람을 막는 거랑 뭐가 죄책감이 더 많이 생길까 싶어서요.”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 건가?”

 

“… 뭐, 그런 거 같네요.”

 

“내 답은 뻔하지. 후자가 더 죄책감이 많이 들거야.”

 

“…”

 

“뭘 기대하고 물은 걸 아닐 테니까 나도 솔직하게 말한 거네.”

 

“그렇게 잘난 척 안 하셔도 그렇게 말한 거 같으셨어요.”

 

“자네도 참 이상한 사람이구만, 유나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예상하는 걸 묻는 것도 그렇고... 혹시 이런 일을 하다 막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은 아니지?”

 

“그랬으면 진작에 그만뒀을 거예요.”

 

“자네 참 이상해.”

 

“그냥... 남들이랑은 많이 다르지만 저도 할머니가 자살하고 싶은 것처럼 바라는 게 있으ㄴ...”

 

 

시신보관실에서 드론이 나온다. 현수는 이자에게 하던 말을 끊고 안전벨트를 맨다. 드론이 조종석 주변으로 날아와 자리를 잡는다. 이자는 현수도, 유나도 말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안전벨트를 맨다. 작업용 우주선이 출발한다.





지구의 한국 시간으로 저녁이 다 됐을 때, 현수의 작업용 우주선은 우주 정거장으로 돌아온다. 현수와 이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우주선을 나오고 드론은 작업용 우주선 안의 시신보관실에서 시신이 담긴 가방들을 우주 정거장의 극저온 보관실로 옮기기 시작한다. 텅 빈 가방 하나를 제외하고.

지구로의 왕복선이 오가는 승강장으로 향하는 현수와 이자. 때마침 왕복선이 승강장 안으로 들어서는 안내가 나온다. 그는 승강장으로 가기 전 잠시 매점을 바라본다. 웬일로 일찍 닫은 매점의 모습에 도시락 통은 내일 돌려줘야겠는 생각을 하곤 이자와 함께 승강장으로 향한다.

왕복선 안은 현수처럼 일에 치여 지친 사람들 혹은 무언가를 기대하며 눈에 희망이 가득 찬 사람들, 그리고 무표정하거나 불안해 보이는 등 여러 모습의 사람들이 자리를 채운다. 현수는 창 밖 깜깜한 우주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이자는 잘 준비를 하는 듯 눈을 감고 있다. 그때 현수가 무언가 생각난 듯 뒤를 돌아 이자를 바라본다.

 

 

“저기.”

 

“…”

 

“아직 안 주무시는 거 알아요.”

 

“왜.”

 

“아까 제가 준거요. 귀에 꽂아보세요.”

 

“귀에?”

 

“네.”

 

 

이자는 자신의 주머니를 바라보다 현수에게서 건네받은 물건을 꺼낸다. 꽃잎과 노을이 그려진 그림이 새겨져 있는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는 이자. 지켜보던 현수는 직접 그녀의 귀에 그것을 끼워준다. 그녀는 귀에서부터 느껴지는 이물감에 기분도 표정도 썩 좋진 않지만 당장 그것을 귀에서 뽑아내진 않는다. 이자의 귀에는 잠시 이상한 기계음이 들리더니 곧 유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현수는 작게 “아.”, “아, 들리세요?”. “유나, 말해 봐.”라는 말을 뱉는다. 지금 벌어진 일에 당황한 이자는 현수를 바라본다.

 

 

“유나 목소리 들리세요?”

 

“… 들리긴 한다만, 이게 무슨...”

 

“저기... 딱히 제 생각은 아닌데...”

 

“주인님의 생각이 맞습니다.”

 

“쉿, 유나야 이럴 땐 그냥 조용히 해.”

 

“하지만 이것은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좋은 일입니다. 이자님에게 비밀로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 누가 그걸 몰라. 그리고 할머니가 걱정된다고 등 떠민 건 너 맞잖아.”

 

“어떻게 된 일인가?”

 

“몰래 들으려던 건 아닌데... 아까 할머니 잠드셨을 때, 그... 유나가 할머니 사정 이야기 다 해줬어요.”

