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양도

10. 악취(3)




나는 저 얼굴을 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의무실에서 낮밤을 죽이던 인간은 <개>가 되어 돌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함께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운명을 공유하던 인간은 이제 <개>가 되어 우리를 죽음의 기로로 이끈다.

······윤정이다.

연정이 흡사 <개들> 같은 소리로 울부짖는다.





기지에 <개들>이 습격한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꾸만 기울어지는 고개를 애써 똑바로 세우다가 쿵! 하는 소리에 고개를 빳빳이 세웠다. 동시에 반쯤 잠에 절어 있던 정신이 바짝 들고 아까부터 꼬집고 있던 팔목의 여린 살이 아파왔다. 서둘러 주위를 둘러봤으나 다행히 기억하던 마지막 모습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의무실 내부는 어두웠고, 여전히 다섯 걸음쯤 앞에서 이안이 의자 다섯 개를 붙여 그 위에서 자고 있었다. 체감상 동이 틀 때가 된 것 같은데 가을이 지나가고 있어서 밤이 길었다.

쿵!

그 무렵 다시 소리가 났다. 방금은 몽롱한 정신에 단언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단언할 수 있었다. 소리샘은 창문 너머다. 누군가 바깥에서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조심스럽게 창문에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 대자······

쾅!

몸이 뒤로 넘어간다.

몇 달 전 한 겹이 깨져 홑겹창이 된 유리창 너머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어둠만이 부유해야 했다. 심장이 멎었을지도 모르겠단 착각과 함께 턱 끝까지 차오른 비명을 간신히 삼켜냈다. 정확히 삼 초 뒤 멎어버린 것 같던 심장이 제 속도를 찾아 다시 빠르게 뛰다가 이젠 너무 세게 뛰어 과호흡이 올 것 같았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창밖에서 나는 건지 심장에서 나는 건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센 박동이 울려 퍼졌다.

어둠 사이로 한쪽 눈을 추켜뜬 <개>가 나를 끈질기고 집요하게 노려봤다.

흐릿하게 보이는 <개들>의 윤곽은 평소에 봤던 수준이 아니었다. <개들>이 말 그대로 떼를 이루어 기지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실은 그게 떠오르기 전부터 답을 알고 있었다. 3층 사람들은 자신들이 수적으로 유리해진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다른 층을 공격할 것이고, 마침내 5층에게서 창고 열쇠를 빼앗을 테다. 그리고 그들이 창고를 독점하는 순간 다른 층 사람들은 <개들>이 즐비한 바깥으로 내몰리고 말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직접 처리할 수도 있다. 비록 그 과정에서 그들 중 일부가 피해입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은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었고······ 그렇게 했다.

시간이 없다.

사람들을 깨워 도망가야 한다.

눈앞에서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이안을 흔들어 깨우는데 목구멍을 타고 오르는 목소리가 꼭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볼품없이 휘어지고 구부러지고 꺾인다. 목이 메일 정도의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들어.”

이안의 목소리에서 그가 긴장하고 있다는 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3층이 제일 먼저 뒤집힐 거야. 애초에 이것도 그쪽이 벌인 거겠지만······.”

“대체 왜 이렇게까지······.”

“그런 거까지 생각할 여유 없어. 우리가 다른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을 벌긴 했지만 창문에 저렇게 붙어 있는 걸 보면 후문 쪽으로도 꽤 오고 있을 거야. 그 전에 창문 부서지면 우리가 제일 먼저 죽는 거고.”

“······.”

“여기 버릴 거야. 그렇다고 다른 층으로 가라는 거 아냐. 지금 당장 탈출하는 게 나을지 안에서 버티다가 도망가는 게 나을지 판단은 각자 몫이야. 다만······ 이제 같이 움직이는 건 다 같이 죽자는 거밖에 안 돼.”

죽는다는 말이 귓가에 이명처럼 메아리친다.

쿵!

창문 중앙에 생긴 균열이 조금씩 가장자리로 퍼져나간다. 그 날카로운 소리에 빗줄기가 떨어지는 것처럼 창문에 아주 강하고 짧은 타격이 가해진다.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지금 바로 나가서 바깥에 얼마나 깔려 있을지 모르는 <개들>을 돌파해 도망치는 것과 <개들>과 다른 층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있다가 사태가 어느 정도 진압되었을 때 도망치는 것. 전자를 선택한다면 의무실 바깥에 있는 <개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담을 넘어야 하고, 무사히 담을 넘는다 하더라도 <개들>의 시간이 저물기 전까지 계속해서 목숨을 걸고 <개들>의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 후자는 전자보다 지금 당장은 생존할 확률이 높지만 그만큼 도박에 가깝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에 현명한 판단이 될 수도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의 압박이 무겁게 몸을 짓누른다. 차라리 이쯤에서 단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 끄트머리에서 떠오르는 것이 가장 비참했다.

