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 이건 루카형이 가라고 하면 안돼요?"

며칠만에 나온 월간지 전체검수를 겨우 끝내고 최종본을 인쇄소에 넘긴후 이마를 책상에 박고 열심히 자는 중이였다. 내이름에 비몽사몽하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선배가 루카형이 안 왔다하면 괜히 더 심술부린다말이예요"

라고 말하는거 보니.. 으악 저건 루시엥 선배이다..

거의 불모지였던 프랑스의 판타지계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12권의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한창 유례없는 숫자의 거대한 팬덤까지 만들며 잘나가다가.. 당분간 농사짓겠다고 돌연 시골로 내려가버린...

프랑스 판타지계의 대부시다..

아직도 그의 귀환을 바라는 팬들이 많다.

책 냈다하면 엄청나게 팔릴께 틀림없어.. 우리같이 작은 출판사는 물론 대형 출판사까지 그의 컴백에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그래서 기약없더라도 혹시라도 다음 책은 우리 출판사에서 내주십사 계약을 따러 일년에 두번은 꼭 출판사들마다 그에게 소위 안부인사라고 불리는 청탁인사를 보내는것이다..

루시엥 선배는.. 우리 학교 과 직속선배였다..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태생적으로 큰눈임에도 불구.. 가만히 무표정으로 쳐다만봐도 예민해보이는 매서운 눈초리를 가져서..

신입생들중에 나의 쭉 째진 불손한 두눈이 맘에 든다며..눈은 불손한데 얼굴은 눈에 익으면 익을수록 또 어려진지고 예뻐진다고..특이한 놈일세..하며.. 특히 유독.. 나를 귀여워 했던 선배였다..

대학시절에는 빵빵한 나의 양볼을 마구 잡으며..우리 루카 그새 더 귀여워졌어.. 넌 당췌 뭘 믿고

이렇게 귀여운 거시야..아이고 귀엽다 귀여워 내배 아파서 낳은 내 새끼도 우리 루카처럼 이리 귀엽진 않을꺼야.. 하는데.. 양볼을 잡히며 귀여움 당하는 입장에선 그닥 그리 방갑지 않은 까마득한 대학선배였다.

2학년부터는 제법 머리가 커져 귀여우면 귀여웠지 왜 볼을 꼬집어요.. 흥! 아후 아저씨는 쫌 저리가라.. 하면서 픽픽 얼굴을 피하는 정도까지 되었지만..경미와 내가.. 작은 출판사를 차린후 관계는 달라졌다.

억울하게도 이제는 그때와 달리 푹 커진..볼을..선배가 왼쪽볼을 원하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내

어거지로 오른쪽 볼까지 내밀어야 되는 철저한 을관계가 되어버린것이다.

농사를 시작하게 된후 찾아가는 출판계 인사들에게.. 선배는 농사일을 꼬박꼬박 시키고선.. 일당으로 농사물을 나눠주곤 했었는데... 귀여워하면 그 농사일이라도 제외시켜주냐..하면 것도 아니다..

원래 미운 자식한테 떡하나 주고 이쁜 자식에겐 매한번 더 든다고.. 형식적인 인사치레만 겨우 하고..

한시간만에 돌아간다는 나를 잡아두고 기어이 밤 늦까지 부러먹다가..돌아가는 다음날 새벽녘부터 깨워서

그 다음날까지 아주 일을 빡세게 시켜먹는 것이다..

거기다 포도농사에 이어 요즘에 딸기 농사에 손을 댔다고 하던데.. 가면 딸기 한상자에 혀안이 쓸정도로

높은 강도의 막노동을 하게 될것이다.

자고 있는척하고 있다는걸 잠시 깜빡잊고 나도 모르게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루시엥 선배의 일이란걸 눈치채고 책상에 이마를 박고 그대로 자는척하기로 했다.

그뒤로 경미의 은밀히 뭐라뭐라하는 소리를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잘 들리지 않는다..

대신 재미있는거 하나 보여줄께...라고 한거 같은데...

