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나는 진학반에 들었다. 학기 초 나를 부른 선생님은 부 활동을 계속할 것인지 물어보시면서 원활한 수험생활을 위해 배구를 그만두는 것을 권유하셨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렇게 배구 바보같이 구는 거,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바보는 옮는다더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도 주위가 다 바보들뿐이라 사회적 동물인 내가 그 정도 옮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위自慰하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지만 츠키시마, 도쿄로 대학 진학을 원한다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 겨울, 그건 아마도

쿠로오 테츠로 X 츠키시마 케이

w. 썸머(@TJaaj_)






  3학년의 생활은 몹시 힘들었다. 항상 수면시간이 부족했고 집-학교-체육관의 생활반경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나름 꾸준히 운동해온 몸인데도 불구하고 체력적인 부담감이 엄청났다. 감독님은 진학반에 든 3학년(그래 봤자 나와 야마구치 그리고 야치 뿐이지만)은 오전 연습에 굳이 안 나와도 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꾸역꾸역 참여했다. 

  학교 수업 후엔 다시 체육관으로 향했다. 오후 공식연습이 끝나면 저녁 늦게까지 자율연습을 하는 1, 2 학년들 그리고 카게야마와 히나타를 두고 야마구치와 집으로 향했다. 2학년 때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종종 그들과 늦게까지 자율연습을 함께 했지만 3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해야 할 공부량이 2학년 때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쿠로오씨와의 전화 연락도 라인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그와 전화만 시작하면 30, 40분은 가볍게 넘기고 때로는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하게 되어서 공부하려고 앉았던 책상에서 시간만 때우기가 일쑤였다. 그에게 전화가 오면 짧게 통화해야지 마음먹어도 막상 쿠로오씨가 이것저것 물어오면 시시콜콜한 얘기를 늘어놓아 결국 통화가 길어졌다. 며칠 지켜본 결과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에게 더는 전화하지 말라고 말했다. 


  -…어? 츳키, 나 뭐 잘못했어…?


  당황이 가득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어오는 그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 어떻든 관심 없는 내게 쿠로오씨만은 언제나 특별예외대상이었다. 그를 떠올리면 항상 ‘인정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났다. 정말 인정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의 기분을 신경 썼다. 그래서 풀죽은 목소리를 하는 그에게 3학년이고 대입시험을 치르려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구구절절 귀찮은 설명을 이어갔다. 


  -아… 미안, 거기까지 내가 미처 생각을 못 했네. 미안해.


  사과는 어찌나 빠르고 정확한지 그의 손볼 데 없는 사과에 나는 또 간지러운 마음이 되었다. 


  “아니 뭐… 미안할 거까지야, 얘기하다 보면 전화 끊기 싫고 그러니까...”


  그래서 또다시 주절주절 이어진 설명에 본의 아니게 진심이 담겨버렸다. 나는 안경을 벗어 눈가를 꾹꾹 누르며 핸드폰 열기가 왜 이렇게 강해서 사람을 덥게 하는지 짜증을 냈다.


  “아, 아무튼 앞으로 전화 말고 라인 해요. 끊습니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공부 열심히 해. 힘들 때 언제든지 연락하고」 10:35 pm 읽음


  끊자마자 그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도쿄로 대학을 오라고 부추긴 장본인의 얼굴이 둥둥 떠다녔다. 그의 웃음이 신경질 날 만큼 근사해서 나는 문제집을 거칠게 펼쳤다. 상념을 가라앉힐 땐 수학 문제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





  “대-박! 츠키시마 들었어?”


  하품하며 들어선 체육관 언제나 쌩쌩한 히나타가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나는 배구화를 신으며 그를 무시했다. 귀찮으니까 저리 좀 가. 체육관을 시끄럽게 울려대는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웬일로 나보다 일찍 도착한 야마구치의 얼굴에 홍조가 가득했다. 그 주위를 둘러싼 1, 2학년들을 보며 아직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히나타를 보았다. 뭔데?


  “야마구치가! 여자친구 생겼대!”

  “에?”


  진짜 놀란 얼굴이 되어 야마구치를 바라봤다. 여자친구? 야마구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그를 둘러싼 1,2학년들의 부러움과 질타가 이어졌다. 이어서 히나타가 방방 뛰었다.


  “어째서 야마구치가 우리 중 첫 번째로 솔로 탈출을 하는 거야!”

  “여자친구? 축하해.”


  나는 야마구치에게 다가가 일단 축하한다는 소리를 했다. 생각해보니 근래 등하굣길 그의 대화 주제 속 심심치 않게 여학생의 이름이 섞여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3학년 되고 연애라니, 조금 무리 아냐? 갸우뚱거리며 묻자 그가 활짝 웃었다. 같이 공부 열심히 하기로 했어! 같은 대학교 가려고! 


