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들과 오랜만의 술자리였다. 술자리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차를 가지고 왔기에 술은 마시지 않겠다 했더니 서운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서운할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항상 사람들 무리에서 톡 불거져 있다. 어차피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남인데 왜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 가면서 인간 관계를 관리해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다른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연우. 나는 연우를 떠올렸다. 하루 걸러 약속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힘을 얻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오래된, 유일하게 내게 소중한 사람. 


"너 대학 때 연우랑 친했었지?"


 담배를 피우러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그 틈을 타 한 숨 돌릴 생각이었는데 옆에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다시 흡연을 시작한 것인지, 지난 밤 연우가 한 말을 또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연우의 이름이 들려서 조금 당황했다.


"네가 연우를 어떻게 알아?"


 나는 오랜 시간 굳게 다물려 있던 입을 열었다. 


"연우랑 같은 동아리였어. 우리 꽤 친했는데."


 연우와 친했다는 그 남자는 별 흥미롭지 않은 자신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간간히 대꾸하다가 그것마저 귀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이번 주가 마감인 칼럼의 초고를 완성해야 했다. 그는 지금 연우의 전 회사 거래처에서 일을 하고 있다 했다.


"요즘은 연우랑 연락 안 해?"


 내 반응이 시큰둥하자 내게 물어온다.


"나 연우랑 같이 살아."


 내 말에 의외라는 듯 날 본다. 나는 식어가는 불판 위에 조금씩 고이기 시작한 흰 기름을 집게로 긁어내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비는 대화의 텀을 견딜수 없는 것인지 다시 입을 연다. 그는 안타깝다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연우 얘기는 들었어. 난리도 아니었다던데."


 기계처럼 움직이던 손의 움직임이 멈춘다.


"무슨 얘기?"

"이직 했다며. 그 일 때문에."


 그 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연우 혼자 다 뒤집어 쓴게 없지 않아 있지. 나도 참 착잡하고 그랬는데, 도와줄 수 있는게 없어서 되게 미안해 했었어."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모르는 척 안 해도 돼. 나 연우랑 민형이 사이도 알고 있었어. 어쨌든 연우 이직하고 나서 한 번도 못 봤는데, 다음에 연우랑 같이 한 번 보자."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모르는 건데. 연우가 회사를 그만 둔 이야길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민형이는 연우 군대가기 전에 한참 붙어다니던 애 같은데, 둘 사이가 뭐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도 모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연우가 헤집어 놓아 어수선한 신발장과 거실을 보며 멈춰 선다. 겉옷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들어서서 소파에 앉았다. 어수선한 집 안이 내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나는 지난 밤의 연우를 떠올렸다. 차 안에 대표와 함께 있던 연우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내 심기를 거슬렀다. 나는 문득 그 남자와 연우를 생각했다. 종종 연우는 어울리지 않는 남의 향수 냄새를 묻히고 들어왔다.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연우가 종종 들고 들어오던 쇼핑백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대표라는 남자와 입맞추는 연우의 모습도 생각했다. 어둑어둑하던 거실 안이 새까매 질 때까지 오랜 시간동안 맥락 없는 생각들이 동동 머릿속을 떠다녔다. 문득 나는, 연우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을 떠올렸다. 참 맥락 없는 일이었다. 


 도어락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상태로 돌이 되어 버린 사람 처럼, 움직이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연우는 언제나 물건을 제 자리에 두는 법이 없었다. 오늘도 손에 쇼핑백이 들려있는 것 같았다. 이내 곧 깜깜한 거실의 불이 켜진다. 흐익! 연우의 평온하던 숨소리가 불규칙하게 났다.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고운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연우야."


 나는 목을 가다듬지 않고 연우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가 평소보다 잠겨 거실 바닥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연우는 나를 빤히 본다. 다음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뭘 물어야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궁금한게 뭔지도 모르겠다.


 너 전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만 몰라. 대표랑 왜 키스했어. 대표랑 무슨 사이야. 모두가 내가 연우에게 묻기에 주제 넘는 물음이다. 우리는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에 의식적으로 무관심했다. 사실 궁금했다. 왜 연우는 연애를 하지 않는지. 누군가를 만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미묘한 차이는 분명 있는 것 같은데 왜 항상 나는 모르고 있는 건지. 안다면 연우가 날 죽이려고 하겠지만, 연우는 동정일까 생각도 했었다. 