내이름이 레오의 입에서 더이상 안나오는것보니..레오가 그냥 가기로 했나보다..

웬일이래... 그 선배 일이라면 나를 10번을 부르면 100번을 못 보내 안달난 기집애가..

기집애..이번 겨울에 내가 보약을 입에 달고 사는걸 아나보군... 

얄팍한 우정사 10년만에 첨 느끼는 우정의 배려였다.

경미가 어찌 레오를 구워삶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책상에 머리 박고 있어야

안전한 타이밍이므로 좀더 자는척 하고 있는데..

경미의 하이톤으로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래의 내 반려자에게..

반려자야 너무 보고 싶은 내 사랑스러운 반려자야..

왜 아직도 넌 내 앞에 나타나지 않니?

이때쯤이면 나타날때도 됐는데..

혹시 날 배려해서.. 널 만나기전에 연애 많이 해보라고..

일부러 나타나지 않는거니?

그건.. 참 쓸모없는 배려야~ 19년 모태솔로 인생 참 서글프기만 해서

니가 원한다면 너하고 연애 오래하고 결혼하면 되잖아..

그러니 어서 나타나렴..

나타나지 않음 잡아 먹....아.. 이건 아닌가..



아오 저 망할 놈의 지지배..

저건 수능 100일 기념으로 부모님 몰래 술처먹고 술 취해서 여리디 여린 싸구려 감수성에 취해 겔겔되면서 쓴글이다.

저 가증스럽게 나의 치부를 읽고 있는 지지배는 안타깝게도 나의 배냇머리 친구다..

공식적인 이유는 공부를 핑계로...비공식적 진짜 이유는 저때 둘다 인간이 아닌 찐빵이였을때라..

둘다 사이좋게 손잡고 굴러다니던 시절이라..

남들 꽃피는 시절에도 꽃한번 못 펴보고.. 오로지 대학!!! 좋은 대학가면 없던 떡도 애인도 생긴다는 부모님 말씀에.. 진따같이 공부만 하던 시절이다.. 나날이 동글푸근해지는 얼굴 몸뚱이를 가지면서

대학만 가면 세걸음에 한번씩 연애한다..헛된 결심을 했지만

그래도 19년 솔로인생이 많이 외롭고 억울하기도 하고..서러워 술처먹고... 저 지랄을 한것이다...

결국 원하는 대학에 가서.. 연애를 했냐...하면...?

경미와 난 대학합격 발표후 다이어트를 죽자살자 열심히 했다.

그 결과..살이 빠질수록 경미는 몰라도 나는 나날로.. 미모가 업글레이드 됐다.

살찐 것보다는 쪼꼼 나아진 이럴 줄 알았으면 경미는 괜히 아까운 살 뺐다고 짜증을 냈지만..

그와 반대로 알고보니.. 나는 긁지 않는 복권이였던 것이다.....

살이 빠져 거울속에 비친 나는 내가 봐도 참으로 놀랄만큼 귀엽고 새끈했다..

이제 대학가서..만인에게 고백받고 열심히 연애할 일밖에 없다... 호기롭게.. 대학생활에 한발을 딛기시작했는데...그 한발이.. 술독에 풍덩하고 빠질 줄이야...

연애에 눈뜨기 전에.... 우린... 안타깝게도... 술맛을 먼저 알아버렸다..

문창과 이래 최고 초미남이란 소리를 듣기전에 난 치욕스럽게도 문창과 술주정뱅이로 이름을 떨쳤다.

거기다 억울하고 우울하게도.. 갓난아기일때부터 옆집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경미.. 얼굴을 보자마자 친근함을 깐족거림과 시비로 위장하는데 어색하지 않은....그냥 같이 있던 세월이 까마득하다보니..같이 있는게 밥 먹는것보다 더 편한.. 나보다도 더 입이 험하고 나보다도 더 털털한 거기다 나보다 더 술도 많이 처먹는..

저 죽마고우 지지배랑 자존심 상하게도 같은 묶음으로 취급돼서....입에 올리기도 치욕스러운.. cc

주정뱅이커플로 오해를 받게 된것이다.. 이미 술문화에 단단히 빠진 나는 그 오해 풀기도 귀찮아서..내버려 두었다..