  “우우우! 선배님 정말 재-수 없습니다!!!”

  “연애라니! 이제 배구에 소홀히 하실 거 다 알아요.”

  “사진 없습니까?”

  “예뻐요? 얼굴 보여주세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는 건방진 1, 2학년들을 흘겨봤다.


  “얘 여자친구가 예쁘든, 안 예쁘든 그게 니들이랑 무슨 상관이야? 연습 안 해? 가서 몸이나 풀어.”


  움찔하던 그들이 흩어지며 체육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직도 제가 아닌 야마구치의 솔로 탈출 소식에 날뛰는 히나타 뒤로 조용히 공을 만지작거리던 카게야마가 다가와 그를 슬쩍 보더니, 연습 빠지는 건 안 된다. 무미건조하게도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겨 한참을 웃었다. 야마구치와 카게야마가 나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생각하는 거하고는. 주-장님 머릿속엔 배구 말고 다른 게 들어 있기나 하십니까? 카게야마를 한껏 높여부르며 나는 그 얼굴을 웃어댔다. 


  “츳키, 요즘 스트레스 많아?”


  야마구치가 조심히 물었다. 


  “시끄러.”


  나는 웃음을 거둬내며 스트레칭을 했다. 진짜 내 주위엔 왜 다 배구 바보들뿐인 거야.


  “선배님 있잖습니까.”


  모처럼 오후 연습이 끝난 후 모두와 같이 체육관을 나서 하교하는 길이었다. 여름방학이 성큼 다가오는 걸 말해주기라도 하듯 해가 져도 날이 따뜻했다. 히나타가 사카노시타 상점에서 나오며 사가지고 온 만두를 하나씩 나누어 줬다. 받아든 걸 우물거리는 야마구치에게 2학년이 다가와 제법 진지하게 연애 상담을 해왔다. 모두의 시선이 빛났다. 그와 야마구치를 둘러싸고 서로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처음엔 연락이 잘 됐는데 지금은 답장이 잘 안 온다?”

  “까였네.”

  “까인 거네.”

  “아 좀! 내가 니들한테 물었냐? 야마구치씨! 이럴 땐 어떡해야 하죠?”


  카게야마와 나를 뺀 부원들이 야마구치를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보았다. 카게야마는 말없이 만두만 먹고 있었다. 나는 애초에 관심도 없던 주제라 그저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습관처럼 누른 쿠로오씨와의 채팅창 속엔 어제의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이 다였다. 아직도 체육관이려나. 만두를 한입 베어 먹으며 한 손으로 문자를 치고 있는데


  “니가 너무 지겹게 연락을 해서 그런 거 아냐?”

  “어느 정도 밀-당이 필요한 거야.”


  젠체하는 야마구치의 말에 핸드폰을 보느라 숙인 고개가 들렸다. 지겹게 연락...?


  “계속 연락하면 상대방이 금방 질려 한다고”


   오오! 격한 호응으로 야마구치를 떠받드는 후배들의 칭찬에 우쭐해진 야마구치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지만 그의 뒷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계속 연락하면 질린다고?

  질려?


  나는 쿠로오씨와의 채팅창이 켜진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저 지금 연습 끝ㄴ」 제대로 쓰이지 못한 문장 뒤에 커서가 깜빡였다.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밀당은 어떻게 하는 건데?”


  갑작스러운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한순간 내게 쏠렸다. 


  “…뭘 그렇게 쳐다봐?”

  “츠키시마씨도 설마!”

  “츠키시마아! 너마저!! 너도 여자친구 있어?!”


  흥분으로 날뛰는 후배들과 함께 히나타가 소리쳤다. 아 시끄러 진짜. 서늘하게 내려다보자 모두 합죽이가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직 대답하지 않은 야마구치를 보았다. 밀당, 어떻게 하는 거냐니까? 야마구치가 느리게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어…어, 그니까 연락을 바로바로 하는 게 아니라, 그 뭐야 타이밍을 세는 거야! 문자 왔다고 바로 답하면 기다린 것처럼 보이잖아. 그리구 매일 연락하면 질릴 수 있으니까 며칠 좀 참고...”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모로 하며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러니까 바로 답장을 하지 말라고?”

  “응!”

  “매일같이 연락을 했으면 며칠은 하지 말고?”

  “응응!”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히나타가 팔짝 뛰었다. 너 진짜 여자친구 있어? 어?! 


  “그럼 …전화는?”


  야마구치의 입이 다물어졌다. 


  “전화도 하지 말아야지.”


  대답은 카게야마에게서 나왔다. 에에엑?! 카게야마 니가 밀당을 알아? 너 뭐야! 너도 설마!! 히나타가 또다시 시끄럽게 난리를 피워댔다. 나는 잠시간 귀를 막았다가 카게야마를 한 번, 그리고 야마구치를 다시 보았다. 


