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눈이 참 이쁘네요.”

추운 겨울날 한 부부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이를 안고 말했다. 아이는 울다가 지쳐 얌전히 엄마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 장작이 서서히 타들어가는 새빨간 벽난로의 불빛이 옆에서 그들을 따스하게 비추며 모두의 체온을 녹였다.

“이 아이 이름은 뭘로 할까요?”

아이를 다정하게 보며 안고 있던 여자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얼마 전, 친척이 동양에 갔다가 사왔다는 묘목이 새빨간 꽃을 피어내고 있었다.

“몇일 전까지만 해도 나무였는데 그 사이에 꽃이 피었네요.”

“저 꽃의 이름이 뭐였지?”

“글쎄… 뭐라고 했더라… 아마 카멜리아(camelia)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추운 겨울날 꽃이 피다니 신기하네요… 겨울에 피는 꽃이더라도 타국에서도 꽃을 피우기가 쉽지 않을텐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 딸 이름… 카멜리아 어떨까?”

품에 안겨 있던 아이는 그 이야기를 듣기라도 했는지, 어느새 다시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를 향해 방긋 웃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내 이름을 지을 때, 나름의 정성을 담아 지으셨다. 카멜리아, 혀를 타고 부드럽게 굴러가는 그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것은 오로지 내 부모님과 가족들 뿐 이었다. 아버지는 어두운 금발이셨고, 어머니는 붉은색이 은은하게 감도는 밝은 갈색의 머리를 갖고 계셨다. 어머니의 붉은색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정도였지만, 어째서인지 나에게는 갈색이 거의 안보이는 주황빛이 도는 붉은 머리를 갖게 되었다. 지금 마당에 피어있는 동백 나무의 꽃처럼, 내 이름처럼, 붉은 머리를 가진 나는 진저라고 불렸다. 이 머리색은 마녀의 색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붉은 머리는 절대 나쁜게 아니라고 늘 말해줬다. 자기전에도, 밥 먹으면서도, 그것 때문이였을까, 처음으로 학교에 간 날, 애들이 나를 보며 수근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이름을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진저라고 불렀다. 내 머리색은 마녀의 상징이라고 하며 나를 피했다. 선생님들도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른애만 칭찬하며 나를 칭찬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아마, 내가 진저였기 때문이겠지. 부모님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신 듯 했다. 엄마는 언제나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엄마는 그때도 웃으면서 나에게 너는 남과 다른거지, 틀린게 아니라고 말씀해주시며 웃고 계셨다. 나는 그날 잠자리에 들기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남과 달라야만 했으며, 그것도 이런 저주스러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난걸까. 그래서 집에 있는 재단용 가위로 머리를 자르려고도 했다. 철 없고 충동적인 어린시절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엄마가 내 손에서 가위를 빼았고 나를 말렸다. 아마도 동생이 말했겠지. 나를 안고 있는 엄마의 어깨 너머로 동생이 늘 들고 다니는 작은 곰돌이 인형이 팔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집에는 돈이 적지 않았기에, 다음날 학교에 엄마와 가서 교장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시고 내 대우는 좀 나아졌다. 애들이 말하기로는, 예전에는 모든 붉은머리들이 죽임을 당하고 마녀로도 몰렸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컸지만, 은연중에 당하는 무시는 차라리 저때 죽는게 나았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애들의 괴롭힘은 표면적이던 방식에서 나이가 먹어갈수록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대놓고 진저라고만 반복적으로 외치던게 내가 처음 입학했을 때 였다면, 사년이 지난 지금은 홍당무를 준다던가, 마녀가 화형당하는 그림을 보여준다던가, 내가 오면 이야기하던 주제를 돌리고 서로 귓속말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괴롭혔다. 다행히도 나는 그런일에 그리 많은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성적은 그들보다 우수했으며, 언제나 내 편인 부모님이 계셨고, 그런 나를 좋아해주는 동생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욕심쟁이였다. 우리는 늘 가지고 있는것에서 만족을 하지 못하고 더 큰걸 원했다. 나이가 좀 더 들자, 나는 의문이 생겼다. 왜 나는 홍당무를 받고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는걸까. 왜 나에게 다가오던 친구들마저 그들에게 마녀한테 홀렸다는 소리를 듣고 멀어져야만 했던걸까. 점점 부풀어 오르던 의문은 결국 작고 날카로운 충격에 터졌다.