물론.. 가까이서 1시간만 우리 둘을 관찰해도 절대.. 그런 요상한 분위기가 이루어질수 없단걸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오해는 풀렸지만..

일년동안..알코올로 인해 게슴츠레한 눈을 같이 달고 살면서 당연한 소리지만 연애는 점점 더 멀어졌다.

그나저나 저 독사 같은 지지배.. 나의 치부를 일 가기 싫다는 징징거리는 후배 달래는데 쓰다니..

얄팍한 우정 새삼스럽지도 않지만..어째 나이 들수록 저 지지배는 성숙해지기는 커녕 양아치짓만 더 심해진다.

"뭐여 이분위긴 날 남자로 보고 있는겨?

와... 형제들 나 기분좋구먼.."

토하는 시늉을 하며 뭔 개소리야하는 경미에게 일부러 한쪽 입가를 비틀며 올리며 얄밉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나를 좋아한께..이 고리짝 시절 쓴 내 연정서까정 이리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거 아녀?"

절대 받아줄건 아니지만 말하지 그랬쪄... 하는 내말에 야.. 니말에 세살때 먹은 엄마 젖까지 올라온다..

오바이트를 시늉을 하더니.. 경미는 약올리듯.. 실실 쪼개며 말한다.


"어이.. 루나 자매.. 미쳤나 이걸 버리게? 백년 놀림감을 ㅋㅋㅋ

거기다.. 나 큰돈 쓸일 있음.. 엘짱한테 팔거다.."

나는 경미에게 브로 .. 형제.. 경미는 나에게 자매라고 한다..

가끔은 이름대신.. 루나 루루..라고도 하는데.. 둘다 내가 엄청 고질적으로 싫어하는 애칭들이다.

루카스란 이름 루에서 파생된 루나 루루.. 누가 들으며 자매 이름인줄 오해할 저 애칭..

특히 루루보다 난 루나란 애칭을 현실적이고 더 구체적으로 와닿아서.. 더 싫어했었다..

뭔가 저 애칭은 나의 복창을 빵 터트리고도 남을 깐쪽거림이 최대치에 달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을때 ..쓰는 경미의 예고장 같은 거였다.


그 대부분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동거인...엘리엇과 관련된 일이였다.. 나는 눈을 갸롬히 뜨며 경미를 경계하며 말했다..


"야 엘짱이 뭐니 엘짱이.. 멀쩡한 이름 납두고.."

"왜.. 엘리엇짱 줄여서 엘짱..."

"이 지지배가 어디서 약을 팔어? 엘리엇 짱나는 놈..줄여서 엘짱인거 모를줄 알어?"

"아이고오..남사스러워라.. 언제는 지 몸고생 시킨다고 욕만 하더니.... 안 어울리게 왠 서방편?

 야.. 오늘 내가 너 왜 루시엥선배껀에서 빼준줄 알어?"


야려보는 내 눈초리에도.. 평소 성격 지랄맞기로 소문난..지지배가 끝까지 뱅글뱅글 웃는 폼이.. 뭔가 있긴 한데..갑자기 명치끝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오늘 니 서방.. 엘리엇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잖아..

아까 아침에 전화 왔어.. 너 곧장 집으로 보내라더라..

실실 웃으며 얄밉게 대꾸해 오는 경미의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오늘이.. 그니깐.. 우리 잡지..최종시일이..금요일이니깐.. 젠장 금요일 맞네..


"아오.. 짱나 더티마리...."

내가 뱉은 말에 그럴줄 알았다.. 경미는 가소롭다는 듯이 픽 웃는다..

더티마리는 엘리엇 성인 드마리를 어떻케든 욕하고자 만든... 우리들의 속어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경미따위가 문제가 아니였다..

2주간의 외국 출장..그가 없는 꿀맛같은 휴식시간...

안온한 그 생활에 젖어 그만 깜빡하고 그가 돌아오는 날짜를 잊어버린것이다.

