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트리거 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작품은 픽션이며 실존 인물과 관계가 없습니다.

 


러시안 룰렛 

 


나는 덫에 걸린 쥐 같았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힐끔 쳐다본 그녀는 이내 이곳을 떠났고, 난 놀라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내가 계속해서 엄마를 부르지만 그녀는 답하지 않는다. 무력하지만 분노한 걸음으로 걸어가던 그녀가 방문을 세게 닫는다.



 

“엄마, 도대체 무슨 말이야!”

 



문을 두들겼지만 안에서 대답은 없었다.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난 그녀의 태도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갑자기 엄마가 왜 이러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혼란스러워 한참이나 푸른 문 앞에서 서 있었다. 견고한 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난 뒷걸음질을 쳐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의 반응에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곱씹어 보았다. 이런 기시감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거슬리는 건 무척이나 많았다. 무엇이? 아마도 형과 나의 관계? 들킨 걸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 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난 떳떳하지 못하다. 만약 엄마가 우리 관계를 알아버린 것이라면 나는 어떡해야 하지. 내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천칭 앞에 그들을 세워서 선택할 수 있을까.

 



“미칠 것 같아.”

 



난 휴대폰을 들어 형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초조해진 나는 몇 번이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연결되지 못했다.


평소엔 그렇게 잘 받으면서!


화가 난 나는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바닥과 부딪힌 휴대폰은 부셔지고 망가진다. 도대체 뭐야, 뭐냐고. 의뭉스러운 엄마의 태도에 불안해진다. 그전과는 차원이 다른 엄마의 태도. 내게는 항상 자애로웠던 엄마의 얼굴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 그 표정을 그려낸다. 하지만 결국 기억하지 못한다.




 

“아, 아니겠지.”




우리의 관계는 쉽게 들킬 일이 없는 비밀스러운 것이다. 이 은밀한 결속은 결코 깨질일도, 누군가에게 드러날 일도 없다. 그래, 그럴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을 잠재웠다. 손등을 손톱으로 세게 긁으며 애써 웃었다. 그런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의 키스는 자극적이어서 불안하다. 농염하게 내게 키스를 하는 그의 입은 오늘도 다정하지 못하고, 여유롭지 못하다. 머리 한 켠 으로는 엄마와의 일로 불편했지만, 그의 입술을 떨쳐내기란 어렵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감촉은 아주 위험하고 달콤했다.

난 그의 위에 올라타 그에게 키스를 한다. 손을 마주잡고 우리가 마치 연인인 것처럼. 달콤한 그 행위는 역시나 무척이나 좋다. 정제되지 못한 욕망이 내 눈에 보이고, 그 또한 나와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순간은 발끝부터 아득해져 이성을 잡기가 힘들다. 그런데, 귓가에 낯선 소리가 들린다.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아주 작은 틈, 그 틈 사이로 익숙한 형체가 보인다. 그 형체와 눈이 마주친다. 그 찰나의 시선 그 눈은 나를 향한 경멸을 보인다.

그때 돌이키지 못함을 직감했다.

엄마가 날 향해 그런 시선을 보낼 때, 그녀와 나는 끝임을 알았다. 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친 후, 천천히 문을 닫는다. 핏기가 가신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멈추자 의아해하는 형이 날 부르는 것 같은데 들리지 않았다.





“… 말도 안 돼.”

 


분명히 닫혀있어야 할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다시 닫혔다. 난 일어나서 문 앞으로 걸어갔다. 아주 찰나의 거리, 손을 뻗어 문고리를 돌리면 되는데 망설였다. 이미 절망적인 걸 알아버린 나는 결국에 문을 열지 못한다.


 

“태형아, 무슨 일이야?”

 

형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난 그에게 안기며 미친놈처럼 중얼거렸다.

 


엄마가 봤어. 형과 내가 키스하는 걸 엄마가 본거야. 나 이제 어떡해. 알아버렸어. 그녀가 우리의 관계를 알아버렸어. 그리고 날 버렸어. 문을 닫았어. 난 저 문을 나갈 수가 없어, 나는, 나는 어떡해. 형, 나 어떡해.


 

스스로 무엇을 말하는 지, 무엇을 지껄이는지 모른 채, 모든 단어들이 갈 곳을 잃은 채 문성을 완성해 나간다. 그 문장은 완벽하지 못하고 오히려 최악에 가깝다.

