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백포함 13,073자~

~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내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지고 늦어져서 나눠서 올립니다ㅠ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랑 해피 뉴이어 하셨나요...? 그러셨으면 좋겠네요.... 올해도 저랑 같이 드림 먹어주실거죠....? ~




"너희는 받고 싶은 선물 있어?"


잔뜩 들뜬 목소리의 듀스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다음 수업을 받을 교실로 가는 복도 한 가운데에서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얼떨떨해진 감독생이 대꾸할 말을 생각하는 사이에 에이스가 먼저 대답했다.


"난 새로운 운동복! 지금 입고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새 거가 있으면 좋겠어."

"그래? 난 야구배트!"

"이미 하나 갖고 있잖아?"

"그게 말이지, 얼마 전에 있는 힘껏 휘둘렀더니 완전히 찌그러져 버렸거든."

"알루미늄 배트가 말이지...?"

"응, 그래서 이번엔 나무로 된 걸 갖고 싶어! 올해엔 착하게 지냈으니 자신있다구."


제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치며 자랑스레 고개를 들어보이는 듀스의 말에 그제서야 감이 잡힌 감독생이 아, 하고 소리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얘기하는 거구나?"

"그럼 무슨 얘기겠어?"

"그런데 우리는 지금 기숙사에서 지내잖아."

"... 그래서?"

"부모님이 안계시는데 선물을 어떻게... 아, 택배로 보내주시나?"

"너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말하는 에이스 때문에 감독생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야기가 도통 맞물리질 않아서 대화가 몇 번이나 같은 자리만 뱅글뱅글 돌고 있을 때, 듀스가 뜻밖의 해답을 주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러 오시잖아!"

"뭐...?"


허리에 손까지 얹어가면서 산타의 존재에 대해 말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 해답을 들어도 감독생의 머릿속 전구는 불을 켜지 못했다. 산타라니? 그들은 십대 중반의 청소년이었다. 이르면 유치원생 때, 아무리 늦어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보통 산타는 부모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도 산타를 언급하는 두 사람을 보자, 감독생의 뇌는 잠시 생각하는 것을 멎을 정도였다.


"어이, 너희들. 곧 선생님이 오실거야."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에 벌써 교실에 도착해버렸다. 그들에게 말을 걸어준 반 친구의 말대로 대화를 뒤로 미루고 먼저 자리를 잡고 앉기로 했다. 곧 수업이 시작했지만 두 사람이 감독생에게 안겨준 의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서 노트 귀퉁이에 빨간 모자를 쓰고 구름처럼 풍성한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를 그리다가 몇 번 선생님에게 들킬 뻔 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두 사람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산타는 정말로 존재하며 한 해의 마지막 달, 그 중에서도 25번째 밤이 되면 선물을 아이들의 머리맡에 두고 간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듯한 얼굴이어서 감독생은 '이 세계에서는 정말로 산타 할아버지가 존재하는구나', 하고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이 세계에 온 뒤로 상식 밖의 일 때문에 일일이 놀라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


산타 할아버지라, 감독생은 그녀의 첫 동심이 깨졌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녀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찾아온 산타 할아버지는 부직포로 만든 것처럼 어색하고 뻣뻣한 산타복을 입고 있었고, 아이들에게 우유맛 사탕을 주곤 했던 어린이집 원장님과 너무 똑같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바람에 아이들 모두가 진실을 깨닫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었다.


어릴 적 생각을 하니 괜히 향수가 느껴졌다. 지금 이 세계에서, 옴보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에게도 산타가 찾아온다면 어떤 선물이 줄까? 기숙사로 돌아와서 한참을 생각해봤지만 도통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노트에 적다가 펜으로 직직 그어서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최근에 옴보로 기숙사의 보수도 그녀의 손으로 전부 끝냈으니-완벽하진 않지만 대충 먹고 자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정도다.- 자재도 필요없고,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교복은 너무 커서 소매와 바짓단을 두 번 정도 접어야 하긴 했지만 산타 할아버지에게 부탁하기엔 너무 꿈도 희망도 없는 선물인 것 같았다.