나는 곧 나의 아둔한 머리를 탓해야만 했다..

잠깐.. 비행기표 시간이 어떻게 되더라.. 저녁 7시니깐.. 아직 시간은 있다.

야.. 루시옹 선배껀 내가 갈께...

아후.. 아침에 엘리엇한테 전화 왔었다니깐...

엘리엇은 있는 집 자식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모든게 나이스해보였지만.. 은근 찬 성격에..공과 사가 엄격했다..

하지만 유독 나에 관해서는 공과 사고 뭐고 비딱해지고 유치해지고 심지어 쪼잔해지기까지 한다..

우리 출판사에 몇 안되는 광고주로써 경미는 그런 엘리엇의 말에 설설 긴다..

그 성격에 손 비비고 알랑방구 뀌려니.. 평소 안보이는 곳에서 더티마리 엘짱하는것이다..

이씽.. 못 듣고 먼저 떠났다고 하면 되잖아.. 루시엥형네집으로 암튼 내가 간다..

야.. 이틀 미루면 더 좋냐? 일만 더 커지지..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덜 아프다고..

그러다가 지금 호미..로도 못 막겠지만.. 후에 어떻게 감당할려고 그래..

아 몰라.. 지금 당장이 엘짱이 나 너무 무섭다 경미야.. 지금 나 무릎 후덜거리는거 안보이냐?..

이틀 후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이 무서워... 피할래..

당장 집에서 선배 관련 자료가 있는 노트북과 옷가지 몇개만 챙기고 얼른 선배의 집으로 날라야겠다.

내가... 괜히 그 약올린다고 뺀질대다가..출장간다.. 뺀 이틀...거기다 엘리엇이 다녀온 출장 14일... 16일에서..

4일빼면... 12....

10번이 넘어간다는것은.. 이건 내가 밤새 사경을 헤맬일이란것이고....2주 이상 못한 그가 헐크급 야수가 될거란 소리다..

하룻밤 꼬박을 아니 이틀을 넘길 인간도 아니지만..며칠을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거기다 내일은... 쉬는 토요일...이면..일요일까지 계산하면..

엘리엇은 제 세상을 만난것처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머리 풀고 달리는.마치 몇년 굶은 한마리 사파리 벌판의 사자처럼..

미친듯이 폭주할 것이다....

이 거대한 위기감에 꿀꺽..이미 입안은 마를대로 말라버려 삼켜질 침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삼켰다.

어쨌든.. 녀석도 회사를 가는 월요일까지 최대한 버텨보자.. 눈에 독기를 품고 결심해 본다.




엘짱.. 아니 엘리엇을 처음 본건...대학 1학년..끝무렵이였을꺼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던 도중이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경미의 말에 별안간 빵 터져서

호흡곤란으로 이러다 골로 가겠지 할정도로 나는 웃어댔던거 같다.

그런 나를 무척 쪽팔려하면서 경미는 일행 아니척 날 밀어내면서 나랑 멀찍이 떨어지려했지만

난.. 허리를 뒤로 젖히고 미친듯이 웃고 있었기때문에 뒤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지탱할 그 무엇이 필사적으로 필요했기에 이 미친놈아..그만 웃어하며 쌍욕을 먹으면서도 내게서 도망가려는 경미의 옷자락을 꼭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때 마티유형이 웬 녀석 하나를 달고 나타났다..

1년 재수하고 들어온 형은 동기중 유일하게 우리와 함께 기꺼이 술독에 함께 빠져준 인물로..

우리는 그형과 함께 문창과..밑빠진 술독3인방 불렸다.

그 형이 며칠전부터.. 어릴때 한 10번이나 봤을까하는 데면데면한 자기 사촌을 어찌나 자랑하던지..

머리도 좋고 인물도 훤하고 집안도 좋고.. 거기다.. 결정적으로 엄청난 부자라고..

뒷말을 어찌나 강조하던지...

하긴 우린 그때 슬프게도 너무나 추운 겨울이였다..

