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희가 발견되었던 창고가 호부 관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이 커졌다. 어찌되었건 호부상서의 딸인 양예진은 오기숙이 말했던 대로 금자희가 없는 경우 유력한 태자비 후보였으며, 문초를 이어가자 궁녀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양 소저가 태자비가 되면 하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형부로 끌려온 양예진은 서운이 보았던 것과 같은, 간택 때와는 딴판인 맑은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헸다.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정당히 간택에 임했다 맹세할 수 있소. 이는 나도, 나를 가르친 나의 부친도 마찬가지일 것이니 어찌 납치와 같은 혐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오?"

"이미 많은 이들의 증언이 있어 죄인을 압송하기로 결정이 난 바이니 소저는 묻는 바에 바로 답해야 할 것이라."


오기숙은 양예진이 상서의 딸임을 알면서도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예진은 참으로 아는 바가 없었다. 아버지와 미리 오간 말이 있었는지, 어떤 경로로 궁녀들의 약점을 알아내었는지, 허계림과는 어떻게 연락하였는지 등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예진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평문(平問)*으로 신문을 이어가던 오기숙은 곤란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내 그대의 신분과 부친의 직위를 참작하여 묻고 있으나, 이것도 저것도 다 모른다 하면 어찌 조사가 진행되겠는가.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바른 대로 고하라."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니 이 어찌 바른 답이 아니겠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사건에 관련된 바가 없어 아는 것도 없소."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군. 형리, 양예진을 도로 데려가라. 허계림에 대한 심문을 마치고 도로 이어가겠다."


양예진은 그 흔한 억울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의 뜻에는 아무 부끄럼 없다는 듯 형형한 눈을 하고 옥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이어 뜰에는 허계림이 나왔다.


"계주후 허상달의 딸이며 이번 태자비 간택에 참가한 허계림이 맞는가."

"그러합니다."


허계림은 후보들 중에서도 비교적 나이가 있는 인물로서 형부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다만 계림은 곧장 궁녀들의 자백에 대한 혐의를 인정했다.


"예. 제가 사주를 맡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서주후와 사이가 나빠 금 가(家)에서 태자비가 나오는 일만은 막아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다만 매수에 필요한 물자는 양예진의 수행원들로부터 전달받았으니 제가 아는 한 호부와 양 소저가 이 사건에서 관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방금 전과 반대로 술술 진행되는 신문에 오기숙은 또 착잡한 모양이었다. 형부의 관리란 이래도 저래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직종이었다. 


"이것이 어떤 죄임을 알고서 그리 순순히 말하는 것이냐."

"압니다. 경우에 따라 태자 전하와 황후 마마를 기만하는 사건으로도 죄가 청구될 수 있는 일. 심각한 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한데 어찌 그토록 쉬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털어놓는 것인지 오기숙은 묻지 않았다. 죄인의 사사로운 사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직무 밖의 일이었다. 


그 밖에도 허계림은 사건에 관련된 내용을 더 털어놓아, 호부에서 방조(幇助)에 몫을 한 계사(計士)와 서리들이 잡혀 들어오는 한편 궁녀들과 양예진의 대질 심문도 있었다. 사건에 관련된 궁녀들과 양예진의 말이 맞지 않는 것이 주된 문제였다. 궁녀들은 예진이 계략이 성공하면 추후 더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거나 금품을 쥐어주었다거나, 금자희가 자리를 뜨는 시점을 남몰래 일러주었다는 등 구체적인 상황을 들어 고발했는데 예진이 이 모든 혐의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바람에 결국은 형구를 쓴 신문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서운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수심이 깊어 보였다.


"사건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번지는 것 같습니다."


은완궁의 주인인 3황녀 현상아가 물었다. 


"양 소저를 만나 본 적은 아직 없으나,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그저 됨됨이를 보았기 때문이라 저도 증거는 없습니다만……. 이런 일에 어떤 증거가 있고 또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풀 죽은 목소리에 상아는 조금 그를 달래는 듯한 표정으로, 


"됨됨이라는 것이 하루이틀만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요. 나도 태자의 됨됨이를 온전히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러나 저도 서 대장과 같이 생각해요. 양예진은 이 일을 모릅니다."


오늘 영녕은 자리에 없었다. 여전히 외부인 신분인 영녕과 달리 황궁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세 사람은 최근 태자비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이렇게 종종 은완궁에서 약식으로 만나곤 했다. "그것은 어째서지요?" "수 해를 두고 보아도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있는가 하면, 첫눈에 알 수 있는 사람의 모습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검을 좀 휘둘렀다고 하나 곱게 자란 양 소저가 형부의 추국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시작부터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요."


현상아가 다시 궁녀를 물리고 말 전달을 해연에게 맡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택 후보가 실종되었다고 한다면 본래는 그를 빼고 진행이 되었어야 하는 일이고, 그러면 금자희를 잠깐 붙잡아 놓는다는 그들의 계략은 쉬이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모황께서는 너무도 쉽게 간택을 미루셨지요. 사건은 여기부터 시작한다고 봅니다." 


"금자희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으며, 오히려 그에 반하는 행위를 뿌리뽑겠다는 계략일까요. 계주후만 안타깝게 되었군요. 백방으로 뛰며 딸의 구명을 도모하고 있다는 듯한데. 돈이 많이 들겠어요."

"모황과 태자의 의중이 미리부터 정해져 있었다고밖에는……."


상아도 곰곰 생각하는 듯했다. 은완궁은 꽃보다는 잎이 드리우는 식물이 많아 마루에 나뭇잎 그늘이 들고 있었다. "영녕군주는 어디 계신답니까?" "이야기를 듣더니 호부로 직접 방문해 보셔야겠다며……. 언니, … 아니, 군주를 불러올까요?" 


