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름:  박지민(朴 智 旻)
생년월일:  28세 10월 13일생
신체조건:  174cm , 60kg (추정) A형
주      소:  서울시 신림동 xx오피스텔 A동 1310호 (자취중).
출      신:  부산 출생
종      교:  무교

학      력:  

  -회동초등학교
  -윤산중학교
  -부산제일외고 졸업 (특이사항 수석입학)
  -한국대 국문학과 정치학과 복수전공

경      력:

  -20xx년 C일보 기사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20xx년 C일보 정치부 인턴기자
  -20xx년 B일보 최연소 입사 (사회부-정치부-사회부 거쳐 현재 문화부)
  -이달의 기자상 2회 수상

평     판:

- 노력파, 성실함, 근성 있음, 승부욕 강함, 욱하는 기질 있음, 완벽주의적, 정의로움, 낙천적임, 밝음, 영민함


기     타:

-좋아하는 작가: 윤동주, 괴테
-좋아하는 음악: 모차르트 교향곡
-좋아하는 색깔: 파란색, 검정색
-좋아하는 음식: 고기, 과일, 김치찌개
-좋아하는 향수: 조말론 오렌지블라썸
-좋아하는 ...


 

흐음, 생각보다 더 대단한 스펙이시네.

정국은 매니저가 가져다 준 자료를 살피며 속으로 감탄했다. 한국대생일 줄이야. 거기다 저와 같은 부산 출신. 동향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괜한 친근감이 더해진다. 어쩐지 가끔 익숙한 억양이 들리더라.


정국의 눈이 평판 부분에 잠시 머물렀다. 역시 어딜 가나 사람 보는 눈은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이들의 평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정국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드리웠다.


“완전 엘리트야. 주변 평판도 대체로 좋고. 일 열심히 하고 기사 욕심 엄청 많은. 딱 열혈 기자의 표본.”

“흐응, 그렇네.”

“주변 관계도 깨끗한 편이야.”

“형, 나 조말론 오렌지블라썸, 이 향수 좀 사다줘.”

“왜?”

“박 기자님한테 선물하려고.”

“아, 그래. 알겠어.”






트러블메이커 

Trouble Maker

-08-







[박 기자님, 특종 하나 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은데, 지금 좀 뵐 수 있을까요?]


석진과 통화를 마친 지민이 잽싸게 가방을 챙겼다.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함성 때문에 수화기 너머 석진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지만, ‘특종’이라는 단어만큼은 귀에 쏙 들어와 박혔다. BT21 콘서트도 볼 만큼 봤겠다,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민은 특종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석진이 부른 곳은 강남에 위치한 그의 기획사 사무실. 석진은 어디 시상식이라도 가는지 매우 화려하게 세팅된 모습이었다.


지민이 오늘도 잘생기셨네요, 하고 칭찬하자 석진이 저는 매일 잘생겼는데요, 라며 뻔뻔히 응수한다. 겁나 맞는 말인데 왜 때문에 재수가 없을까. 지민의 입가가 잘게 흔들렸다.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기사 거리는…….”

“너무 급하시네요. 천천히 얘기 하시죠.”


지민이 안달을 내자 석진이 그를 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석진의 말인즉슨, 오늘 밤 연예계 VIP들을 위한 프라이빗 파티가 열린다는 거다. 연예계 거물들 대다수가 참석하며 자신도 초대를 받았다고. 그들 중 최고의 VIP는 국내 최대 미디어 재벌인 CG그룹의 3세이자 CG미디어의 대표이사인 김남준이라고 했다. 지민도 익히 알고 있는 유명인사다. 이어 석진은 CG미디어가 BT21의 기획사인 히트맨과 합작 법인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를 슬쩍 흘렸다.


순간 반짝, 지민의 눈이 빛났다. 기자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 ‘특종’이다.

지민이 확인하듯 되물었다.


“거길 제가 가도 돼요?”

“물론이죠. 제 동행으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근데 왜 저에게 이런……,”

“아아, 실은 박 기자님께 좀 죄송한 마음이 있어서요. 라운드테이블 인터뷰, 처음에 거절했던 게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아……, 인터뷰해주셨으니 그거면 충분한데요.”

