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움 과자를 선물 받았고 마음이 고마워서 너무 성급하게 과자를 삼켰고 꽉 막힌 속을 내리려고 삼십 분을 내리 걷다가 지난주와 이번 주, 다음 주의 일정을 점검하고 내가 잡아둔 약속을 모조리 후회했다. 


어제는 지난 두 편의 에세이, "달콤하고 싸늘한". "초능력" 제목을 후회했다. 제목 때문에 조회수가 안 나오는 것 같다. 둘 다 사람 참 좋아하는 내 글인데. 놀라기에도 놀리기에도 애매한 제목을 지어서 사람을 만나고 사귀기 쉽지 않겠네. 미안하게 됐다.


붙은 이름 때문에 친구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까. 예를 들자면 은경의 경우. 은경은 또래에서 범상한 이름으로, 중학교를 다닐 적에는 한 반에 세 명의 은경이 있기도 했다. 큰 은경, 작은 은경으로 불러도 한 명의 은경이 남았기 때문에 은경a, 은경b, 은경c로 불렸다. 교내 작문 대회 수상 발표 날이었다. 은경을 부르는 소리에 은경c는 의자를 젖히고 앞으로 나갔다. 아니, 우수상은 은경b야. 은경b, 앞으로 나오렴. 은경c는 끔찍한 장면 같은 것을 상상하려 하면서 얼굴이 빨개지지 않도록 했지만 그 순간보다 끔찍한 것을 찾기 힘들었다. 그날 은경c는 자신의 이름이 은경인 것이 조금 미웠다. 후회하지는 않았다. 은경 자신이 지은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은경c는 은경b와 끝내 친해질 수 없었다. 이름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주 나중에 은경c는 은경b와 데면히 지낸 것을 조금 후회했다. 후회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 


후회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주로 혼자 있다. 혼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잦다. 남의 말에 참견하거나 대답하지 않게 됐다. 어떤 말을 할 때에는 내 의지로, 순전히 내가 결정해서 하는 말이 됐다. 후회를 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저께의 후회는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께의 후회가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민지를 떠올린다. 민지는 은경과는 전혀 다른 이름이지만 통하는 게 있어, 둘은 이름과 얼굴 말고는 참 닮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수줍고, 비슷하게 용감하고. 비슷한 키에, 비슷하게 먹고. 맞장구를 칠 때마다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이 생각을 나중에 후회했다. 겪어가며 닮은 구석을 찾는 일이 주는 고양감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다름을 발견할 때마다 한 층씩 내려오는 마음이 되었다. 민지와 은경의 다름은 점점 더 달라졌고 비슷한 것을 발견하면 놀라 소리를 지를 정도가 되었다.


언제부터 달랐을까. 은경은 컸고 민지는 작았다. 아무 가게의 통유리에 비친 찰나의 순간에 은경이 알아차렸다. 민지는 그 사실을 모르거나 신경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민지의 집에서 자고 가는 은경에게 민지는 갈아입을 것으로 손바닥만 한 티셔츠를 주었다. 더 큰 것 없니. 지금도 충분한데? 입을 수는 있었지만 별로 충분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티셔츠의 양면이 흉통에 좁게 붙었다. 확실히 은경은 컸고 민지는 작았다. 은경은 통찰은 없지만 예민하게 감각했다. 예감하는 일보다 눈치가 빨랐다. 그래서 통찰과 예감을 가진 사람을 남몰래 부러워하기도 했다. 은경의 생각에 민지에게는 통찰이 있었다. 어느 날 민지가 은경에게 말했다. 


너는 도무지 반성을 안 해. 삶에서 배우는 게 없어. 


그래 맞아. 



나는 매일 조금씩 후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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