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시체를 좋아해서,

형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가 맞았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인까지도 저지를 수 있는 충동적인 감정 하나 제어하지 못한다. 남을 이용해서라도 부와 명예를 위해 뒤뚱거리며 달려 나가는 모습이 오히려 하찮게 느껴지는 때가 인간의 특징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신이라는 작자를 믿으면서까지 실패한 자신을 구원할 다른 이들을 찾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노력하지 않으니 당연히 믿음은 그이를 구원해줄 수 없다. 고작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들보다 몇 십 배는 생명력이 강한 드래곤 한 마리가 턱을 괴며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최근 들어서야 정부라는 곳에 대항하는 조직인 혁명군이 그토록 바라고 있는 혁명 성공에 대한 이유를 깨달았다. 딱히 인간에 대해 생각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만, 묘한 동정심이 들기는 마련이었다. 유리창으로 이루어진 회의실 안에서 홀로 쓰디쓴 커피라는 것을 마시며, 복도를 분주하게 가로지르는 단원들을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머리가 좋지 않아도 무력만 좋으면 그만인 드래곤에게는 서류니, 뭐니 생각 밖에 일이었다. 한껏 지루해진 시간은 체력훈련을 통해 채워 가면 된다고 본인이 말했건만, 오늘은 몸을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선봉타격대 단원들을 굴리기만 했으니 하루만 휴식을 주자, 라는 집념 하나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펄럭거리는 종잇장과 바닥과 반복적으로 맞닿는 신발들, 웅성거리며 본인의 일을 찾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멈추지 않고자 하는 어리석음에 다시금 육성으로 웃음을 토해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은 나아진 부분이 없어. 지금 이 일은 재미있지만. 본인들이 적이라 칭하는 인간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삶의 낙인지. 과거에 아무 생각 없이 인간계로 발을 내딛었다 졸지에 정부군의 실험체가 되어버린 한 드래곤에 복수극이라고 해두자. 그래야 인간들이 입에 달고 사는 ‘전투를 치르는 이유’를 얻어낼 수 있으니. 씁쓸한 향이 목구멍을 넘어 천천히 그에게 흡수된다. 묘한 안정감이 방어태세를 흐리게 만들어 귀를 울릴 듯 괴음에 가까운 기척 소리에도 그저 넘길 듯 했다. 실제로도 그랬고.


“…야!”

“….”

“야, 류!”

“…에.”

“거기서 뭐하냐, 빨리 안 나와? 너 찾으려고 기지 한 바퀴 돌았어.”


뻔뻔하게 일 안하고 혼자만 처 쉬고 있네. 그이가 투덜대며 유리문을 활짝 열어 복도가 내포한 싸늘한 공기를 안으로 들여보낸다. 춥다. 전혀 익숙해지지 않은 공기였다. 틀림없이 그는 불 속성이라 더욱이 예민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저 추측이었다. 확실한 사실은 없었다.


“그러게, 이곳부터 먼저 오지 그랬어. 그러면 덜 힘들었을 텐데.”

“**, 말 참 예쁘게 한다.”

“형이나.”

“이 **가?”


날카롭게 번뜩이던 그의 백안이 서서히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한참 재미를 보이던 이를 상대해주기 벅차다는 그이만의 행동이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반쯤 포기하겠다는 행동, 왠지 모를 반항심이 들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백안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왜, 뭐, 뭘 봐? 꼬리를 잔뜩 세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제법 속을 긁혔는지 툴툴거렸다.


“…하아, 빨리 나와. 오뉴 형이 불러.”

“엥? 내가 왜 필요한데?”

“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빨리 따라오기나 해.”


그가 몸을 돌려 복도를 향해 발을 대딛는다.


“…아 맞다. 류, 오뉴 형이랑 대화 끝나고 나 한 번 봐.”

“왜? 형 면상 보기 싫어.”


