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zabó Viktor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야마다 히자시.

히자시는 자신의 이름을 꽤나 좋아했다.

그가 그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랬다.


그의 부모는 저 바다 건너에서 살던 이들이었다. 개성 사회가 도래한 후로 온 세계는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던 그의 부모는 마땅히 살 만한 곳을 모색해야했다. 그들은 올마이트의 나라를 택했다. 그들은 아직은 세포에 불과했던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이 땅에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아들 하나를 낳았다. 태어나자마자 개성으로 어머니와 병원 의사의 고막을 터뜨린 육아 난이도 높은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아들을 사랑했다. 그들은 뱃속에 있을 때 불렀던 애칭으로 그들의 아들을 이름 붙였다. Sunshine. 히자시. ひざし. 그렇게 히자시는 이름을 얻었다.


히자시의 부모는 히자시가 이 땅에서 평생 뿌리박고 살아가길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성을 대신해 흔하디흔한 일본성을 히자시에게 주었다. 그렇게 히자시는 야마다란 성을 얻게 되었다.

히자시의 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히자시를 무릎에 앉혀두고 그들이 얼마나 고심 끝에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는지를 말해주곤 했다. 너는 이 나라에 살아가야 하니까 일부러 흔한 성으로 네 이름을 지은 거야. 그러니까 엄마아빠랑 성이 다르다고 서운해 할 필요 없어.

그러면 히자시는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자신도 엄마아빠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쏙 드노라고 소리를 높이곤 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집중력 낮은 어린애였던 히자시는 곧 그들의 무릎 위에서 벌떡 일어나 사방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그러다가 단숨에 붙잡혀 함부로 개성을 쓰면 안 된다고 꾸중을 듣고……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의 이름은 이렇듯 큰 사연과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이름을 좋아해야 했다. 결코 그의 이름에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히자시는 자신의 이름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왜 야마다야. 왜 야마다냐구우.

흔한 일본식 성은 사토도 괜찮았을 것이다. 다나카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야마다는 싫었다. 야마다やまだ가 이름 순번으로 출석번호를 붙이는 유에이의 특성상 뒷번호였기 때문이었다.


히자시는 저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두 사람의 자리를 흘끔거렸다. 아이자와あいざわ와 시라쿠모しらくも였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빠른 출석번호에 따라 교실의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반대로 히자시는 교실의 가장 뒤편의 구석자리에 앉아 입술을 쑥 내밀고 있었다.

히자시도 그들의 근처에 앉고 싶었다. 선생님이 판서한다고 뒤돌아있을 때마다 몰래 속닥거리고, 선생님이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내는 시간에는 바로 옆으로 몸만 돌려 그 애와 시시덕거리고 싶었다.


선생님이 입술을 삐쭉이던 히자시에게 집중하라고 경고를 주었다. 예이~! 히자시가 시끄럽게 소리를 높이면 선생님은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수업을 끝마치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다음 시간의 수업을 안내하며 수업을 정리해갔다. 이제 시라쿠모는 아이자와에게 바로 성큼성큼 걸어가 지난 쉬는 시간에 못다 한 말을 떠들어댈 것이다. 그러면 히자시도 빠른 발걸음으로 그에게 합류해 쓰잘대기 없는 농담을 걸어대야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러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유에이는 이형계들을 배려한 베리어프리 건물이었고 교실은 지나치게 넓었다. 시라쿠모와, 아이자와와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었다. 그래서 히자시는 괜히 선글라스를 벗어서 책상 위에 두고 두 팔에 고개를 묻었다. 히자시는 몸을 웅크렸다.


히자시는 속이 울렁거렸다. 점심이 체한 걸지도 몰랐다. 기분이 지나치게 들뜨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속이 아프게 가라앉았다. 이대로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으면 했고, 또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아니, 그 애가 말을 걸어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히―자시,"

히자시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어느새 히자시의 선글라스를 쓴 채 활짝 웃는 얼굴이 눈앞에 바로 있었다. 시라쿠모가 물었다. 히자시는 울렁거리던 속이 순식간에 얼굴로 번져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울렁거림은 붉은 홍조가 되어서 녹색 눈 아래에 매달렸다.


