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
*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평범한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힘이 발현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
* 청소년 시기에 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능력만 조절하면 생활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저들과 다른 존재들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안했던 정부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고 그들을 통제한다는 명목 하에 기관을 만들었고, 센티넬로 확정이 나는 즉시 일주일 내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기관으로 들어가는 것이 원칙.
* 센티넬이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의 가이드뿐이며, 따라서 센티넬이 폭주할 상황을 대비해 그들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가이드 또한 마찬가지로 기관에서 생활하는 것이 원칙.



탁-. 뻔한 내용들만 적혀 있는 책을 거칠게 닫고는 방 안의 침대 위로 집어던졌다. 정확히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이것저것 적어놓다니. 다시 봐도 같잖다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관 안에서까지 되도 안 되는 말들만 적혀있는 책 따위는 꼴 보기도 싫었으나,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기에 그저 신경질만 낼 뿐이었다.


대부분의 센티넬과 가이드가 청소년 시기에 발현되었다는 이유로 정부에서는 '그것들'에 대한 정보를 교육시키는 과목을 필수로 지정했다. 하도 중요하다기에 오이카와와 함께 달달 외우던 것도 벌써 3년 전이다. 15살, 정확히 며칠인지 잊어버릴 수도 없는 그날에 이와이즈미는 센티넬로 발현했다. 이와이즈미에게 있어, 자신이 이 세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센티넬이 된 후,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기관에 갇혀야 한다는 사실만이 저들에게 큰 재앙이 되었을 뿐이다.

센티넬이 되어버린 날, 어머니는 울고 계셨고 아버지는 한숨만 쉬고 계셨으며 오이카와는, 오이카와는 기절해 있었다. 그가 기절한 이유는 간단했다. 센티넬로 발현한 자신이 갑자기 폭주하는 제 힘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방출했기 때문이다. 이, 이와, 쨩…! 자신을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에서야 비로소 자신도 힘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괘…, 괜찮아, 이와쨩. 방금까지 제 힘에 눌려 제대로 말도 못하고 제가 다가가면 눈에 띄게 저를 무서워하면서도, 저를 위로하는 모습에 이와이즈미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센티넬의 위험함이구나.

센티넬로 발현되고 나서 무서운 일은 주체하지 못하는 힘이 아니라, 그 힘으로 제가 사랑하는 오이카와를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울면서 기관으로 향하는 저를 막을 때에도 이와이즈미는 자발적으로 기관에 들어가겠다고 움직였다. 이번에는 다행히 정신을 차렸지만 언제 또 오이카와를, 아니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집념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오이카와가 저를 따라와 가이드가 된 것이 그 바로 다음 해였다. 바보카와.



W. hina


“아주 그냥 대놓고 연애질을 하지 그랬냐.”
“그래서 해줬잖아. 너도 해보던가. 짜릿해서 또 하게 될 걸.”

농담이 나오냐? 진심인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오는 이와이즈미의 대답에 마츠카와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 결과가 감옥에 갇히는 것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시도했을 거다, 이 자식아. 마츠카와는 얼굴에 상처를 가득 입은 채 독방에 갇혀 있는 제 친구를 바라보았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A+의 높은 등급의 능력을 가졌으면서 기관에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왔다는, 그 정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유명한 센티넬이었다. 얼마나 유명하냐고 물어본다면 기관에 속해 있는 사람들 중 관리자들 같은 일반인이라도 전부 알 정도라고 답할 수 있겠다. 오죽하면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마츠카와 자신조차도 그를 알고 있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기관에 자발적으로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명할 이유는 충분했지만, 이와이즈미는 기관 내 몇 없는 S등급을 제외하면 제일 높은 등급을 가진데다가 웬만해선 지지 않는 체력, 그리고 다부진 몸으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개중에는 남성들의 마음도 있다고 들었다. 어느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그 이유 외에도 그의 철벽같은 모습이 한몫 하기도 했다.

* 힘을 제어하는 방법에는 스킨십이 있으며, 센티넬의 폭주 정도에 따라 스킨십의 정도도 다르다. 제일 빠른 방법은 관계를 맺는 것이나, 감정이 동요되면 오히려 힘이 폭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모두 기관에서 통제한다.

