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한 순간


비상벨이 울렸다 집안의 모든 전기는 끊긴 지 오래 

태어나려다 만 날파리들이 환상처럼 울고

들릴 리 없는 주파수의 울음을 가늠하며 

고개를 돌린 그때 


잘 빚어진 기분으로 치장한 이불 아래에는

한 달 전의 나와 어제의 내가 죽은 듯 살아 있다

 

누가 그랬지 이불 한 장을 넘나들어 검은 곳에 갈 수 있다고 

언제는 이곳이 하얗던 적이 있었니 하던 대답

검은 곳과 흰 곳의 사이에 가만히 서 있다 

아주 약간은 붉은 곳에서 


주인을 잃은 웜뱃이 저승처럼 나타나 먹다 만 밥을 주워간다 

놀랍지는 않다 


천장인 줄 알았던 게 누군가의 입속이었거나 

죽이겠다 생각했던 식물에게 어금니가 자라거나 

쓸모를 다한 옷들이 합을 맞춰 집을 걸어다니거나 

또는 

갓 나온 바게트를 이유 없이 버리곤 했던 내가 죽었거나 하니까  


지독하게 꿈이다 

닿을 수 없는 곳에서 겅중겅중 뛰어오는 아침이 

부리 없는 새처럼 창문을 두드린다 


두 명의 나를 구석에 밀어넣고 그 옆에 누웠다 

샌드위치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갓 나온 샌드위치는 버려야지 하는 생각 


검은 곳에서는 늘 같은 장면을 본다 

살아 있나 했지만 실은 죽었다 죽었나 한 건 모두 살아 있고 

 

폐기할 시간이다 

작은 방을 접어 입을 벌리고 있는 아침에게 던졌다

우물거리는 오늘


입장의 다음은 없음이다


쓰고 지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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