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데 너는.”

윤수가 제 허리의 상처를 열심히 닦아내고 있는 재경을 불렀다. 재경이 형식적으로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 

“전화도, 전기도, 인터넷도, 뭐 아무 것도 안 되는 여기서 뭐하는 건데?”

윤수의 물음에도 재경은 별다른 대꾸 없이 묵묵히 상처를 닦아내기만 했다. 윤수가 그런 재경의 얼굴을 살폈다. 그저 무심하기만 한 표정이었다. 

“나 고치라고 여기 같이 가둬놓은 거야?”

“......”

“아니면 여기서 원래 살고 있는 거야?”

“......”

“평소엔 따박따박 묻는 말에 대꾸를 잘만하더니, 왜 답이 없어. 말 안할 거야?”

아무리 봐도 신일회 같은 무법한 마피아와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나 성격이었다. 이런 산중과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런가하면 여기 생활에 지나치게 익숙해 보이기도 했다. 제 말대로라면 의사나 최소한 그 비슷한 거라도 될 텐데, 대체 이런 곳에서 왜 신일회와 얽혀 있는지,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았다. 

“아얏!”

그때 갑자기 재경이 다분히 수상하게 윤수의 상처를 손으로 쿡 찔렀다. 아파하는 윤수를 보며 재경이 새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꾹 다무는 것이 보였다. 

“이게 진짜!”

“제법 많이 나아졌네요. 이제 상처도 많이 아프진 않죠?”

“말 돌리지 마. 대답해.”

“...... 에휴, 여기서 사는 사람입니다.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하실까.”

재경이 상처에 새 밴드를 덮으며 말했다. 

“여기 너랑 나밖에 없고, 몸이 이래서 하루 종일 누워만 있으니 그런 생각밖에 안 들어. 당연한 것 아니야?”

“알겠는데요.”

재경이 마지막으로 꼼꼼하게 반창고를 붙인 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윤수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어차피 나으면 댁은 여길 떠날 거고,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사이인데 피차 세세하게 알 것 없잖아요. 저는 선윤수 씨 제대로 고치라는 지시만 받았지 그런 요구까지 들어주라는 지시는 받은 적 없으니까, 말하고 싶지 않은 건 안할 겁니다...... 아, 그런데.”

트레이를 정리하던 재경이 무언가 생각난 듯 움직임을 멈추고 말을 덧붙였다.

“이거 하난 얘기해 줄게요. 그쪽 신분증보니 내가 한 살 많더군요. 뭐, 지금처럼 계속 야, 너, 하면서 반말해도 상관은 없는데, 그냥 그렇다고요.”

“뭐어?”

재경의 말에 윤수는 제가 방금 무슨 소릴 들은 건가 싶어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저 비주얼이? 윤수가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치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뭐, 믿고 안 믿고는 그쪽 자유고요.”

“아니, 처음부터 왜 말 안했어?”

“나이 물어본 적 있어요?”

“......”

없었다. 처음부터 당연히 저보다 어릴 거라고 생각하고 반말로 시작했으니까. 윤수는 다시 한 번 실눈을 뜨고 찬찬히 재경을 뜯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짓말 하지 마. 증거를 가져오든가.”

“말했잖아요, 믿고 안 믿고는 그쪽 자유라고. 굳이 증빙까지 들이 밀 생각은 없어요. 나중에 알고 혹시라도 미안해 할까봐 미리 말해둔 건데, 역시 뭣 하러 그랬나 싶네.” 

몸을 일으킨 재경이 갑자기 윤수의 팔과 상체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많이 나아진 것 같으니까, 내일부터는 음식을 좀 먹어보죠. 배 많이 고프실 텐데.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고요.”

“왜 갑자기? 꼼짝도 하지 말라고 엄살은 혼자 다 피우더니.”

윤수의 말에 재경이 씁쓸하게 웃더니 그저 그의 몸에 꼼꼼하게 이불을 덮어 주고는 몸을 돌렸다. 쉬세요. 문간에 선 그가 윤수 쪽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

나직하게 이어지는 말소리에 잠이 깬 윤수는 천천히 눈을 뜨고 습관처럼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이어 고개를 세워 보았으나 어쩐 일인지 내내 열려있던 방문이 닫혀있었다. 말소리는 방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숨을 죽이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누군가 왔나. 윤수는 어쩐지 긴장이 되어 마른 침을 한번 삼켰다. 

재경을 부를까 하다가 관두었다. 누군가 왔다면 신일회 쪽 놈들일 게 뻔했다. 그렇다면 굳이 제가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올 테고. 윤수는 베개에 깊숙이 머리를 묻으며 상처 부위를 더듬었다. 많이 호전이 되었음은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만 더 버티면 튈 수 있을 텐데. 어쩌면 신일회는 이제 자신이 충분히 나았다는 것을 알고 그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더 아픈 척을 해야지. 문득 어젯밤에 드물게 제 상태를 조급해하던 재경의 모습이 떠올랐다. 녀석은 혹시 오늘 놈들이 오리라는 걸 알고 그랬던 건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벌컥 하고 방문이 열렸다. 놀란 윤수가 퍼뜩 고개를 세웠다. 큰 키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머리카락을 빈틈없이 뒤로 넘긴 남자가 문간에 비뚜름히 선 채로 윤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며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금방 짚이는 것은 없었다. 

“뭐냐.”