“저도 나중에 김 실장님 통해서 들었어요. 박 기자님이 그 일로 매우 섭섭해 하셨다고. 만회할 기회를 주세요. 기사도 그렇게 잘 써주셨는데.”


싱긋, 석진이 미소 지었다.


지민은 그렇다면 뭐, 호의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고 바로 수긍했다. 특종 거리를 준다는데 고사할 이유가 없었다. 석진 씨는 참 경우가 바른 사람이라며, 지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근데……, 오늘 좀 편하게 입고 나오셨네요.”


석진이 지민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스쳤다.

아, 이런. 그러고 보니 남자 아이돌 콘서트에 간다고 평소보다 더 대충 입고 나왔다. 티셔츠에 청바지, 거기다 운동화. 제가 생각해도 파티에 갈 복장은 아니어서 머쓱해진 지민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쩌죠? 집에 가서 갈아입고 올까요?”

“그럼 너무 늦을 것 같은데……. 미정아, 혹시 여기 기자님이 입으실 만한 수트 있어?”


그의 부름에 동그란 얼굴의 앳된 스타일리스트가 쪼르르 달려와 지민을 요리조리 살폈다. 대충 견적이 나왔는지 잠시 고민하더니 아! 하며 손뼉을 친다.


“슈가 씨, 다음 주 시상식 때 입히려고 준비해 놓은 거 있어요. 체격이 비슷해보이시는데.”


석진이 그녀의 말에 반색했다. 오, 그래. 비슷해 보인다. 한 번 갖고 와 봐.

지민이 어리둥절 하는 사이 그의 스타일리스트가 수트를 가져왔다.


흐에엑?! 아니, 이렇게 화려한 걸 나더러 입으라고?

번쩍번쩍, 살아생전 절대 걸칠 일 없을 것 같은 화려한 블랙 수트가 그의 앞에 드밀어졌다. 심지어 택을 보니 저도 아는 명품이다. 이런 걸 나 따위가 입어도 되는 걸까. 누군지 모르지만 이 옷의 주인인 슈가라는 남자에게 매우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혹시라도 옷감이 상하면? 배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거지? 지민의 동공이 흔들렸다.


석진이 그런 지민을 안심시키듯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박 기자님, 일단 입고 나와 보세요. 사이즈가 맞는지부터 봐야죠.”


울며 겨자 먹는 표정의 지민이 탈의실로 향했다. 혹시라도 손의 땀이 옷에 묻을까,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옷을 집어 들었다. 덕분에 셔츠와 바지를 갈아입는 데에만 평소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흐익?! 셔츠는 또 왜 이렇게 파였어? 젖꼭지 보이는 거 아니야 이거?


“오! 완전 잘 맞는데요?!”

“와 진짜, 대박, 너무 찰떡이시다!”


쑥스러운 얼굴로 슬그머니 탈의실을 나온 지민을 본 석진의 눈이 커졌다. 옆에 선 스타일리스도 어머, 어머! 하며 연신 대박을 외친다.


지민은 손발이 오그라들어 곧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스타일리스트가 자켓을 가져와 입혀주자 지민이 어색한 몸짓으로 그에 응했다. 블링블링한 블랙 수트는 마치 처음부터 그를 위해 준비한 것처럼 핏이 완벽했다.


잠자코 서서 지민을 유심히 보던 석진이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정아, 아무래도 박 기자님 헤어랑 메이크업도 하셔야겠다. 옷이랑 영 따로 노는 게 느낌이 안 살아.”

“예?! 헤어랑 메이크업이요???”


지민이 기겁하자, 석진이 꾸깃 미간을 찌푸렸다.


“박 기자님, 그 파티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드레스 코드도 있고요. 익숙하지 않으시겠지만 협조 좀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끙…….


결국 얌전히 앉아 드라이와 메이크업까지 받고 있다. 특종을 위해 제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내던진 지민이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스타일리스트와 헤어 메이크업 담당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저들끼리 계속 조잘조잘 떠들며 손을 놀린다.

어머, 진짜 기자님 맞으세요? 피부 너어어무 좋으시다. 어머, 섀도 잘 받는 것 좀 봐, 웬일이니! 기자님 귀도 뚫으셨네요, 귀걸이 괜찮으시죠? 어머, 입술이 어쩜 이렇게 도톰하셔!