"후아암... 부하, 아직도 고민 중이냐구."

"응. 그림 너 먼저 잘래?"

"그래... 빨리 자지 않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안 올 수도 있... 하암."

"알았어. 나도 빨리 잘게."


그림은 감독생의 옆에서 조그만 손으로 끄적끄적 적은 메모지를 머리맡에 두고는 베개 위에 폭, 하고 고개를 파묻었다. 곧 고롱고롱하고 코 고는 소리가 들리자, 호기심이 든 감독생이 슬쩍 종이를 펼쳐보니 "엄청나게 큰 참치캔이 갖고 싶 다구 습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이건 그냥 식욕이잖아. 키득거리며 메모지를 원래대로 접어서 제자리에 둔 감독생은 그림과 같이 잘 생각으로 불을 끄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 선생님?"


이 야밤에 침실을 찾아온 불한당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소리도 없이 열린 창문 너머에서 들어온 것처럼 크루웰은 한 쪽 다리를 창틀에 걸친 채로 그림의 메모지를 집어가려는 듯한 자세로 굳어있었다. 갑작스러운 침입자에 놀란 나머지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녀가 더듬거리며 적당한 말을 찾으려던 순간, 크루웰이 먼저 당황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안자고 있는거지?"

"예? 지금 시간이... 대체 어느 고등학생이 9시에 자고 있겠어요?"


시계를 보며 아직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한 감독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잠시 굳어있던 크루웰이 이내 이마를 짚으며 탄식했다. 그리곤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작게 헛기침을 하던 그는 여전히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감독생에게 말했다.


"그래, 너는 다른 세계에서 왔었지..."

"그게 무슨 문제라도...?"

"크흠, 네가 살던 세계에 크리스마스는 있나?"

"그럼요."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 이 세계에서는 크리스마스 기간에 아이들 모두 일찍 잠들지. 그리고 어른들이 선물을 챙겨주는거야."

"아...?"


감독생은 그제서야 머릿속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얘네가 정말로 산타를 믿고 있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뭐랄까, 되게 훈훈하고 좋은 전통이네요."

"네가 살던 곳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없는 건가?"

"있긴 한데... 좀, 존재 자체가 이미지인 분이라고 해야 되나..."


산타 마을이 있는 곳이 노르웨이였던가? 아니면 핀란드? 이전에 들어봤는데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이마를 손가락으로 콕콕 두드렸다. 아예 방 안으로 들어온 크루웰은 창가에 걸터앉아서 몸을 앞쪽으로 기울였다.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제법 흥미로운 듯한 얼굴이었다.


"그럼 아이들의 선물은 누가 챙겨주지?"

"보통은 부모님이 챙겨주시죠. 그러다가 가끔 허술하게 실수해서 들키게 되면 애들은 자연스럽게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깨닫고, 뭐 그런거죠."

"그래? 어른들이 챙겨준다는 건 똑같군."

"그럼 여기에서는 선생님들이 챙겨주시는 거에요?"

"그렇지. 그래서 학생들이 뭘 원하는지 적은 종이를 머리맡에 두고 자면 우리가 준비를 하는 거지. 학비에 크리스마스 선물비도 포함되어있거든."

"오..."


다른 문화에 대해서 순수하게 감탄하던 감독생을 향해 크루웰이 수상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감독생이 이 세계에서 깨닫은 교훈 중 하나는 본능이 위험하다고 외칠 땐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왠지 또 사건에 휘말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긴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온 크루웰이 순식간에 벌어진 거리를 따라잡았다.


"잘 됐군. 네가 있으면 일이 줄어들겠어."

"무, 무슨 일이요...?"


감독생의 어깨를 껴안은 크루웰이 흑백의 지시봉을 한 번 휘두르자, 순식간에 바닥과 천장이 위치를 바꾸며 빙글 돌더니 공간이 변해있었다.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다른 곳에 와버린 감독생을 기다리고 있는 건 책상 위에 가득 쌓인 메모지와, 그 메모지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느라 눈 아래에 그늘을 가득 드리우고 있는 선생님들이었다. 


