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민국인지 국민뷔인지 모호함.





 지민은 생에 처음 일어나는 이 모든 일에 속수무책이었다. 애들이 하라는대로 입을 벌렸고 기계 장치처럼 꼭 맞아 들어오는 담배를 앞니로 살짝 물었다. 오 미친, 안 알려준 것도 존나 잘 해 이새끼. 지민의 센스를 칭찬하는 말이 사방에서 울렸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에 몸은 들뜨고 마음은 붕 떴다. 아니면 니코틴 탓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심장이 콩닥거리는 바람에 웃기지도 않은 일에 웃음이 번졌다. 비웃음인지 부추김인지 모를 격려가 수차례 오갔다. 그 사이 두 번이나 빨고 켁켁거린 지민은 쓴 연기에 눈물이나 찔끔 흘리며 멀리 앉아 지켜보고 있는 태형을 훔쳐 봤다.


 김태형. 반장의 말을 빌려 그는 쌩양아치다. 교내 제일 핫한 금년의 인물이기도 했다. 모두가 그의 뒷말에 동의했고 동네를 넘어 타학교까지 널리 퍼진 소문엔 흠집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들 줄 아는 위인이었다. 성별에 가릴 것 없이 그는 넘보지 못할 산으로 포장되고 오르내렸다. 남을 깔보는 듯한 시선은 간지와 스웨그로 보였고 그가 행하는 불량한 행동은 10대의 철없는 청춘 쯤으로 평가되었다. 평소 친한 친구라 하면 한 학년 아래의 반장이거나 짝꿍이 전부인 박지민에게 김태형이란 사람은 km 단위로도 측정할 수 없는 대단한 인물인 것이다. 이까짓 장애물, 못 넘을 것도 없었다.



 “나... 더 줘!”

 “푸하하! 야! 누가 이새끼 한 대 더 줘라!”

 “여기서 제일 쎈 걸로!”

 “워후!”



 지민은 눈물 콧물 쏙 빼서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의 유일한 단짝이자 나침반인 반장, 정국은 공부나 할 줄 알고 일탈에는 흥미가 없었다. 지민이 자꾸만 태형과 관련된 일에 관심을 가질 때면 초코 우유 하나 사서 빨대를 꽂아주며 ‘내가 형 걱정돼서 공부가 안 된다.’ 고 말했었다. 덤으로 ‘자꾸 그러면 형네 아줌마한테 얘기한다.’ 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니 지민에게도 10대의 철없음은 연 없는 짝사랑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태형과 한 곳에 있다는 사실은 지민을 반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목 터져라 제일 쎈 담배를 외쳐댔더니 지민의 손에 일본 담배, 중국 담배를 넘어서 세계 각국의 희귀템이 올라왔다. 바다 건너 저 먼 곳의 운치를 한국의 땅에서도 느낄 수 있다니 이만큼 좋은 경험도 없었다. 물론 개소리지만 지금의 지민은 담배 덕분에 용기가 맥시멈이었고 두려움이 없는 상태였다. 어지러운 토기가 불쑥불쑥 목구멍을 쳐올렸지만 아까부터 계속 눈이 마주치는 태형을 봐서라도 이야기를 무를 순 없었다. 결국 지민은 게 중에서 그나마 덜 독해 보이는 담배를 집었다.



 “야.”



 집었다가 순식간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 자리의 모두가 가장 위에 있던 태형을 주시했다. 조촐하지만 그럴 듯해 보이는 의자에서 내려와 아이들이 만든 길 가운데를 통해 가장 아래까지 내려온 태형이 지민을 따라 쭈그려 앉았다. 그 시간 지민은 손에 든 열 몇 개의 담배에 한꺼번에 불을 붙여 빨아재낀 것 같은 환상을 느껴야 했다. 정신이 없고 심장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입이 떨려 말도 제대로 못 했으며 손은 수전 증상이 와 등 뒤로 얼른 숨겼다. 태형이 긴 앞머리를 입바람으로 훅 불어 넘겼다. 대단히 우아한 자세였다.



 “이게 제일 약해 보이는데.”

 “어…… 어? 어…… 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민은 입이 떨려 말이 자꾸 헛나가고 있는 상태다. 태형이 우스운 tv 프로그램을 보듯 피식 웃었다.



 “바보라서 이런 것도 모르는 거야?”

 “……응. 골라 줘.”

 “그래, 좋아.”