다시 한 번 속을 긁었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한 이의 한숨만이 들려올 뿐. 혹여나 잘못 건드렸나, 걱정도 해보았지만 그 뿐이었다. 생각과 행동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적어도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라서.”


짧은 침묵 속 무거운 공기가 그를 짓눌렀다. 그래도 답은 해야지, 쉽게 뗄 수 없는 입술을 간신히 떼어 숨구멍을 만든다.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조차 무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큰 숨을 들이키며 내뱉는다.


“알았어. 갈게.”

“고맙다, 막내야.”


한 손으로 거추장스레 내려온 앞머리를 쓸던 그는 어느새 시야에 완벽히 사라지고 없어졌다. 은밀기동대 부대장이니 이런 일은 꽤나 흔한 일이었으며, 거의 놀라는 이들도 사라져가는 마당에 알 수 없는 중압감에 동공이 좌우로 흔들렸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제어하지 못한 채 두 손을 책상 위로 뻗으며 간신히 사물에 제 몸을 의지한 류는 멍하니 그가 지나간 길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간단하게 흑발에 백안. 한 눈에 봐도 메마른 체형에 전혀 건강 따위 생각하지 않은 말투와 행동. 개인이 아닌 모두의 성공을 바라는 비이상적인 생각과 더불어 이를 따라가고자 하는 그의 능력이란, 어리석은 인간의 행동에 모두 엇나가는 결과였다. 그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나 달라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그는 정확하게 감지될 수준에 이르렀다. 비이상적인 혁명군의 리더, 비이상적인 그의 형이자 리더는 첫 만남부터 괴상한 만남을 추구했다. 분명 그는 아팠다. 그저 아프다, 로 끝낼 상태가 되지 못했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깊은 유감을 표한다. 그들이 대항하고 있는 이들과 한바탕 맞붙었는지 푸른 전투복과 푸른 테두리의 고글이 다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엇나가 보는 이마저 눈을 찡그릴 정도였다. 보통의 인간들의 행동이라면, 자신의 목숨이 남의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고작 작은 아이 하나 살리겠다고 본인 목숨을 신경 안 쓰는 이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를 내지른다면, 혁명군의 리더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는 본인뿐만 아니라 아이마저 살려 제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래, 고유색마저 정반대인 두 명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예상한 대로 행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생각해볼수록 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본인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혁명군의 리더가. 정부군에게 대항하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죄 없는 이들은 죽이지 말라는 모순적인 말들을 내뱉지 않나, 항상 본인이 가장 존중받아야 하며, 위험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지켜야한다고 그렇게 떠들어댔으면서 정작 그가 가장 존중받지 않았으며, 가장 지켜지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혁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픽픽 쓰러져 의무실에서 일어나 잔소리를 한바탕 듣는다 하더라도, 그는 그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 혁명군의 리더는 이상했다. 보통 인간들과 달라 이질감이 들면서 그와 더욱 친밀도를 쌓고 싶어 하는 본인마저 이상하게 여겨졌다.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의미 없는 물음에 대한 답안을 도출해내려 하지만 역시나 자그마한 발악도 만족도를 채워내지 못했다. 그저, 그는 달랐고, 본인 또한 달라지고 있다는 것. 껄끄럽지만 어쨌거나 현재로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오뉴 형?”

“아, 왔구나. 제미니 불러서 데려오려 했었는데, 그럴 필요 없어졌네. 잘 됐어.”

“안 오면 폭탄 하나 풀려고 했지. 재미없어.”

“오뉴 형은 잭 형이 말해줬으니까 그렇다 치고, 형은 왜 여기 있는 거야?”

“헐, 섭섭하다. 내가 있는 게 싫어?”

“응.”