“진저, 너네 부모님도 동생들도 다 붉은 머리가 아닌데 왜 너만 붉은머리냐? 혹시 다른 사람의 아이 아니야?”

그 순간 처음으로 내 몸이 내 머리보다 먼저 행동했다. 손에 들고 있던 두꺼운 양장본 책으로 그 애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행동이었고, 항상 가만히 있던 내가 처음으로 크게 반응한 사건이기도 했다. 내 손에 있던 책은 두꺼운 책이었고, 나랑 키가 비슷했던 그 애는 정확히 관자놀이에 그 책의 모서리를 맞았다. 찢어진 피부에서 흘러나와 책을 타고 흐르던 선혈이 내 발 밑에 떨어질 때까지, 나는 그 애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얼마 없었지만, 눈에 띄는 붉은 머리와 주저앉아 피를 흘리는 아이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이러면 내가 진다는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럴수록 붉은 머리에 대한 편견만 더해져간다는 것을 슬프게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마녀가 아니라고 하던 부모님께도, 착한 내 동생들에게도, 내 충동적이고 단독적인 행동으로 평판이 좋아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채, 나를 바라보는 그 애를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글을 써두고, 가방에 보이는 물건들을 담았다. 물론 망토와 후드도 잊지 않고 챙겼다. 그리고 모아두었던 돈을 전부 가방에 넣고, 집을 나왔다. 가방 안에 드레스와 치마는 한벌도 챙기지 않았다. 붉은 머리의 여자는 천대받기 쉽다는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무사했던 이유도 부모님이 계셔서지, 내가 잘나서 그렇다는게 아니다. 붉은 머리를 하나로 동여매고 남자 옷을 꺼냈다. 나중에 동생이 키가 크면 주려고 했던것인데, 내가 입게되니 좀 미안했다. 옷을 갈아입고, 남장을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애를 친 행동에 대해서는 그리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죄책감은 있지만 약간 후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철저히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아빠는 늘 내 눈이 이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내 눈이 이쁘거나 말거나,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내 붉은 머리만 보지, 내 눈을 주의깊게 보지 않는다. 내가 대답이 없자, 유모가 나한테 재차 어디가냐고 물었지만 나는 말해주지 않았다.

“여행 갈거야 유모.”

책에 나오는 세상은 참 넓었다. 그곳에는 과연 내가 속할 자리가 있을까. 나는 여행을 떠날거다. 더 큰 세상을 보러, 내가 속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서. 진저도, 마녀도 아닌 나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떠난 다음에 부모님께 편지를 보낼 심상이었다. 지금 이걸 쓰는 이 시점에서는 저때의 나를 뜯어서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얌전히 학교만 그만두면 될것을 뭐하러 나가냐고 하겠지만, 내가 나가면, 나 때문에 늘 조용히 울어야만 했던 부모님도, 내 존재를 이유로 매일 진저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동생들도, 모두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시절, 나의 최선의 판단이었다. 

