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하 X 하 랑





   눈앞이 조금 흐렸다. 랑은 피곤함에 한숨을 쉬다가도 손님들이 올 때면 안 그래도 안 좋은 인상을 그나마 좋아보이도록 애써 입 꼬리를 올려 웃곤 했다. 하필 가장 바쁜 시간표인 요일이었는데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는 선배가 도움을 요청한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온 랑이었다. 모든 주문을 받고 난 후에 랑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양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피곤이 계속 몰려왔다. 바쁜 과제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지라 귀에서는 이명이 울렸고 눈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이러다가는 제대로 실수할 것 같다는 생각에 랑은 양 손으로 제 뺨을 때렸다. 조금 정신이 차려졌을 때는 언제 시작했던 것인지 라이브 공연의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다. 얼마나 일 하겠다는 보컬들이 없었던 것인지 실력이 부족한 보컬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차라리 귀 없었으면 좋겠다. 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문 받은 음료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을 애써 노력하며 음료를 만들고 손님들께 직접 가져다드리는 것을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랑은 쉴 수 있었다. 랑은 안도하며 그제야 자리에 앉아 노래를 제대로 감상하기 시작했고, 그 노래가 너무 별로여서 잠시 졸았던 것인지 눈을 감았다 떴을 때는 어느새 또 보컬이 바뀌어 있었다. 타이밍 좋게 눈을 떴을 때 다른 손님도 주문하러 와서 랑은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을 받고,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잘못하다가는 또 졸면서 만들 뻔 했다. 갑자기 지금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큰 환호성이 들려와 랑은 잠에서 확 깨어날 수 있었다. 뭐지,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특히 여성들의 환호성이 큰걸 보니 아무래도 얼굴이 잘생긴 보컬이라도 온 것 같다고 랑은 추측했다. 지금까지 라이브 카페에서 이렇게 일 해보면서 몇 번의 경우를 봤기 때문에 이렇게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랑은 그 사람에게 흥미도, 최소한의 궁금증도 들지 않았다. 동성의 남자이기 때문은 아니고 일단 제게는 짜증나게도 누구보다 가장 잘생긴 연인이 있었으니 엔간한 사람들이 잘생겼다, 라고 말하는 대상들을 보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생겼네. 라고 생각될 정도랄까. 칵테일을 만들며 들리는 목소리가 상당히 감미로웠다. 함께 치는 듯한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오, 정말 연주하는 건가? 이번에는 꽤 제대로 된 사람을 구했나보네. 조금은 목소리가 익숙하게 들리는 것 같은 건 제 착각일 것이라 믿었다. 그 녀석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으니까.

랑은 다 만든 칵테일들을 손님들께 가져다드리고 다시 의자에 앉아 노래하는 이를 바라보았다. 제대로 눈이 보이질 않아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랑은 손으로 제 눈을 비비다가 다시 그 노래하는 이를 바라보았다. 아마 제 눈이 맛이 간 게 아니라면 그는 이 도하다. 그 녀석이 왜 여기 있어?! 랑은 속으로 소리치면서도 계속 이어서 노래하는 도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쓸데없이 노래는 엄청 잘하고 피아노까지 잘 친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랑에게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상당히 좋으니 노래를 불러도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말 노래도 잘했다. 누구 애인인지 참 잘생겼다. 게다가 노래도 더럽게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며 목소리까지 좋다. 성격만 고치면 정말 완벽할 텐데. 랑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괜히 붉어진 제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도하를 바라봤을 때, 눈이 마주쳤다. 도하는 정확히 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얼굴을 가리고 있던 랑의 얼굴이 더욱 당황하는 표정으로 물들자 도하의 표정에 조금은 웃음이 띄었다.

   “Marry me darling, 나와 결혼해줄래요.”

   사실 가사 내용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의 목소리, 피아노 소리, 그리고 그의 얼굴에 빠져 제대로 들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눈을 마주치고 났을 때, 그가 부르는 가사 내용이 뇌리에 한 글자, 한 글자 전부 박혔다. 동시에 씩 웃는 웃음이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얼굴이 정말 타오를 것만 같아 랑은 애써 고개를 돌려 도하에게서 시선을 뗐다.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알고 보면 나한테 부르는 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곳에 있던 여성에게 부른 게 아닐까. 정상적인 생각이 불가능해진 것 같았다. 연인을 내버려 두고 다른 사람에게 세레나데를 부른다니, 설마 성격이 아무리 쓰레기 같아도 그런 짓을 할까. 그렇게 생각하려 했으나 잠깐 한 이상한 생각만으로도 괜히 마음속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랑은 억지로 그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저었다.

   도하는 급히 고개를 돌린 랑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왜 고개를 돌린 건지 모르겠다. 도하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다가 저도 다시 피아노로 시선을 옮겨 간주 부분을 연주했다. 혹시라도 싫은 걸까. 공개 프로포즈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던 거지. 그래, 랑아. 너를 위한 노래야. 너만을 위한 노래. 도하는 다시 그 생각을 하며 웃음을 지었다.

   예상대로 도하의 노래가 끝난 후에는 오늘 하루, 아니 지금까지 랑이 일 하면서 들었던 그 어떤 함성소리보다 가장 큰 소리였다. 노래가 끝난 후에 바로 여성들에게 둘러싸이는 도하를 보며 랑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만 몇 번째 한숨인지 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몇 번이고 계산을 잘못하기도 하고, 그릇을 깨먹기도 했으며 칵테일 조절을 잘못하기도 했다. 결국 선배에게 제대로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랑은 억지로 정신을 붙잡으며 일을 다시 시작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랑은 다시는 이 라이브 카페를 도와주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어쩐지 이전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은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랑은 사소한 것을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도하는 랑의 일이 끝날 때까지 카페의 한구석에 앉아 노래를 듣고 있다가 랑이 나오자마자 큰 보폭으로 그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평소와는 다르게 웃지도 않고 분위기를 잡으며 다가오는 탓에 랑은 급격히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등 뒤에 벽이 느껴졌을 때, 도하는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랑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얽으며 깍지를 끼고, 반대쪽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살짝 넘겨주었다. 랑의 얼굴이 금세 새빨개지며 입을 열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래.”

   계속 밀어내는 손을 한 손으로 붙잡으며 도하는 오히려 목소리가 낮아진 채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노래, 들었어? 그 목소리에 몸을 움찔 떨던 랑은 고개를 들어 도하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랑은 시선을 피하며 웅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노래는 무슨 노래, 너 때문에 다 망했어. 놔. 평소와는 달리 조금은 어린 아이 같은 그런 말투에 도하는 픽 웃었다. 아무래도 지금 말이 생각을 거치고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이런 점도 귀엽지만. 도하는 머리카락을 넘기던 손을 천천히 내려가며 귓불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들었으면서. 도하를 밀어내던 랑의 손이 멈췄다. 눈 마주쳤잖아. 내가 너 귀여운 표정 다 봤는데? 망한 것도 다 네가 나한테 반해서 그런 거잖아? ……어쨌든. 도하는 조금은 긴장한 듯 심호흡을 하고는 살짝 고개를 숙여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나랑 결혼하자, 랑아.”











17.05.05

(뻘하게 카페에서 이 노래 듣고는 라이브카페 썰과 연관 지어버렸다고 한다.)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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