"크루웰 선생님? 감독생 군은 왜 데려오셨나요?"


가면 위로 미간을 꾹꾹 누르고 있던 학원장이 물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그의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선생님들도 그와 똑같은 질문이 하고 싶은 듯, 가만히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크루웰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에 좀처럼 힘을 빼지 않은 채로, 입술을 가느다랗게 늘리며 웃어보였다.


감독생이 조심스럽게 크루웰을 올려다보자, 그가 보기 드물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돌프가 되어줘야겠다, Puppy."


... 루돌프든 Puppy든, 둘 중 하나만 하면 안될까요.


-----


그녀가 맡은 임무는 간단했다. 아직 갖고 싶은 선물을 적은 종이를 머리맡에 두고 자지 않은 학생들을 찾아가서 갖고 싶은 게 뭔지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학생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는 곧 다가오고, 선물을 준비할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다는 재촉 때문에 감독생은 그 다음날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젯밤, 선생님들은 이미 파악된 선물을 샘에게 주문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면서 그녀에게 매달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말았다.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그림에게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기숙사를 나온 감독생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하츠라뷸이었다. 에이스와 듀스를 따라 가끔 오곤 했기 때문에 하츠라뷸의 기숙사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감독생을 보고 인사했다. 감독생도 태연하게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정원으로 걸어갔다.


분명히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원을 산책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오늘도 그가 이 곳에 있기를 바라며 정원에 난 길 위를 걷고 있는데, 코너를 돌려는 순간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사람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코를 박고 말았다.


"아야!"

"앗, 조심... 감독생?"

"어엇... 조, 좋은 아침이에요! 리들 선배!"


마침 그녀가 찾던 사람이었다. 얼얼한 코를 붙잡으면서도 밝게 인사하는 감독생을 보고 리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른 아침인데도 몸가짐을 깔끔하게 끝낸 듯한 리들은 조금 뻗쳐있는 감독생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돈해주며 말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하츠라뷸에는 무슨 일이야? 에이스랑 듀스라면 아직 준비 중일텐데."

"어, 오늘은 선배님을 보러 온 거에요!"

"나를?"


자신을 가리키며 두 눈을 크게 뜨고 깜빡거리는 리들의 모습에 감독생은 그제서야 몰래 이 임무를 수행해야 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다급해진 감독생은 두 손을 휘저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그게, 선배님이 아침에 산책하신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저도 오늘 모처럼 일찍 일어났는데 좀 걷고 싶어서요..."

"그래? 혼자 걷기 적적했는데 나야 환영이지."


리들은 생각보다 더 흔쾌히 감독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리들과 단 둘이 있는 것은 처음이라 괜히 어색해진 감독생은 그와 보폭을 맞춰 걸으면서 그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입학식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난동을 부리던 그림을 향해 차갑고 엄격한 얼굴로 초커를 채우던 모습과 비교해보면 한층 부드러워진 얼굴이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


생각해보면 리들과 편하게 대화를 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마저도 옆에 늘 다른 사람이 함께였기 때문에 몇 마디 나눠봤을 뿐, 그녀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어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감독생을 반갑게 여겨준 리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애써 밝은 척 연기하며 물었다.


"선배님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정하셨어요?"

"나? 나는... 아직이야."

"그래요? 에이스랑 듀스는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어서 제가 다 지칠 지경이에요."

"하하하, 그 둘은 뭘 갖고 싶대?"

"새로운 운동복이랑 야구배트요. 나무로 된 거."

"그렇구나."


그녀가 애써 말을 꺼냈지만 대화가 얼마 이어지지 못하고 끊기고 말았다. 왠지 말을 아끼려는 듯한 리들의 기색에 감독생은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의 얼굴을 살펴봤지만 크게 난감해보이지는 않았기에, 한 번 더 용기를 내기로 했다.


"혹시 제가 쓸데없는 질문을 했을까요...?"

"아, 그런 게 아냐."


