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는 그렇게 편안히 호수 깊숙히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푸른 호수물이 코와 입에 들어와 호흡이 멈춰졌지만, 이상하게도 율리우스는 어머니의 태속에 들어있는 듯,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 율리우스의 귀에 환청이 다시 들려 왔다.



"율리우스. 물속에서 뭐해?"



'이런! 씨발.빌어먹을 환청!'



순간 율리우스는 속에서 욕지꺼리가 나왔다.


자살을 실행하기전 의사에게 한번 더 들렸어야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환청이 들리다니!


기다려! 조금만 기다려. 요정왕.


이제 네 곁으로 갈깨. 이제 안불러도 된다고!



물속에서 율리우스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또다시 제롬의 목소리가 물위에서 들려왔다




"아이!  율! 거기서 뭐하냐고? 어서 나와."




율리우스의 귀가 쫑긋했다.


분명히 귓가에 맴도는 소리가 아닌, 생생한 어린 소년의 목소리였다.


율리우스는  물속에 있는 순간에서도  정말 제롬의 목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려와 너무도 궁금해서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속임수야.환각과 환상의 속임수.

이대로 편히 죽는거야!  율리우스.'




율리우스는 물위로 다시 올라가야 할지,아니면 그대로 물속에 머물러  제롬이 있는 저 세상으로 따라가야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때 투명한 호수의 수면아래로 작고 예쁜 한쌍의 손이 내려왔다.


율리우스는 분명히 그의 두 눈으로 보았다.


그것은 분명 제롬의 앙증맞은 손이었다.



'제로미! 요정왕의 손이다!'


율리우스는 순간적으로 돌고래처럼 빠르게 쑤욱 수면위로 헤엄쳐 올라 갔다.



타고난 운동선수 체질인 그는 숨조차 헉헉대지 않고, 자연스럽고도 고르게 호흡했다.


수면위로 고개를 들어 올려 위를 보았을때, 율리우스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있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요정왕!!!!!"



제롬이 예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선위에서 어부와 함께 배난간에 몸을 걸치고 율리우스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물속에서 막 올라온 율리우스는 제 눈을 믿을수 없어,  물이 홍건한 자신의 손으로 눈을 마구 비볐다.


눈을 아무리 비비고 또 보고, 비비고 또 보아도 분명히 제롬이었다.


" 아! 하나님. 정말 제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까?"



율리우스의 동공이 크게 커지며 아름다운 푸른 눈의 소년의 얼굴을 한가득 담았다.



"그래.율리우스. 나 요정왕 맞아.

근데 물속에서 도대체 뭐하고 있어?"



제롬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귀엽게 작은 손을 흔들며 어서 올라오라 손짓했다.


율리우스는 물개처럼 빠르게 물위를 미끄러져 제롬에게 다가갔다.


그는 그 커다란 덩치로 배위로 번쩍 뛰어 올랐다.


배위에 올라타자 마자, 제롬에게 달려들어 제롬의 작은 몸을 잡아쥐고 흔들었다.



"제로미. 아.내사랑!!"



율리우스는 마침내 정말 제롬의 살아숨쉬는 작은 육체를 확인하고서야 그의 넓은 품에 제롬을 꼬옥 끌어 안았다.



"아아! 요정왕.요정왕.정말 살아 있었어!

하나님.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앗! 차거.  율!!  온몸이 젖었어!"


옆에서 어부가 커다란 타월을 건네 주었다.


그와 노인, 소년 세 사람은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작은 소년에게 달려들자, 공격당하는 줄 알고 노와 몸둥이를 들고 방어 태세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이자들은 뭐야? 요정왕"


그제서야 제롬이 낯선 어선위에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율리우스는 주위를 빠르게 둘러 보았다.


"아.고마우신 분들이야. 율.

내가 아라곤에서 탈출해서 이곳으로 오는데 도와주셨어.

아.키스 그만좀 해. 율.다보고 있쟎아!"



율리우스가  제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제롬의 이마, 볼, 목에 쪽쪽거리며 키스해대자, 제롬은 부끄럽기도 하고 귀쟎아 율리우스의 넓은 가슴을 작은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밀어내는 제롬의 작은 손까지 낚아채고 율리우스는 탐욕스럽게 잡아먹을 듯 손등에 키스를 해댔다.



한참을 정신없이 쪽쪽거린 후에야 율리우스의 감격은 진정이 되었다.


"그런데.요정왕. 난 너 죽었다고 들었는데.

네 무덤비석까지 보고 왔다고.

도대체 이게 다 어떻게 된거야?"



율리우스의 의혹어린 따가운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꽂히자,제롬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설명하자면 길어. 율.

난 너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온거야. 전에 네가 제안했듯이."



제롬의 남청색 동공을 불안하게 흔들렸다.