"주말에 뭐해?"

시라쿠모가 물었다. 어, 어어―. 히자시는 답지 않게 말을 흐렸다. 입이 마르고, 그러다 보면 혀가 꼬였다. 시라쿠모는 선글라스 너머의 눈을 접어 웃으며 히자시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따로 일정은 없는데~ 왜? 같이 놀자구?"

히자시가 가라앉는 기분을 끌어올려 신이 난 목소리를 부러 내었다. 히자시는 시라쿠모와 아이자와, 셋이서 시끄럽게 떠들며 시내를 노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다가도 어디 한 구석이 불편하게 그의 가슴을 찔러왔다. 히자시의 원인을 모르겠는 불편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라쿠모는 몸을 들썩였다.


"그럼 이번 주말에 같이 놀이동산 가자! 내가 공짜 티켓 구했어! 무려 자유이용권!"

시라쿠모가 춤을 추듯 몸을 흔들었다.

"놀이동산?"

히자시의 신이 난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히자시는 놀이동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주 어릴 적 꼬마 바이킹을 타다가 신이 나 지른 소리로 바이킹을 망가뜨린 경험 때문이었다. 히자시는 주인 아저씨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고, 그의 부모님이 연락을 받고 달려와 수리비를 낼 때까지 엉엉 울고만 있었다. 지금에야 개성을 조절할 수 있지만 격렬한 놀이기구를 타다보면 저도 모르게 개성을 쓰게 될 지도 몰랐다.


"뭐, 아이자와랑 같이 가면 아이자와한테 개성 지워달라고 하면 되겠지만……,"

히자시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말을 내뱉고 나면 다시금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었다.

"어, 쇼타는 못 간대."

시라쿠모가 말했다.

히자시는 울렁거리던 속이 가슴 안쪽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히자시는 시라쿠모가 자신에게 놀이동산 방문 여부를 물어보기 전에 아이자와에게 먼저 물었다는 것에 묘하게 기분이 상하면서도 동시에 아이자와가 놀이동산에 가지 못한다는 것에 기분이 들떴다. 그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왜? 왜 못 간대?"

히자시가 좀 더 밝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 생신이시래. 응응? 히자시, 티켓 이번 주말까지란 말이야~ 같이 가자~ 둘이서라도 가자~"

"하지만 개성이……."

"놀이동산이 놀이기구만 타러 가는 곳도 아니잖아! 퍼레이드 구경하자! 응? 으응? 이번에 여름이라고 워터축제한대~! 퍼레이드에서 개성으로 물을 막 쏴준대!"

시라쿠모가 히자시에게 치대왔다. 히자시는 시라쿠모에게 씌워져 있던 자기의 선글라스를 빼앗아 다시 쓰고, 솟아오르는 광대를 누르려 애쓰며 좋아! 하고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둘만 가는 놀이동산. 히자시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건 이상한 느낌이었다. 히자시는 아이자와가 싫지 않았다. 놀리기 좋고, 그렇게 안 생겨서는 함께 있으면 마음 편해지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자와 빼고 시라쿠모와만 주말에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어쩐지 비죽비죽 새어나오는 미소를 참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 ✼ ☀️


히자시는 올마이트의 더듬이를 모티프 삼아 만들어진 머리띠를 쓴 채로 시끌벅적한 놀이동산의 한복판에 있었다. 흥분과 열광으로, 그리고 멀리 보이는 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가득 찬 곳에서 시라쿠모의 구름 같은 머리가 흔들려댔다. 놀이동산이 놀이기구만 타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시라쿠모의 주장은 사실인 것 같았다. 신나는 노랫소리 맞추어 올마이트 분장을 한 스태프들이 춤을 추어대는 광경이 신명났다.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던 스태프들 사이로 물줄기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뿜어져 나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에게 튀기는 물줄기에 행복한 탄성을 질러댔다. 무더운 여름을 차게 식혀주는 얼음장 같은 물줄기였다. 히자시는 시라쿠모 옆에서 높이 쌓아 올려진 콘 아이스크림을 쥔채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히자시가 아슬아슬한 콘 아이스크림을 조금 핥았다. 무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이 녹아 히자시의 손으로 질금질금 흘러내렸다.