어색하게 발걸음만 옮기던 그가 걸음을 멈췄다. 덩달아 같이 멈춰서서 가만히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잠시 머뭇거리던 리들이 이내 말을 이었다.


"사실은 지금까지 머리맡에 적어둔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

"... 네?"

"매년 다른 걸 적어봐도 지금까지 쭉, 크리스마스 날 놓여져있던 선물은 전부 딸기 타르트였어.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굳이 따로 머리맡에 종이를 두지 않고 있어."

"왜... 왜 그럴까요?"

"분명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라서 그렇겠지."

"설마, 아닐 거에요!"

"... 이번에는 오버블룻도 일으켰으니, 선물은 못 받을 게 분명해."


정원의 장미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쓸쓸해보였다. 이 학교에 오기 전까지 그에게 선물을 챙겨주던 사람은 아마 그의 부모님일텐데, 어째서 선물을 매번 똑같은 걸로 줬을까? 감독생은 의문이었다. 물론, 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가 딸기 타르트라고 저번에 트레이에게 들은 적이 있긴 했다.


"리들이랑은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인데, 보는 내가 다 답답할 정도로 모든 걸 통제하는 분들이셨어."

"그 정도였어요?"

"응, 같이 놀자고 꼬셨을 때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몰라."


트레이를 도와 티파티를 준비하면서 나눈 대화였다. 그의 말대로 어린 시절부터 노는 것도, 먹는 것도 전부 정해진 대로만 해야 했던 리들이라면 그가 오버블룻을 일으킨 이유도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보통 부모가 아이를 지나치게 통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 이유는 아이가 너무 말을 안들어서, 두번째 이유는 아이가 너무 말을 잘 들으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감독생은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 선배님은 항상 식단도 엄격하게 지켰다고 하셨죠?"

"응? 아, 맞아. 그랬지."

"그럼 산타 할아버지는 선배님이 제일 좋아하는 게 딸기 타르트란 걸 알았기 때문에 그걸 줬던 게 아닐까요?"

"뭐?"

"크리스마스 날 만큼은 좋아하는 걸 마음 놓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 그래서 그걸 선물로 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생은 리들의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하지만 오버블룻을 겪기 전에 항상 타인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하게 굴었던 리들을 생각해보면, 아들을 아주 엄하게 키우는 사람들일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이라도, 크리스마스에는 다른 여느 부모님들처럼 아들에게 무슨 선물을 해줄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선물로는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걸 주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기숙사장으로써 서툴렀던 리들처럼, 훈육하는 부모가 아니라 사랑을 주는 부모의 역할에는 서툴렀던 그들도, 마냥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니 선물로 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것이 감독생의 결론이었다.


"기억해보세요. 매년 크리스마스에 먹었던 딸기 타르트, 맛이 어땠어요?"


리들은 감독생의 말에 홀린 듯이 기억을 더듬었다. 원하던 선물은 아니었으니 당연히 실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머리맡에 놓인 상자 속 타르트 위에 놓인 딸기는 언제나, 그 해 겨울에 나온 딸기들 중에서 가장 잘 익은 것만 고르고 또 고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난히 새빨갛고 커다랬던 것이 떠올랐다. 눈 앞에 떠오른 딸기의 색깔과 함께 그 때 먹었던 타르트의 맛이 혀 끝을 스쳐지나갔다. 잠시 멍하게 있던 리들은 꿈을 꾸는 사람처럼 다소 몽롱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주... 아주 달았지. 평소에 먹던 것보다 훨씬 더."


그 대답에 감독생은 어떤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잠든 아들의 머리맡에 타르트를 두기 위해 깨끔발로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오는 두 어른의 모습을.


리들이 산타를 아직까지 믿고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의 부모님이 그에게 준 사랑의 증거였다. 


"선배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 거에요. 선배는 그 누구보다도 하트 여왕님의 의지를 잇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요."

"그럴까?"

"그러니까, 올해엔 한 번 적어봐요. 혹시 알아요? '이제 딸기 타르트는 질렸어요! ' 라고 적으면 다른 선물을 줄지?"