"혹시...네가 사랑한 사람이 제로미란 사람이 아니라, 브리태니아 국왕 에드워드5세였다면.....난 떠날깨.

이제 더이상 난 에드워드5가 아니야.

「평민」제로미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제롬의 말은 율리우스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여 솟구치게 했다.




"네....네 말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이야?

네 왕관도, 네 소중한 조카마져도?"




제롬의 심연의 푸른 눈동자가 율리우스의 한쌍의 연두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제롬이 작게 고개를 끄떡였다.



율리우스는 환희에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지로 누르고 소리쳤다.




"당연히 나는 「평민」제로미를 원해!!

아니. 솔직히 난 네가 국왕이던 그 무엇이던 상관없어.

내가 처음부터 사랑한 것은 「요정왕」너 자체였어!

도대체 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거야!

요정왕은 바보구나."




제롬의 눈에서 샘솟듯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실, 제롬에게는  가짜장례식까지 치뤄가며 브리태니아를 떠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한가지 불안이 가슴속에 남아 그를 괴롭혀 왔다.



'혹시 율리우스가 사랑한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닌, 국왕 에드워드5세가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아닌 나는 더이상 필요없는 것 아닐까?'

그가 나를 거부하면 이제 난 어쩌지?'



제롬을 내내 괴롭혔던 의혹은 눈녹듯이 풀렸다.


소년은 안도의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율리우스는 아직도 제롬이 눈앞에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이 모든 것리 꿈이 아닐까 불안했다.



'제발! 제발. 꿈이라면 깨지마라!'



소년의 장미꽃잎같은 붉은 입술 사이로 뜨거운 공기가 긴 한숨과 함께 불어 나오자 그제서야 생생하게 현실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율리우스는 속으로 신을 다시 한번 찬양했다.



'아! 신이 준 선물!

이거였어! 아버지.

당신의 말이 이것을 뜻하신 거였나요?'


그제서야 죽은 교황 다리우스2세의 유언의 의미를 알아챈  율리우스는 아버지의 마지막 배려에 감동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구나.

그래서 이곳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 하신 거였어!

아버지.감사합니다.

당신이 주고 가신 이 '소중한 선물'평생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율리우스는 눈물이 그렁 그렁해서 서럽게 울고 있는 제롬의 작은 몸을 부드롭게 끌어안고, 제롬의 하얀 귀에 속삭였다.




"요정왕.아침먹었어?

배고프지 않아?  우리 같이 이제 밥먹으러 가자.

내가 직접 봉봉과자 구워줄깨."




율리우스의 단단한 가슴팍에서 얼굴을 부비대던 제롬이 작은 고개를 들어 율리우스를 올려다 보며 활짝 웃었다.



"응. 나 배고파.율. 밥줘!"



*********




같은 시각, 아라곤과 바로 맞대어 있는 헤르나 공화국의 줄리앙 대공의 비밀의 성, 모스본(Mossbone) 성.


이곳에는 줄리앙의 첩보 기지 역할을 하는 이제리아 대륙과, 프랑크 제국, 브리태니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첩보망에서 파견되었다 돌아와  모이는 간자와자객들이 모여, 비밀의 성  모스본(Mossbone) 성은 안가(安家)역할을 하였다.




또한 그들이 잡아온 간자나 포로를 고문하여 기밀을 빼내는 고문실이 지하성 깊숙히 즐비했다.



"으허허억! 크학!"




성인 남자 키만한 커다란 물덩이 나무통이 있고 그안으로 한 젊은 사내가 강제로 머리를 쳐박히고 있었다.


거대한 근육질의 사내들이 고문당하는 사내의 좌우로 쭉 시열해 있고, 뺨에 흉칙한 길게 베인 흉터가 있는 대머리 고문기술자가  두꺼운 팔뚝으로 사내의 목덜미를 꽉 쥐고 , 두손이 결박당한 륜족 전사 무쵸의 머리를 물속에 쳐박고 있었다.


"그만."



고문관 테롬은 바로 무쵸의 머리를 물속에서 들어올려 그의 얼굴이 앞을 보게 만들었다.



"자. 이제는 불 생각이 생겼나?

우리 아기공주 건드렸어? 안 건드렸어?"



맞은 편에 호피무늬 가죽으로 된 편안한 3인용 쇼파에 비스듬하게 편하게 앉아 길다란 한쪽 다리를 꼬고 흔들거리고 있는 줄리앙이 있었다.



"말...말했쟎소! 난 그 꼬마...아니 폐하 털끝 하나 안건드렸단 말이오..

끄흐윽..."



"닥쳐! 

세상에 어떤 사내가 그렇게 예쁜 아이가 품속에 있는데 건드리지 않는단 말이냐. 단둘이 한방, 한 침대를 썼는데..불가능해!!

네놈이 고자라도 된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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