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려고 찍어둔 가게가 있었다. 3시~5시가 브레이크 타임이었는데, 점심 라스트 오더는 2시 30분까지는 받겠지라고 생각하고 갔더니 2시 20분이 라스트 오더였다. 조금만 일찍 움직일 걸… 다음에 가자고 생각하고 다른 가게를 물색하는데, 마침 얼마 전에 찜해놓은 중국집이 생각났다.

태화루 가는 길의 인도. 작년 가을의 은행 열매들이 남긴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전국에 수도 없이 있을 ‘태화루’라는 평범한 이름의 가게인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에 가까운 곳이다. 요즘 세상에 서울 한복판에 있는 가게가 제대로 된 후기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지도를 보니 말이 된다.(글을 쓰면서 검색해보니 지난달에 갑자기 방문기가 좀 생기기는 했다.) 작년에 이 지역을 가본 적이 있는데, 지리적으로는 서울 한복판이지만 마치 태풍의 눈처럼 묘하게 접근이 쉽지 않고 인적이 드문 조용한 동네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려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린 후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고, 가을에는 은행 열매가 인도를 뒤덮어서 보통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가봤던 동네라 익숙한 듯 그냥 갔지만, 초행이었다면 뭐 하는 동네고 길은 왜 이 모양인지 투덜대며 갔을 것이다.

도착해보니 어중간한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고 주인장 내외는 TV를 보고 계시다. 이런 동네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도 없는 법이라 간짜장을 무사히 주문할 수 있었다.

간짜장을 먹을 때면 면을 따로 먼저 먹어보는데, 색깔부터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색이고 맛을 봐도 부드러운 탄력이 느껴지는 준수하고 순한 맛의 면이다. 다음으로 짜장을 먹어보니 이런 충격이. 이렇게 덤덤하고 플랫한 짭쪼롬함이 느껴질 줄이야. 달지 않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단맛을 배제할 일인가 싶은 맛이었다. 맛을 봤으니 이제 비벼봐야지.

비벼서 먹어보니 바로 조리해 나온 야채의 아작아작 씹는 맛도 좋고, 면에서도 최고인지까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한 착한 맛이 느껴진다. 그런데 소스의 맛이… 분명 맛이 없는 건 아닌데, 극도로 단맛이 배제된 간짜장 소스의 생경한 맛이 뭔가 뇌에 혼란을 주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간짜장인가 무설탕짜장인가.

순한 면과 달지 않은 짜장이라고 하면 신공덕동의 신성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성각의 그것은 소박한 수타면에 춘장과 기름의 양까지 줄여서 기존과는 아예 다른 자기만의 독자적인 맛을 만들어 냈기에 지금껏 먹어온 간짜장과는 다른 무언가라고 뇌에 입력이 된다. 반면에 태화루의 것은 기계면을 쓰고 춘장이나 기름의 사용도 경험해온 간짜장과 비슷하지만 오로지 설탕의 단맛만이 철저하게 배제된 맛이기에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까지 단맛을 배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이 드는 맛이지만, 단맛 헤이터들에게는 아마도 엘도라도에서 금광을 발견한 것만 같은 기쁨의 간짜장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달지 않은 간짜장을 찾아 헤매는 분들은 꼭 방문해보시면 좋을 것 같고, 신성각과 태화루 중에 어디가 더 취향인지를 비교 체험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간짜장을 만드는 사장님은 일반 짜장면은, 그리고 다른 식사와 요리는 어떻게 만들어서 어떤 맛으로 낼까? 사실 흥미가 돋는 지점은 이런 부분이고, 조만간 또는 언젠가 이 의문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참고로 꽤 괜찮은 커피를 내는 노띵커피가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2022 - 공간 디자인 / 건축 부문에서 WINNER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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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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