제 앞머리의 중앙 부분을 잡고 두 갈래로 나눠지게 한 뒤 리들을 흉내내며 말하는 감독생의 모습에 리들도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참을 소리내어 웃던 그는 잠시 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감독생에게 말했다.


"그럼 올해에 크리스마스에는 한 번 적어볼까?"


1차 임무, 성공의 순간이었다.


-----



리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 성공한 감독생은 뿌듯한 마음으로 아침 수업을 들으러 갔다. 마침 수업에 들어온 트레인이 힐끔 감독생을 쳐다보기에 당당한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우자, 트레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모른 척 수업을 이어나갔다. 자, 다음은 누구한테 가볼까? 학년과 수업시간이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려니 시간이 한참 모자라서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감독생은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아직도 잠이 덜 깬 듯이 하품을 하는 에이스에게 노트를 찢어 만든 쪽지를 툭 던졌다. 에이스는 잠시 의아한 얼굴로 감독생을 쳐다보더니 이내 책상 아래로 손을 내려 쪽지를 펼쳤다.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게 눈동자만 아래로 내려서 글을 읽은 에이스는 몰래몰래 대화를 이어나갔다.


[에이스. 오늘 너네 농구부에서 연습해?]

<응. 연습 경기 간단하게 할 것 같은데.>

[그럼 나 구경하러 가도 돼?]

<그래 뭐. 안될 것도 없지.>


긍정적인 대답에 감독생이 에이스를 향해 싱긋 웃었다. '고마워' 하고 소리없이 입만 벙긋거리곤 다시 수업에 집중하는 감독생이었지만 에이스는 왠일로 그녀가 구경을 오겠다고 하는지 의문이어서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를 쳐다보던 에이스는 평소와 다르게 들뜬 감독생의 모습이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시기는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느라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이름이 불린 몇몇 학생들이 선물을 받지 못할까봐 선생님들이 준 깜지 쓰기 숙제를 열심히 하는 때이기도 했다.



-----



에이스를 따라 농구부가 연습하는 체육관으로 오자마자 묵직한 팔이 감독생과 에이스의 어깨를 감쌌다. 켁, 하고 목이 졸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조였다. 두 사람이 그의 팔을 탁탁 칠 때까지 계속 조이고 있던 그가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작은 새우쨩이잖아~. 농구부는 왠일이야?"

"아, 하하... 플로이드 선배."

"게쨩이 데려온거야?"

"네... 구경해보고 싶다고 해서, 으엑."


마무리로 두 사람의 목을 가볍게 한 번 더 조인 그가 이내 흥미가 식은 것처럼 바로 옆에 놓여져있던 농구공을 튕기며 다른 학생에게 달려갔다. 하여간에,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라니까. 사정없이 조였던 목을 몇 번 쓰다듬던 그녀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괜찮아? 어디 보자."

"아, 괜찮아요. 쟈밀 선배."

"괜찮기는. 플로이드 저 녀석은 자기 힘이 얼마나 센지 도통 가늠을 못하니까..."

"선배, 저도 옆에 있거든요? 저도 신경써주세요!"

"넌 얼른 가서 스트레칭이나 해."

"차별이다! 동아리 후배는 감독생이 아니라 저라구요!"


투덜거리면서도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가는 에이스의 뒷모습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는 쟈밀이었다. 말은 퉁명스러워도 플로이드에게 졸렸던 목을 살펴보는 검은 눈동자에서 그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림을 보좌하는 부기숙사장이라 그런지, 쟈밀은 유독 주변 사람을 잘 챙겨주는 듯 했다. 남학교에서는 보기 힘든 엄마 포지션이라고 할까, 감독생에게 쟈밀은 하츠라뷸 기숙사의 트레이와 비슷한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농구부엔 무슨 일이야?"

"아, 그게..."

"흠?"