 이 순간 지민은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황홀경에 흉골이 아팠다. 눈물이라도 흘리면 세상에 그런 끔찍한 해프닝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므로 정국과 했던 어느 술래잡기 때보다도 더 본격적인 자세로 숨을 참았다. 태형이 입에 웃음을 걸고 지민의 손바닥을 쓸었다. 후두둑, 담배 몇 개가 바닥으로 흔적없이 떨어졌다. 태형의 검지 손가락은 간지럽고 뜨뜻했다. 지나가는 자리에 열불을 지피는 모양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시울이 시큰했다. 지민이 조금만 더 본능에 가까운 생물이었다면 냅다 키스를 하며 좋아한다고 소리 지를 만한 스킨쉽이었다.



 “이거.”

 “조, 조, 좋아해……!”



 그리고 지민은 생각보다 매우 본능적인 동물이었다.



 “…뭐라고?”

 “아, 아니, 그게, 그……”

 “아. 나도 좋아해.”



 지민은 자살 명소를 손꼽다가 냅다 고개를 들었다. 태형이 진심 가득한 얼굴로 지민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제는 지민이 물을 차례였다.



 “뭐라, 뭐라고……?”

 “나도 좋아한다고.”

 “……진짜?”

 “응. 쓰고. 향도 괜찮고.”

 “어?”

 “알싸하고.”

 “아……”

 “이거 좋아하는 애들 많아.”



 말도 안 되는 망상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에 지민은 입을 합 다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따위 담배가 아닌데. 너인데. 너 좋아하는 애들도 진짜 존나 많은데. 네가 존나 둔탱이라 모르는 것 뿐인데. 지민은 이번엔 진짜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민이 혼자만의 실연을 겪고 있을 때 태형은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지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손 위의 담배를 가져가도 별 말이 없고 그저 가끔 우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귀엽기는. 입맛을 다시고 담배를 물었다. 뽐과 간지가 이 세상의 전부인 태형은 가지고 다니는 라이터도 지포였다. 탱, 쇠붙이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습관이나 버릇처럼 담배 불을 붙인 태형은 연기를 뿜지 않고 입 안에 가둔 채 지민의 턱을 잡아 올렸다. 눈 아래가 축축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입을 부딪혔다. 방관의 자세를 취하던 애들이 저마다 입을 틀어막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억……!”



 지민은 더 했다. 눈과 눈이 1cm 사이에서 마주쳤다. 당황했는지 몇 번 더 깜빡거리며 존재를 부각하던 눈은 태형이 자연스레 감고 고개를 비틀자 따라 감겼다. 두 사람이 연결된 사이로 담배 연기가 배출됐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연기가 문자 그대로 불장난처럼 보였다.



 “어때?”



 아, 이럴 때 순진무구한 우리 정국이 얼굴이 뻔히 나타나는 건 무슨 심보일까. 형, 형은 너무 착하고 바보같아서 나쁜 짓에 금방 물들 거 같아요. 원래 그래요. 같은 것들끼리는 익숙해서 시너지 효과가 없어도 다른 형질의 것들은 빨리 동화되고 합쳐진대요. 그렇게 위험한 것이래요. 그러니까…….


 지민은 샐쭉 웃는 태형의 뒷목을 턱 붙잡았다. 아무렴 태형 역시 지민의 행동은 의외였는지 웃는 얼굴을 감추고 그대로 멈췄다. 굳어있는 대상을 사냥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부볐던 입술을 찾아 냅다 돌진한 지민은 정국이 했던 말을 회상하며 속으로 긍정했다.


 지민의 짝사랑엔 위험 요소도 물론 플러스였다.





 그 뒤로 항상 길다고 느껴졌던 지민의 쉬는시간은 1분이 모잘라 발을 빨리하고 호흡도 가쁜 비밀의 10분이 되었다. 특히나 4교시 후 점심시간은 지민이 하루를 통틀어 가장 기다리는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였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 밥도 거른 지민이 서둘러 반을 나섰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반대편에서 오는 학생과 자주 부딪히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앗, 죄송……”

 “형?”

 “어? 어, 어. 정국아.”

 “벌써 밥 다 먹었어요?”

 “어~ 그러엄! 형아는 이미 다 먹었지! 얼른 가서 밥 무라!”

 “…….”

 “…배 아파서 보건실 가는 중이야.”



 어릴 때부터 지민의 거짓말은 정국 앞에서 항상 물거품이었다. 정국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모자라 한숨을 푹 쉬더니 지민의 손목을 붙잡고 지민이 걸어왔던 곳으로 되돌아 걸었다.



 “요즘 형 이상하다고 아줌마가 걱정하시던데.”

 “아닌데? 내 완전 아무 일도 없었는데? 학교 생활 완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와 이라는데?”

 “배 아프면 밖에 나가서 죽 사올 테니까 먹어요. 약도 먹고.”

 “아니 난……”

 “형. …거기 꼭 가야 돼요? 아니잖아요.”