  “…어어 맞아. 저, 전화도 참아야 돼.”


  어딘지 자신감이 부족한 말투였으나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매일같이 하는 문자가 지겨울 수 있다면 전화 또한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그럼 오는 전화를 받지 말란 거야?”


  그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말한 게 바로 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차 확인하기로 했다.


  “으…응!”


  한 박자 늦은 대답이 의심스러웠으나 어쨌든 여자친구가 있는 건 야마구치뿐이었으니 나는 다시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해 씻고 책상에 앉았다. 펼쳐진 참고서와 문제집 옆에 핸드폰이 얌전하게 놓여있었다. 나는 문제 하나 풀고 핸드폰을 확인하고 다시 문제 하나 풀고 핸드폰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신경질이 나서 핸드폰을 뒤집어 책상 구석으로 치우며 제대로 집중하기로 했다. 

  한 회분 모의고사를 다 풀었을 때 드르륵 진동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확인했다. 쿠로오씨였다. 그에게 온 라인이 검은 화면 중앙에 떠 있었다. 


  「츳키 오늘 연습 잘 했어?


  진동은 연이어 울렸다.


  「나 이제 집 왔어

  「공부 중이야?


  나는 그의 라인에 답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바로 답장을 하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읽고 나서? 아니면 읽은 후에? 나는 이미 까맣게 꺼진 핸드폰을 노려보며 고민했다. 읽었는데 바로 답장이 안 오면 좀 그렇지 않나. 나는 마지못해 핸드폰을 다시 뒤집어 저 구석에 밀어 넣었다. 

  모의고사 답을 맞히는 와중에 계속해서 핸드폰에 시선이 갔다. 신경이 쓰여서 답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책상 서랍을 열어 핸드폰을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얼마만큼 기다렸다가 답장을 해야 하는 건데?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야마구치에 성질이 뻗쳤다.

  오답 정리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의 라인에 답하지 않았다는 걸 잊어버렸다. 시간은 오전 12시를 진작에 넘은 새벽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그가 내 연락에 잠에서 깰까 봐 답장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자려고 했는데 아직 읽음 표시조차 뜨지 않았을 그가 보낸 라인이 신경 쓰여 잠이 달아났다. 이왕 잠 깬 거 조금만 더 하다가 자야지.



***



  다음 날 아침, 나는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걸 후회하며 정신없이 학교로 향했다. 지각이었다. 그것도 말도 안 되게 늦게 일어났다. 오전 연습은 당연히 가지 못했고 1교시가 시작되는 시간과 거의 엇비슷하게, 정말 아슬아슬하게 교실에 도착했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책상에 길게 엎드렸다. 이렇게까지 지각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제대로 단추도 못 잠근 교복 상의를 정리하고 주머니를 만졌다. 어? 당연히 챙겼다고 생각한 핸드폰이 없었다. 가방을 뒤져 봐도 마찬가지였다. 아 짜증나. 급하게 나오느라 핸드폰을 두고 온 것이 분명했다. 선생님이 웃으며 교실에 들어섰다. 나는 책을 꺼내며 짜증스레 한숨을 쉬었다. 짜증으로 얼굴에 열이 올랐다. 


  “츠키시마 점심 안 먹어?”


  대답할 힘이 없었다. 손만 휘휘 저어 안 먹겠다는 표시를 하자 짝궁이 다가왔다. 야 너 어디 아프냐? 나는 고개를 살풋 들어 안경을 벗어 흐린 시야로 그저 고개만 까딱였다. 아침에 핸드폰을 가지고 오지 않아 짜증에 열이 잔뜩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오전 수업이 지날수록 몸이 으슬으슬 춥더니 갑자기 온몸이 다 아프기 시작했다. 3학년이 되고 무리하게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한 몸이 기어코 한계에 다다랐다.


  “양호실이라도 가 봐.”


  나를 흔드는 손길을 힘없이 쳐내며 알겠다고 작게 대답했다. 나는 어깨를 쓸며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섰다. 점심시간이라고 신나게 교실을 뛰쳐나가는 한 녀석과 부딪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시야가 어지러웠다. 휘청휘청. 감기몸살이 와도 제대로 온 것 같았다.


  “열이 높네. 조퇴하고 병원에 가는 게 낫겠다.”


  체온계를 들여다보는 양호선생님이 걱정스레 말했다. 나는 양호실 침대에 걸터 앉아 이불을 둘렀다. 방학을 눈앞에 둔 계절이 서서히 더위를 몰고 왔는데도 추웠다. 


  “담임 선생님한테 조퇴증 끊어달라고 말씀드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양호실 침대에 누워 좀 자고 싶었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병원에 먼저 가는 게 좋을 듯했다.


  “3학년인데, 몸 관리 잘 해야지.”