먼저 항구도시로 가기 위해 지도를 펼쳤다. 내가 사는곳은 항구와는 좀 떨어져 있어서 적어도 삼일은 어림잡아서 가야만 했다. 돈은 넉넉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도 찾아봐야겠지. 붉은 머리를 받아줄리가 없었지만, 바느질거리나, 하녀들이 하는 일 정도라면 얻을 수 있을것 같았다. 마차를 타고 좀 떨어진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작고 허름한 여관에 제일 싼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익숙해져야 했다. 이런 생활 환경도, 이런 잠자리도.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문을 열었다. 그곳에 있던 쥐들이 문이 열리고 불이 들어오자, 재빠르게 방 사이사이에 난 구멍들로 작은 발을 바삐 움직이며 흩어졌다. 살아있는 쥐, 가끔씩 나왔을때는 사용인들이 다 잡아줬는데, 이제는 나랑 같이 자야하는 생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학교에서는 애들이 가끔씩 죽인 쥐를 내 책상에다 두기도 했으니까. 침대도 낡고 삐걱거리며 이불에서는 쿰쿰한 곰팡이 냄새도 났지만, 오늘의 잠자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마음만은 편안했다.

아침이 되자, 주위의 빵집에 가서 가장 싼 빵을 샀다. 입안에서 분해되는 퍽퍽하게 구워진 아무런 맛도 없는 밀가루 덩어리가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쓴 만큼 벌어야 했다. 지금의 돈도 여유는 있지만, 여행이 끝날때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은 아니었다. 시작은 빵집이었다. 그들은 내 머리색을 보더니 거절했고,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에는 가발을 꺼냈다. 가발을 쓰기 위해서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고, 가발을 썼다. 밝은 갈색의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닮은 가발. 정체성을 부정 당하는 것 같고, 왜 나는 이런걸 써야만 하는걸까 싶어서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는 이미 소문이 퍼져서 가발로는 가려지지 않을것 같아서 포기했다. 이미 모두가 진저라고 부르는데, 가발을 쓰면 나도 내 머리색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과, 그들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싫었던 내 알량한 자존심도 한몫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나는 온실속 화초도, 부모님이 사랑하는 딸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욱 숨겨야 했다. 일을 할때만 가발을 쓰기로 결심했다. 세상은 소설이 아니었다. 모든지 타협점을 찾아야 했으며, 나는 돈이 필요했고, 배도 타야했다. 마녀 사냥은 자취를 감췄지만, 붉은 머리는 저주와 순항을 방해한다는 풍문도 있는데, 내가 멀정히 탈 수 있을까. 그리고 한가지 더 간과한게 있다면, 나는 힘이 필요했다. 이 몸으로 누가 잡일을 시켜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일단 집들을 돌아다니며 바느질 소일거리를 구해왔다. 다행히도 평소에 자수를 두는 취미가 있어서인지, 일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눅눅한 여관방에서 발 밑을 돌아다니는 쥐들을 최대한 피하며 바느질을 이어갔다. 밖에서 들리는 기차의 시끄러운 소리와 사람들의 대화소리랑 음식을 먹으며 떠드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집에 있었을 때에는 한게 공부밖에 없고 책만 읽었었다. 