 

“… 말을 참 안 듣는 애구만.”

 

“뭐 다른 건 제대로 말 안 해줬지만... 그런 행동을 하려던 이유가 요양원에 가기 싫어서 그런 거라면서요?”

 

“…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하네만.”

 

“그리고 자유롭게 살다가 가길 원하신다고...”

 

“…”

 

“솔직히 전 아직도 할머니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긴 하지만...”

 

“하지만?”

 

“요양원에 안 들어가고, 자유롭게만 살 수 있으면 다시는 그런 행동 안 하실 거예요...?”

 

“행동? 아, 자살?”

 

“… 네.”

 

“그거야...”

 

“잘됐네요! 들었지 유나야?”

 

“네? 주인님, 이자님은 아직 말을 끝내시지 않았습ㄴ...”

 

“일은 저희가 구해드릴게요! 그리고 요양원에도 연락해서 가족들이 면회하려고 하면 저희 쪽으로 연락 달라고 부탁해서 그날만 요양원에서 가족들 기다리면 되고, 또...”

 

“…”

 

“주인님, 선내에서 떠드시는 것은...”

 

“조용히 좀 해 봐.”

 

“그리고 이자님은 아까 말을 끝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아... 그랬나?”

 

“… 아니야, 해. 하자고. 재밌을 것 같네.”

 

“알겠습니다, 다행입니다.”

 

“근데 양로원이 그걸 받아주겠나?”

 

“뭐... 제가 이 일을 하다 보니 발이 되게 넓어지기도 했고, 돈으로 해결하면 뭐든 되지 않을까요?”


“일은?”

 

“생각해둔 게 있긴 한데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어요.”

 

“돈만 넉넉히 주면 뭐든 하지.”

 

“그럼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까까지 피곤해 보이던 현수는 어디 갔는지 그의 얼굴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자신의 앞에서 떠들고 있는 남자가 아까와 같은 그 현수가 맞는지 이자는 깊은 의심을 하지만 이런 모습의 현수가 아까의 현수보다는 훨씬 그녀의 마음에 드는 것은 맞다.

이자는 잠시 현수와 유나의 말을 무시한 채, 앞으로 펼쳐질 지구에서의 나날을 상상해본다. 늘그막에 얻은 직장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왜 떠오르는지 모르지만 유나와 마주한 자신의 모습도. 분명 상상이고 그 상상대로 이상적이게, 아름답게만 펼쳐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런 위험도 자신이 책임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이자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이자는 들뜬 티를 최대한 내지 않고, 노인 특유의 무덤덤하면서도 조금은 보호를 자극하는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본다. 한창 떠들던 현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을 멈춘다. 그때 유나가 두 사람에게 말을 건다.

 

 

“저... 주인님, 부탁이 있습니다.”

 

“어? 어. 어떤 부탁?”

 

“이자님을 저희와 같이 살게 해 주시겠습니까?”

 

“뭐?”

 

“어?”

 

“저는 이자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거기다 이자님이 지구에서 양로원 말고 갈 곳은 마땅히 없을 것입니다. 또, 이자님 같은 노인을 혼자 살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맞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편견으로 노인을 보니까 나 같은 팔팔한 노인도 요양원에 보내는 거ㅇ...”

 

“말을 잘라서 죄송하지만, 저는 이자님이 지구로 가셔서 다시 자살시도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 이자님의 가족들의 요양원 면회 혹은 이자님의 건강이 악화됐을 때를 대비한다면 제 의견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건 그렇네.”

 

“뭐야? 자넨 저런 이유로 설득이 됐다고? 정말 나 같은 할망구랑 같이 살 수 있겠어?”

 

“뭐... 유나의 말이 틀린 건 없으니까요.”

 

“…”

 

“그리고 제가 뭐가 불편하겠어요.”

 

“참... 이상하구만, 일면식도 없는 할망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다고?”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눈앞에 죽어가는 생명을 보면 살리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

 

“왜 두 분 다 아무 말이 없으십니까?”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같이 살자.”