호칭 혼동에 대해서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러는 게 좋겠어요. 황녀님과 저는 상황을 해석하고, 서 대장은 소식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지만, 실제 행보라는 수(手)를 놓는 것은 우리 중 군주뿐이시니." 





영녕은 궁 밖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영녕은 궁 안에서도 중요한 곳에 있었으며, 그런데 영녕의 동료는 지금 한두 명뿐이 아니었다. 십 수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와 같이 숨어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하, 태자 전하, 통촉하옵소서! 제발 제 딸자식을 어찌 부탁드립니다!"


황궁 동쪽에 있는 태자궁에는 저지하는 궁인들을 뚫고 들어온 호부상서가 태자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걸하고 있었다. 동궁이 떠나가라 외치는 소리에 주변 궁인들이 다 나와서 쳐다볼 정도였으며, 그 중에서는 영녕과 같이 아예 호부에서부터 따라온 사람들과 호부상서 양춘만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관복을 잡고 뛰었다는 소식에 이끌려 온 사람들, 이 일이 어떻게 되어 가나 눈치를 보는 태자궁의 사람들까지 조금씩 모여 한바탕 무대를 이룰 정도였다. 


"네 잘못으로 일어난 일을 어찌 내가 사사로이 되돌릴 수 있겠느냐. 물러가라 했다."

"이 나라의 대계를 이으실 태자 전하께서 어찌 사사롭다는 말씀을 하시옵니까? 전하의 말씀이 곧 나라의 일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전하, 지금 제 딸이 형부에서……."

"무슨 사정인지라면 몇 번이나 들었다. 골이 울리는구나. 나는 이만 들어가겠다."

"전하!"


양춘만은 도로 궁 안으로 들어가려는 태자 앞으로 반 바퀴를 돌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박았다. "신이 태자 전하의 뜻에 응하여 호부에서 일한 것이 몇 해째인데 이리 쉽게 신을 내치시나이까. 전하……." 


그 말에는 태자의 미간이 찌푸러졌다. "내 뜻? 무슨 뜻 말이냐. 호부는 오부의 하나에 속하는 기관으로 마땅히 나라의 살림을 꾸리는 일을 해야 할 뿐." "전하께오서 일전에도……." "……."


태자의 발걸음이 멈추고 그 허리가 숙여져 양춘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네 지금 어디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냐." 싸늘한 목소리가 등줄기를 저릿하게 만들 정도였다. 우뚝 굳었던 양춘만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태자에게 탄원을 시작했다. "하오나 전하, ……." "여기는 보는 눈이 하도 많아 안 되겠다. 네가 온갖 난리를 치는 바람에 지금 태자궁이 아주 저잣거리의 마당보다 더해지지 않았느냐." 휘적휘적 돌아 들어가는 걸음을 양춘만은 엉거주춤 일어서서 쫓았다. "전하, 신이 말씀드릴 것은 하나뿐이옵니다……."


"그렇다고 한다."


라고, 은완궁에 돌아온 영녕군주는 태자궁에서 있었던 일을 아주 상세히 세 사람에게 털어놓았다. "양춘만이요." "호부상서가요." "양 소저의 부친이……."


"그래, 다 같은 말이야." 


자리에 앉은 영녕은 상에 귤차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잔을 밀며 말했다. "언니, 저희밖에 없어서 그랬는데 다른 차를 가져올까요?" 서운이 눈치없이 물었다. "됐다. 매번 3황녀께 손님 접대를 시켜 드리기도 이제 번거롭지." "물이라도 한 잔 드시라고 해요." "알겠습니다."


상아가 궁녀를 불러 새 차를 내왔다. 각상을 받은 영녕은 시중을 사양하며 직접 마시겠다고 물리고, "그리고 이는 금정기가 이번 사건에 대해 엄벌을 원한다고 천자께 탄원을 올렸기 때문이라고 하네. 그 소식이 들리자마자 발바닥에 불이 붙은 것처럼 태자궁으로 달려갔던 모양이야."


"덕분에 호부와 태자 간의 유착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지만요."

"태자로서는 탐탁지 않은 상황이겠는걸."


영녕의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줄곧 재미있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해연과 상아가 한 마디씩 더했다. 그리고 해연은 조금 더 진지한 얼굴이 되어, "서주후도 이참에 세력을 꽉 잡으려는 모양이에요. 사실 태자비 간택 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 봐야 금 낭자가 하루쯤 창고에 갇혀 있었던 것뿐, 이렇게까지 커질 것도 없는데, 다들 딸을 핑계로 정치적인 술수를 부리는 게지요."


"모황과 태자의 뜻이 정해져 있으리라고 조금 전에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하면 그들은 서주후의 손을 잡고 반대편을 내칠 모양이로군. 오히려 그쪽으로서는 반길 일일지도 몰라. 마침 빌미가 될 사건을 제공해 준 것은 허상달과 양춘만 쪽이 아닌가." 

"그러면 양춘만의 탄원이 먹힐 가능성은 없겠군요."


군주께서는 그 둘이 태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셨다 했으나……. 해연이 이야기하는 동안 서운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면, 호부상서가 무릎을 꿇어도 안 된다면 양 소저의 구명은 어찌되는 것입니까?" 


"맞는 사람에게 가서 무릎을 꿇어야지요." 하고 해연이 말했다가 상아의 손짓을 보고 동시에 웃었다. "뭐라 하셨기에?" "옳은 사람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옳은 사람이라면?"

"글쎄요. 아무래도 실세가 되는 이……. 금정기나, 하지만 금정기는 안 될 거예요. 차라리 그쪽에서 미는 다음 호부상서 후보가 있겠지요. 태자는 양춘만을 받아 주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

"글쎄요, 황제 폐하?"




평문 : 형구를 쓰지 않고 죄인을 신문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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