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우카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지금 상황은 꿈에서 많이 보았던 것이지만 꿈은 아니었다.

올해 29살. 곧 계란 한판을 앞둔 나이이건만, 최근 그는 막 2차 성징에 들어선 사춘기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폭풍 같은 감정변화나 선이 굵어진 신체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욕정. 시도 때도 없이 불끈불끈, 아니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욕정이 문제였다.

밤마다 어찌나 살색 가득한 꿈을 꾸어대는지. 코치님, 좋아해요, 코치님. 자신을 향해 야해빠진 얼굴로 팔을 뻗는 꿈의 주인공 때문에 무언가 아래가 터질 것만 같은 기분에 섬뜩해 눈을 떠보니, 맙소사. 몇 년 만일까. 16살 이후로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당황되고 민망한 일이 벌어져 있었더랬다. 몽정이라니. 이 나이에 몽정이라니.

다 이 녀석 때문이다. 담배를 삐딱하게 문 입술 사이로 한숨을 푹 내쉬며 아침부터 축축하게 젖은 속옷을 빠는 참담함보다는 차라리 사전에 미리미리 빼주는 게 좋겠다싶어 중학교 시절에나 했을 법한 자기위안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그래 다 이 녀석 때문이야. 지금 눈앞에서 발가벗은 채 다리를 곱게 벌리고 있는 이 녀석, 히나타 때문에.

무려 3년이었다. 밀어내고 밀어내도 끈덕지게 달라붙는 녀석을 겨우 어르고 달래어왔던 것이.

첫 번째 고백은 히나타가 1학년 때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으니 저녁이 되어가던 시간이었을 거다. 그날도 어김없이 가게를 보던 중이었다. 하교하던 애들이 한바탕 정신없이 몰아치고 난 후 제법 한산해진 시간, 삐걱 대는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녀석이 들어왔더랬다. 공만 손에 쥐어주면 눈에 생기를 가득 담고 온 코트를 제 집 안방처럼 훨훨 날아다니던 녀석은 왠지 저답지 않게 쭈뼛대며 두 손을 곱게 모아 쥔 채 손가락을 꼼질대고 있었다.

저… 코치님, 좋아해요.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툭-하고 무릎에 떨어져 바지를 지직 태웠지만 한참 후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나고 나서야 겨우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핫, 뜨거! 급히 일어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는데도 히나타는 왠지 혼이 나간 채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코치님, 속이, 긴장했더니….

우웩. 첫 번째 시합 때 타나카의 무릎에 토를 했던 녀석은, 인생 최초의 사랑 고백이 그렇게나 긴장되었는지 가게 바닥에 시원하게 속을 게워냈더랬다.

급히 가게 문을 잠그고 '금일 영업종료' 팻말을 갖다 붙인 후, 몸을 웅크리고 앉은 히나타의 작은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데, 고개를 꾸벅 숙인 녀석의 하얀 뒷목이 보였다. 가쿠란 위, 잘 익은 홍시색의 석양빛을 받고서 반짝반짝 빛나는 뽀송뽀송한 솜털. 꽤 오랜 시간 멍하니 그걸 쳐다보았었지.

한참을 바닥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히나타가 겨우 머리를 들고 울먹이며 말했다. 코치님, 좋아해요. 많이요. 젖살이 남은 뺨이 바르르 떨리는데, 심장이 바닥으로 툭 가라앉았다.

…애랑은 연애 안 해.

참 치사하고 구차하다, 우카이 케이신. 우카이는 그때 자신이 했던 대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절로 술이 당겼다. 거절을 할 거면 '미안하지만 난 너한테 그런 감정 없어' 따위가 좋았다. 애랑은 안 한다니. 그건 상대에게 쓸데없는 여지를 남겨두는 말이었다. 애가 아니라 성인이 되면 연애 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완전한 거절도 아닌, 완전한 수락도 아닌 애매한 대답을 돌려준 이유가, 그때 이미 자신이 히나타에게 푹 빠졌기 때문이란 걸 인정하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풋사과마냥 어설프고 풋내 나는 고백을 받은 이후로 우카이의 일상은 조금 많이 바뀌었다. 전반적으로 뭐든 흥미가 떨어졌다고나 할까. 동네 청년들과의 술자리도, 심심풀이로 해왔던 소개팅도 재미가 없었다. 그저 코트 위, 감귤색 머리를 폴폴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녀석을 무심코 눈으로 쫓는 날들이 이어져갈 뿐.