숨을 한 번 내쉬어 마음을 진정시켰을 무렵, 그는 정보지원대에 다다라 있었다. 웬만하면 이곳까지 부를 이유가 없을 텐데, 머리가 굴러가지 않으니 하찮은 질문만을 내뱉으며 표정을 잔뜩 찌푸렸다. 역시나 귀찮았다. 혁명이니 뭐니 아무리 본인이 진심이라 할지라도 이정도로 진심인 사람들은 상대하기 성가셨다. 물론 부정적인 마음 따위 없었다. 물론, 그를 직접적으로 괴롭히고, 소중하게 지키고 있는 물건들을 약탈하고, 폭발시키고, 밀치고, 도망가는 혁명군의 광대는 손 볼 필요가 있었지만. 붉게 변형된 손에 그이의 주황빛 머리를 쥐어 악력을 시험해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만 이천 살 드래곤이었으니까. 다만 불행한 사실은, 그가 광대를 짓누르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괜히 마음이 심히 간지러워져서, 그 뿐이었다. 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두 번 문을 두드렸다. 이것이 인간 세상에서의 예의다, 안 지키면 목 날아간다, 라고 말했던 악마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아른거린다. 갑자기? 오늘따라 그는 본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뭣 때문에 평소처럼 행동하는 데도 과거 생각이 다 나냐, 어이없네. 왼 손으로 붉은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며 묘한 초조감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예의에 대한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금 두드려 본다. 툭, 힘없는 손이 나무로 이루어진 약한 문에 부딪혀 마찰음 소리를 자아낸다. 싫증 따위 나지 않았다. 곧 그를 향한 힘찬 발걸음 소리가 귀를 터뜨릴 정도로 거세게 몰아쳤기 때문이라고, 아마도 생각했다. 류! 이제 오면 어떡해! 혁명군의 광대가 헤실헤실 웃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문 안으로 보이는 실내는 심각하게도 어질러져 있었다. 서류에 서류에 서류. 검은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바닥을 지배했다. 이 와중에 오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닥에 널브러진 서류를 발로 툭툭 치며 걱정 말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니, 그는 숙연한 마음으로 발을 내딛을 수밖에 없었다.


“…본론만 말할게. 잭이 위험해. 죽을 지도 몰라.”

“으음, 맞지. 조금 넓게 말해서. 좁게 말하자면, 본인 스스로 적진에 달려간다고 해야 하나.”

“…응?”


환영 받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소소한 환영을 받으며 오뉴가 밀어준 의자에 몸을 앉히려는 순간, 직설적인 발언이 그의 귀로 강타했다. 뽑힐 듯, 얼얼한 충격이 류의 몸을 휘감는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였던가. 언제부터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이의 목숨이 사소한 장난보다도 하찮아졌을까. 류가 오뉴의 말에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한 채 뻐끔거리자 오뉴의 옆을 지키던 제미니가 피식 웃으며 그를 토닥였다. 광대는 아직까지 웃고 있었다. 웃음의 지속이 멈춤을 향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 수 없는 슬픔이 웃음을 물들여간다. 장난이라고 물어보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오뉴의 표정은 완벽히 굳어 긍정적인 말 또한 듣기 거북할 정도의 상황을 자아냈으며, 이에 동의하듯 광대 또한 희미한 웃음마저 지워나갔다. 남은 것은 류였다. 결론적으로 상황에 물들어가지 못한 가장 순수하며 가장 멍청한 이. 그리고 지금, 삐걱거리는 의자에 몸을 뉘었을 때, 그제야 머리는 가동할 준비를 마쳤다.


“아니, 왜? …어째서?”

“믿지 못할 사실이라는 것쯤은 알아. 하지만 사실인 걸.”


씁쓸한 한탄이 녹안 사이를 훑어 지나간다. 더 이상의 말은 잇기 거북하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혁명군 머리는 약했다. 극도로 약하며 소중한 이의 상처 또한 제대로 볼 줄을 몰랐다. 그래, 그는 나약했다. 그를 보좌하고자 옆에 멀뚱히 서 있는 광대보다도. 가장 이성적이여야 하는 이는 한낱 웃음밖에 지을 줄 모르는 광대보다 감성적이었으며, 생각조차 나약했다. 그냥 내가 이어서 설명할게. 광대는 본부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며 희미하게 웃음을 보였다. 안심하라는 의도로 만들어낸 의도적인 웃음이었다만, 그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광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무대를 만들어내 썩어 빠진 목소리로 말을 토해냈다.


