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까 말까 고민했다가, 결국 씁니다.

-뒷목 13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토도이즈ts, 미도리야ts입니다.

-외전도 괴작입니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녀석.

 

A반 대부분이 가지는 토도로키에 대한 공통된 인상이다.

 

입학 당시에는 타인과 어울릴 생각조차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와 말을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싶어도 필요 이상은 하지 않는 날 선 녀석. 지금이야 상당히 둥글어져 주변 사람들과 잡담도 선뜻 나누고, 종종 뇌를 거치지 않는 순수한 한 마디가 가끔 빵 터지는 웃긴 녀석이 되었다만,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놈이다.

 

표정 변화가 미세하고, 대화는 주로 듣는 쪽이니까.

 

그렇기에 1학년 A반은 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충격에 휩싸였다.


토도로키는 모두의 앞에서 미도리야의 목을 깨물고, 보란 듯이 목걸이를 채웠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미도리야를 제 품에 안아 손수 자리에 데려다줬다. 그때 보았던 토도로키의 기분 좋은 미소는 다시 떠올려도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다.

 

그것은 더없이 거칠고 난폭했다.


노골적이고 본능적인, 한 번 물리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송곳니 같은 것.

 

‘경고’

 

이것은 내 것이다.

 

건들지 마라.

 

눈독조차 허용하지 않는 욕심.

 

제 품에 안겨 부들부들 떠는 미도리야를 상냥히 보듬는 손길이 무색할 만큼, 그 너머로 내뿜는 것은 결코 가벼이 넘길 게 아니었다. 마치 어느 맹수가 제 영역을 지키듯 낮은 울음을 포효하는 그것과도 같았다.

 

과연 그 경고가 미도리야를 향한 건지, 아니면 주위에 있던 다른 이들을 향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 건지. 토도로키 본인이 아니고서야 누구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 다만 그 경고는 A반 모두에게 전해졌고, 그 소름은 지금도 선명히 남아있다.

 

본인이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모르고 했다면 더욱 질이 나쁘지.”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를 휘젓던 카미나리가 휴대폰을 들었다. 조금 전 온 메시지는 지로가 보낸 거였다. 여학생들은 식당 입구 근처 등나무 벤치에서 식사를 막 끝내고 이야기 중이라고. 남학생들은 아직 먹고 있으니, 저쪽이 유달리 빨리 먹은 거다.

 

[오늘은 여자들끼리 밥 먹을 거야! 여자들끼리!]

 

점심시간 종 치자마자 아시도가 외침을 신호로, 문 가까이 있던 아스이가 교실 문을 열고, 야오요로즈가 커다란 담요를 만들어 미도리야를 덮어, 우라라카가 달려와 개성을 사용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하가쿠레와 지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서서 통로를 뚫었다.

 

여학생들을 따라, 남학생들도 드물게 함께 모여 식사 중이었다. 자그마치 건장한 남학생 13명이 커다란 식당용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떠드는 꼴이 꽤 웃겼다.


“토도로키 군.”


이이다의 부름에 옆에서 묵묵히 소바를 먹던 토도로키가 고개를 들었다. 사건의 원흉은 무리 속 가운데에 앉아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히 식사 중이다. 모두가 흔히 아는 토도로키의 얼굴이었다.

 

“미도리야 군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성실과 원칙을 지키느라 네모나게 각진 이이다는 토도로키의 변호사처럼 보였다.

 

“사과하라고 하면.”

“본인이 잘도 그러겠다.”


오지로가 씁쓸히 말했다.

 

“그나저나 왜 깨문 건데.”


키리시마가 가장 중요한 본질을 물었다. A반 남학생들의 귀가 쫑긋 섰다. 모두가 물어보고 싶어도 토도로키가 계속 미도리야 옆에 있었고, 미도리야는 어쩌지도 못해 울먹이고, 이런저런 둘의 분위기 때문에 물어볼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

 

“바쿠고가 미도리야 머리 폭발시킨 거 때문에?”

“근데 그건 바쿠고가 좀 심했지.”

“아니, 아니. 그렇다고 미도리야 목을 깨물면 쓰나.”

“넌 소꿉친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미도리야도 대단하다. 바쿠고에 토도로키까지, 그렇게 겪고 화 한 번 안 내니...”

“그 정도면 성녀다, 성녀. ”

 

토도로키 때문에 묻힌 감이 있지만, 바쿠고의 머리 폭발 사건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누군가는 토도로키보다 바쿠고가 더 나쁘다고, 혹은 진짜 우라라카 말대로 미도리야 좋아했었냐고 능글스럽게 물었다.

 

“시끄러워! 닥치고 밥이나 처먹어!”

 

참고 들어주다 폭발한 바쿠고가 큰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화통 삶은 고함에 식당의 시선이 모조리 A반을 향했고, 바쿠고 옆에 있던 키리시마가 대신 일어나 가볍게 사과하며 유야무야 넘겼다.


“...아씨.”

 

결국, 짜증이 폭발한 바쿠고가 수저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반쪽이 새끼.”

“......”

“적당히 해라.”

“무얼.”