하지만 동시에 눈치가 너무 빨라서 어려운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도 감독생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농구부에 올리가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챈 쟈밀은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미 들킨 마당에 굳이 거짓말까지 한다면 되려 의심만 더 살 것 같았다. 도저히 그를 속일 자신이 없었던 감독생은 솔직하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선배는 갖고 싶은 선물로 뭘 쓰셨어요?"

"선물? 무슨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이요! 다들 벌써 정한 것 같은데 저는 아직 못 골랐거든요. 그래서 여기저기 물어보고 있어요."

"... 아, 그 선물."


감독생의 말을 되뇌이던 쟈밀은 무언가를 눈치챈 것 같은 반응이었지만 크게 놀라거나 피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별 것 아닌 이야기를 굳이 입 밖으로 내뱉는다는 것처럼 머쓱한 듯, 조금 떨떠름한 듯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말을 이었다.


"요새 바빠서 완전히 까먹고 있었네. 맞아, 이제 곧 크리스마스였지?"

"... 까먹었다고요?"

"응. 조금 있으면 겨울 방학이니까. 고향에 돌아갈 준비도 해야 되고, 기말고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신경쓰이고... 잘 친 것 같다고 생각하면 꼭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하나씩 틀리거든."

"아... 하하. 그, 그럼 이제부터라도 생각해보세요! 아직 안 늦었잖아요?"

"별로 필요한 게 없어. 웬만한 건 다 내가 살 수 있는 거고."

"예에?"


기껏 잊었던 것을 떠올리게 해줬더니 이젠 갖고 싶은 게 없다니. 어떻게 하면 좋지? 감독생은 잠시 고민하다가 쟈밀의 팔을 덥썩 잡고 같이 체육관 벽에 기대어 앉았다. 무릎을 세운 채로 앉은 감독생은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쟈밀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선배는 제 선물을 골라주세요. 저도 선배한테 필요할만한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볼게요!"

"뭐? 아냐, 됐어. 난 진짜 필요한 게 없다니까."

"그래도요! 뭔가 하나쯤은...!"

"정말로 없어. 대체 왜 그러는거야?"


쟈밀이 미간을 찌뿌려지자 감독생은 잠시 그의 눈치를 보았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그녀가 귀찮은지, 투덜거리긴 해도 여전히 감독생의 옆에 같이 나란히 앉아주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에게 어리광을 부려보기로 한 감독생은 이것저것 떠오르는 대로 물어보았다. 관자놀이 옆을 손가락으로 꾹 누른 채로 중얼거리는 감독생의 모습에 쟈밀은 혀를 차다가도 그녀가 물어보는 대로 대답해주었다.


"으음... 머리를 땋아주는 마법이 걸린 인형같은 건 어때요?"

"내 손으로 해도 돼. 귀찮긴 해도 그런 게 필요할 정도는 아냐. 그리고 왜 하필 인형이야?"

"카림 선배를 다른 사람한테 하루만 맡길 수 있는 쿠폰?"

"뭘 믿고 다른 사람한테 맡겨? 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 편하지."

"선글라스!"

"... 너 나 약 올리냐?"


눈을 바라보면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유니크 마법을 가진 쟈밀에게 선글라스라니, 오버블룻 때의 일로 멕이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선물 후보였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감독생을 쳐다보던 쟈밀은 손으로 턱을 괴며 이 학교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자 -본인은 철저하게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진작에 다 알아챈 상황이다- 이방인이기도 한 감독생에게 필요한 선물은 뭘까,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는 것만큼 그녀가 바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겨울방학이 되면 돌아갈 곳이 없는 감독생은 학교에 혼자 머물러야 될 것이고, 그림과 함께 있겠지만 그래도 텅 빈 학교에 있기엔 많이 외롭겠지.


"다른 세계선에 간섭하는 마법은 지금까지 없었는데... 공간과 시간을 조절하는 마법을 적용한다면... 아, 하지만 왕복까지 가능하게 하려면 시간과 공간을 같이 계산해야 되는데. "


애초에 완벽하게 계산된,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이전 마법은 존재할 수 없다. 감독생의 경우에는 그녀의 원래 세계가 이 곳과 같은 시간 단위를 사용하는지도 알 수 없고,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과 계산법이 호환되는지도 미지수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가 이곳에 오게 된 경위와 수단이 궁금해졌다.