 나는 그래서 이름을 불러 놓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종종 연우는 내가 이럴 때면 잔소리를 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이내 외투를 벗으며 돌아서는 연우의 뒷모습에 대고 물었다.


"너 섹스 해 봤어?"


 뭐? 연우가 인상을 찡그린다. 이게 아닌데. 물어보려 했던 건 당연하게도 이게 아닌데. 나는 방금 뱉어낸 말을 주워 담지도 못하고 실시간으로 불쾌함에 물드는 연우의 흰 얼굴을 보고만 있다.


"너 술 마셨냐?"


 연우의 목소리 톤이 티가 나게 높아졌다. 나는 고갤 젓는다. 


"돌았냐?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


 조곤조곤하던 목소리가 커졌다. 누가 이런 날 싫다고 한들 신경쓰이지 않는데, 연우가 날 싫다고 하는 생각 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니. 별로 궁금하진 않아."


 미친 새끼인가. 중얼거리는 연우의 말이 귀 안을 파고든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갤 숙였다.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고."

"어디 아파?"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우는 내게 다가온다. 가까워져 오는 연우에게서 어김없이 향수 냄새가 난다. 평소에 뿌리던 것과 다르다. 나는 다시 대표라는 남자를 떠올렸다. 어제 밤, 그와 입맞추는 연우의 모습을 나는 한참동안 보고 서 있었다. 그럴 것 같았나? 그렇지 않았다. 꿈에도 몰랐다.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담 나는 연우에게 관심이 없었나? 아니, 나는 항상 연우가 궁금했다.


"너 남자랑 자 봤어?"

"...."

"너 남자 좋아해?"

"....."

"왜 난 몰랐지?"


 연우는 말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아니라고 잡아 뗄 수도 있을 텐데 연우는 거짓말을 못 했다. 연우는 한숨을 내쉬며 뒷걸음질친다. 머리카락을 쓸어올린다. 염색하지 않아도 짙은 고동색의 머리카락이 매끈한 이마 위에 흩어진다. 


"어."

"....."

"숨기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나 옛날부터 그랬어. 말할 기회도 이상하게 없었고."


 연우는 다시 제 톤을 찾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한다. 그런 연우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지금, 연우야."

"민재야."

"화가 나."

"....."


 연우가 하던 말을 멈춘다. 숨 쉬는 것도 멈추고 가만히 나를 본다.


"...왜?"


 연우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날 보고 있다. 텅 빈 공허한 눈이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린다. 내가 화가 난 이유. 구체적으로 무엇에 화가 난 건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네가 말해주지 않으면 나같은 사람은 절대로 알지 못할 일들이... 너한테 일어났는데."

"...."

"괜찮냐고 물어 보면, 너는 분명히 괜찮아 별일 아니었어 말할 것 같은데. 그런데."


 하아. 연우가 한숨을 쉰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아무렇지 않았을 리가 없어.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 뿐만 아니라 그냥 전부 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너에 대한 이야기들, 그런걸 나만 모르고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괜찮아."


 오랜만에 이렇게 화가 났다. 나는 솟아오르는 감정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 앞에 연우를 세워 두고 쏟아내고 있었다. 


"왜 나만 모르고 있었을까. 내가 너한테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나 싶어. 그렇게 오래 봤는데, 나는 이제 너를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


 나에 비해 연우는 덤덤하다. 연우는 또 뒷걸음질친다. 나를 걱정하며 가까이에 왔던 연우는 어느새 두 발짝 멀리에 가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짝 아래에 있는 시선이 나를 올려다본다. 화를 낸다고 될 일이 아니란 걸 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다고 속상해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오래전부터 너를."


 그러나 연우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연우의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화가 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나와는 분명 다른 의미였다.


"네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띄엄 띄엄 하는 말들은 꼭 맞추기 어려운 퍼즐 조각처럼 흩어진다. 연우답지 않게 횡설수설 말하고 있다.


"네가 너무 좋아서.."


나는 그 말을 하는 연우를 가만히 본다.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답답했다.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내 시선을 피하는 눈, 상기된 볼의 열기가 귀 끝과 목덜미까지 번지기 시작한다. 


"내가 너를 좋아해. 많이."


  연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연우의 어깨와 손 끝이 떨리고 있었다.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처음 보는 연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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