방금 전까지 이와이즈미가 읽었을 것이 뻔한—보지는 않았으나 평소 그의 행동을 본다면 추측하기 쉬운 일이다.— 책에 적혀 있는 문장이다. 센티넬이라면 제 힘을 제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이드와 몸을 섞어야 했음에도, 이와이즈미가 기관에서 몸을 섞은 가이드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어제 단 한 사람과 몸을 섞고 지금의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관계를 통제해서 뭐 해. 그런다고 사람 마음이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들한테는 도움도 안 되는데.”
“어쩌겠냐. 이미 기관에 들어왔으니 윗분들이 정해놓은 룰에 따라야지. 안 그러면 너뿐만 아니라 그 녀석도 위험하다는 거 몰라?”

몰랐겠냐? 하긴…, 너희 두 놈 다 정상은 아니니까.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이와이즈미를 내려다보던 마츠카와는 제 얼굴을 쓸어내릴 뿐이었다. 걱정돼서 와보기는 했다만 역시나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기관의 룰을 깬 벌치고는 그나마 나은 건가. 그래도 센티넬인 이와이즈미가 이 정도면 오이카와는….

“걱정하지 마. 그래 보여도 오이카와 녀석, 기관에서 몇 안 되는 유능한 가이드니까 함부로 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자길 무시하는 걸, 벌 받는 것보다도 더 싫어하는 녀석이라 오히려 지금쯤 헤실 웃고 있을걸.”

오이카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이와이즈미는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 터진 입가에 금세 찡그려야 했지만. 친구라고는 해도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이 없는 마츠카와에게는 그의 웃는 모습이란 낯선 것이었다. 이것도 다 오이카와 때문이겠지.


이와이즈미는 항상 짓고 있는 무뚝뚝한 표정과는 다르게 비교적 사교성도 있어서 다른 센티넬들과는 종종 대화를 하곤 했지만, 가이드와는 전혀 말을 섞지 않았다. 그 이유가 가이드를 혐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기관의 모든 예상은 오이카와의 입성으로 완전히 깨졌다.

기관에 제 발로 들어온 두 번째 인물, A+라는 높은 등급의 가이드, 센티넬 못지않은 신체와 기관에서는 많이 볼 수 없었던 수려한 외모까지. 오이카와가 유명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와이즈미가 유일하게 허락한 가이드라는 사실이 제일 컸다. 결국 이와이즈미는 가이드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이카와 외의 어떤 가이드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센티넬의 힘이 폭주하는 것을 옆에서 막는 일이 가이드가 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감정이 동요되면 역으로 센티넬의 힘이 증폭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에 기관에서는 센티넬과 가이드를 오직 ‘관계를 맺는 사이’로 지정했다. 따라서 기관은 감정이 동요되는 상황을 모두 배제하기로 했고, 기관의 센티넬과 가이드는 의무적으로 감정을 죽이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런다고 감정이 마음대로 되나? 그것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이와이즈미의 주장이었으며, 그에 오이카와는 언제나 수긍했다.

두 사람의 비정상적으로 의지하는 관계에, 역시나 기관은 주시하던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각자 다른 파트너를 붙여 주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금세 파트너 쪽에서 거부했고 몇 번이고 반복하던 도중 결국 두 사람은 어제 결실을 맺은 건지, 죽인다고 죽인 이와이즈미의 능력은 기관의 센서에 걸리고 말았고 결실을 맺은 다음날부터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오이카와도, 나도, 가벼운 마음은 아니니까 걱정 마라.”

오히려 그 사실이 제일 걱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 * *



기관의 긴급 경보가 울리자마자 말할 틈도 없이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와 눈을 마주쳤다. 그 녀석들 같지? 어떻게 확신하냐고 묻는다면 그간 지켜봐온 경험때문이라 답하겠다. 확신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확신하고 싶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먹던 것도 그만두고 빠르게 식당에서 벗어났다. 아는 사람을 통해 확인한 결과, 당연하게도 사고를 친 것은 두 사람이었고 그 사고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것 중 하나였다. 어렴풋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터뜨릴 줄이야. 하긴, 두 사람치고 3년 정도면 빠른 건 아닌가.