우리의 관계는 아무도 몰라야할 비밀스러운 결속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엄마가 깼고, 그녀는 그렇게 가버렸다. 닫힌 푸른 문은 그녀의 심정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제 엄마는 날 다시 보지 않을 거다. 아버지가 부정을 저지른 후 그녀가 했던 행동처럼. 자애로웠던 엄마의 표정이 달라졌던 그때. 그래, 그 표정이었다. 아버지에게 보여줬던 표정을 엄마는 나에게도 보였다.


 


“태형아….”

 



안타까워하는 그는 나를 꽉 안은 채, 그저 날 위로한다. 괜찮을 거라는 말도 없이, 그저 내 이름을 부를 뿐이다. 그 따뜻하고 다정한 손에 눈물이 났다. 숨이 막혀왔고, 엄마한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도 그 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안도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버릴 수 없다. 엄마는 나의 엄마다. 날 낳아주고 사랑으로 키워준 엄마는 절대 끊을 수 없다. 그녀가 날 버렸어도 다시 되돌려야 한다.

우리의 관계를 알아버린 엄마. 그리고 나와 그 관계를 맺는 형. 천칭에 올려 그들을 재본다. 천칭의 저울은 엄마 쪽으로 기울고 있다.

 



“형, 제발 죽어줘.”

 



잔인한 나는 이런 선택밖에 하지 못한다. 그러나 난 이런 결말을 원하지 않는다. 내 미래를 찾기 위해, 그를 죽게 하지 않기 위해 거부했던 것이 간절해진다.



 

“… 무슨 말을 하는거야.”

“형. 부탁할게. 제발 죽어줘.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어. 다음에도 당신을 사랑할게. 영원히 당신밖에 없다고 말할게.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까, 제발 죽어줘.”




그가 나를 밀쳐버린다.

화가 났을까. 절망 했을까.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스스로 내가 잔인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데, 그는 얼마나 상처받을까. 그러나 그가 죽으면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의 상처는 없을 거고, 우리는 더 아름답고 은밀하게 사랑할 수 있다. 난, 그것이 필요했다.


 


“… 그 말 만큼은 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형은 눈물을 흘리며 웃는다. 무너지는 그의 얼굴에 가슴이 아파와도 난 절박했다. 내가 미쳤다는 걸 알아도, 그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을 알아도 어쩔 수 없다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말한다는 게 겨우 그따위야.”



 

그가 천천히 다가온다. 주저앉은 나를 일으키고 세게 껴안아준다. 이 특별하고 다정한 감촉에 나또한 눈물을 흘린다. 미안해, 형. 그렇지만 제발. 제발 죽어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아. 난 이게 간절해. 내가 속삭이자 그는 말한다.

 


“더 이상 죽기 싫어. 죽을 때 괴롭거든.”

 


그가 나를 옭아맨다. 더 세게, 강하게 날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압박한다.



 

“이제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결말로 이루어졌는데 미쳤다고 또 죽어야 돼? 안 되지. 우리의 반복되는 시간은 이제 끝이야, 태형아.”


 

눈물이 번진 눈으로 그가 날 바라본다. 입 꼬리를 올리며 내게 다정하게 웃는다.

 



“네 모습도 기꺼이 사랑해. 그러니까 이제 세상 끝까지 갈 시간이야. 함께.”

 

 

 


 

 



 

내 모든 백합들이 소멸한다. 뽑히고 밟히고 시들고, 순결했던 존재들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붉은 장미로 뒤덮인 공간은 이제 내 것이 아니었다. 어두운 공간, 백합과 장미가 대립했던 그곳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총은 이미 그가 밟아 부셔졌고 남은 것은 금색의 총알뿐이었다. 총이 없으니 그를 죽일 수도, 날 죽일 수도 없다. 그저 무력해질 뿐이다.

그는 남은 총알마저 사탕처럼 깨물어 부신다. 조각조각, 떨어지는 총알의 파편들을 보며 난 눈물을 흘렸다.


 

“이제 걱정마. 우리는 하나가 된 거야.”


 

괴로운 그의 표정, 그러면서도 내게 사랑을 말하는 그. 나의 아름다운 이복형은 가장 찬란하고 화려하게 웃으며 장미를 내게 건네었다.

 

“게임은 끝났어. 네 승리야.”

 

눈 앞은 절망뿐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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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음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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