술독에 빠진 우리는 1학기 성적에 셋다 사이좋게 바닥을 기었고.. 그걸 본.. 부모님들은 용돈을

반으로 확 줄여버렸다.. 교통비 점심비 최저 생활비만 남기면 몇푼 안남는,

것도 이미 셋다 월초에 몇번 안되는 술자리로 탕진버린 때였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겔겔 거리던 눈빛에서 어쩔 수 없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뀌고

알콜이 고파 맑은 침만 입안에 고여...입맛만 쩝쩝 며칠째 다셔야만 했던...

그나저나.. 마티유가 달고 온 녀석은 형이 자랑할 만 했다.

이번에 경제학 신입으로 들어온 녀석은 일단 매끈하게 잘빠진 긴팔 긴다리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녀석은 어리버리한 신입생 같지 않게 검은색 풀오버에 까만 가죽점퍼에 무척 세련돼 보였다..

녀석의 옷은 옷 브랜드에 잘 모르는 내가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게 딱 비싸보였다..

일단 마티유의 말대로 꽤 있는 집 자식은 맞는거 같았다..

비싼 옷이라 그런지 몰라도 어린 녀석답지 않게 왠지 위험한 남자..랄까?..성숙한 성인남자가 뿜어내는 페르몬이라고 해야할까? 암튼 그런 요상한 분위기를 제일 어린 녀석이 온 몸으로 풍겨내고 있었다..

감색 패딩이나 입고 다니는 가끔은 애티나서 중학생이로도 오해받는 나나.. 아님 재수할때 너무 고생했나..

이미 후줄근해질만큼 후줄근해져서 이미 아저씨의 면모를 풍기는 마티유에게는 볼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자식... 더럽게 잘생겼네...

"야..내가 말했지.. 인사해라..이쪽은 앞으로 이 대학에서 퇴페와 섹시를 동시에 선보이며

이 대학에 앞으로 쎄끈남계의 대부로 남을 내 사촌 엘리엇 드마리님이시다.."

"아이 형.. 그만해...듣는 슈퍼스타 부끄럽네"

다시 보니 둘다 제정신은 아닌것 같았다..눈을 마카롱으로 만들며 씩 웃으며 능글맞게 대답하는 사촌쪽도 보니..만만하게 볼 녀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티유는 이미 가진 용돈을 까먹고 평소 보던 빌빌거리던 구걸꾼(?)의 모습이 아니였다.

이 부내나는 잘나고 잘생기기까지 한 청년이 내 사촌이다...봐라.. 새끈한 사촌을 물고 온 나를..

사촌을 바라보며 만면의 미소 띤 그 얼굴엔 보기 싫은 거만함까지 보였다..

이미 경미하고 나하고 사이좋게 손가락 빨고 있던 시절이라 그땐 양심이고 자존심이고 없었다.

우리는 얼굴에 만면에 좀 비굴하게 웃음을 띄우면서 술 얻어먹을 생각에

적당히 둘을 추켜세우며 친한척을 마구 해댔다..

그때부터 우리보다도 어리고 게다가 무려 같은 과도 아닌 엘리엇을 셋이서 삥을 뜯으면서 좋아했다..

엘리엇은 정말 부잣집 자식이였다.. 부잣집 자식이였기도 했지만 자신의 용돈을 모아 이미 중학교때부터

주식으로 한 재산 모아 놨단다.. 경수형 하는 말이 어릴때부터 워낙 영특해서 천재소리도 들었다던데...

그게 헛 말은 아닌가보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우리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가끔은 자기과 동기들과 참석하기도 해서

그래서 난 오히려 우리과 후배보다 경영과 후배를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물론... 자존심이고 양심이고 다 내팽긴 우리 셋은 엘리엇에게 뻔뻔하게 처음부터 쭉 얻어먹었다..

술먹을땐..시간 아깝다고 한번도 안가던 화장실에 계산할때만 유독 그곳을 자주가는 경미나..