같은 센티넬이니까 이와이즈미 쪽은 자신이 간다는 마츠카와의 말에, 하나마키는 어쩔 수 없이 오이카와를 떠맡게 되었다. 오이카와가 들어오고 3년이나 지났음에도 솔직히 말하면 하나마키는 오이카와가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표정으로 드러나는 이와이즈미와는 달리, 오이카와는 늘 제 속을 감추기 때문이다. 누구나 호감을 가질 법한 성격이었지만 그것이 대외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 오이카와가 속을 다 내보이는 사람은 이와이즈미뿐이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센티넬인 이와이즈미를 가이드인 자신이 찾아갈 수도 없을뿐더러,―만일 찾아간다 해도 나중에 몰아칠 오이카와의 눈빛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친구를 버릴 생각도 없었으니, 친구를 잘못 둔 저를 탓하며 잠자코 오이카와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좋아 죽던 이와이즈미랑 몸을 섞은 기분은 어떻습니까?”
“으, 맛키! 그런 이야기는 밖에서 하지 말아줄래?”
“들을 사람도 없고, 어차피 기관 전체가 너희 잔 거 다 알게 됐는데 뭐 숨길 게 있어?”
“맛키,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혼 낼 거라면 나 여기서 나가고 해주라. 하여튼 눈치는 빨라요. 어깨를 으쓱이던 하나마키는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독방에 갇혀 있기는 했지만, 기관에서 제일 금지하는 일을 한 것치고는 꽤 멀쩡해 보였다. 웬만한 사람들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오이카와는 기관에서 놓치기 싫은 인재였을 테니 체벌을 아예 피하지는 못했어도, 못견딜 만큼은 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3년간 지내온 세월은 무시 못 하는 듯, 오이카와의 상태에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하나마키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독방에 갇힌 눈치 빠른 생물은 제 한숨을 이미 알아채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있잖아 맛키. 왜 우리들 파트너가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는지 알아?”
“너네가 서로 죽고 못 살아서 그런 거 아니었냐.”
“음~. 그것도 맞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 정적을 유지하던 도중 오이카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걱정해서 온 주제에 막상 이야기에는 관심 없다는 듯 건성으로 답하는 하나마키에도, 오이카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건 바로 무시야. 무시? 그제야 조금 흥미가 생긴 모양인지 하나마키가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그에 화답하듯 오이카와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려보였다. 독방에 갇혔으면서 뭐가 저리 여유만만인지. 하여튼 알 수 없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오이카와의 이야기가 궁금해 뒤에 나올 말을 기다리는 하나마키였고, 그런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듯 오이카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제 생각을 펼쳤다. 비록 그 미소와는 다르게 내포하는 의미는 살벌했음에도, 이야기를 하는 내내 오이카와는 독방에 갇혀 좀이 쑤셨던 차에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관의 센티넬과 가이드는 하나같이 콧대가 높거든. 그리고 자존심이 쎈 그들이 견디지 못하는 게, 바로 자신의 쓸모 없음을 인정하는 일이지."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이 높은 만큼, 제가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면 그만큼 자괴감에 빠지는 것이 센티넬과 가이드다. 각자의 파트너가 나가 떨어진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이와이즈미가 딱히 어떤 행동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편이 맞았다. 센티넬이 폭주해도 가이드인 오이카와는 무시로 일관하고, 제 폭주를 막으려는 가이드를 센티넬인 이와이즈미는 무시했다. 입을 맞출 상황도 아니었으니 미리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한 각자의 파트너들이 참고 참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센티넬은 제 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했고, 가이드는 제어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져야 했다. 능력을 써야 보상받는 기분을 받는 그들은 쓸모없는 자신의 존재를 견딜 수 없었고, 언제나 먼저 저들을 떠났다. 그리고 애써 두 사람은 다른 파트너를 맞지도 않았다. 못마땅한 기관은 끈질기게 파트너를 붙였고, 두 사람은 언제나와 같이 무시로 일관했다.

수많은 전(前) 파트너들에게는 잔인하다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기관에서 먼저 저들을 포기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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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예전에 보고 싶어서 끄적인 소설인데 묵혀두었지만, 4월 1일 이와오이 데이라 꺼내왔습니다..
애정 없는 관계만 허락되는 기관에서도, 서로를 놓지 못하는 이와오이의 이야기..
사실 센티넬 물을 쓰고는 싶은데 설정 잡을 시간이 없어서 정식으로는 쓰지 못해 슬픈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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