 

“네,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왕복선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곧 지구로 출발할 예정이기에 좌석의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음성과 함께 지구 도착 예정 시간을 여러 나라의 언어로 안내한다. 현수는 이자에게 “앞으로 같이 잘 살아봐요.”라고 속삭인 후 창 밖을 바라본다. 이자는 아직도 떨떠름한 기분이지만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여태껏 살면서 몇 번 느끼지 못한, 두려움과 두근거림이 어지럽게 섞여있는 느낌. 그 느낌이 이자를 가득 채운다. 아무래도 지구까지 이자는 한숨도 못 자지 않을까.

왕복선이 지구를 향해 출발한다. 웬일로 빨리 잠든 현수는 메스꺼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면서 미소를 지을 정도로 기분 좋은 꿈을 꾼다. 언젠가 노을이 지는 봄날, 몇 번을 고민한 끝에 옳은 일을 한 후 크게 다쳤던 날의 기억. 분명 아프고, 힘들고, 후회했지만 그날 피어난 현수의 마음은 삶의 원동력이 됐고 누군가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작은 친절이 됐을 거라 그는 믿는다. 잠들어 있는 현수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할,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을을 닮은 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온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본다 해도 무시할 그런 희미한 빛 하지만 언젠가는 찬란하게 빛날 수도 있을 빛. 꿈속의 현수는 고통을 느끼지만 좀 더 활짝 웃으려고 노력한다.

 

 

 

 

“갔다 올게!”

 

 

현수의 말에 집안의 모든 기계들이 그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사를 전한다. 이자는 그런 기계들과 유나가 깃들어 있는 드론을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꽤 익숙해진 듯 자신도 현관으로 걸어가 천천히 신발을 신고는 기계들을 향해 말한다.

 

 

“나도 다녀오마.”

 

“주인님이랑 같이 나가시면 출근시간이 더 단축되실 겁니다.”

 

“현수는 잔소리가 너무 많아.”

 

“주인님은 애정 어린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본인은 그렇게 말하겠지.”

 

“…”

 

“…”

 

“… 오늘 퇴근하신 후에 가족 분들과 만나고 오시는 겁니까?”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으니까.”

 

“잘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전 아직 이자님과 더 같이 살고 싶습니다.”

 

“…”

 

“다녀오십시오.”

 

“그래, 너희들도 현수 말 잘 듣고 있고.”

 

 

기계들은 현수에게 하던 것처럼 이자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인사를 전달한다. 이자는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드론은 집안을 떠다니고 기계들은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간다.

집 안을 이리저리 떠돌던 드론은 현수의 방 거울 앞에 멈춘다. 아직 집안일을 하는 기계들을 감독하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 농땡이다. 유나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본다. 지금의 모습과 작업용 우주선 안의 모습, 그리고 그 밖에 다른 장치 안에 속해 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던 유나는 현수의 방문을 닫는다. 분명 기계들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하는 본분이 있지만 “잠깐 정도는 괜찮겠지.”, “쟤들은 내가 보지 않아도 평소처럼 잘 할 거야.”같은 생각을 하며 왠지 모를 믿음에 기대 자신의 호기심을 탐구한다. 유나는 드론으로 빛을 비춰 거울 앞에 홀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점차 갖춰지는 사람의 형상. 유나는 머리카락과 구강구조, 키, 몸무게 등 여러 세세한 것들 생각하며 홀로그램으로 사람을 만드는 것에 열중한다.

조금 후 홀로그램은 완전한 사람의 형상으로 완성되고 유나는 그것을 지켜보다 그것의 뒤로 가 거울을 바라본다. 홀로그램의 눈을 깜빡여 보는 유나. 유나는 잠시 현수와 이자와 함께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자신을 쓰다듬는 두 사람과 그것을 느끼는 자신. 행복이라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 웃고 있는 자신.

한창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을 때 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기다 방문을 두드리는 기계의 노크도 들려온다. 유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 홀로그램을 끄고 다시 자신의 본분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다. 언젠간 자신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으로서 많은 물음에 대해 자신만의 대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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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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