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새를 본 것은 7월 어느 무더운 밤이었다. 사실은 밤이었는지, 늦은 저녁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그 날 저녁이면서 그 날 밤에 새를 만났다. 여하튼 좁아터진 원룸이 거대한 냄비가 된 듯 끓어올랐던 것은 분명하다. 이 리터짜리 생수를 페트병 째로 들이켜도 끈끈하고 불쾌한 열기는 가실 줄을 몰랐다. 입 안 가득 들어찬 미적지근한 물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안 더워. 어머니는 유난히 더위를 타던 내게 항상 핀잔을 주었다. 어릴 적에는 벌개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거짓말.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이야 더위 탓에 울지는 않지만 짜증이 솟구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거짓말쟁이였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펄럭이며 나는 작은 방에 어울리는 크기의 창문을 열었다. 선선한 바람이 아주 약하게 불어 들어오는 듯도 했다. 잠시동안 창문 가에 얼굴을 대고 있다가, 찬 물로 몸을 씻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티셔츠를 벗어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은 후 욕실 문을 열었다. 눅눅한 냄새와 함께 나를 반긴 것은 커다란 새 한 마리였다.

까맣고 까만 새. 깃털부터 부리, 발까지 새까만 새였다. 옅은 갈색을 띠는 눈알은 구슬처럼 번뜩이며 한바퀴 빙글 돌았다. 새는 내 키보다 십 센치정도 작아보였다. 고작 십 센치. 그러니까 아주 커다란 새였다. 나는 눈을 비비는 대신 크게 세 번 끔뻑여보았다. 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꿈은 아닌 모양이었다. 새의 몸이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 천천히, 소리 없이 문을 닫았다. 심장이 쿵 쿵 뛰는 것이 느껴졌다.

문고리를 잡은 손을 천천히 놓았다. 어느새 축축하게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부비어 닦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에 귀를 대어보았다. 새가 목구멍을 긁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르릉. 그르릉. 그것은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에 바위를 끌고 가는 소리 같기도, 거대한 털북숭이 고양이의 불만스러운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한참 귀를 기울이던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나며 아주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동시에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린 식은땀에 소름이 끼쳤다. 털이 바짝 선 팔뚝을 연신 문지르며 창문을 향해 걸었다. 방충망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반 년만에 푹 꺼져버린 싸구려 매트리스에 주저 앉은 나는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배터리가 거의 다 되어 저전력 모드로 전환된 핸드폰의 화면은 어두침침했다. 실눈을 뜨고 훑어본 전화번호부에는 쓸모없는 연락처가 너무 많았다. 새내기 시절 무심코 저장했던 동기들이나 한두번 얼굴만 비추어본 소모임 멤버들의 이름들.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하고(혹은 그것조차 없이) 스쳐 지나가버리는 이들이었다. 언제 한번 정리를 해야지. 이미 수십번도 더 한 다짐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수많은 이름들을 넘기다 결국 찾아낸, 그래도 친하다 할 수 있는 형의 이름 석자를 누른 후 문자 메시지 창을 열었다. 형 바빠요? 형 우리 집에 새가 형 지금 뭐 해요? 형 혹시 지금 우리 집 올 수 몇 번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나는 차라리 전화를 걸어보자, 생각했다. 그리 길지 않은 연결음이 끊기고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아, 형. ... 왜? ... 여보세요? ..아, 형, 그러니까, 음. 뭐야? 왜 그래? 형 지금 바빠요? 아니, 집인데, 왜? 그게.. 지금 집 욕실에 새가.. 엄청 큰 새가 있는데. 새? 웬 새? 그러니까, 씻으려고 욕실 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 새가 있어서... ..무슨 소리야? 너 괜찮아? 나는 잠시 욕실을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형, 쉬세요. 너 왜 그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의 전원이 꺼졌다. 나는 그것을 매트리스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선가 풍겨 나오는 하수구 냄새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모습을 보인 검은 새는 소리 없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리만치 밝게 빛나는 눈은 당장이라도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그르릉. 더욱 선명하고 날카롭게 귀에 박히는 울음소리에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새가 다가왔다. 시선은 나를 향한 채로, 묵직한 상체는 미동도 없이, 오직 물기 어린 다리만 느리게 움직이며. 몇 걸음도 채 걷지 않아 검은 새는 내 눈 앞에 다다랐다. 

검고 거친 부리가 코 끝에 닿는 순간 뒤통수에 경련이 일었다. 부리에 맺힌 물방울이 굴러 내려와 코를 적셨다. 그리고 입술로 턱으로 매트리스로 떨어져 자욱을 남겼다. 자욱은 여러 개가 되고 여러 개가 번져 두어개의 큰 자욱이 되었다. 가슴 속이 쥐어짜듯 아파왔고 온 몸이 심장이라도 된 듯 쿵 쿵 뛰는 것이 느껴졌다. 애써 오른쪽을 향해 있던 눈을 살짝 굴려 검은 새와 눈을 맞추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순간 무언가 명치를 관통했고 모든 빛이 사라졌다. 새가 고개를 비틀어 목을 물었다. 