……아, 예에. 좋아요, 맘대로 하세요.

지민이 눈도 뜨지 않고 영혼 없이 답했다. 먹고 살라고 참, 내가 별 짓을 다 하지.



“오빠, 기자님 준비 다 되셨어요!”


한참이 걸려서야 겨우겨우 세팅이 끝났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석진이 스타일리스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헐?! 눈앞에 선 지민을 본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흡사 웨딩샵에서 막 드레스를 입고 나온 예신을 보는 예랑이 같은 표정이다.


“세상에……, 박 기자님, 연예인을 하셔도 되겠는데요?”


그의 유난스런 반응에 민망해진 지민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올랐다.


전문가들의 손길을 받은 지민은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절반만 옆으로 넘긴 앞머리에 드러난 반듯한 이마는 그의 유려한 얼굴선을 돋보이게 했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가 뽀얗게 빛났다. 긴 눈매는 음영을 넣어 강조했고, 맑은 상아빛 뺨과 살짝 붉게 칠한 입술이 진한 색의 대조를 이뤄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깊게 파진 브이넥 셔츠는 지민의 길고 곧은 목을 강조해 섹시한 분위기를 증폭시켰다.


“진짜, 너무 멋지세요, 대박이에요!”


스타일리스트, 헤어 담당, 메이크업 담당 등등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지민을 칭찬했다. 석진의 매니저 동철은 한술 더 떠 스카웃 팀에 연락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장난스레 물었다.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지민이 부끄러운 듯 손을 내저었다. 어색함에 뒷목을 매만지던 지민이 다시 한 번 거울을 들여다봤다. 화장한 얼굴이 낯설긴 하지만 제가 봐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으쓱,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좋아, 박지민. 아직 안 죽어쓰.












***





석진과 함께 들어선 곳은 유명 호텔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겹겹의 경호원들이 수차례 신원과 초청장을 확인했다. 톱스타인 석진 덕에 그의 동행인 지민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입구를 통과했다.


파티장에 들어서니 넓은 홀 전체가 클럽으로 탈바꿈해 들썩이고 있었다. 양 사이드에 놓인 테이블들 위에는 풍성한 꽃 장식과 고급 샴페인들이 늘어져 있고, 각종 칵테일과 핑거 푸드들이 보기 좋게 차려져 있었다. 중앙의 무대에선 디제이가 디제잉을 하고 일부는 그 앞에서 엉켜 춤을 추고 있다. 지민은 예상보다 큰 파티 규모와 화려함에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장내는 어두웠고 현란한 조명이 어지럽게 빛났다. 두 사람이 파티장에 들어서자마자 석진을 알아본 이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주변을 에워쌌다. 지민은 그의 뒤에서 어색하게 목례만 거듭했다. 더러는 석진에게 지민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는데, 그가 “우리 회사 신인” 이라고 둘러대 속으로 기함했다. 심지어 그걸 들은 이들이 또 아무렇지 않게 믿는 눈치여서, 지민은 매우 복잡한 심정이 됐다.


아, 나 기자 때려 치고 연예인이나 할까…….


지민이 좀 더 연예계를 잘 알았더라면 더 많은 거물들을 알아 봤을 테지만, 그는 아직 그럴만한 내공을 갖추지 못했다. 정말 연예인들이 많이 오긴 한 건지 아는 연예인이 많지 않은 지민의 눈에도 익숙한 얼굴들이 더러 보였다. 지민은 반사적으로 정국이 온 것은 아닐까 두리번거렸다.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석진이 지민의 귀에 속삭였다.


“정국이는 없어요.”

“아? 네…….”


지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없다는 게 아직 안 왔다는 얘기인지 안 올 거라는 얘기인지 헷갈렸지만, 또 친하냐는 오해를 받기 싫어 더 캐묻지 않았다.


“김남준 대표, 저기 있네요.”


석진이 안쪽 테이블을 가리키며 지민에게 귀띔했다. 지민도 신문에서 사진으로 여러 차례 보았던 김남준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석진이 성큼성큼 남준에게로 향했다. 지민은 살짝 긴장한 채로 그의 뒤를 따랐다.