익숙치 못한 이 상황에, 몸이 뻐근해서 잠시 허리를 피고 창문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해는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집으로 가거나 파티를 가는듯, 번화가에 마차가 다니는게 보였다. 나는 바구니에 일거리를 곱게 개어서 넣고 집들을 다시 돌아다니며 돈을 받았다. 사람들은 거지꼴을 한 애의 손에서 생각보다 곱게 된 바느질에 놀라며 보너스를 좀 더 주기도 했다. 덕분에 내일은 아침에 마차를 타고 지금보다 더 먼 곳을 갈 수 있을것 같았다. 어리다면 어리고 많다면 많은 나이. 나는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이 주시는 돈이 아닌 내가 직접 돈을 벌어보았다. 부모님이 말만 해도 사주시는 것, 유모를 부르면 되는 일도, 내가 다 직접해야 했다. 불만이 없다면 당연히 거짓말 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한 선택이고, 내가 고른 길이다. 시작을 잘못 들고, 중간에 늪에 빠져도, 내가 올바른 곳을 보고 그곳으로 걸어가려 노력하면 된다. 늪도 들어가본 사람이 더 잘 빠져나올 줄 안다. 나는 조용히 생각하며 촛불을 껐다. 항상 이렇게 불을 끄고 누워서 생각하고 있으면 내가 잘 자는지 확인해주시던 부모님의 얼굴이 문 앞에 아른 거리는 것 같았다. 아마, 분명히 많이 걱정하실 것이다. 어릴적부터 곱게 키웠다고 생각하실 테니까. 하지만, 부모님께 폐를 끼치기 싫었던 눈치 빠른 어린아이였던 나는 투정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학교에서 애들이 놀려도 넘기고 때리거나 따돌려도 참았다. 우리집은 잘 사는 집이 맞다. 도시의 변두리의 작은 마을 치고는 유모도 있고 그랬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오는 질타를 다 해결할 만큼의 잘사는 집도 아니었다. 그걸 너무 빨리 눈치챈 걸지도 몰랐다. 성급하게 한 부분만 어른이 된 어린 아이는 어른의 흉내를 낼 뿐, 마음 속에는 같이 맞춰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방황하면서 어른이 된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배를 타고 나가면, 무엇을 보게 될까. 배는 잘 골라야 한다. 아니면 배를 탈때 굉장히 많은 돈이 나갈것이 확실했으니까. 다행히도 나는 어릴적부터 받아먹던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요리도, 자수도, 정리도, 부모님은 내가 혼자하고 싶어하면 가르쳐 주시고 혼자하는걸 지켜보셨다. 요리는 유모가 쿠키를 굽거나 차를 우리는 방법, 간단한 음식들의 조리법등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꿈을 꿨다. 그곳에는 새빨간 머리의 내가 서 있었다. 원래도 붉은 머리기는 했지만, 저정도로 붉은 머리는 아니었는데. 또다른 나는 나를 보면서 화사하게 웃었다. 그곳에는 부모님도, 동생들도, 유모도 있었다. 나도 그들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낡은 옷을 입은 나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숨이 턱 먹히는 기분에,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 아직 해가 다 고개를 내밀고 있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주인에게 방값을 지불하고 항구로 가기 위해서 바다로 떠났다. 덜컹거리는 마차안에서 아침도 해결 못해 허기진 배가 울렸다. 얼마나 갔을까. 창밖의 풍경과 공기가 빠르게 바뀌다가 이내, 짜고 습한 물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아마 드디어 도착했을 것이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 간단한 샌드위치를 사서 마부에게 마차값과 함께 건넸다. 마부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푸근하게 웃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 도련님인지는 몰라도, 좋은 여행하시길 빌겠소.”