숨을 마실 수도 뱉을 수도 없었다. 가쁜 신음만이 겨우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다리를 휘저어보아도 짚이는 것이 없어 허공만 맴돌 뿐이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뚝 뚝 떨어져 회색 얼룩이 되었겠지. 더이상 몸부림칠 기력이 없어 헛발질을 멈추었다. 아, 그냥 밖으로 나갈 걸. 문득 든 생각에 몇 분 전의 나를 원망했다. 후회는 꼬리를 물고 물어 아주 어린 시절까지 돌아가버렸다. 엄마는 거잿말쟁이야.

엄마는 거짓말쟁이였다.

..윤! 빛이 흐늘거리며 점차 모양이 잡혀갔다. 하나, 둘, 셋, 네번째 전등이 나갔구나. 어쩐지, 요즘 방이 약간 어두워졌다 했어. 야! 사러 가기 귀찮은데. ...윤아! 그냥 두지, 뭐. 어차피...

야!

기침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목구멍에 굵은 모래가 끼인 듯 까끌까끌했다. 무심코 들어올린 손은 손톱 사이에 낀 피와 약간의 살점으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그제서야 목을 파고든 상처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 

..형...

화가 난 건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윽박지르는 형은 울고 있었다. 무어라 소리를 질러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나에게 화가 났음은 분명했다. 몇 분을 끅끅대며 말을 토해낸 형은 고개를 수그리고 젖은 얼굴을 소매로 대충 비벼 닦아냈다. 얕은 신음을 토하며 일어나 앉은 나는 머뭇거리다 괜찮느냐고 물었다. 형은 그게 네가 할 소리냐며 언성을 높였다. 나는 또 화를 돋울까 무서워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았다. 그런 나를 보던 형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일어나 활짝 열려 있던 현관문을 닫으러 갔다. 형의 슬리퍼 한 짝은 밖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나 오늘 자고 간다. 매트리스 구석에 처량하게 쭈그려 앉은 집주인은 당당히 서 있는 외부인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돌아 쭈그려 앉아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형의 등은 축축이 젖어있었다. 그러고보니 온갖 수납장이 다 열려 방안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야, 뺀찌 좀 새로 사라. 이건 뭐 가위보다 못한 거 같어. 형은 투덜거리면서도 어찌 제 자리를 그리 잘 아는지 척척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근데 뺀찌 일본말인데. 옳은 표현이 뭐더라... 생각에 빠진 나는 형이 대꾸 않는 나를 한번 흘겨보고는 한숨을 쉬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 했다. 나는 뭐 일꾼이지, 친구 잘못 뒀다. 아이구... 그제서야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함께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형,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제가 할게요. 씻으세요. 나는 두세번을 괜찮다고, 같이 하면 금방 하지 않느냐고 사양하던 형을 억지로 일으켰다. 형 냄새 나요. 형은 이제 농담도 하네, 하며 어깨를 툭툭 치고는 욕실로 향했다. 농담 아닌데... 어깨를 문지르며 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아, 형. 욕실에... 막 씻으러 들어가려는 형이 돌아보았다. 왜? ...파란 통이 샴푸고 갈색 통이 바디 워시예요. 형은 알았다며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곧이어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쏟아진 양말 바구니를 다 정리한 후 기지개를 켰다. 목에 연고를 바르려 구급상자를 찾던 내 발에 무언가 밟혔다. 전깃줄이었다. 전깃줄은 일반쓰레기인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죽은 핸드폰에 충전기를 꽂아 전원을 켰다. 전깃줄 분리수거. 검색 결과는 다양했다. 전깃줄은 고철입니다. 전깃줄은 플라스틱에 넣으시면 됩니다. 전깃줄은 일반 쓰레기입니다. 뭐 어쩌라는 거지... 나는 핸드폰에 머리를 박았다.

뭐 해? 어느새 씻고 나온 형이 웅크려 앉은 나를 보고 물었다. 형, 전깃줄은 분리수거 어떻게 해요? 몰라, 검색해 봐. 검색했는데 말이 다 달라요... 형은 나를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더니 여기저기 끊기고 얽힌 전깃줄을 대충 둘둘 감아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자, 됐지? 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한번 보고는 매트리스에 몸을 누였다. 안 자? 나는 말없이 불을 끄고 성인 남성 두 명에게는 터무니 없이 좁은 잠자리에 대충 몸을 구겨 넣었다. 다리 한 쪽은 맨바닥에 있었지만 홀로 잘 때보다 오히려 편안했다. 창 밖에는 초승달과 아주 작은 별들이 서너개 보였다. 형. 

형.

오늘 검은 새가 왔었어요.


짧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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