윤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자는 그제야 방문을 닫고 들어와 침대 옆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의 눈앞에 무방비로 누워있기가 어쩐지 불안해진 윤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베개를 등에 받치고 앉았다. 

“오, 혼자 일어날 수 있네.”

“뭐냐고, 너.”

“상황 파악이 아직 안됐나 보네, 선윤수.”

“파악할 수 있게 그러니까 그 주둥이 좀 털어보라고.”

윤수의 날 선 말에 남자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입산 것 좀 보게. 뭐, 나는 본 적 없지? 우리 보스만 만난 적이 있다고 했나?”

오호라. 끽해봐야 꼬붕인 모양이었다. 김이 샌 윤수가 혀를 찼다. 

“너랑은 할 말 없으니까 장수철이 데리고 와.”

윤수의 말에 남자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뱀 같은 눈깔을 하고 누가 봐도 조폭이라는 티를 팍팍 내는 행색이기는 하지만 얼굴 자체는 말끔하게 잘 생긴 편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윤수는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 

“너 같은 게 함부로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닌데...... 어쨌든 지금 형님은 나폴리에 계신다. 너에 대해서는 내가 지시를 받고 처리할 거야.”

“무슨 처리?”

윤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입 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이제와 후회한들 소용도 없겠으나, 역시 처음부터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다시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하면 윤수는 여전히 자신이 없지만. 특별히 돈이 간절한 구질구질한 개인사 같은 것도 없었다. 그는 그냥 그런 큰 돈이 한번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형사 월급으로는 죽을 때까지 만질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으니까. 눈 한번 딱 감고, 제가 아는 것을 그저 말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태연하게 시내 한복판에 있는 모텔 방에서 뽕을 맞고 있던 양아치를 하나 잡은 날이었다.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 앞에 한밤중에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검은색 세단이 두 대 서 있었다. 윤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허리춤을 손으로 짚었으나, 퇴근을 한 형사의 몸에 무기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뒤통수에 딱딱한 무언가가 닿음과 동시에 찰칵, 하며 격철이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윤수는 본능적으로 천천히 양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옆에 서 있던 차에서 스르륵 창문이 내려갔다. 장수철은 그날 처음 보았다. 백발이 적잖이 섞인 머리였지만 체격은 그에 어울리지 않게 건장하고 다부졌다. 어둠 속이었으나 순간 날카롭게 빛이 났을 만큼 눈동자 역시 형형했다. 알고 보니 그날 윤수가 잡은 피라미는 신일회의 조직원이었다. 윤수도 그 사실을 장수철에게 직접 듣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저 뜨내기 약쟁이인 줄 알았는데. 녀석을 풀어주라고 협박이라도 할 심산인가 싶어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으나, 의외로 장수철은 제 조직원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원하는 것은 경찰이 가지고 있는 수사 정보였다. 

이틀 뒤에 인천항에 물건이 들어올 거라는 꽤 믿을만한 정보가 있었다. 그에 대비한 작전 회의도 거의 끝난 상태였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물건 회수는 물론 이탈리아로부터 물건을 조달받는 국내 조직에 대한 실마리까지 붙들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신일회가 바로 그 조직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국내 조직이 아니라 이탈리아 마피아 누오보솔레의 한국 지사 정도로 보는 게 맞겠지만. 그런데 신일회는 이미 경찰이 그 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벤트 자체를 변경하면 될 일이었지만 이미 배는 인천항을 향해 오는 중이었고, 그렇게 계속 경찰을 피하기 위해 계획을 바꾸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은 임시방편이 될 뿐이었다. 누오보솔레는 안정적으로 한국에 물건을 유통시키기를 원했다. 

장수철은 그 임무를 위해 윤수를 골랐다. 그 건에 대해 경찰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언제 어느 곳에 숨어있을지에 대한 대략의 정보만 알려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그 대가로 제시한 액수는 윤수의 몇 년 치 연봉과 맞먹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형사에게 그런 중요한 정보를 팔라니, 당연히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으나 당장 총구가 뒤통수에 붙어 있는 이상 그 자리에서 단칼에 거절을 할 수는 없었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러겠다고 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윤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우선 거짓으로 꾸며 정보를 준 뒤 이 상황을 면피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이들이 사실은 경찰 측 작전을 다 알고 있으면서 자신을 떠보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경찰이 자신들의 밀수 정보를 입수해 현장을 덮칠 계획을 세웠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는데, 그 내용만 모른다는 것도 말이 안됐다. 윤수는 잠깐 시간을 끌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거짓말을 한 걸 알게 되면 당연히 자신을 살려둘 리 없었다. 윤수는 바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 자리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주고 다음 날 출근을 해서 정보가 털린 것을 보고한 뒤 다른 작전을 세우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윤수가 알려준 정보를 들은 장수철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한번 끄덕였고, 그 즉시 그의 차는 출발했다. 그와 동시에 윤수의 뒤통수를 겨누고 있던 놈이 그의 정강이를 한번 걷어 차 바닥에 쓰러트린 뒤 서둘러 남은 한 대의 차에 타고 그 뒤를 따랐다. 

윤수는 그대로 바닥에 자빠진 채, 정말로 죽을 뻔했다는 현실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갑자기 휴대폰이 한번 울렸다. 윤수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은행 어플의 입금 알림이었다. 윤수가 눈을 비볐다. 장수철이 일렀던 금액이 영 하나도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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