이미 주당으로 술 서말을 먹어도 정신이 멀쩡해서 짜증난다는 요새 술은 약해서 큰일이라는 마티유가

유독 그때만 되면 술취해서 테이블에 머리 박아 대는 형이라..

그때되면 유독 오래 신발끈을 찬찬히 매고 있는 나나..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부터 달아오르는게 셋다 추접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 우리 셋을 암시롱 상관치 않고..

계산서를 가지고 별거 아닌듯..여유있게 계산하는 그..엘리엇 유독.. 그때..제일 어린 주제에 어른스럽고..멋져보였다.

그런 술자리가 10번째에 이르렀을때...(사실 5번째부터...의심은 시작되었다)

빙글거리며 꼬박꼬박 술값을 내주는 엘리엇에게

사실은 다른 속셈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야... 뭐.. 같은 과 선배도 아니고.. 그닥 그의 인생에 도움될꺼 같지도 않고..

또 촌수 세기도 버거운 정말 영양가 1도 없는 사촌형때문에 그 많은 돈을 쓸 거 같진 않고..

돈도 돈이지만.. 될 수 있는 한 우리랑 같이 있으려한 시간의 비용도.. 무시못하는것이다.

우리야 뭐 문창과 밑빠진 술독이라..술이라면.. 환장할 때라 돈이 없어서 어차피 같은 과 짝이 생길리 없는 폐인들..서로 불쌍해 하며 어쩔 수 없이 만나준다 하지만.. 엘리엇이라면 이미 경대 킹카로 소문나고..

그걸 떠나 이 주정뱅이 모임에 부르면 부르는대로 주인 따르는 애견 발바리도 아니고 이리 꼬박꼬박 나오기 힘들다는것이다.

생각해 보면 결론은 하나.. 남자가 이리 정성을 뻗치는건.....역시... 여자문제겠지...

경미!!!!!!!!!!!!!!!!!!!!!!!!!!!헐 대박.. 엘리엇 터프하고 지랄......아니 엑센..아니 생활력 강....하진 않구나..

(술값으로 전재산을 매월 탕진하니.....)

술..좋아하는..이것도 아니고 흠.. 그냥 여자가 이상형이구나..

하긴 생각해보면 경미가 내숭도 없고...솔직하고..너무 솔직해서 입이 험해서 탈이지만..그만하면..너한테 미모가 많이 딸리지만

꽤...는 아니고 그냥 귀여운 얼굴이고.. 아이 몰라.. 뭔진 따지고 싶진 않지만 친구로서 인간으로서 괜찮은 사람이다..

암튼.. 경미라는 결론이 내리자.. 약간 복잡미묘하게 마음이 틀어졌다..

경미랑.. 세월이 오래되긴 오래됐나보다.. 왠지 딸 시집보내는거 같은 섭섭함이 밀려왔다.

그래.. 우리 둘중 하나는 애인이 생길때도 됐지 싶어도 마음이 왤케 착찹한것이..

그 멋있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엘리엇이 순간 딸 훔쳐가는 소도둑놈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널 노리는것 같다고.. 조심하라는 이런 내 심정을 경미에게 토로하자 경미는 아주 크게 비웃었다..

어이쿠 이 눈치 한개도 없는 멍청아....둔탱이..누가 지금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하면서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뭐래 이 기집애가.. 벌써 술취했나? 누가 시집을 가

암튼 그때 뒤늦게 합류한 엘리엇에게 곱지 못한 시선을 준거 같다..

오늘은 일찍부터 엘리엇 없이 먼저 시작해서 그런가..조금 일찍 뻗은 나는 눈을 감고 다량의 알콜로 인해 달아오른 뺨을 테이블에 대고 식히고 있었다. 옆에 삐걱 누군가 앉는 소리가 들리고..

그때 안보이는 테이블 밑으로 슬쩍 열기 오른 손가락을 휘감아오는 조금 시원한 손...

엥.. 우리 모임에 경미빼고는 여자가 없다.. 혹시 상대방의 착각으로 잡은 손인가 싶어..

몇번 손을 털었지만 이내 결박하듯 더욱더 짖눌러오는 상대방의 손..