"으, 끈적한 거 싫어."

"우와, 하이라이트다!"

히자시가 불평하는 사이, 물줄기가 더 거세게 치솟고 또 부드럽게 떨어져내렸다. 뒤이어 물줄기는 방울방울 뭉쳐져서 하늘로 떠올랐다. 꼭 커다란 비눗방울 같은 모양이 된 물줄기는 지나던 사람들 사이에서 반짝이다가 차가운 물을 사람들에게 튀기며 팡팡 터져댔다. 물방울이 폭죽의 색종이 가루라도 되는 것처럼 반짝이며 온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시라쿠모가 흥분해 방방 뛰어댔다.

"나도, 나도 물 맞고 싶어! 우리도 저기 가자, 히자시!"

"우앗, 갑자기 잡아당기지 마!"

높이 쌓아 올려진 콘 아이스크림을 아슬아슬하게 들고 있던 히자시가 시라쿠모의 손길에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았다.


"다 먹고 가야지! 비싸게 주고 샀는데~ 정말, 놀이동산은 너무 다 비싸. 용돈 다 썼어~ 난 이제 이번달은 No money야~ 아무튼! 아까우니까 다 먹고 가야 돼!"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지."

아이스크림이 쓰러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가며 히자시가 말하자 시라쿠모가 금방 킬킬거렸다. 시라쿠모가 아이스크림을 쥔 히자시의 손을 겹쳐 잡고 히자시가 잔뜩 핥아댄 탓에 모양이 조금 찌그러진 콘 아이스크림 위를 덥썩 물었다. 그 바람에 시라쿠모의 머리에 씌워진 올마이트의 더듬이가 히자시의 코를 조금 간질였다. 히자시의 코끝이 붉어졌다.


"아, 내 손도 끈적끈적해졌어."

시라쿠모가 히자시와 겹쳐 쥐었던 손을 접었다폈다하며 투덜거렸다. 히자시는 뜨거운 날씨 탓인지 확 더워졌다. 히자시가 시라쿠모 덕에 한입거리로 남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우걱우걱 베어 물었다.

우왓, 혼자 먹으면 치사해. 시라쿠모가 히자시를 만류하며 외롭게 남은 콘 부분을 가져가 시무룩한 얼굴로 씹어댔다. 하지만 금방 신난 얼굴로 고개를 든 시라쿠모가 히자시를 이끌었다. 찐득한 손이 엉겨 붙으며 두 사람이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가자앗~!"

시라쿠모가 방방 뛰며 히자시를 이끌었다. 히자시는 시라쿠모의 손길에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며 겨우 껄려갔다.

히자시는 잠깐 아이자와의 생각이 났다. 셋이 다니다 보면 분위기에 휩쓸려 질질 끌려다니는 쪽은 언제나 아이자와였다. 시라쿠모와 히자시가 실실거리며 멋대로 세 사람이 갈 곳을 이끌면 자기 주장하기 어려워하는 숙맥 같은 아이자와는 투덜거리면서 그들을 따르곤 했다. 아이자와가 없으니 히자시는 어쩐지 저가 아이자와가 된 기분이었다. 히자시는 제멋대로 그를 이끄는 시라쿠모를 따라 단단한 손에 팔목이 잡혀 퍼레이드 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그리고 그건, 왠지 모르게,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퍼레이드의 중심부에 도착하면 차가운 물줄기가 히자시와 시라쿠모 사이로 엉겨 붙었다. 오색빛깔로 반짝이던 물방울이 시라쿠모의 얼굴 옆에서 터지면 그 애가 눈을 꾹 눌러 감으며 웃었다. 하핫, 하고 웃었다. 히자시가 금방 젖어버려 시야를 방해하는 선글라스를 벗으면 시라쿠모가 지나치게 밝은 햇빛 아래에서 반짝이며 웃었다.