  부 활동을 그만두라는 담임 선생님께 알아서 잘 하겠다고 해놓고 아파서 조퇴증을 끊으러 오는 꼴이라니. 스스로가 우스웠다. 웬만하면 학교 수업까지는 들으려고 했지만 몸 상태가 정말 말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속은 울렁거렸고, 뜨거운 머리는 어지러웠으며 무엇보다 추웠다. 온몸이 다 아팠는데, 근육통은 어깨와 팔이 가장 심했다.


  결국 집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 받아든 약 봉투가 두둑했다. 알약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터덜터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빈속이라 약을 먹기 위해 뭐라도 먹어야 했지만 도저히 뭘 챙겨 먹을 기운이 없었다. 물이라도 채우면 빈속은 아니겠지.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약을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교복을 대충 벗고 침대에 누웠다. 잘래. 으슬으슬 몸을 덮쳐오는 한기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옆으로 돌아눕자 베게 옆, 오전 내내 찾았던 핸드폰이 보였다. 화면을 키자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쿠로오씨의 라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답장도 못 했는데


  「츳키 오늘 연습 잘 했어?」 10:23 pm 읽음

  「나 이제 집 왔어」 10:23 pm 읽음

  「공부 중이야?」 10:24 pm 읽음


      2016년 7월 14일 (목)


  「연습 잘 갔어?」 7:13 am 읽음

  「대답 안 해줄 거야? ( ´•̥̥̥ω•̥̥̥` )」 9:50 am 읽음

  「츳키 (.﹒︣︿﹒︣.) 내가 너무 귀찮게 하는 거야?」 11:23 am 읽음

  「점심 맛있게 먹어」 12:30 pm 읽음

  「오늘 수업 진짜 재미없다 (´;︵;`)」 1:21 pm 읽음

  「츳키」 2:47pm 읽음

  「이제 라인도 하면 안 돼?」 2:47pm 읽음


  풉. 그의 라인을 읽다가 웃음이 터졌다. 웃었더니 어깨와 목이 아팠다. 라인만 읽는데도 쿠로오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읽음 2:50 pm 「죄송해요. 핸드폰을 두고 가서

 

  「츳키다!」 2:50 pm 읽음

  「핸드폰을 두고 가?」 2:50 pm 읽음

  「무슨 소리?」 2:50 pm 읽음 


읽음 2:51 pm 「학교에 핸드폰을 안 가져가서 연락 온 줄 몰랐어요.


  「그럼 지금 어딘데?」 2:51 pm 읽음


읽음 2:51 pm 「집이요.


  집이라고 보내기가 무섭게 전화가 왔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의 전화를 받았다. 


  -집이야?

  “네.”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짧은 한마디에 아프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아챘는지 그가 물어왔다. 


  “그냥 감기에요. 그나저나 수업 중 아닙니까?”


  -나 지금 공강이야. 그냥 감기라고? 목소리는 완전 아닌데? 학교 조퇴하고 집 간 거야? 병원은? 약은?


  나는 호들갑스럽게 묻는 쿠로오씨의 질문에 정신이 다 없어졌다. 그냥 감기인데 마치 큰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물어오는 그가 귀찮았다.


  “괜찮다니까요.”

  -목소리는 하나도 안 괜찮은데. 집에 누구 있어? 


  괜찮다고 누차 말해도 믿을 기색이 없는 그에게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그렇게 걱정됩니까? 웃으며 묻자 그가 진중한 목소리로 너 애 맞아. 그리고 당연히 걱정되지. 많이 아파?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걱정이 가득 담긴 질문을 또다시 쏟아냈다. 

  물어오는 쿠로오씨의 목소리와 말투가 너무 다정해서 


  “......네 많이 아파요. 열나고 춥고, 온몸은 누가 때린 거 같고”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던데”

  “공부도 해야 되는데 짜증나 진짜...”

  “오늘 아침에 늦잠자서 연습도 못 갔어요. 완전 최악이야.”


  나도 모르게 어리광이 줄줄 새어 나왔다. 나 진짜 엄청 힘든가 봐. 


  -...츳키 조금만 기다려.


  응? 나는 약 기운에 졸음이 몰려와 노곤해지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뭘 기다려? 


  -약 먹고 자고 있어. 이따 다시 전화할게.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그가 전화를 끊었다. 나는 황망히 끊긴 핸드폰을 바라보다 괜히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당신의 다정함이 조금 더 듣고 싶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무리하는 건데. 

  ...배구 따위, 공부 따위

  뜨끈한 이마를 짚었다. 열기로 가득한 머릿속은 평소처럼 빙빙 돌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끊긴 전화, 화면 속엔 파헤쳐보면 결국에는 시초로 나올 그 이름 여섯 글자가 떠 있었다. 


  쿠로오 테츠로의 다정함이 그립다. 인정하겠다. 나는 그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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