갑작스러운 인사에 나도 놀라서 잠시 마부를 바라보다가, 잘 가라고 인사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행히도 내가 여자인 것은 안 들킨것 같았다. 긴 망토와 몸을 감싸는 헐렁한 옷은 아직 몸이 성장이 제대로 오지 않은 나에게는 숨기기 쉬웠다. 그럼 이제 여기서 타고 갈 배를 찾아야 했다. 제일 큰 문제는 나는 노를 저을 수 있는 충분한 근육도 없으며 멀리 볼 수 있는 좋은 눈도 없다. 그럼 나는 무엇을 제안할 수 있을까. 나는 간단한 요리를 만들 줄 알며, 언어에 능통하다. 지리와 정세또한 배우고 공부했으며, 청소같은 잡일은 잘하지는 못해도 할줄은 알았다. 셈도 가능하니,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하는 선박을 찾아야 했다. 일단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음식점을 갔다. 음식점에서 간단한 요리를 시켜 먹으며 사람들이 하는 대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선장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오늘은 바람이 너무 거세서 내일 출발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래? 출항하기 전부터 날씨가 불안하다니, 이번엔 더욱 조심해야겠어.”

나는 선장이라 불린 사람을 지켜봤다. 말끔한 차림새의 남성으로 주위에 선원들로 보이는 사람과 밥을 먹고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중을 노리는게 나을 듯 했다. 밥 먹으면서 대화하는것을 방해하는 사람을 흔쾌히 넣어줄 것 같지는 않았으며, 예의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를 계속 눈으로 쫓았다. 그리고 그가 혼자가 되는것을 기다렸다. 마침내 선원들이 다 각자 집으로 가고, 그가 혼자 길을 걸을 때, 떨어져 있던 거리를 좁혔다.

“왜 따라오는거지?”

갑작스레 멈춘 그의 발걸음과, 직설적인 질문에 잠시 놀라서 서 있었다.

“저도 배에 타고 싶습니다.”

“저희 배는 당신같은 도련님이 타는게 아닙니다. 이런 상선 같은 곳은 피하시고 더 좋은 배를 찾아보세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아까, 식당에서부터 티가 많이 나지는 않지만 계속 보고 계셨는데 뱃사람에 장사꾼이 이런것도 눈치 못채면, 장사한다고 말하고 다니면 안돼죠.”

“상선은 타는게 아니라고 하셨지만, 배를 타고 여행할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나를 관찰했다. 아무리 잘 쳐줘도 뱃일을 하기에는 얇은 몸선에서 곱게 자란 티가 났다.

“그럼 왜 많고 많은 배 중에 저한테 말씀하시는 겁니까?”

“선원들하고 사이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사이가 좋다?”

“예. 제가 숨기는 것에 능통하지는 못해도, 관찰은 많이 합니다. 대다수의 선장들은 선원을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원들도 잘 따르는 것 같아 보였고, 무엇보다 같이 밥을 먹는 것도 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럼 도련님께서는 이 배에 오르시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셈과 언어에 능통합니다. 요리도 좀 할 수 있으며, 힘 쓰는게 아닌 이상 잡일도 가능합니다. 국제 정세도 자세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과연 이게 통할까 궁금하고 긴장되었다. 입안이 말라갔기에 나는 그거로 안된다면 더 내세울게 있는지 계속 머리를 굴렸다.

“도련님, 저희 애들이 착하기는 해도 바보입니다. 다들 힘만 쓸 줄 알죠.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나, 아마 도련님께서는 제가 생존을 위해 배운것 말고도 할 줄 아는게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믿어도 되겠습니까.”

“후회하실거라고 생각됩니까?”

“저는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동이 틀 무렵에 그 식당으로 와주십시오. 애들에게도 알려야 하니까. 그리고 아까 식사시간에 끼어들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호쾌하게 웃으며 뒤돌아 가던 선장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그런데, 아직 저희 이름도 모르는군요. 이름이?”

내 사고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무엇으로 말해야 할까. 본명인 카멜리아는 남장을 하고 있고, 선장도 남자라고 믿는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전혀 좋지 않았다.

“진저.”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지나간 다른 이름. 생각은 가끔씩 다시 되짚어 볼 기회를 주지 않고 입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평소에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실수가 적었었다. 하지만, 당황해서 였을까, 바로 뱉어버린 말은 다시 삼킬 수 없었다.

“진저? 독특한 이름이네요. 붉은 머리도 아닌데 그런 호칭이라, 혹시 그 팬던트의 색 떄문인가요?”

내 목에는 확실히 주홍빛이 도는 붉은 팬던트가 걸려 있었다. 동생이 내 머리색과 같다며 장터에서 나에게 사다 준 목걸이. 처음에는 놀리는건가 싶었지만, 내가 칭찬해주기를 기대하는 동생의 눈빛에 나는 내 생각을 반성하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었다. 항상 걸고 다녀서 의식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이렇게 쓰일 줄이야.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며 상황에서 벗어났다.

“제 이름은 앨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비록 아침이 된다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겠지만. 차가운 밤바람이 망토를 부드럽게 감싸며 끝자락이 펄럭였다. 바다에 가면 아무리 선장의 배려가 있더라도 고된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찾고 싶었다. 내가 있을 자리를, 그리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완벽한 평화를.



클리셰 좀 첨가 된 단편 많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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