차갑게 젖은 시라쿠모가 히자시의 선글라스를 쥐지 않은 쪽의 손을 쥐었다. 히자시는 일정한 박자로 그의 귓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게 심장 뛰는 소리라는 걸 깨달은 건 시라쿠모가 둥둥 떠다니는 방울 하나를 조심스럽게 그들의 사이로 가져올 때였다. 방울이 두 사람의 손 위에서 터졌다. 히자시의 손에 묻어있던 끈적이는 것이 씻겨 내려갔다.


"히자시, 히자시이―!"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비명 소리로 시끄러운 퍼레이드 한 가운데에서 시라쿠모가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퍼레이드 끝나면 같이 롤러코스터 타러 갈래?!"

히자시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벗은 선글라스 탓에 햇살에 눈이 부셔서, 미간을 찡그리고 시라쿠모의 뺨에 눌어붙는 그의 머리칼만 바라보았다.

"저거, 높이 제일 낮은 거 타자! 그래도 너무 무서우면 소리 지르지 않게 내가 손 꼭 잡아줄게!"

"좋아,"

히자시가 대답했다. 그 소리가 시끄러운 퍼레이드의 노랫소리에 묻힌 것만 같아서, 히자시는 조금 더 크게 힘주어서, 개성이 덧씌워지지 않도록 조심히 소리 질렀다.

"좋아!"


시라쿠모가 웃으며 히자시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들은 축축하게 젖은 몸을 말리도록 돕는 개성을 펼치는 스태프의 사이로 걸어갔다. 받아든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 닦으며 시라쿠모는 흥분감에 가득 차 웃었다. 몸은 대충 말리고 빨리 롤러코스터 줄을 서자며 히자시를 이끄는 시라쿠모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귀를 쿵쿵 때리는 소리가 그치지를 않았다. 그 소리는 시라쿠모의 입에서 떨어진 말 하나에 그쳤다.

"아, 재밌다. 쇼타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히자시는 일정한 박자로 귀를 두드리던 소리가 쿵 하는 큰 소리를 내는 걸 분명히 들었다. 심장이 조금 조여들었다. 히자시는 왜 자신이 서운함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알았다. 히자시는 시라쿠모와 단둘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시라쿠모가 아이자와 생각을 하는 게 서운했다. 시라쿠모는 우리 둘만 있는 게 재미있지 않은 걸까? 히자시는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래도 둘이서 이렇게 노는 것도 좋은데."

히자시가 말했다. 히자시는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단짝친구가 다른 친구와 노는 걸 서운해하는 유치원생처럼 굴었다는 걸 깨달았다. 히자시는 귀가 화끈거렸다. 앞서가며 그를 이끌다가 뒤를 돌아보는 시라쿠모의 눈이 둥그러졌다.

"아―아니, 왜냐면,"

히자시는 더듬거렸다. 히자시는 선글라스를 다시 쓴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큰 선글라스가 붉게 달아오르는 뺨을 어느정도 숨겨주었을 것이다. 히자시는 자기자신을 변호하고 싶었다. 시라쿠모는 너무 좋은 애고, 또 너무 재미있고 잘 맞는 친구니까, 이 애랑 단둘이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괜한 질투심이 불쑥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랑 아이자와는 학교에서 자리가 가까우니까 둘이 같이 있는 시간 많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둘만 있는 거 오랜만이라 좋아서……, 아이자와랑 같이 왔으면 놀이기구 더 많이 탈 수 있었을 텐데 아쉽~! 쇼짱을 개성 지우기 셔틀로 쓸 수 있었을 텐데~!"

히자시가 뒤늦게 목소리를 높이며 킬킬거려 웃었다. 하지만 이미 억지로 올리는 입꼬리는 조금 떨리고, 시라쿠모는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히자시는 쪼잔하게 군 자신이 싫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친구 말고 나랑만 놀아달라고 징징거리는 건 유치한 짓이었다.


시라쿠모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곧, 그의 주먹이 툭툭 아프지 않게 히자시를 때리더니 그의 팔이 히자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미처 다 말려지지 못했던 시라쿠모의 옷이 히자시의 등을 물들여갔다.

"뭐야! 하하, 그게 서운했었어?"

가까워진 시라쿠모의 시원한 숨이 히자시의 뺨을 간질였다. 히자시의 얼굴이 화끈화끈해졌다.