“우리도 지금 알았어. 그 형은 되게 많은 걸 숨기잖아.”

“그럼 이 사실은 어떻게 안 거야?”


막연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그가 소리치듯 읊었다. 광대는 그저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글쎄다.”

“그래서, 날 왜 부른 건데?”

“알려주려고.”

“그게 끝이야?”

“음, 그게-”


끼익, 광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 거친 마찰음 소리가 들려오며 본부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직 온기를 잃지 않은 의자를 책상 아래로 집어넣고선 급히 무언가를 찾는 듯 책상 위 서류들을 헤집어놓았다. 아니, 이건 아니야. 이것도. 그가 찾고 있는 한 장의 서류가 있었다. 모든 것이 조작되지 아니하여 더욱이 깔끔한 서류. 정부군들조차 건들지 못하게끔 일반 서류 사이에 섞어놓았었는데, 그는 덧없는 한숨만 내보이다 이내 이를 악물었다. 뿌옇게 바랜 노란 종이와 검은 글씨가 아닌 회색빛으로 변질된 작은 글씨. 외부에 가히 노출되었는지, 혹은 리더의 은밀한 계획인 과거에 이미 실행된 것이었는지 종이는 매우 녹슬다 못해 재사용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오뉴는 한 손으로 조심스레 종이 한 장을 집고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파르르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한 죄가 컸다. 오직 자신이 읽고 모두에게 알려주려던 정보들이 순식간에 막내의 손으로 옮겨져 그 무엇보다 찬란한 적안이 그것을 읽고 있었으니까.


“…허.”

“류, 설명할 기회를 줘.”

“**, 잭 형 *친 건가? 혁명을 너무 오래 했나봐. 헛것이 보이네.”

“잭이 숨기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그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지병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전투나, 서류 처리와 같은 무리한 행동들로 인해 악화되어가고 있고, 이를 알고 있던 잭은 몸을 아끼지 않겠다는 집념 하나를 가지고 이번 전투에서 마지막 장식을 취할 예정이라는 거.”

“하지만 지금이나, 예전이나 병이 발병한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최근까지만 해도 잭 형, 되게 건강한 줄만 알았다니까? 어떻게 숨겼는지도 의문이야.”

“…이딴 거, 하등 쓸모없는 짓이야.”

“알아, 나도. 류, 그 종이 줘.”

“…아니? 더 이상 볼 일 없는 종이야. 필요 없어.”

“류!”


두 명이서 달려들어 그의 행동을 저지하기도 전, 그는 일을 내고야 말았다. 양 손으로 종이를 고이 들어 그대로 한 손을 바닥으로 향하게 내렸다. 찌이익, 귀에 치명타를 입히는 소리를 내고서야 종이라는 것은 반으로 갈라져 제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두 사람의 원망스러운 시선도, 아무것도 그의 적안으로 뵈는 것이 없었다. 그 또한 원망스러웠다. 그 두 명이 느끼는 종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닌, 한 인간의 대한 동경이 한순간에 유리파편으로 갈라져버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이 오기를 미리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면, 그는 절대로 그를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었다. 전투도, 혁명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장담했다. 허나, 잭은 류를 속이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치밀하게. 괜한 배신감이 들이닥쳐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굉음과도 같은 탄성을 내지르며 널브러지는 의자에게 미안한 감정 따위 없었다. 이를 보고 원망의 기색에서 놀람으로 표정이 뒤바뀐 두 사람의 얼굴을 볼 행동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달려 나가야 할 운명이었다. 잭을 향해.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리더를 향해. 왜 지금에서야 알아서는,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 문을 연다? 그의 사전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문의 조각한 파편들을 휘날리며 복도로, 복도에서부터 잭의 방까지 전속적으로 발을 움직였다. 서둘러야만 했다. 그래야, 그에게 나비가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콜록, 아, 또-”


