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울렁거렸다.


“은희, 괜찮아?”


 에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우리는 2번의 위프로 이동해서 유적 앞에 도착했다. 첫 번째 워프 후에는 그래도 견딜만한 정도였는데 두 번째 워프가 끝나고 나자 뱃멀미를 하는 것 마냥 속이 울렁거렸다.


“워프도 제대로 못하는 촌뜨기를 어디서 데리고 와서는…”

“쟤가 마지막 인원이라며?”

“바튼 님의 양녀래.”


 정신이 조금 차려지자 자리에 주저앉아 있던 내 주변으로 쑥덕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으라고 하는 게 분명했다.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께 보고 드리기 위해 잠시 내 곁을 벗어났던 크리스가 다시 돌아왔다. 지금까지 날 보고 쑥덕대던 사람들은 안 그런 척 돌아섰다.


“일단 우리 임시 숙소로 가자. 단장님께 말씀 드렸어.”


 단장님은 아버지를 말하는 터였다. 크리스의 배려는 고맙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냐, 괜찮아. 나도 같이 갈래. 지금 바로 유적으로 가는 거지?”

“단장님께서도 허락하셨어. 조금 쉬다가 가.”


 걱정하실 아버지 생각에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조사할 시간도 얼마 없는데 바로 가야지. 진짜 괜찮아.”


 난 일어서서 괜찮다는 표시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였다. 조사할 시간이 얼마 없는 것도 맞지만 내가 여기서 쉬면 조사단장의 양녀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는 다는 말이 나올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로 인해 이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건 싫었다.


“그래. 그럼 조금 천천히 가자. 도중이라도 안 좋을 것 같으면 바로 이야기하고.”


 크리스의 절충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니 출렁대는 것 같았던 바닥도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한숨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황량한 벌판이었다. 간간히 푸른 잔디들이 보였지만 마른 덤불들이 모래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어 꽤나 건조한 곳임을 짐작하게 했다.

 워프를 한 곳에서부터 우리를 안내하는 첸 사람은 벌판 한가운데 펜스가 쳐진 곳에 다다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 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유적이나 유물을 만지실 때에는 반드시 저희 쪽 조사 인원이 동행한 상태여야 합니다.”


 자기네 나라 유물도 아닌데 유난 떤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펜스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구덩이가 보였다.


“이건 꽤나 큰 유적이구나.”


 발굴 중인 건물은 한 면의 폭이 5미터쯤 되는 사각형의 건물이었다. 아버지가 구덩이 안에서 발굴 중인 건물을 보고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며 감탄을 터뜨렸다. 오랜 시간 모래 속에 파묻혀 있어서 훼손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입구는 어디 있소?”

“그게 아직 발견을 못했습니다. 이 유적의 용도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그래서 바톤 씨를 초청한 것입니다. 고대사의 권위자라고 하셔서요.”


“이것 때문에 우리보고 오라고 한 거였네. 입구 찾으라고.”


 그의 말에 내 뒤에 있던 루틴이 작게 투덜거렸다. 첸국에서 이례적으로 우리에게 조사단을 파견하라고 한 건 그런 이유였나 보다.

 아버지는 조사단을 3명 내지 4명으로 나눈 후 흩어져 살펴보라고 하셨다. 물론 이런 조사를 처음 해보는 나는 아버지, 크리스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에린과 루틴은 불행히도 로이안과 같은 조가 되었는데 그 셋 모두 똥 씹은 표정이어서 누가 더 기분이 나쁜지 가늠이 안 되었다.


“정말 입구가 없네요.”


 한 바퀴를 돌아 보았지만 벽돌로 촘촘히 쌓아 올린 벽만이 똑같이 반복적으로 있을 뿐이었다. 다른 조들은 몇 바퀴 돌아보고서는 근처에서 그냥 쉬는 듯했다. 얼굴을 보아하니 우리를 안내해준 첸 사람도 그다지 기대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엇, 아버지. 여기 이것 좀 보세요.”


 벽돌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던 나는 벽돌에 나있는 홈들이 무언가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점 하나만 있는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점 주위로 동심원이 있었다.


“이건 파 놓은 것 같지 않은가요?”

“음, 그렇구나. 모양이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


 아버지께서 들고 계시던 붓으로 벽돌의 표면을 문지르자 조금 더 선명히 보였다.

 이런 비슷한 것을 예전에 본 적이 있다.


“저 왠지 생각나는 게 있어요.”


 함안의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와 그 표시 방법이 유사했다.


“이건 아무래도 별자리를 기록해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인돌이 많기로 손꼽히는 나라이다. 고인돌은 그저 무덤을 나타내는 돌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고인돌에 무언가 새겨져 있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본 것은 함안에 있는 고인돌이었는데 그곳에는 천체를 나타내는 점들과 동심원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암각화는 지금 이곳의 모양새와 흡사했다.


“여기 동심원이 여러 개 파져 있는 것은 밝은 별을 나타낸 것 같아요.”

“별이 맞다 하더라도 지금 그게 무슨 의미지? 별의 모양이 유적의 입구를 알려주나?”


 날카로운 인상의 조사단 인원이 약간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상관이 있어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는 내 말에 그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별자리를 새겨놓았다면 관측 기구일 가능성도 있어요. 그렇다면 아마 입구는 위에 있을 겁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들의 표정에 난 설명을 조금 덧붙였다.


“낮에 별을 보기 위해서는 모종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우물 형태의 관측기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입구가 옆에 없다면 가능성이 있는 것은 윗면입니다.”


 내 말이 긴가민가한지 아무도 선뜻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일행을 지휘해 윗면을 살펴보시기 시작했다. 첸 사람들도 윗면으로 올라 갈 수 있는 디딤판을 가져왔고 오래된 유적인 만큼 두 명씩만 조심해서 올라가기로 했다.

생각만큼 쉽게 발견되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첸에서 먼저 발견했겠지.

조심스럽게 살펴보던 이들이 다른 벽돌보다 틈이 아주 살짝 넓은 벽돌을 발견했고 힘을 주자 그것이 조금이나마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으앗 그렇게 세게 잡아 당기면 안되욧!”


에린의 목소리에 따라 사람들이 쩔쩔매며 조심스럽게 입구석을 드러내었다.

입구는 발견 되었으나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모래에 묻혀 있었기에 유적 내부가 모래로 가득 차 있던 것이었다. 조사단 인원과 첸국 조사인원들이 모두 달려들어 모래를 퍼내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로이안이 본인이 겨우 이런 일을 하러 왔냐며 투덜거렸으나 아버지가 직접 주머니를 들고 모래를 운반하시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유적을 손상시키지 않고 모래를 빼내는 작업은 그날 밤이 되어서야 거의 마칠 수 있었다.


“와!”


 사다리를 타고 조심스럽게 들어간 유적 안은 환상적이었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로는 달빛이 들어와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모래가 다 치워지지 않아 구석구석 볼 수는 없었지만 네 벽면에 영화에서나 보았던 드래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건 마정석이구나!”

“마정석이요?”

“그래, 여기 드래곤의 심장에 박혀 있는 것 말이다. 이렇게 큰 사이즈는 처음 본다.”


 아버지는 드래곤에 박혀 있는 보석에 흥분하신 듯 했다. 아버지가 드래곤을 자세히 살펴보시는 동안 난 이 안에 서적 같은 건 없는지 구석구석을 살폈다. 돌아가는 주문을 발견하는 게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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