"서운한 거 아니거든!"

"미안해애, 삐치지 마~"

시라쿠모가 애교를 부리며 히자시에게 기대었다.


"안 삐쳤다니깐~!"

"내가 네 자리 자주 갈게! 오구오구, 우리 히자시, 그게 서운했구나."

"시끄러워~!"

히자시가 시라쿠모의 얼굴을 밀어냈다. 시라쿠모가 하하 웃으면서 저의 얼굴을 짓누르는 히자시의 손을 잡아 왔다.

"나도 히자시, 너랑 단둘이 노는 것도 너무 좋아. 재밌어. 미안해, 서운하게 해서~ 하지만 알잖아, 내 마음."

시라쿠모가 히자시의 손을 잡고 앙탈을 부려댔다. 히자시는 시라쿠모가 사과할 수록 자신의 쪼잔함이 더 강조되는 것 같아 괜히 시라쿠모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시라쿠모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펄쩍펄쩍 뛰어댔다. 이내 시라쿠모가 다시 웃으며 히자시를 향해 손짓했다.


"빨리빨리 롤러코스터 타러 가자. 퍼레이드 끝나서 사람 많이 몰릴 테니까."

"나 타다가 소리 질러도 몰라~"

히자시가 툴툴거리듯이 말했다. 그러면 시라쿠모가 웃었다.

"괜찮아, 아까도 말했잖아. 내가 손잡아줄게."

히자시는 폐 깊숙이까지 숨을 들이마셨다. 바쁜 걸음으로 사람들의 비명이 터지는 롤러코스터의 방향으로 뛰듯이 걸어가며 히자시는 시라쿠모를 불렀다. 어쩐지 조금만 더 유치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담아서.


"그래도, 오보로, 내가 네 베프지?"

시라쿠모가 다시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러다가 그 애가 웃었다.

"그럼 그럼~! 히자시가 최고지~"

"예에~ BFF~"

시라쿠모가 히자시에게 어깨동무를 걸어오면 이번에는 히자시가 시라쿠모에게 치대었다. 살랑살랑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감각에 히자시는 기분이 좋아졌다.


시라쿠모가 내가 최고의 친구래.

히자시는 이를 드러내며 킬킬거려 웃었다. 말뿐이라도 좋았다. 이렇게 해두면 다음 주 학교에서 다시금 수업 시간에 아이자와에게 쪽지를 건내며 장난치다가 선생님에게 꿀밤을 얻어맞는 시라쿠모를 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말뿐이래도, 저 자신이 시라쿠모의 중요한 파편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 받는 게 히자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래서 히자시는 시라쿠모의 손을 꼭 잡고, 내가 무서워서 아프게 쥐어도 손 놔주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두둥실 떠오르는 것만 같은 다리로 폴짝폴짝 뛰어 롤러코스터의 대기줄로 향했다.


    ✼ ☀️


학생들이 하교한 학교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그런 외로운 학교에 남은 선생들이 있는 교무실에서는 이것저것 이야기가 오가기 마련이었다. 그 이야기 주제는 학업에 부진한 학생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논의하는 건전한 것부터 최근 스캔들로 뜨거운 히어로의 문란한 성생활이라는 망측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크르르… 크르… 이것들… 꼬마들 연애 금지 시켜야 한다고…… 크르르,"


뜨거운 청춘의 학생들이 서로 눈이 맞는 일이야 흔한 일이었으나, 유에이가 전원 기숙사제로 바뀐 이상 선생이란 작자들은 뜨겁게 불붙은 청춘들이 교내에서 엄한 일을 벌이지 않도록 단속할 필요가 있었다. 그에 따라 하운드독이 사람의 말을 잃어가면서까지 교내에서 학생들의 연애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에이, 금지하면 오히려 더 할걸요?"

13호가 손가락을 세워 말했다.

"원래 애들은 하지 말라면 더 하잖아."

시멘터스도 동조했다.

"교내 연애 금지까지는 동의하지 않아도 하운드독이 하고 싶은 말이 뭔진 알겠어. 애들이 머리에 열올라서 멋모르고 하는 짓 때문에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 역할 아닌가?"