“김 대표님!”

“오, 석진 씨.”


반가운 표정의 두 사람이 가볍게 포옹했다. 그들은 꽤나 친한 사이인 듯 보였다. 서로의 근황을 묻는 인사말이 오간 뒤에야 남준이 석진의 옆에 선 지민에게 시선을 주었다. 말 대신 눈으로 누구냐고 묻는 그에게, 지민이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B일보 박지민 기자입니다.”


지민이 자켓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명함을 확인한 남준의 얼굴에 잠시 놀란 기색이 스쳤다. 이내 미소를 띤 그가 지민에게 악수를 청했다.


“너무 잘생기셔서 배우이신 줄 알았더니, 여기서 기자님을 뵐 줄은 몰랐네요.”


남준의 시선이 슬쩍 석진을 향한다. 석진이 장난스레 웃었다.


“제가 되게 좋아하는 기자님이시거든요. 히트맨 투자건 좀 알려주세요. 빚진 게 있어서 그래요.”


석진의 말에 남준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석진 씨가 어쩌다가? 남준의 말에 석진이 어쩌다보니까요, 하며 마주 웃는다. 박 기자님 대단한 분이시네. 남준이 지민에게 샴페인 잔을 내밀었다. 챙- 그들의 잔이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김 대표님, 단독으로 주시면 잘 보이게 써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러시죠, B일보랑 우리는 옛날부터 관계가 좋아요. 정 회장님(B일보 사주)하고 저희 아버지하고도 잘 아는 사이시고.”

“네, 맞습니다. 히트맨 투자건은 언제 싸이닝 하시죠?”

“이미 세리머니까지 끝냈습니다. 보도자료 낼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데, 운이 좋으시네요.”

“지분은 얼마나 확보하시는 거예요? 어떤 그림 그리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흐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앉아서 하시죠.”


김남준 대표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쾌남이었다. 훤칠한 키와 균형 잡힌 몸매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거기에 세련된 화술과 기품 있는 제스처는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란 재벌 3세다운 분위기를 폴폴 풍겼다.


남준의 테이블에는 인기 절정의 여배우인 ‘수진’도 앉아 있었는데, 워낙 유명한 배우인지라 지민도 아는 얼굴이었다.


헐, 여신인줄…….

지민은 그녀의 실물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적잖이 놀랐다. 확실히 여배우들은 여자 아이돌들과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남준이 자리에 앉자 수진이 익숙하게 그의 어깨를 매만지며 몸을 기댄다.


“대표님 누구? 새로 키우는 신인이야?”


남준이 그녀의 귀에 뭐라고 속삭이자, 그녀가 허리를 바로 세우며 지민을 향해 까닥, 인사했다. 지민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석진은 동료 연예인들과 인사를 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고, 지민과 남준은 샴페인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최종 목표는 글로벌 아이돌을 육성하는 겁니다.”

“프로듀싱은 히트맨이 맡는 건가요?”

“아마도 그렇겠죠?”


들으면 들을수록 기사의 윤곽이 잡혀갔다. 지민은 척추를 타고 흐르는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국내 최대 미디어 기업이 국내 최고 연예기획사와 합작 투자를 한다. 그리고 글로벌 아이돌 양성 프로젝트에 나선다. 이 정도 사이즈면 문화면 톱이 아니라 1면에도 내보낼 수 있을 정도의 뉴스였다.


두근두근.

오랜만에 손에 쥔 대형 특종에 지민의 가슴이 세차게 달음질쳤다.







***







호텔 지하주차장, 밴에서 내린 정국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파티 장소로 향했다. 이런 자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정국이었으나 1인 기획사를 설립한 뒤로는 대표 자격으로라도 얼굴을 내밀어야 했다.


더군다나 CG그룹 3세이자 CG미디어 대표인 김남준이 참석하는 파티다. CG미디어는 그가 주연한 영화 ‘창공’의 제작사이자 배급사인 까닭에 정국은 다른 이들보다도 그와의 관계가 중요했다.


수트 매무새를 한 번 더 점검한 그가 곧장 파티장 입구로 향한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다소 늦은 도착이었지만 분위기는 한창 무르익어 있을 터였다.