쟈밀이 갖고 있는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었지만 여러 이론과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쟈밀은 감독생이 자신을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가 중얼거리는 모습을 쳐다보던 감독생은 쟈밀의 이 버릇을 진작에 알고 잇었따.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입 밖으로 내뱉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었다.


마냥 철두철미하게만 보이던 그에게 이런 허술한 점이 있기에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자기 생각을 입으로 줄줄 흘려보내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생각이 많이 떠오를 때마다 쏟아낼 곳이 있다면 좋을텐데... 


자신이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쟈밀이 언제쯤 눈치챌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감독생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원래 세계에서 봤던 마법사 영화였다. 작중에서 주인공이 일기장에 쓴 글씨가 그대로 사라지더니 그 일기장의 주인이 대답을 쓰며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아이디어가 번뜩이며 그녀의 머릿속을 밝혔다.


"선배! 그럼 마음껏 혼잣말을 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어때요?"

"뭐? 그런 게 있을리가 없잖아."

"만약에, 만약에라도 있다면요!!"

"... 그럼 좋긴 하겠지?"

"그쵸?! 알겠어요.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감독생은 그 말만 남기고 체육관을 나가버렸다. 아직 쟈밀은 감독생의 선물을 정해주지도 못했는데, 혼자서만 무언가를 깨닫은 것처럼 개운한 얼굴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덩그러니 남겨져버린 쟈밀은 조금 허탈한 기분도 들 정도였다.


"그렇게 알고 있겠다니... 대체 무슨 소리야?"


홀로 남겨진 쟈밀은 멀어지는 감독생의 뒷모습만 쳐다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간,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라니까. 보나마나 또 영문 모를 사건에 휘말렸겠지. 도통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감독생을 신경쓰던 쟈밀은 고향에 있을 여동생이 떠올랐다. 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같은 여자애니까 어떤 선물이 좋을지 알 수도 있겠지. 그 핑계를 대며 오랜만에 연락이라도 해볼까, 그렇게 생각하던 쟈밀에게 플로이드가 다가왔다. 플로이드의 뒤에는 그의 넘쳐나는 체력에 맞춰주느라 지친 농구 부원들이 여럿 쓰러져있었다.


"바다뱀 군~, 작은 새우쨩은 어디 있어?"

"방금 나갔는데. 왜?"

"나 할 말 있어!"

"앗... 어이, 야!!"


쟈밀의 품에 농구공을 푹 들이밀어 안겨주곤 우다다 뛰어나간 플로이드는 어딘지 신난 얼굴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농구공을 든 채로 가만히 서 있던 쟈밀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체육관 바닥에 널부러진 농구부 부원들에게 다가갔다. 아직 제대로 된 연습경기도 하지 않았는데 쓰러져있는 꼴을 그가 가만히 보고 있을리가 없었다.


"얼른 일어나지 못해? 아직 오늘 프로그램은 시작도 안했어."

"악마! 쟈밀 선배는 악마에요!"

"그렇게 못되게 굴었다간 산타 할아버지가 안 오실 거라구요!"

"혼자서 선물 못 받으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암만 떠들어봐라. 너네보다 백배는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으니까."


농구부원들을 향해 한껏 업신거리며 잘난 체 하는 미소를 지어보인 쟈밀은 반질반질하게 닦인 나무바닥 위로 농구공을 몇 번 튕겼다. ...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해본 게 얼마만이더라? 어린 시절, 카페트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받고 싶은 선물을 종이가 가득 찰 정도로 적으며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와 비슷한 두근거림이 쟈밀의 가슴 속에 울렸다.


들뜨는 마음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기분에 몸을 맡긴 그가 가볍게 점프해서 공을 공중으로 밀어올리자, 공은 깔끔한 윤곽을 남기며 빨려들어가듯이 네트 속으로 떨어졌다. 완벽한 3점 슛이었다.




쏘유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