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며칠 시끄러웠다. 호텔 프런트에서 찍힌 사진 때문이었다. 형과 내가 어중간하게 떨어져 서 있는 장면이었다. 다행히 전신 샷에 흐릿하게 나와 넘길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컷이지만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누가 봐도 박지민과 나였다. 기사는 아직 나지 않았다. 그것도 곧 시간문제였다. 뭐라고 날까. 이와중에도 나는 헤드라인이 궁금했다.



"이거 진짜 너야?"

"그 옆에는 지민이 맞는 거 같은디."


진 형과 호석이 형이 사무실에서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건다. 핸드폰으로 예의 사진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옷을 보니까 그 날인데요. 진 형, 그 뭐냐 우리 롤링스톤지 인터뷰했던 거. 그거 언제였죠?"

"그거 화요일. 안그래도 그날 코디가 너네 한참 찾던데 저길 가 있었네."

"아 이날 지민이 철새 보러 간 거 아니였냐? 여긴 어디냐?"

"지민이 형 못 봤어요? 아침부터 계속 안 보이는데."


호석이 형 말에 대답 없이 물었다.


"이 친구 형님들 말씀 싸그리 무시하고. 아주 지 할 말만 하는구나."


진 형이 어깨에 손을 올려 나는 그걸 피한다.


"아 장난하지 말고요. 지민이 형 어딨어요."

"지민이 호출. 방피디님."


랩몬 형이 사무실을 들어오면서 그런다. 나는 작게 절규한다. 호텔 로비에서 사진이 찍혔다고 해서 곧바로 우리를 그렇고 그런  관계로 생각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있겠지만 그래도 회사 대표의 호출이라니. 목 뒤가 서늘했다. 그것도 왜 같이 찍혔는데 지민이 형만 부른 걸까. 생각하니 괜히 신경이 예민해진다. 


오후 내내 진 형이 옆에서 호텔을 왜 간 거냐고 묻는 통에 귀찮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회의시간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작은 소리에도 문으로 자꾸만 시선이 돌아갔다. 지민이 형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보려 하다가 괜히 겁이나 그것도 그만두었다. 지민이 형이 빠진 전체 회의는 어수선하게 끝이 났다. 윤기 형은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나무랐고 호석이 형은 눈치껏 나를 감쌌다. 답답한 하루였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계속 형을 기다렸다. 내일로 넘어가는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아 그제야 나는 전화를 걸었다. 형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절망적인 표정으로 괜히 거실을 헤매고 있는데 때마침 랩몬 형이 퇴근을 했다. 너 뭐하냐. 길잃은 똥강아지처럼. 


"지미니 형이 안 들어왔는데."


나는 뒷말을 흐렸다. 뭐라고 물어야 적당해 보일까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지민이 며칠 본가 가서 쉰대. 아까 대충 챙겨서 부산 갔어."

"부산을요? 갑자기?"

"응. 아까 지민이 매니저가 그러던데."

"왜요?"


심각한 내 표정이 우스운지 랩몬 형이 피식 웃는다. 그건 나도 모르지. 그리고 머리를 툭 쓰다듬고 지나갔다. 다시 거실에 홀로 남겨진 나는 거의 울상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또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은 또 꺼져있었다. 이건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지. 그러다 문득 막연히 얼굴이 보고 싶어져 한숨이 나왔다. 


이틀 쯤 지났을 때는 메시지도 남겨봤다. 우리 그날 때문이죠. 그 사진 때문이지. 연락 좀 해요. 전화 좀 받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목이 탔다.  


멤버들 사이에서도 사안이 가볍지 않다는 걸 눈치챈 건 일주일이 지난 후 였다. 며칠 쉬고 온다던 형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혼자 나약하게 지냈다. 연락이 되지 않는 형.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회사. 내 눈치를 보는 멤버들. 나는 트랩에 걸려든 생쥐처럼 숨도 크게 쉬지 않고 눈치껏 버텨야 했다. 


영문을 몰랐다. 내가 벌린 일에 정작 나만 빼 놓는 것 같아 배신감도 들었다. 잘 참다가도 어느 날은 불처럼 참을 수 없어 피디님에게도 찾아갔었다. 피디님은 나를 만나주지 않았고 메시지로 짧게 일단 대기하라는 공지 뿐이었다. 그 사이 스케줄은 지민이 형 없이 진행되었다. 회사에서는 개인 사정이라는 말 외에는 깊게 언급하지 않아 팬들은 술렁였다.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다. 표정관리만으로 하루 에너지를 다 써야 했다. 