 정국은 뭐라도 알고 있는 듯이 얼굴을 구겼다. 지민의 목적지가 끝내 양호실이 아닐 것 쯤은 쉽게 간파하고도 남았다는 말투였다. 지민은 괜히 여기저기 찔리고 신경 쓰여서 결국 고개를 저었다. 정국은 그제서야 얼굴을 펴고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있어요. 내가 올 때까지. 알겠죠? 완벽한 대답을 얻어낸 정국이 지갑을 챙겨 교실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지민은 이제 가도 한참 늦을 걸 알기에 포기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지금이 아니어도 이따 가면 되니까.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오늘이 아니면 내일도 있으니까. 태형을 만날 시간은 꽁쳐둔 간식거리처럼 달콤하고 두근거리는 설렘이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지민의 달콤한 상상일 뿐이다.



 “가요.”

 “…….”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어. 잘생김.”

 “오키.”



 오키는 무슨. 꾹 참고 걷다가 정국의 뒷통수에 사랑의 맴매를 놓아주었다. 정국은 맞아도 좋은지 실실 웃고 있었다. 한 소리 해주고 싶었지만 막상 할 말은 없었다. 너 때문에 4교시 이후로 태형이를 못 만났잖아. 라고 말하려면 정국이 모르는 태형과의 에피소드를 전부 나열해야 했으므로, 그 중간에 있을 고난과 역경을 피해가기 어려웠으니 결국은 참는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지민은 부글부글 끓는 속으로 가방을 챙겨 반을 나왔다. 교문을 넘을 땐 미련 넘치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가 뭐 있냐는 정국의 말에 냉큼 시선을 거두어야 했다. 이 망할놈을 어쩌면 좋은가.



 “너 공부 포기 안 해?”

 “예비 고삼은 바쁩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진 않아?”

 “인생이란 아름다운 것이지요.”

 “…아무말 대잔치하냐?”

 “쮸쮸바 먹고 싶다!”



 5교시 끝종이 치고 얼른 달려 나가려던 지민은 예습이랍시고 반에 찾아와 교과서와 학습지를 들이미는 정국 덕에 욕과 거친 행동이 늘었다. 우선 전제 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지민에게 공부를 묻다니 자다가도 엎어질 말이었다. 그저 방해한다고 밖에는 생각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편의점에서 나온 지민은 쮸쮸바를 빨다가 어느새 시무룩해져 말수가 적어졌다. 그런 지민을 정국이 툭툭 건드렸다.



 “형 아직도 아파요?”

 “아프면 쮸쮸바를 먹겠어?”

 “꾀병이었어요?”



 이게 진짜 누구 놀리나…….


 정국과 헤어져 방으로 곧장 들어온 지민은 침대에 앉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김태형, 김태형, 김, 김, 김…… 있을 리가 있나. 그러나 포기 하지 않고 1학년 때 깔았다가 삭제했던 페X스 북을 설치했다. 아 뭐가 이리 복잡한데! 한바탕 난리를 친 후에야 포기가 됐다.


 혹시나 태형이가 화나진 않았겠지? 말도 없이 안 갔으니까… 당연히 화 났으려나. 아 이제 나랑 다시는 키스 안 해주면 어떡해…… 눈물 나.


 말 뿐만 아니라 지민은 얼마 안 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코까지 빨개져 금방 눈두덩이가 달아올랐다. 이마저도 본인의 욕심임을 안다. 어차피 태형이는, 내가 안 온 것도 모르고 있겠지. 그냥…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말 걸어 준 게 뻔하니까. 눈물이 죽죽 나왔다. 평소에 아껴두었던 슬픔이 이런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지 둑 잃은 하천처럼 넘쳐 흘렀다. 그 때, 핸드폰이 신호음을 냈다.



 ‘지민아 이제 안 오는 거야?’ - 18:28 pm 수신



 지민은 눈물을 얼른 훔치고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발신자 번호 미저장.



 ‘나 태형이.’ - 18:28 pm 수신



 뒤이어 온 문자가 지민의 마음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저 김태형의 오른손이 보낸 문자 메세지인데요! 우리 태형이가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도 될까요?

 -안 사요!



 ‘태형아 나 지금 가도 돼?’ -18:29 pm 발신



 -거짓말!

 -태형이가 여기서 더 들어오면 지민이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단 말이에요! 안 돼요!



 ‘나 담배 피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 담배 또 필래.’ - 18:29 pm 발신



 -거짓말!

 -…맞아요! 한 번 튕겨본 거예요! 지민이의 심장 안쪽까지 들어오세요!



 ‘그래, 좋아.’ - 18:30 pm 수신



 지민은 그대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지민의 썸엔 위험 요소도 물론 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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