이번에는 스나이프가 하운드독을 두둔하고 나섰다.


"멋모르고 하는 짓이라니! 그건 애들을 너무 무시하는 발언이야! 청춘의 사랑! 그것만큼 순수하고 또 진심인 게 어딨겠어?"

미드나이트가 큰 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서포트 도구인 채찍을 휙휙 휘두르기까지 했다.

"글쎄…… 그 나이에 자기 감정을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는 애가 몇이나 되겠어? 그러니까 괜한 불장난으로 사고치지 않도록 돕는게 우리 교사의 역할―,"

"그건 무슨 소리야! 들끓는 청춘에, 들끓는 사랑! 그걸 불장난으로 치부하다니!"


스나이프의 말에 미드나이트가 자신이 모욕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채찍을 휘둘러댔다. 그의 옆자리인 올마이트가 몸을 웅크렸다. 미드나이트의 채찍이 아슬아슬하게 올마이트의 더듬이를 스쳐지나갔다. 스나이프가 미드나이트를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연애하던 애들 중에 졸업하고 지금까지 사귀고 있는 애들 손에 꼽잖아. 괜히 이성이라고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라니까."

"크르르…… 그러니까 애초에 교내 연애 금지 해야만…… 크르르……"

"넌 어떻게 생각해, 이레이져?"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미드나이트가 길길이 날뛰기 전에 스나이프가 그들의 편을 들만한 사람을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자와가 얼굴을 찡그리며 쯧하는 소리를 내었다.


"애들 맘이 진짜든 착각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애초에 연애를 왜 해, 연애를 하긴. 시간이 남아 도나 보지? 연애할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더 하라고 해, 좀."

아이자와가 신랄하게 말했다. 그는 지난 시간 A반의 쪽지 시험 위로 가차 없이 빗금을 그어대고 있었다.

미드나이트는 아이자와의 차가운 말씨에 주눅이 들어 묵비권을 지키게된 선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편을 들만한 사람을 찾아 고개를 휙휙 돌렸다. 그리고 그런 미드나이트의 눈에 들어온 건 의자에 기대듯이 누워 있는 마이크였다. 답지 않게 오늘따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야마다, 아니, 마이크 너는 어때?"

질문의 방향이 마이크에게 쏠렸다. 마이크는 기대듯이 누워있는 의자에서 조금도 몸을 일으키지 않고 있었다. 이제껏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마이크의 눈이 떠졌다. 그의 선글라스 위의 교무실 창 너머로 푸른 하늘이 일렁였다. 마이크가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글쎄, 스나이퍼 말이 맞는 것 같은데, ……그 나이에는 멍청해서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들 하잖아."

마이크가 담담하게 말했다. 누구보다 신나서 예에~ Baby들의 Love라고 무시하면 안 되지~ 하며 미드나이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던 마이크가 심드렁하게 답하자 미드나이트는 잔뜩 골이 올라 하이힐을 바닥에 딱딱거려댔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사랑을 믿지 않는 두 사람 납셨군. 사랑을 모르는 너희는 불쌍해!"

미드나이트가 아이자와와 마이크에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곧 미드나이트의 목소리가 흥분감으로 달아올랐다.

"난 말이야~ 그 풋내나는 마음이야말로 청춘의 절정이라고 생각해~ 아아, 다른 모든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딱 '좋다'라는 마음 하나에만 이끌려서 하는 그 모든 유치한 일들을 생각해봐~ 정말 최고야~"

미드나이트가 몸을 비틀어대는 동안, 다시금 교무실에 열띤 토론이 불붙었다.


그래서 여전히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창문 밖의 하늘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하는 마이크의 말을 듣는 건 옆자리에 앉아있는 오랜 친구뿐이었다.

"그래서 사랑을 우정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짝사랑 자각 못한 채로 시라쿠모와 놀이동산에서 첫데이트하는 히자시로 재해석해부렸습니다. 후후... 리퀘에서 조금 벗어난듯 싶지만 마음에 드셨길 바랍니다. 후후후. (책임감=0

글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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