"지민씨가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어요. 곧 다 모인 자리에서 말하겠지만, 정국씨 먼저 알아야 할 같아서."


방피디님이 나를 불러놓고 말했다. 업무 중에는 높임말 쓰기로 했던 것인데도 오늘은 그것마저 거슬렸다. 


"호텔 사진 때문입니까?"


피디님은 안경 너머로 나를 주시했다. 주는 시선을 피하지 않아 두사람 사이에는 오묘하게 긴장감이 돌았다. 


"같은 팀 동료끼리 호텔 로비에서 찍혔다고 해서 그게 활동을 중단할 이유는 못되겠죠."

"그럼 뭐 때문에."


피디님은 잠깐 뜸을 들였다. 한숨을 후 쉬었다. 미간에 힘을 풀고 말했다.


"지민이가 좀 쉬고 싶다그러네. 그동안 너무 달려와서 멘탈 챙길 여력이 없었다고. 지민이만 괴롭히던 악성 헤이터들 문제도 그렇고. 지민이 쉬는 동안 회사 측에서도 이참에 고소고발 싹 할거고. 호텔 사진들도 괜히 루머 퍼트리는 사람들 강력히 대응한다고 기사 나갈 거야."

"결국 그 사진 때문이네요. 그럼 저도 껴있으니까."

"그만."

피디님은 내 말을 막았다.

"이건 지민이 문제야. 사진 때문에 니가 책임 따질까 봐 다 같이 안 부르고 먼저 불러 이야기 한 거야. 이 이야기도 의논 아니고 공지. 공지 끝났으니까 나가봐도 좋아요."


말 참 쉽네. 

방을 나와 박지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전원은 꺼져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형은 조용히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허리케인처럼. 나를 엉망진창으로. 


마지막으로 봤던 형의 얼굴이 떠올렸다. 언제였더라. 기억이 흐리다. 늦은 저녁 뒷베란다 작은 세탁실이었나. 샤워를 하고 빨랫감을 던져넣으려는데 인영이 있어 깜짝 놀랐었다. 형은 문턱에 쪼그려 앉아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그냥. 지민이 형은 남은 맥주를 한입에 털어넣고 일어났다. 숨기고 싶은 시간을 들켜 멋쩍은 듯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그때 형은 결심을 다 끝냈었을까.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결정하고서 마신 위로 같은 술이었을까. 모르겠다. 



핸드폰으로 다시 통화 버튼을 눌러봤다. 소용없는걸 안다. 그거라도 해야 넘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요하게  통화와 종료버튼을 반복으로 누르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정국이 왔다."


호석이 형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형들이 누군가를 둘러싼 채  이야기 중이었다. 모두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 어깨들 사이로 박지민이 보였다. 나는 들이킨 숨을 뱉는 것도 잊고 멈춰 섰다. 박지민이다. 


"지민이가 우리 모아놓고 할 이야기가 있대."


호석이 형이 말한다.


무슨 말. 나는 성큼 걸어서 형들 사이에서 다짜고짜 지민이 형을 잡아 끌었다. 형은 끌리지 않으려 힘을 줬고 나는 잡은 손목에 힘을 줬다. 형들은 그런 나를 말려야 하는지 어수선하게 서성였다. 


"이야기는 나랑 먼저 해야지."


나는 봐줌이 없이 힘껏 당겼다. 형의 몸이 내 멋대로 움직여졌다. 무작정 끌고 밖으로 나왔다. 막상 건물 안이나 밖에는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다. 나는 급한대로 형을 화장실로 데려갔다. 스튜디오 앞이라 쓰는 사람이 한정된 곳이다. 


"이것 좀 놔. 아파."


형은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손목을 뺐다.  


"형 뭔데? 이거 지금 뭔데?"


나는 처음으로 밖에서 언성을 높였다. 형은 동요하지 않는다. 예상했던 반응인 것 처럼.


"지난번에 우리 강원도에서 섹스하고 나서 말야. 니가 나 하자는 대로 그게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했었잖아."


형은 뜸을 들이고 다시 이어갔다. 나는 여전히 화가나 숨이 거칠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거 그만하자고 해도되냐 물었지."


나는 다음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만하자."


형이 너무 산뜻하게 말을 해서 나는 하마터면 농담인 줄 알고 웃을 뻔했다. 








 



말하자면 이건 비번걸린 서랍장 마지막 칸 같은 것이지 누구나 몰래하는 심도깊은 덕질 하나씩은 있잖아요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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