빛 하나 들어오지 않은 어두컴컴한 방 안. 검붉은 액체가 바닥을 향해 천천히 낙하했다. 끈적하기 그지없는 액체는, 그 무엇도 아닌 혁명군 리더라는 사람의 입안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손으로 입을 가렸다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찾아온다면 절대로 숨길 수 있는 가능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최근 들어서였다. 괜히 몸을 움직이려 하면, 몸이 뻣뻣하게 굳어 제 역할마저 수행하지 못하고, 서류 처리를 몇 장밖에 하지 않아도 손이 덜덜 떨려오며 글씨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날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별 일 아니라 생각했건만, 생각 외로 발작과도 같은 그의 행동들은 생활 속 치명타로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중요할 때에, 그 무엇보다도 정부군과의 대치 상황이 심각하게 고조될 때에 악화되다니, 이는 신이 도와주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만약, 신이 있다는 전제 하에. 콜록, 다시금 울컥거리며 따듯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역류를 거듭한다. 입은 붉게 물들어버린 지 오래였으며, 그의 입술 또한 어둠 속에서도 번뜩일 만큼 붉어져 자신의 병을 토로하는 듯 보였다. 한숨을 쉴 겨를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액체를 토해내는데 만해도 몇 십 분은 소요됐으니까. 결코 좋지 아니했다. 그의 병이 준 상황은, 결코 혁명군의 사기에 좋지 않았다. 복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는 완벽히 건강한 사람으로 변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회의 시간에 이르렀기에 더더욱 시급했다. 허나, 발작을 거듭하듯 제멋대로 움찔거리는 몸은 발을 꼬이게 만들어 제 자신을 바닥으로 쓰러지게 만들었다. 휘날리는 서류들과, 본인 옆에 위치해 있던 전신 거울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낙하해 괴성을 질러댄다. 조각조각 깨져버린 거울은 시큰하게 그를 찔러댔으나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힘이 남아나지 못해 그저 바닥에 쓰러져 멍하니 바닥을 물들이는 저 검붉은 액체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 소리를 듣고 노크 없이 문을 열며 자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잭! …형. 형? 괜찮, 아니, 이게-”

“…막, 내야? 콜록, 컥-”

“형, 제발, 내가 숨기지 말라고 했잖아!”

“미안, 하다, 야….”

“기다려, 내가 누구든 불러올-”

“…류?”

“**…, 왜 지금…!”


구원자가 도착했을 때, 도움을 요청한다며 그를 방치한 채로 방문을 나서려는 때, 그때 푸른 나비가 날아올랐다. 나비는 시체를 좋아했다. 정확하게는 시체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향을 좋아한댔지. 나비는 형을 좋아했다. 동경을 넘어 그저 좋아했다. 쓰러진 그의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사랑을 뿌리고, 잭은 그것을 보며 그저 희미한 웃음만을 보이고 있었다. 나비가 안착했다. 잭의 머리 위에, 살포시. 류가 걸음을 옮겨 주변이 붉게 칠해진 잭을 향해 걸어가 보았지만, 나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상대하기도 징그러운 나비 한 마리가, 나비 두 마리가, 나비 세 마리가. 붉은 나비 한 마리마저 리더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형은 아직 죽으면 안 돼.”

“…응, 아직, 은.”

“형은 나비를 좋아하지 않아. 나비만은, 안 돼.”

“…콜록.”


나비는 리더를 좋아했다. 임무를 끝마치지 못한 리더를 좋아해서.


404 ERROR 《에러 뜬 종이의 혁명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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