고기만두 두개요. 히나타는 하교 후 매일 같이 가게를 찾아왔다. 고기만두며 초코바 따위를 사러. 자그마한 손에 들린 지폐가 파닥파닥 떨렸다. 눈도 마주치고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목덜미까지 빨개진 히나타가 코트 위에서도 그런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관계는 없었을 것이다. 애 같지 않게. 코치 노릇을 한다고 배구부원들 앞에 서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엔 사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어서, 괜히 녀석 쪽을 바라보는 것이 조금 멋쩍은 자신이 좀 한심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 집에 가서 제대로 먹어라. 뜨끈한 고기만두를 건네다가 손이 닿을 때마다, 화르륵 타오르는 녀석의 귓가가, 움찔대는 어깨가 귀여웠다. 그래서 일부러 물건을 건네며 자신보다 한마디는 작은 손가락을 스윽 쓸어보곤 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히나타가 모르는 우카이만의 비밀이었다.

가장 막내였던 히나타가 최고 선배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매일 같이 우유를 입에 달고 살던 녀석의 바람과 달리 겨우 165cm를 찍은 키의 히나타를 후배들은 치비 주장이라 부르며 스스럼없이 대했다. 자신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후배들 속에 둘러싸인 히나타는 여전히 중학생처럼 앳된 얼굴이었지만 화이팅을 외칠 땐 제법 어른스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전국대회. 카라스노는 처음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카게야마가 올린 토스를 멋지게 성공시킨 히나타는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파트너인 카게야마도, 후배들도 아닌, 코치인 우카이를 향해 달려왔다. 플래시 세례와 조명의 환한 빛을 등에 가득지고 달려오던 히나타는 그때 울면서 웃었었지. 품에 안았던 것은 태양이었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조금 쉬어버린 목소리로 녀석은 속삭였다. 코치님, 고마워요.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는데 왠지 콧등이 시큰했다.

곧 성인. 히나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지금도 태양처럼 환히 빛나는 이 아이의 앞길엔 찬란한 빛이 가득할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이제 곧 서른. 청춘이라는 단어가 빛바래진 지는 석양 같은 존재였다. 네가 어려서 안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너의 그 눈부심 앞에 서기에 너무 초라한 존재인 것 같아서.

그러나 나이를 먹었다고 지혜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옳은 일을 행할 수 있는 결단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이가 들면서 느는 것이라고는 뻔뻔함뿐이었다.


"코치님, 좋아해요."


3년 전 처음 가게에서 고백하던 날처럼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히나타를 바라보며 우카이는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미안하다, 히나타.

시간이 흘러 네가 지금 내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 넌 나를 개자식이라고 생각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를 꾀어내 연애질을 한 나쁜 놈이라고. 졸업식 날 두 번째 단추를 떼어다가 쑥 내미는 너의 눈물 젖은 뺨을 끌어다 잡고 입을 맞춰버리고만 나를.

연애가 처음이 아니건만 히나타와는 뭐든 처음 같았다. 그 자그마한 손을 잡는 것도 어려워 손바닥에 땀이 삐질삐질 배어나왔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얼굴에다가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혀가 또르르 말려버린 것처럼. 그래서 괜히 감귤색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려 놓으며, “웃지마, 인마” 따위의 싱거운 말이나 해버리곤 했다.

이게 다 너무 어릴 적에 본 탓이다. 성인이 되었음에도 어디 식당이라도 가면 자신을 삼촌 취급 받게 만드는 앳된 얼굴 때문이다. 히나타의 나이 앞에 붙은 숫자는 지금 우카이가 하려는 행위가 합당하다고 주장하나, 아직도 히나타는 자신의 눈에는 너무나 아기 같기만 해서.

이걸 어떻게 해.