정국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한눈에 알아본 경호원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문을 열어주었다.






정국이 입장하자 장내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에게 집중됐다. 어느덧 연예인들의 연예인이 된 그다. 더러는 수군대고 더러는 감탄하며 정국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훔쳐냈다. 익숙한 얼굴들이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어이구, 이게 누구신가, 전 대표님 아니신가.”


국내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YM엔터테인먼트의 최 대표가 가장 먼저 정국을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정국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제법 대표 태가 나는구먼?”


최 대표가 의뭉스레 웃으며 정국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능구렁이 같은 그의 농을 정국이 여유롭게 받아쳤다.


주변을 스캔한 정국이 빠르게 남준을 찾았다. 무의미한 인사를 몇 번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몰려왔다. 쭉정이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얼른 알맹이에게 눈도장을 찍고 집에 돌아가 쉬고 싶었다. 들러붙는 무리들을 적당한 예의로 쳐낸 그가 남준의 테이블로 향했다.


“좀 늦었습니다. 대표님.”


정국을 발견한 남준이 웃으며 그를 맞았다. 익숙하게 어깨를 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우리 영화 홍보하느라 바쁜 거 내가 다 아는데 무슨 그런 말씀을.”

“선배님 안녕하세요.”


남준의 곁에 있던 수진이 정국을 향해 알은 체를 했다. 그녀와는 이전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사이다. 정국이 그녀를 향해 웃어보였다.


“대표님 옆에 자리 있습니까?”

“아, 손님이 계시긴 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우셨네. 앉아요.”


남준과 정국은 <창공>의 흥행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미 해외 판매와 VOD 서비스만으로도 손익분기점은 넘긴 상태. 영화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찍고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악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정국에 대해서도 평단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국은 내심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남준이 칸 영화제 초청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초청이 성사된다면 정국이 레드카펫에 서게 되는 것은 물론, 남우주연상 수상도 점쳐볼 수 있게 된다. 기다리던 희소식에 정국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정국아!”


저쪽에서 정국을 발견한 석진이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석진의 주위에 작년에 함께 드라마를 찍었던 감독과 배우들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한 정국이 남준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어났다. 샴페인 잔을 들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는데 얼핏,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박혔다.


박지민…, 기자?

놀란 정국이 눈을 깜빡였다.


설마……. 박 기자가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다. 며칠 못 봤다고 헛게 다 보이나. 고개를 돌린 정국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흘깃흘깃, 자꾸만 그 남자에게 눈길이 간다.


뭐지, 맞는 것 같은데? 보면 볼수록 박 기자가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심장의 요동이 쿵, 쿵, 쿵. 디제이의 비트를 따라 빨라진다.


“정국 씨, 오랜만이야.”

“감독님 잘 지내셨죠? 작품 끝나고 따로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이런 데서나 뵙네요.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요즘 더 멋있어졌어. 원래도 멋있었지만, 하하하.”


정국은 감독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과도 차례대로 인사를 나눴다. 그들과 어울려 웃고 있는데도 시선은 계속 박 기자를 닮은, 어쩌면 박 기자일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좇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정국을 알아챈 석진이 정국의 귀에 속삭였다.


“박 기자님, 장난 아니지?”


홱- 고개를 돌린 그가 석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맞구나. 씨발.


“형 짓이야?!”

“누구 때문에 빚진 게 있어서 갚을 겸. 큭큭.”


이 상황이 그저 재미있기만 한 석진이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어이쿠, 우리 정국이 형 한 대 치겠네, 치겠어. 석진이 장난스런 표정으로 놀려대자 정국이 하, 하고 짧은 숨을 뱉었다.


“이런 장난치지 마요, 존나 열 받으니까.”


어금니를 물고 으르렁대듯 낮게 경고한 정국이 다른 이들 몰래 석진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퍽 쳤다. 그러곤 잔뜩 굳은 얼굴로 지민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아니, 왜 저렇게 열을 내? 누가 채갈까 봐 걱정되나 봐? 천하의 전정국이 똥줄 타는 모양새가 어찌나 재밌는지, 석진은 아픈 옆구리를 쓸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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