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질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3nt 캐릭터가 과분할 만큼, 현실의 나는 꽤나 뚝딱이다. 남자 앞에서 절절매고, 입으로 잘만 먹고 살면서도 남자 앞에서 입으로 망하기 일쑤인… 뚝딱이 짓을 한 차례 저지르고 나면 어김없이 자기반성의 시간이 찾아온다. 또 망쳤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렇게 할 것을, 저렇게 할 것을… 하며 얼마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처참함을 곱씹어댄다. 서투른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 끝나버린 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 한스러움, 다시 처참함까지. 자책의 사이클이 몇 번이고 돌아가는 과정에서 길고 긴 글이 주르륵 쏟아진다. 무슨 연애 칼럼니스트라도 된 것마냥. 


간만의 썸이 허무하게 끝나버린 지 두 달 만에, 또 다시 괜찮은 남자를 만났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가 연이어 생길 줄은. 첫인상도 좋았는데 대화를 거듭할수록 느낌이 더 좋아서, 이러다가 정말로 좆될 것만 같았다. 들뜨면 안 된다고, 실수하면 안 된다고. 갑작스런 관계적 쾌감에 저 멀리 떠내려가는 정신줄을 부여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건만… 좋지 않았던 컨디션과 에너지드링크, 하필 첫만남부터 술을 기어코 마셔야겠다는 그의 고집이 맞물려 벌어진 대참사: 잊고 지냈던 정신병적 사고가 한껏 달아오른 술기운에 실려 폭포수처럼 터져나오고 말았다. “너처럼 괜찮은 애가 나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얼마간 처참하겠지만 그만큼 나아지겠지. 늘 그랬으니까.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잃은 적은 없다. 다만 얼마나 더 놓치고 더 후회해야, 비로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더 처참함을 느낀다. 어떤 이는 별 노력 없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난다. 마치 연애만큼 쉬운 일이 없는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왜… 왜 나는 매번 실패에 뒤따르는 처참함을 씹으며 내가 내린 선택과 내가 한 행동 하나하나를 해부하듯 복기하고,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더 나아지고자 분투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렇지만… 겨우 이렇게 태어난 이상 방법이 없어. ‘호구’로 태어난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안 호구’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다, 또 어디 깨지고, 다쳐서 울고, 낫는 대로 다시 움직여야겠지? 안 행복해도 어쩔 수 없지? 얼마간 처참하다가 또 얼마간 노력하겠지? 어쨌든 더 나아지기는 할 테니? — 일기 중 발췌

완벽하게 망쳐버린 첫만남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만회할 기회를 흔쾌히 허락해줬다. 약속 당일, 멀리서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니 불현듯 지난날에 대한 수치심이 확 올라왔다. 이미 내 마음을 그에게 다 들켜버렸다는 생각에 반가움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오늘의 데이트가 쭉 이런 형국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괜스레 틱틱거리며 호감을 감추기 바쁜 내 모습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갔다. 데이트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의 표정을 살피고 나서야, 뭔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찝찝한 뒷맛을 남긴 이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카톡. 애써 스몰토크를 이어나갔지만,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돌을 더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널 좋아하는 만큼 표현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영화 한 편을 다 찍고 난 뒤, 연애 도사인 헤남(이성애자 남성)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며 그간의 이야기를 한껏 쏟아냈다. 다른 어떤 삶의 영역에서도 이렇게나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왜 연애만 이 지경이냐. 왜 너는 아무렇지 않게 연애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이 드냐. 사뭇 진지한 자세로 술주정에 가까운 내 말이 끝나길 기다리던 헤남이 이 모든 아수라를 한마디로 정리해버렸다. “그냥 그 사람이 너랑 안 맞았던 게 아닐까?”… 헤남 왈, 누군가는 뚝딱거리는 너의 모습을 귀엽게 봐줄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넘길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표현하고 더 받아줄 것이란다. 그는 단순히 그만큼의 깜냥을 갖지 못한 사람일 뿐, 네가 잘못된 것이 아니란다.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자책할 일은 아니고, 너 또한 너와 잘 맞는 사람을 언젠가 분명 만날 것이란다. 이게 무슨. 내 고군분투가 이렇게나 간단히 정리되다니. 이렇게나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였다니. 위로가 되면서도, 참 부러웠다. 이것 역시 네가 사랑에 익숙한 ‘안 호구’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이겠구나 싶어서. 


고작 두 번의 만남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서로가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이런 모습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마트폰 너머로 비관의 언어가 겹겹이 쌓이는 것을 들으며, 어쩌면 더 이상 돌이키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솔직한 토로를 듣가 보니 왠지 모르게 기대하게 되는 구석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생각과 감정 앞에 진실할 수 있는 사이라면, 잘 맞지 않아도 대화하면서 맞춰가면 될 일이니까. 그러나 그는 그 정도까지 감수하려는 마음이 없어 보였다. 관계의 끝을 직감한 채 밤새 장톡을 꾹꾹 찍어 보냈는데… 연락을 끊을 생각까진 아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책갈피를 끼워둔 채 방치된 책마냥 끝 아닌 끝이 난 가운데, 비로소 처참함의 쓰나미가 마음 안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한동안, 꽤나 처참했다. 처참함이라는 말이 이 글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처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달리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처참함의 화살은 늘 나를 향해 있었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서툴러서, 내가 어리석어서. 쪽팔릴 새도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처참함에 대해 토로하고, 그들의 공감과 위로를 차곡차곡 적립하는 것으로나마 어지럽혀진 마음을 달래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기억의 디테일이 조금씩 흐릿해지면서… 감정도 차츰 잦아들었다. 이제는 폐허처럼 남은 이름 석 자와 지난 카톡 기록을 가끔씩 들춰보는 일만 남은 셈이다. 또 누군가에게 새로 반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에게서 사라질 터. 시절인연(時節因緣)… 이 얼마나 짧고 덧없는지. 그게 그저 아쉽고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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