“망설이지 마.”

이안이 배분한 식량을 하나씩 받아들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제임스와 윤정은 기지를 탈출하겠다고 했다. 후문으로 탈출하거나 2층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서 후문으로 도피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후문은 정문에서 반 바퀴를 돌아야 있고, <개들>이 드나들고 있을 출입구 대신 의무실 앞 담의 이음새를 이용하면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한 채 기지를 빠져나갈 수 있다. 다만 의무실 창문에 붙어 있는 <개들>의 눈을 피해야 하고, 어쩌면 후문으로 기어오는 <개들>과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도 있다. 이안이 망설이지 말라고 했지만 죽음의 기로에서 머뭇거리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이안은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제임스와 윤정은 입만 벙긋거리는 나를 기다리다가 이내 떠나야 한다고 했다.

“꼭······ 살아남아.”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안과 연정의 포옹을 끝으로 그들은 빠르게 자리를 떴다.

몇 달 간 생존과 죽음을 함께했던 이들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어떡할래.”

“······.”

“난 5층으로 갈 거야. 지금 그거 자살하러 가는 거나 다름없어서 같이 가자고 못 해.”

“······.”

“나갈 거면 지금이라도 가. 혼자보단 제임스나 연정이랑 같이 있는 게 나을 테니까.”

미친 것처럼 창문을 두들기던 <개들> 중 일부가 무엇에 씐 것처럼 우측으로 기어가는 게 언뜻 보인다. 제임스와 연정이, 혹은 다른 층의 생존자들이 <개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지만······ 이안의 말대로 이런 상황에서 다른 층으로 피신하는 것은 자살하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짧게라도 몸을 숨길 곳을 찾는 게 낫다. 그곳에 숨어서 동태를 살피다가 적당한 때에 도망치는 게 우습게도 가장 안전한 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대체 어디에?

지금은 생존자가 없을 지휘통제실이나 생활관으로 피신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의무실 앞에 있는 휴게실에는 몸을 숨길 데가 없고 창고나 옥상은 열쇠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순간 몇 날 전의 기억이 머릿속을 빠르게 관통한다.

기억 속에서 나는 창우와 의무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 처음 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곳은 무기 창고란 이름에 걸맞게 의무실이나 창고나 체단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군사기지의 잔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특히 총기 자국 대로 열 맞춰 바랜 벽이나 두 사람 정도는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총기 보관함이 그랬다.> <이곳, 즉 2층에 있는 무기 창고는 나와 창우의 새 밀회 장소로 낙점된 곳이었다. 얼마 전 이안에게 우리의 밀회를 들킨 이후로 사람들의 눈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새로운 적소를 찾은 것이다.>

쨍그랑!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뿌려진다. 손바닥만 한 틈으로 팔을 쑤셔 넣은 <개>가 이리저리 팔을 뻗고 휘저으며 생존자를 모색한다. 더 이상 여유가 없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무기 창고에 총기보관함이 있어.”

“······.”

“나는······ 거기로 갈게. 차라리 거기 숨어서 살펴보다가 도망치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도 갈게.”

“······.”

“같이 가.”

곧장 이안과 의무실을 나섰다. 손에 들린 비닐봉지 위로 긴장한 손끝이 맞닿았다. 이안과 내가 같은 주파수로 떨고 있어서 둘 다 떨고 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단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했다. 바닥은 피와 진액으로 미끌거렸고 위층에서는 생존자들의 것인지 <개들>의 것인지 모를 비명이 뒤섞여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도 처참하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2층에 있는 무기 창고를 향해 달렸다.



총기보관함은 다행히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두 사람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컸다. 안에 선반 두어 개가 달려 있던 흔적이 있었지만 낡아서 부러졌고 앞면이 철창으로 된 것과 다르게 하나는 완전히 쇠로 되어 있어 내부가 비치지 않았다.

우리는 길게 호흡을 한 번 뱉어내고 몸을 숨겼다.

머리를 붙이고 몸에 힘을 뺀 순간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터져나온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그의 호흡만이 그가 이곳에 실재하고 또 생존함을 증명했다.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어느 순간부터 잡고 있던 이안의 손을 더욱 힘 주어 세게 잡았다. 제임스와 윤정은 무사히 도망치는 데 성공했을까. 3층 사람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기 싫다는 이유로 <개들>을 기지에 끌어들였을까. 진과 5층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을까. 우리는 언제 이곳에서 나가야 할까. 그다음에는 어디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그때 이안이 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밀어넣었다. 깍지 낀 손에서 미약하게나마 그의 심장이 확장되고 또 수축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타인을 위한 걱정과 앞날을 향한 불안은 사라진다. 차라리 이대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과 두려움과 절망감을 모두 제치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안도에 얼굴이 흠뻑 젖는다.

“살아 있어.”

살짝 벌어진 문틈으로 동이 터올랐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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