집요한 행동에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려 바라보니.. 빙긋 상큼하게 나를 향해 눈맞추며 웃고 있는 엘리엇의 얼굴이 보인다.

엥.. 나는 경미가 아닌데.. 촛점이 풀린 게슴츠레한 나와는 달리..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못해 그윽하기까지 한것이..엘리엇의 얼굴은 완전 멀쩡해 보이는데..

혹시 술 취해서 착각했나 싶어..잡혀 있지 않은.. 머리 뒤의 다른 손을 번쩍 들어 브이자를 만들었다..

그러자 그도 킥킥 웃으며 머리뒤로 손을 들어 손가락 2개를 만든다..

술 취해서 착각한것도 아닌데 뭐지 싶은게..

엘리엇이 심상치 않은 눈길로 우리를 본다는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는 당연 경미라고 생각했는데..

순간 찌릿찌릿한 느낌에 뱃속부터 술기가 확 치밀어 올랐다..

치밀어 오른 술기운은 엉뚱한 지점의 뇌속에 피를 돌게 했다..

문뜩 드는 객기에 가까운 호기심에 탁자에 얼굴로 그에게 엉금엉금 기어가

그의 입술에 기습적으로 키스했다.. 당황해서 벌린 그의 입에서 그의 혀를 쪼옥 한번 빨아드리고 얼굴을 뗐다.

빨아드린 그의 혀에서 맑은 보드카 맛이 났다.

나는.. 오늘 뭘 먹었더라.. 다행히.. 과일안주만 열심히 먹었던거 같다.

훗 녀석.. 이제 정신 좀 차렸겠지.. 이제 내가 평소 셋중에 낯가리느냐 제일 안친한 루카형이란걸 눈치챘겠지..?

하며 황당해 어이없어할 녀석의 얼굴을 잔뜩 기대하며 키득거리며 녀석을 바라보는데..

금세 그에게 잡힌 목덜미 그에게 당겨지는 나의 얼굴 그리고 급하게 닿은 녀석의 입술..

하지만 급히 다가오느냐 거칠어진 그의 행동에 비해 너무나 부드럽게 닿아오는 그의 입술..

먼저 아랫입술을 머물고 생채기 나지 않게 하려는듯 한참을 조심스레 빨았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하다가

이내 그의 혀로 잇몸을 쓸고 혀끝으로 치열 하나하나라도 꼼꼼히 쓰다듦는다.

엘리엇의 행동에 술취한 머리로 뒤늦게 어어 거리다...그의 정성스런 키스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똑똑 노크하듯 앞니에 혀로 풀칠하는 엘리엇의 애절한(?) 요구에 입을 벌리니..그가 혀를 입안으로 밀어넣더니 입안 천장도 간지럽히듯 두드리고 핥더니 금세 부드러운 동작으로 나의 혀를 감아올린다.

조심스럽고 소중히 대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찐뜩하고 느린 마찰음이 나의 귀에 울리고 그소리에 나도 달아올라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눈을 감고 그와 입 맞추다가 눈을 떠 바라본 그의 모습은 아주 진지했다...

잘생긴 얼굴도 잔뜩 구긴채...미간을 잔뜩 지푸리고 정신없이 나에게 매달려 키스하는 모습이..

아..최소 장난은 아니구나 가벼운 마음은 아니겠군아.. 진심이구나.. 느껴졌다.

시집을 누가 보내야 하는데..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씁쓸한 눈빛으로 웃던 경미의 말이 그 순간 퍼뜩 떠올랐다..

그 말이 이해되면서.. 아 나였군아...그제서야 깨닫는 멍청함....

상대방의 애절한 진심이 전해질때 주는 감동이 있다..

그것도 평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주 멋진 놈이 불시에 주는 ..감동..

그것도 서로의 마음을 처음 확인하는 처음의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한다.

비록 취기가 잔뜩 올라..술집 탁자에 누워 하는 조금 볼썽사나운 모습이라하더라도..

그곳은 나에게 이미 이세상에서 잊지 못할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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