똑같이 수저를 내려놓은 토도로키가 바쿠고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순식간에 붙은 두 남자의 기 싸움은 서로의 개성을 고스란히 닮았다. 터질 것처럼 매섭고, 타버릴 것처럼 극악하고, 주변이 힘들 정도로 싸늘했다.


바쿠고는 어느 때보다 기분이 극에 치달았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이유는 당연히 아침에 있었던 그 사건 때문이었다.

 

“네놈 새끼가 망할 데쿠한테...”

“그러니까.”


당장이라도 다 엎어버리기 직전인 바쿠고와 반대로, 토도로키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느렸다. 다만 여전히 바쿠고를 향한 시선에는 살기 엇비슷한 것이 얽혀 있어, 그 차이가 식당의 분위기를 가볍게 좌우할 정도였다. 애먼 학생들만 맛있게 먹은 점심 체할 지경이다.

 

“나와 미도리야 사이에, 바쿠고 네가 무어라고.”

 

토도로키는 미도리야가 싫어한다면 사과할 생각이다.

 

사람 다 보는 데서 깨문 게 옳지 않단 것 정돈 알고 있다. 체육제 일도 아직 양심의 가책으로 남아있는데, 그게 미안해서라도 그때의 감사를 전하려고 마음먹었건만 더한 짓을 해버렸으니. 하지만 이번 일은 체육제 때의 망언과 분명 다르니까, 저쪽에서 화내지 않는 이상은 사과할 마음은 없다.


이이다의 사과 권유나 오지로의 쓴웃음, 키리시마의 호기심 같은 다른 녀석들의 관심이 썩 싫지도 않다. 그럴수록 저와 미도리야 사이의 일은 선명해져, 은근한 기쁨이 된다. 토도로키 본인마저 제 취향이 이렇게 극악했나 싶다. 

 

하지만.

 

“너한테 무어라 들을 이유 없어.”

 

제 주인의 짧은 머리에 그딴 흔적을 남긴 너는 아니다.

 

충성심 강한 맹수는 다시 ‘경고’했다.


바쿠고의 손에 들린 나무젓가락이 와자작 부서졌다.

 

---


봄에 핀 연보라 꽃이 다 지고, 푸른 잎이 주렁주렁 줄기 따라 가득 펼쳐진 등나무 벤치 아래 모인 A반 여학생들의 식기는 이미 치워진 지 오래였다. 오늘만큼은 밥이고 뭐고 서둘러 먹고 치워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떡해...”


미도리야의 뒤에 선 우라라카가 다시금 볼을 붉혔다. 따라붙은 다른 친구들도 볼을 붉히고 말을 잊었다.

 

“키스, 마크라는 거지?”

 

아시도가 분홍빛 볼을 더욱 붉혔다. 수위가 조금 높은 연애소설에서 꽃잎이나 보석처럼 묘사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자그마한 울혈은 보랏빛이 희미하게 도는 것이 마치 멍 같아서, 거기다 그 주위를 창살처럼 두른 잇자국까지 있으니 더욱 음란하고 오싹했다.

 

“미도리야 쨩, 아파? 괜찮아?”

 

하가쿠레가 2센치 정도 손가락을 허공에 띄운 채 울혈을 가리켰다.

 

울혈과 잇자국만이 아니라, 목줄 같은 초커도 여전히 걸려 있었다. 붉고 하얀 레이스 둥근 것이 얽혀 목에 달라붙어 있는데, 오히려 이게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키스 마크 꽃잎 같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달콤쌉싸름한 건 아니었다.

 

이 예쁜 장신구마저 맹수의 지독한 흔적일 뿐이다.

 

“저, 저기...”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가 뒤를 향해 휴대폰을 건넸다. 차마 나오지 못한 말을 용케 알아들은 지로가 폰을 받았다. 아스이의 큰 손이 미도리야의 머리칼을 들어줬고, 야오요로즈가 이쪽에서 찍는 게 좋다며 자리를 비켜줬다. 곧 찰칵 소리가 들렸고, 폰은 다시 미도리야에게 갔다. 겁에 질릴 준비가 된 동그란 눈에 강아지가 남긴 흔적이 비쳤고, 주인은 눈을 질끈 감으며 기절하려고 애를 썼다.

 

“데쿠 군, 정신 차려! 물어볼 게 산더미라고!”

“그, 그치, 그치만, 이, 이건...!”

“울면 안 돼! 뚝! 이럴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지!”

 

엄격한 우라라카의 다독임 덕에 미도리야는 힘겹게 끄덕였다. 그러나 새빨개진 얼굴은 어찌해도 진정된 겨를이 없었다. 그늘진 벤치 아래는 무척 서늘한데도, 미도리야에겐 신통치 않은 모양이었다.

 

“이즈쿠 쨩.”

 

이런 중에도 침착한 얼굴을 한 아스이가 물었다.

 

“이것도 토도로키 쨩이 선물한 거야?”


녹음 진 머리에 장식된 붉고 하얀 것을 가리키니, 미도리야가 기계처럼 끄덕였다.