자신의 것과 달리 보들보들한 털이 송송 나있는 뽀얀 하반신. 손가락이나 들어갈까 싶은 핑크빛의 목적지를 바라보는 우카이의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떡하니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찢어지면 어쩌지. 피라도 나면 어떡하나. 결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리 봐도 이건 사이즈가 안 나온다. 차라리 히나타더러 넣으라고 할까. 저 조그마한 녀석이 아파서 엉엉 우는 걸 보느니 그게 나을성싶다. 

복잡하게 이어지는 생각에 우카이의 미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어, 코치님, 저기…."

"왜."


누워있던 히나타가 몸을 일으키더니 민망한 표정으로 우카이의 하반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 작아졌어요."


아. 우카이는 당황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똑같이 고개를 푹 숙인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생각이 너무 많았다. 녀석에 대한 걱정에 어느새 수그러진 모양이었다.

자신의 표정을 살피는 말간 얼굴을 보는 우카이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다 났다. 그러니깐 너 때문에 가라앉은 게 아니야. 널 보고식은 게 아니라. 혹시나 히나타가 자신 때문에 시들해진 거라 오해할까봐 우카이는 급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건……."

"코치님, 긴장하셨어요?"

"비슷하긴 한데…."

"코치님도 처음이세요?"


그럴 리가.

이 나이 먹도록 그럴 리가 없잖아. 서른 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된다던데 자신은 숟가락 따위 구부리는 재주는 없었다. 동그란 동공에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눈을 빛내며 상기된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채운 히나타를 보니 우카이는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네가 고백하기 전엔 나름 풍족한 섹스 라이프를 영위하고 있었다고. 초롱초롱한 저 눈을 보자니 입술이 제멋대로 거짓말을 술술 내뱉었다.


"으응, 뭐……."


그 큰 눈이 금세 접히더니, 히나타가 환히 웃었다.


"기뻐요!"


어, 엉?


"키, 키스라든가 손잡는 거라든가, 뭐든 능숙하셔서 사실 저 좀 질투 났어요."


하아?


"그런데 제가 처음이라니 너무 기뻐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하게 웃는 히나타를 보니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하반신으로 빠르게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뻐근하다 못해 아플 정도로 늠름해진 자신의 것을 느끼며 우카이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겠다."

"앗! 코치님 다시 커졌, 으읍!"


부딪히듯 허겁지겁 입술을 맞추자 히나타가 잠시 버둥대더니 이내 목에 팔을 감아왔다. 바르르 떨리며 감긴 속눈썹이 예뻤다.

애한테 몹쓸 짓을 한다며 시마다가 등을 후려칠 것이었다. 타키노우에는 히죽대며 비아그라 따위를 자신의 주머니에 쑤셔 넣어 줄지도 모른다.

자신을 보고 도둑놈이라 하든, 제자한테 발정하는 변태 놈이라 하든 상관없다.

열일곱 살, 동갑 여자애의 몽글한 가슴을 만지며 이루어졌던 첫 경험은 진짜가 아니었다. 터질 것 같은 심장과 떨리는 손끝. 네 앞에선 이상하게 자꾸 서툴다. 너와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진짜 처음인 것처럼.

조급한 마음에 입구를 찾지 못해 근처만 꾹꾹 눌러대는 우카이의 것에 히나타가 푸후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마. 정 든다."

"정말 많이 좋아해요. 코치님."

"읏… 망할."


결국 대망의 첫 번째 발사는 목적지에 닿지도 못하고 히나타의 아랫배에 불시착하고 말았다. 열일곱에도 하지 않았던 대실수였다.

창피함에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한 우카이를 보고, 도리어 자신이 더 놀란 히나타가 우카이의 양 뺨을 잡고 “괜찮아요, 코치님”하며 위로를 건넸다.

우카이는 어금니를 악 물었다.

담배 끊어야겠다. 술도 줄여야지. 운동도 하고.

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녀석이랑 함께 해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

이번에는 기합을 좀 빼고 천천히 가보자. 정신 차려, 우카이 케이신.

동그란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며 심기일전 하는 우카이였다.

 

 

fin.



 


드디어 내가 메이저를 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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