 

수국처럼 작은 구슬이 모인 두 개의 핀은 각각 붉고 하얘서, 이렇게까지 대놓고 색깔을 보이니 선물한 사람이 누구인지 절로 연상되었다. 머리핀에 이어서 초커까지 붉고 하얀 것의 연속이니, 마치 제 것마다 흔적을 남기는 초원의 맹수 같았다.

 

아니면 제 것에 욕심 많은 꼬마라던가.

 

“혹시 토도로키는 미도리야가 여자였던 걸 알고 있었어?”

 

지로가 머리핀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도 선물 받았을 땐 혹시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며, 미도리야는 머리핀을 선물 받은 경위를 설명했다. 남장을 밝히는 게 무서워서 고민하던 중에 토도로키랑 야외 전시회를 구경하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기운 나는 말을 들었다고.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노점상에서 선물 받았다고.

 

“토도로키 의외로 상냥하네.”


아시도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런 인상은 아니었기에 더욱.

 

하지만 돌이켜 보면 마냥 그런 것도 아니었다.


계기는 분명 체육제,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본인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른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토도로키 주변을 감싸던 모난 것이 둥글어졌다. 토도로키가 사람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유독 친하게 지낸 건 당연코 미도리야였다.

 

거리낌 없이 푹신한 초록 머리도 쓰다듬고, 졸리면 저보다 작은 어깨에 고집스레 기대거나, 미도리야가 먹는 과자를 저도 달라고 입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다들 사이가 어련히 좋으려니, 하며 가볍게 넘겼었다. 다른 남학생들도 그러하고, 그게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이즈쿠 쨩을 좋아하는 걸까?”

 

하가쿠레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다시 생각해보면, 토도로키의 그런 행동들은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온 진심의 일부였다. 

 

“그치만 깨무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사랑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아시도마저 떨떠름했다. 하지만 교실에서 눈을 마주했던 아스이와 우라라카, 그리고 야오요로즈는 무언가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나는 토도로키 쨩이 왜 깨문지, 조금이지만 알 것 같아.”


아스이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들었던 두 사람의 대화를 떠올렸다.

 

미도리야나 토도로키나, 대화를 나눌 때 나서서 진행하는 편이 아니다. 능숙하지 못하단 뜻이다. 둘 다 묵묵히 듣는 쪽이고, 말주변이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미도리야는 생각을 깊이 한다고 그러는 거지만, 토도로키 쪽은 생각나는 족족 뱉어버리니 더욱 심하다.

 

누가 잘못했냐고 본다면 당연히 토도로키다.


하지만 미도리야 역시 오해의 여지를 남겼다.

 

“이즈쿠 쨩이 화를 부추겼어.”

“부추기지 않았어...”

 

미도리야가 살짝 억울한 투로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아스이는 냉정했다.

 

“토도로키 쨩은 이즈쿠 쨩이 어떤 머리를 해도 어울린다고 칭찬했는데, 바쿠고 쨩 때문에 짧아진 머리를 고수하겠다는 듯이 말했잖아. 과대해석이긴 하지만, 그런 식의 말은 토도로키 쨩의 진심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려.”

“나도 그런 식으로 들렸어.”

 

우라라카는 턱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머리를 자르려고 한 건, 짧은 게 관리하기 편해서...”

“그치만 데쿠 군, 우리 칭찬도 계속 아니라고 부정하고, 결국 자를 거였잖아.”

 

우라라카의 악의 없는 직구에 미도리야가 침묵으로 대답했다.

 

자를 생각이었다. 아니, 자르려고 이미 마음도 먹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유에이에 입학한 지금껏 계속 짧게 다녔으니 제 머리가 길어지는 것이 그저 어색했다. 타이밍 못 잡아 자르지 못해 단발 된 머리를 칭찬해줘도 기를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르지 말라고 권유하는 친구들의 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나도 고집이었구나.’

 

미도리야는 뒤늦게 저의 대화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니, 아니, 아니.”

 

지로가 풀이 죽은 미도리야의 손등을 서둘러 툭툭 쳤다.


“뭘 또 네가 잘못한 것처럼 그래. 어떻게 봐도 네가 피해자야. 토도로키한테 미안할 필요는 없어. 마음에 안 든다고 사람 깨무는 놈이 어디 있어. 가서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지로 상 말씀에 동감이에요.”

 

야오요로즈는 어쩐지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본 토도로키의 미소가 어찌나 오싹했는지,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낯선 공포감에 닭살이 오도도 돋는다. 사람을 그리 수치스럽게 해놓고 즐기는 건 빌런이나 마찬가지다.

 

거기다 그가 중얼거렸던 ‘강아지’ 발언도 신경 쓰였다.


“본인 입으로 강아지라는데, 그거 혹시...”

“토도로키가 강아지래?”

"자기 입으로?"

“이건 또 뭔 소리야?” 

“혹시 우리가 탈의실에서 농담으로 떠들었던 그거야?”


 설마하는 아이들에게, 미도리야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적당한 길이의 단발이 된 머리칼이 어깨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도대체 그 이야기를 토도로키가 어떻게 알게 된 거냐고 물으면, 미도리야는 구조 훈련 때 토도로키에게 장난 삼아 강아지 같다는 농담을 던졌다고 이실직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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